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114화 : 펫 3
김하은이 넋두리처럼 늘어놓은 변명과 상황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먼저, 김하은은 언제나처럼 악몽을 소화 시키고 있었다.
환자들을 돌보고 그들의 악몽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행위.
마력의 장막 속에서 명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는가?
어제 확인했을 때 군인 중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안 그래도 화신 하나가 아카데미 안에서 살해당했는데
명백히 수상한 검은 고양이가 테이블 위에 턱 앉아 야옹야옹 울고 있는 상황.
검은 고양이 하면 저주나 불행을 떠올리는 건 이쪽 세상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쫓아내거나 사로잡기 위해 마력까지 사용해 고양이에게 양팔을뻗고-
“그래서, 정신을 차려보니 방 밖이라고?”
“어, 아마 한 대 맞고 튕겨 나온 것 같은데.”
흐릿한 검은 잔상과 햐아악! 하는 고양이의 하악질 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그 뒤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할 때마다 실패.
전화 너머로 들려오던 요란한 소리는 김하은이 마력으로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던 소리였다고.
“핑계가 아니라 진짜 강하다니까?”
뺨 한 대 맞고 기절해서 자기 방문 밖으로 던져진 김하은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하지만,
이하린의 시선은 냉랭하기만 하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에 고양이한테 얻어맞고 도움 요청을 하는 바람에 휴식을 방해받았으니까.
오만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감은 넘치던 김하은이
쭈그리처럼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 처량해 보여 한 마디 던져주었다.
“그 아이도 내가 데려온 아이란다. 충성스러운 송곳니가 보내 준, 특별한 힘을 가진 아이니까 너무 타박하지 마렴.”
남녀 역전을 생각하자면 덩치 큰 고양이한테 처맞고 자취방 밖으로 쫓겨난 남학생과
그걸 놀려 먹는 남성 친구의 모습이겠지만 말이야.
눈으로 보기에는 가냘픈 여인, 정확히는 가슴과 엉덩이는 가냘프지 않지만,
허리는 가느다란 미녀가 부어오른 뺨을 움켜쥔 채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모습이니까.
억울해서 씩씩대는 분노의 눈물이지만 내 뇌가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아, 역시…!”
“그렇군요, 이 개가 사라졌던 문서를 물고 온 것처럼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 밖으로 무언가를 쫓아내는 능력을 갖췄나 보네요.”
그렇게 두 화신과 한 마리의 개와 함께 문제의 방문 앞으로 향했다.
“근데 얘는 뭐야?”
“짐승 성좌님들과 계약한 동물, 전령이야. 화신들이 권능을 사용하는 것처럼 특이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 아마 네 방을 빼앗은 고양이도 그 능력을 사용했을 거야.”
“그치? 내가 그냥 고양이한테 뺨 맞고 쫓겨난 건 아니지?”
“아니, 일단 같은 화신도 아니고 고양이한테 뺨 맞고 쫓겨난 건 맞지.”
투닥투닥, 격식 차리지 않는 사이가 된 두사람이 대화를 나눈다.
그 와중에도 리트리버는 입에 육포를 문 채 방문 앞에 털썩 주저앉은 상황.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니 화들짝 놀란 김하은이 내게 다가온다.
“조심하세요, 성좌니, 임?”
손을 쭉 뻗으며 호들갑을 떠는 김하은과 한심하다는 것처럼 노려보는 이하린.
김하은이 놀라는 모습이 무안할 정도로 아무 일 없이 문이 열렸다.
관리도 잘 되어 끼이익- 하는 불길한 소리도 없이 활짝 열린 문.
“너 뭐하냐?”
“아니, 나는 문 열려 하면 뭔가 날아와서 후려쳤다니까?”
내 다리 사이를 비집고 방 안으로 들어간 리트리버를 뒤따라 우리 모두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전화 너머로 들렸던 요란스러운 소음이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잘 정리된 김하은의 방으로.
‘야, 너 딜도 같은 거 대놓고 꺼내둔 거 아니지?’
‘미친년이, 뭔 소리야.’
‘니 방에 성좌님 모셔도 되는 상태냐고.’
‘아카데미에 딜도를 어떻게 들고 오겠냐. 항구에서 수치플 당할 일 있어?’
뒤에서 들려오는 소곤거리는 목소리는 우리 화신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못 들은 척해줄까.
독기로 가득 차 자기 몸이 망가질 정도로 운동에 매달리던 김하은이 저렇게 지내는 모습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잘 정리된 방은 딱히 꾸며지지 않은 아카데미의 기숙실과 닮아 있었다.
침대, 테이블, 책상과 의자. 밋밋하지만 정갈하고 깔끔한 가구들.
그리고 그 방 중앙 테이블 위에 식빵 굽는 자세로 앉아 있는 커다란 고양이.
‘왜 더 커진 것 같지?’
어째 리트리버한테도 덩치로 꿀리지 않아 보이는 새카만 털의 고양이.
메인쿤인가 뭔가 하는 1m짜리 거대 고양이 사진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테이블 위에 고양이가 있다’라는 문장이 정말 어울리지 않는 장면.
“그, 크기가 좀 많이 크네?”
이하린도 그 덩치는 예상 못 했는지 화들짝 놀란다.
고양이한테 졌다고 실컷 놀려 먹었는데 덩치를 보고 당황했다는 사실이 조금 창피한 것처럼 말까지 더듬는 상황.
솔직히 말하자면 커다란 고양이가 아니라 작은 표범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니까.
“많이 강한 거 맞다니까요? 설마 제가 손바닥 크기의 새끼 고양이한테 졌겠어요?”
“고양이는 맞지?”
억울함을 풀기 위해 고양이의 강함을 어필하는 김하은과 아무튼 성좌와 관련된 동물이니까 열심히 관찰하는 이하린.
두 사람을 내버려 둔 채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새카만 털 속 묻혀 있던 샛노란 눈동자가 나를 주시하기 시작한 것을 느끼며 한 걸음,
하품을 쩌억 하며 새하얀 송곳니를 바라보며 한 걸음.
그와 동시에 내 보폭에 맞춰 걷는 리트리버.
“이 육포는 선물로 가져온 거니?”
어느새 내 발치에 육포를 살짝 내려놓는 모습을 보고 묻자 털이 팔락거리도록 고개를 끄덕인다.
‘어째 이 리트리버가 우리 화신들보다 의젓한 것 같은데.’
고양이가 아니라 사파리의 사자에게 먹이 주기를 하는 기분으로 육포를 주워들고 다시 한 걸음 앞으로 향했다.
이게 뭐라고 뒤에서 두 화신이 대화를 멈추고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느껴질 정도.
그래도 엘프의 육체가 도움이 되는지, 김하은처럼 다가갔다고 냥냥 펀치에 뺨을 맞고 기절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테이블 앞, 손이 닿을 거리까지 가서야 든 생각.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나 말고 하은이 네가 줘야 하지 않을까?”
“어, 그러네요?”
다들 고양이의 기묘한 포스에 겁을 먹었지만, 중요한 것은 얘가 내 펫이 아니라는 것.
좋으나 싫으나 성좌인 내게 보내 준 동료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친해져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김하은이라는 소리지.
내 말이 바르다고 생각하는지 침을 꼴깍 삼킨 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내 손에서 육포를 받아든다.
천천히 뻗어지는 손과 그걸 진지하게 바라보는 우리.
코미디나 동물원이 나오는 예능 같은 장면이지만 새삼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애완동물과 인간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전령과 화신이라는 수평적 관계니까.
물론 세상진지한 표정으로 한 걸음씩 엉거주춤 앞으로 향하는 것은 김하은뿐.
나와 이하린은 웃음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뒤에서 관찰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턱 주저앉은 고양이와 자세를 낮추고 육포를 공손히 내미는 미녀의 모습은 구경하는 맛이 있었으니까.
“저기….”
한 손으로 육포를 슬그머니 내미는 김하은의 모습에 고양이가 입을 쩌억 벌리며 하악질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이해했다는 것처럼 곧바로 두 손으로 육포를 내미는 그녀.
공손하다 못해 비굴한 김하은의 모습에 이하린이 웃음을 참기 위해 자신의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던가?
테이블에서 풀쩍 뛰어내리며 육포를 휙 빼앗은 고양이가
김하은의 발치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육포를 잘근잘근 씹는다.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쪼그려 앉은 그녀가
고양이의 길고 검은 털을 쓰다듬으며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수상해서 잡으려 했다는 것도 그렇고
반항도 못 하고 냥냥펀치에 얻어터지는 것도 그렇고
고양이를 엄청나게 좋아하는구나.
“와, 부드럽다….”
입을 헤벌쭉 벌린 줄도 모르고 커다란 인형 껴안는 것처럼 고양이를 양팔로 껴안은 상황.
얼핏 생각하면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결국 외모가 깡패였다.
새하얀 피부의 미인이 새카만 털에 폭 안겨 있는 모습이 마치 화보처럼 아름답게 보이니까.
“뭘 그렇게 보고 있니?”
“제가 개를 더 좋아한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서요. 아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이것 좀 보시겠어요?”
고양이 파인 김하은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리트리버의 목덜미를 벅벅 긁어주던 이하린이 내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민다.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은 ‘한씨’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
김하은이 ‘김씨’라고 저장되었으니, 이 ‘한씨’는 아마 한예지겠지.
- 야 나
- 새 잡음
- 잡은 게 아니라 길들임?
- 아무튼 뱁새 잡았는데 성좌님 드ㄹㄹㄹㄹㄹ
고양이와 개도 사람 말을 알아듣는데, 새라고 못 알아듣겠는가.
뭐 때문에 분노한 새가 그 앙증맞은 부리로 콕콕 한예지를 쪼고 있겠지.
그러면 성질머리가 순한 편인 그녀는 자그마한 뱁새를 때려죽인다는 생각도 못 하고
머리를 감싸 쥔 채 도망이나 치고 있을 것이고.
머릿속에서 훤하게 그려지는 모습에 한숨을 폭 쉬니 이하린이 배시시 웃는다.
“김하은은 자기 고양이랑 놀 것 같은데, 숙소 쪽으로 돌아갈까요?”
설명을 위해 한예지에게 분신을 보내야 하지 않겠냐는 뜻이겠지.
“그래, 돌아가자꾸나.”
이해를 돕기 위한 '메인 쿤' 구글 검색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