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118화 : 목줄
마법진을 이용하는 제사라는게
제물과 마력만 있으면 연속해서 반복할 수 있는게 아닌지라
굴레를 베어내는 검과 그녀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숙소로 향했다.
아카데미측에서 급히 기숙사 하나를 비워준 것 같았다.
하기야, 등골이 오싹해지고 입술이 바싹 마르게 하는
그 끔찍한 살기를 생각해보면 일반 기숙사에 머무르긴 힘들겠지.
그 모습을 본 김하은은 시간이 늦었지만 환자들을 돌보러 갔다.
박애주의적인 모습이 아니라, 여제자에게서 얻은 게 없으니
오늘치 마력을 충당하러 간 것이다.
'아직 집착이 사라지지는 않았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이하린도 있겠다
아카데미에서의 풍족한 삶과 밤마다 얻는 쾌락 덕분에
어느 정도 정신이 안정 된 것 같지만 김하은의 저런 집착은 여전하다.
때문에 내 숙소에는 이하린만 남아 있는 상황.
"그래서, 무슨 일이니?"
"흙먼지로 더러워 지셨기에, 목욕 시중이나 들까 해서요."
생긋 웃어보인 이하린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더니 욕실로 쏙 들어간다.
하지만 태연한 모습과는 달리 그녀에게서 전해지는 감정인 혼탁하기 그지 없다.
'아니 씨발, 주화입마도 옮나?'
아까 그 여제자가 내뿜은 살기 때문인가?
정신 상태가 조금 뒤죽박죽인 것 같은데.
아무 맥락 없이 목욕 봉사를 하겠다고 제안하지를 않나,
느껴지는 감정은 두려움과 기대감과 설레임과 창피함이 다채롭게 섞여 있다.
자각몽 속에서는 온탕 잠수 펠라까지 하는 이하린이
고작 목욕 봉사로 창피해 할 이유가 있을까?
감정을 읽을 수 있어도 생각을 완벽하게 읽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무서운데 기대되면서도 불안한 게 뭘 뜻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따라 들어가면 되나?'
이하린의 자각몽 속에서는 처음부터 알몸으로 호화로운 욕실 속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 들어가야 할 지, 욕조에 물 받는 소리가 멈추면 들어가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살면서 목욕 시중받아본 적이 있어야지.
물론 목욕 시중을 받지 않는다는 선택지 따위는 없다.
예민해진 청각에 사락사락 옷 벗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어떻게 이걸 거부할 수 있겠는가.
물소리가 조금 줄어들기에 슬금슬금 욕실로 향했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봉사를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미녀에게 받는 시중은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얘 또 욕조에 처박히는 건 아니겠지?'
슬쩍 스쳐지나가는 무서운 상상에 욕실 욕조를 떠올려 보았다.
꽤 넓은 편이라 두 사람이 껴안으면 널널하게 들어갈 수 있겠지만
한 명이 잠수를 해서 파고 들 공간은 안 나오겠지.
알몸의 여성이 목욕 봉사를 해 드리겠다는데
그걸 기다리면서 이런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나 스스로도 우스꽝스러워서 피식 웃고 욕실 문을 열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수건 한 장을 깔고 그 위에 무릎을 꿇어 앉은 이하린.
가끔 상식을 벗어나는 것 처럼 기상천외한 모습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다.
"성좌님, 이 쪽으로."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이하린에게 다가갔다.
흙먼지가 벗은 옷이 벗겨지고 피부를 기분 좋게 자극하는 온수가 슬그머니 끼얹어진다.
피부가 상할 것을 걱정하는지, 아니면 슬그머니 사심을 채우려는 건지
맨 손으로 거품을 낸 이하린이 내 온 몸을 살금살금 쓰다듬는다.
그 부드러운 손길에 자연스럽게 아래쪽에 힘이 불끈 들어가고-
'음? 뭐지?'
다시 한 번, 온수가 끼얹어지며 거품이 씻겨나간다.
함께 욕조에 들어가서 나른함을 즐기는 것으로 목욕 봉사는 끝.
평소와는 다르게 담백하다 못해 만우절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은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녀 역전 세계인지라 내가 요구하지 않아도 먼저 다가오는 여자들의
욕망에 솔직하다 못해 적나라한 모습이 되게 만족스러웠었는데.
오늘은 아무 일 없이 목욕이 끝나버렸다.
섹스를 못 해서 어리둥절 한 게 아니다.
'그럼 대체 뭘 기대한거야?'
욕실에 들어오기 직전, 이하린이 느끼던 감정 때문이다.
마력을 집중하지 않아도 느껴 질 정도로 커다란 감정의 탁류.
그건 대체 뭐였지?
뽀얀 알궁둥이를 보이며 먼저 후다닥 나가는 이하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야 뭐, 지금 하지 않더라도 자각몽이나 무의식 속에 들어가면 즐길 수 있으니까 상관 없지.
하지만 아까 그 감정이 뭐였는지 신경쓰여서 미칠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넌센스 퀴즈를 던진 다음
정답을 알려주지 않고 도망 친 것 같은 느낌.
그렇게 생각하며 대충 샤워 가운을 들고 밖으로 나가니-
돌아간 줄 알았던 이하린이 침대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한 모습으로.
물기에 축 젖어버린 새하얀 목욕 가운.
흐트러진 가운 너머로 보이는 가슴골과 그 위를 흐르는 물방울.
대충 주저 앉아 흐트러져 허벅지는 물론 엉덩이까지 보일 것 같은 하반신.
그리고 개 목줄.
'목줄? 왜? SM취향? 어, 무의식에서는 이 정도까지 안나갔는데.'
이어지지 않는 사고가 단편적인 단어가 되어 머리속을 톡톡 튀어다닌다.
개 목줄을 차고 있는 여자라니, 전생의 AV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지 않나.
홀린 듯 침대 앞으로 다가가니 이하린이 내게 수줍게 손을 내민다.
그와 함께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는 감정의 파도.
성좌에게 복종하고 있다는 충족감
불편한 목에서 느껴지는 구속감
여자가 되어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수치심
그 모든것이 두근거리는 쾌감이 된다는 배덕감까지.
"그, 이게, 이래보여도 마도구입니다…."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이하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한다.
"성좌님께서 저희에게 연락을 하시려면 성역으로 돌아가셔야 하는 것 같아서…."
은은하게느껴지는 마력도 그렇고 물이 묻어도 튕겨나가는 모습도 그렇고
마도구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게그, 남대륙의 화신들이 보내 온 물건입니다. 동물을 길들이면 그 동물에게 텔레파시를 보내 의사소통이 되는 마도구라고."
"동물용인데, 괜, 찮니?"
"아 네! 연구를 해서 손을 봤으니 괜찮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서, 성좌님과 화신의 관계로 조금…."
벌벌 떨리는 손과 긴장감 때문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눈망울을 보니
오늘 아카데미에 연락해서 스마트폰을 구매 할 예정이었다고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성좌에 대한 충성심이 복종과 구속에 대한 욕망으로 변하는 것 같은데….'
어째 그녀의 욕망이 '내가 충성을 바치는 것'에서
'성좌가 나를 옭아매는 것'으로 음습하게 바뀐 것 같았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었다.
'꼴리긴 존나 꼴리네.'
내가 이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수줍게 내밀어진 목줄 손잡이를 붙잡자 안심한 것 처럼 그녀가 웃는다.
아- 하고 내뱉어지는 안도 섞인 탄식을 들으며 살짝 목줄을 당겨본다.
슬그머니 내 쪽으로 쓰러지는 그녀.
'야하다, 진짜.'
흐트러진 목욕 가운을 입은 반 나체의 여성과
그 새하얀 피부와 가운과 대비되는 검은 목줄.
한창 혈기왕성한 남성에게는 치명적인 맹독처럼 느껴진다.
침대에 엎드린 그녀가 불룩솟아 오른 내 목욕 가운의 사타구니 부분을 보고 슬쩍 웃는다.
내가 거부하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안심이 된 것 같았다.
"그러면, 주종 관계의 의식을."
성좌와 화신 계약도 아니고, 너무 대놓고 주종관계라 말하는 거 아닌가.
그런 딴지를 걸기도 전에 부드러운 손가락이 내 가운을 헤집고 들어온다.
그와 함께 느껴지는 아찔한 쾌감.
'여긴, 현실인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보다 꿈에서 느끼는 쾌감이 더 크다.
30분 넘게 지속되는 무호흡 수중 펠라나
마력을 받아가는 착정의식처럼 현실성과 동떨어지는 성교 행위가 있었으니까.
"몽마의, 마력이구나?"
그러나 지금 이하린은 마법사가 아닌, 몽마로서의 힘을 다루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꿈과 같은 쾌감을 줄 수 있도록.
"녜에, 이래 뵈도 무기력한 악몽님의 화신이니까요-."
끝자락만 간질이는것에 감질나서 목줄을 슬쩍 당겼다.
목을 옥죄는 감각에 기쁘게 앞으로 기어오는 그녀가 혀를 베에- 빼물고 말을 한다.
"김하은만큼은 아니더라도, 저도 이 마력을 다룰 수 있어야겠죠?"
손가락과 혀 끝에 뭉글뭉글 맺혀 있는 저 미약한 보라색 기운.
김하은의 마력의 장막이나 내가 사용하는 마력의 실타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찮은 양.
그러나 재능 극단(極端) 때문에 제사 마법을 제외하면 재능이 나락으로 처박힌 이하린이다.
그런 그녀가 저 정도 몽마의 마력을 다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을 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 노력의 방향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피를 쏟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만든 게 개 목줄과 입보지라는 점이 좀 아이러니 하지만.
성좌가 몽마니까 화신이 그런 걸 만드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애써 합리화를 할 수 밖에 없다.
"마도구에 담긴 술식을 건드리고 마법진을 수정하느라 엄청 고생했어요-"
[그러니까 포상을 받고 싶어요, 성좌님]
욕탕의 온기로 따끈하게 뎁혀진 입술이 귀두 끝자락에 쪽쪽 입을 맞춘다.
이제 우리 둘의 입에서는 음욕에 물든 더운 숨 밖에 흘러나오지 않는다.
귀두 끝자락에서 성기를 타고 불알까지,
거기서 위로 올라올 줄 알았는데 목줄이 죄이는 걸 즐기며 아래로 내려간다.
허벅지와 무릎을 타고 내려간 이하린이 발등과 발가락에 입을 맞춘다.
성좌와 화신의 관계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복종.
되려 그 것이 남성을 자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