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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화 〉121화 : 자존감 (121/169)



〈 121화 〉121화 : 자존감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만 남게 된 저택.
되감겼던 시간이 다시 흐르지만 굴레를 베어내는 검과 군인들의 헬기는 나타나지 않는다.


홀로 남아 검을 휘두르며 체력을 단련하는 여제자의 모습을 보면
조금 두서없지만 온갖 생각들이 떠오른다.

유리컵 속에 갇힌 벼룩은 천장에 머리를 박다 보면 점프력이 낮아지고
어린 시절부터 얇은 밧줄에 묶인 코끼리는 성체가 되어도 그 얇은 줄을 못 끊는다는 이야기.
지금 상황과 완벽히 맞는 사례는 아니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다.

벼륙을 높게 뛰도록 만드는 일
코끼리가 밧줄을 끊게 만드는 
그리고 여제자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는 일.


그걸 타인이 어떤 식으로 개입해서 정신머리를 바꿔야 하지?


여제자와 굴레를 베어내는 검은 단 둘이서 생활을 했다.
때문에 대련은 언제나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상황.
유효타 한 번 없이 수련만 5년을 했는데 지치지 않을 수 있나.


'차라리 중간에 다른 화신들이랑 좀 대련 같은 걸 시키던가….'

제자를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려는 굴레를 베어내는 검의 뼈져린 실책이었다.
그녀 딴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모든 걸 전해준다는 생각이었겠지만
그런  때문에 자기 제자의 자신감이 마모되고 있다는 걸 몰랐나보다.

한예지도 아카데미에 있을  늘어나지 않는 실력 때문에 악몽에 빠진 적이 있었다.
아마 사격 훈련장에서 탈락하는 꿈을 반복하며 정신력이 마모되고 있었었지.
 때는 교관에게 엿들은 힌트로 한예지의 실력을 향상시켜 해결했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지금 쓸 수 있겠는가?
목검으로 바위를 베는 여성이 산등성이는 못 벤다고 우울해 하고 있는데.
저 정도로 대단한 재능과 실력으로 우울해 하는  어찌 보면 기만이라 볼  있을 정도.


비교 대상이 검으로 해일을 가르고 산등성이를 폭파시키는 성좌라 그렇지
이 여제자도 15살 때 검을 잡아 5년 만에 대륙에 이름을 날리는 중이다.
고작 20살,  화신들보다 2,3살은 어린 나이.
그러나 내 화신들이 전부 달려들어도 손가락은 커녕 옷자락도 스치지 못할 검객.


그런 검객한테 내가 뭘 가르칠 수는 없겠지.

굴레를 베어내는 검이 없는 세상에서 홀로 수련을 하는 여제자.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좋은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내가 심리상담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걸 어떻게 해결하겠어.

오히려 몽마의 마력에 찌든 뇌는 다른 방법으로 기운을 북돋자고 요구한다.


'덮쳐봐야 검에 대한 자신감은 여전할  아니야….'

땀에 젖은 머라키락을 뒤로 슥 묶으며 드러나는 뽀얀 목덜미와 보드라운 잔털.
덥다고 옷을 벗어 던진 채 바지만 입어 출렁출렁 보기 좋게 흔들리는 탄력 있는 가슴.
나도 남자인데다 몽마가 되어 정력이 사그라들지 않아 꼴리긴 꼴렸지만,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어디 싸구려 야설처럼 자지를 박아 넣었더니 모든 게 해결되었다, 이런 식이면 당장이라도 덮쳤겠지.
박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마법의 자지 같은 건 몽마한테도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굴레를 베어내는 검을 이기는 꿈을 꾸게 할 수도 없다.

여제자에게 굴레를 베어내는 검은 넘어설  없는 벽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걷는 길의 끝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우상이기도 하니까.
연예인 지망생의 앞에서 롤모델인 스타의 몰락을 보여준다고 자신감이 차오를 리 없겠지.


'환장하겠네, 진짜.'

곧바로 해결할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판단을 하고 마력을 움직여 보았다.


지금까지는 시간이 흐르고 진행이 막히면 저절로 튕겨 나왔지만
이제 이 공간에  변화가 생겼으니까 내 마음대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비전문가인 내가 백날 천날 혼자 고민하는  보다 그냥 나가서 전문가 의견을 듣고 말지.


심리학자, 상담가, 멘탈 케어 전문가.
뭐 이런 직종의 사람들  검증 된 사람들 좀 모아오라고 아카데미에 부탁해보지 뭐.
성좌가 두 명, 그 중 하나는 동대륙 최강의 성좌다.
성좌 두 명이 전문가 좀 불러오라는데 누가 거부하겠나.

그렇게 생각하며 마력을 휘둘렀다.

담벼락 밖으로 나갈  없는건 변함 없었지만
담벼락 안에서는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
내가  소환하고 만들어내도 여제자가 반응하지는 않았지만
들어오고 나가는  정도는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제사 그만 지내도 되겠네.'


오늘도 운동장 바닥에 쏟아 부어버린 보석 가루가 몇 자루인지.
가슴 한 켠의 서민 감성이 피눈물을 흘릴 것 같은 풍경도 이제 끝이다.

"오늘은, 어떻소?"

이제는 익숙해진 이 상황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운동장 중앙에 돗자리깔고 누워 걱정과 기대 어린 시선을 받는 거.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지…?"


자연스럽게 다가와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이하린과
슬그머니 돗자리를 말고 있는 김하은의 뒤에서
굴레를 베어내는 검이 슬그머니 다가오다 눈썹을 치켜뜨며 의문을 표한다.


숨길 이유도 없으니 전부 말해줘도 되겠지.


"허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재능이 너무 뛰어난 게 독인가, 아니면 내 제자가 오만했다고 봐야 하는가…?"


주화입마의 원인이 자신과 제자의 실력 격차라는 소리에 할 말을 잃어버린 굴레를 베어내는 검.
하기야 평범한 스승과 제자 사이도 아니고 성좌와 화신의 관계다.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원인 때문에 혼란스러운지 계속  손잡이만 만지작거린다.

"그렇다면, 어찌하면 좋겠소?"


"아카데미측에 전문가를 요구하려고 합니다."


"전문가라, 어떤 전문가를?"


"심리 상담가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공포의 근원과 두려움의 제거지 패배감과 무력감의 제거가 아니니까요."


내 말을 들은 굴레를 베어내는 검이 이해했다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녀도 나와 김하은이 치료하는 것이 전부 트라우마와 PTSD인걸 알고 있을테니까.
고지식한 면이 있더라도 이런 건 잘 이해해 주는  같네.

그래도 내일 부터는 이런 대규모의 제사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점을 말하니
굴레를 베어내는 검보다 옆에서 날 부축했던 이하린이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

하긴 마법 연구에 미쳐 살던 이하린이다.
매일 똑같은 대규모 제사를 지내는  귀찮았겠지.
여기서 그녀가 싫어하는 것은 대규모 제사의 번거로움이 아니라, 반복되는 제사라는 부분이다.
소설 좋아한다고 같은 책, 같은 권만 매일 읽게 한 상황이니까.


"그리고 이제 제사 없이 제가 제자분의 꿈 속으로 들어갈  있게 되었습니다."

"좋은 징조지요?"

"예, 진전이 있다 보면 되겠죠."


"못난 제자를 잘 부탁하오."


오늘도 김하은은 마력을 더 모으겠다며 환자들을 향해 달려가고
굴레를 베어내는 검은 또 바람을 밟고 어디론가 훙 날아갔다.


다른 점이라 하면 밧줄에 묶여 멀뚱멀뚱 묶여 있는 여제자의 모습이다.


"그…, 성좌님? 제가 데려갈까요?"

주화입마에 걸렸다 해서 주변 사람들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살인귀가 된 것은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조금 흉폭한 짐승이 된 것 처럼 이성이 날아가고 본능대로 움직이는거지.

자신을 개처럼 두드린 스승은 무서우니까 근처에 있으면 쫄아서 끙끙 앓고
6일 내내 만난 나는 무섭지도 않고 위협적이지도 않으니까 소  보듯 하는거다.


물론 고지식한 굴레를 베어내는 검은 다  사내의 방에 어찌 여인을 들이겠냐며 놀라고
이하린과 김하은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칼잡이를 성역에 들여 놓는게 불안하다고 말 했으니-


"함께 내 숙소로 와 주겠니?"


"네, 알겠습니다."


이하린도 내 숙소로 부르면 되겠지.

내 뒤를 졸래졸래 따라오는 이하린과 순순히 끌려오는 여제자의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초커로 위장한 목줄을 찬 이하린이 여제자의 손목을 묶은 밧줄을 잡아 끌고 있으니까.
이게 무슨 기차놀이도 아니고 목줄 찬 여자가 수갑 찬 여자를 잡고 줄줄이 따라오고 있어.


말이 같은 방이지, 평수로 치면 거실만 30평은 되 보이는 넓은 공간이니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
숙소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아카데미 건물 하나를 성역으로 지정하고 뒤늦게 공사를  거니까.
욕실이나 침실 같은 걸 계산하면 거의 60평은 되지 않을까?


아파트 평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전생의 우리 집 보다 훨씬  보이니까.
아니면 자그마한 엘프의 육체가 되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고.

'여차하면 나는 성역으로 올라가지 뭐.'

세 사람이 지내기에 충분히 넓은 공간이지만 만약 불편한 점이 있다면
그 때 아카데미나 굴레를 베어내는 검에게 간병인을 요구하지 뭐.

그렇게 생각하며 아카데미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숙소로 향했다.
앞장서 문을 열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리트리버가 보인다.

"어, 이 녀석 어떻게…?"


깜짝 놀란 이하린의 목소리에 경비들의 고개도  돌아간다.


명색이 성좌가 머무르는 성역인지라 보안 하나는 확실할텐데 개한테 뚫렸구나.
잃어버린 걸 물어오는 것 외에도 잔재주가 있는지 잠긴 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녀석.
근처에서 내 쪽을 슬쩍 바라보던 경비 담당 수인 화신들이 당황한  처럼 이쪽을 바라본다.

리트리버는 내 전령이 아니라 이하린의 전령.

기본적으로 이하린의 숙소에서 머물다 마법학 교관의 연구동으로 향하고
오후에는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생도들과 노는 게 일상이다 보니
내 성역 안에서 톡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경비들이 당황할 수 밖에.

살인 사건 이후 총장으로부터 시작된 대륙급 내리갈굼 이후 얼마나 경비에 심혈을 기울였는가?
그런데 개 한 마리, 소형견도 아니고 듬직한 리트리버  마리를 눈치  채다니.


사색이 된 앳된 얼굴의 여자 경비원이
뾰족귀를  늘어트리길래 손을 휘휘 저어준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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