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112화 : 펫 1
애완동물은 나와 거리가 좀 있는 단어였다.
사업을 하며 고양이는 요물이라 조금 꺼려하는 아버지
반대로 크기 상관 없이 개를 무서워하는 어머니
거기에 알레르기성 비염에 15년 이상 시달린 나.
어떻게 봐도 동물을 키울 만한 집구석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애완동물을 펫이라 바꿔 부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친근감이 느껴진다.
게임에 미쳐 사는 젊은 한국 남성이라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살아 숨 쉬는 강아지나 고양이 말고,
데이터로 이루어져 아이템을 주워오고 포션을 대신 먹어 주는 게임 속 존재가 떠오르니까.
“어, 다시 한 번 설명 해 줄래?”
그리고 그런 존재가 내 앞에 떡하니 존재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조금 힘들었다.
성좌가 숭배받으며 모계사회라 남성과 여성의 관념이 역전된,
걸어 다니는 늑대 인간부터 다양한 판타지 종족들이 존재하는 사회를 겪었는데도 말이지.
내 눈 앞에 천막을 걷어올리고 걸어 들어오는 회색 늑대 인간이 있다고.
그리고 그 늑대 인간이 데리고 들어온 세 마리의 동물.
“그러니까, 지난번 말했던 보상이 이 세 마리라고.”
“그걸 다시 설명하라는 게 아니라,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자세히 좀 알려 달라는 거잖아 이 빡통아.”
“그 당연한 걸 기억 못 하는 니가 빡통 아닐까?”
1+1=2를 이해 못하는 원시인을 내려다 보는 시선으로,
덩치 큰 늑대인간이 나를 내려다보며 혀를 쯧- 하고 찬다.
몽마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명백하게 느껴지는 동정의 시선.
차라리 깔보거나 무시하기라도 하던가, 이 새끼는 왜 안쓰러워하고 지랄인지.
“뱁새의 기본적인 본능이 치유라는 것부터 우리 세상에서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냐?”
새하얀 빛의 잔상을 남기며 날아다니는 자그마한 뱁새가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날아다닌다.
뱁새가 날아다닌 곳에 반짝이는 가루가 떨어지며,
그게 사람을 치료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받아들이기는 조금 힘든 상황.
‘나비도 아니고 뱁새가 왜 가루를?’
그리고 그 가루를 눈처럼 받아먹으려고 혀를 길게 내민 리트리버 한 마리와
관심 없다는 듯 하품을 쩌억 하는 새카만 장묘종의 고양이까지.
힐러 뱁새라는 이해할 수 없는 조합처럼 이 개와 고양이도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있단다.
“개는 물어오고, 고양이는 쫒아낸다. 알지?”
“아니 그걸 좀 자세히 설명하라고.”
나도 충성스러운 송곳니도 남성 성좌가 되었다지만 상식의 차이가 너무 크다.
21세기 과학 문명 속에서 핵전쟁을 겪은 대학생과
이종족 연합에 속해 마왕군과 맞서 싸운 수인족의 전사 겸 주술사에게 공통점이 있겠는가.
근데 이건 상식 이전에 날 약올리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말 그대로다. 이 새하얀 녀석은 뭐든 물어오는 재주를 지녔지. 잊어버린 물건이나 어디에 두고 온 물건을 떠올린다면 가져다 주는 게 특기야. 반대로 저 까만 녀석은 뭐든 쫒아내는 재주를 지녔어. 성격도 좀 사나워서 허락받지 않은 무언가가 날아온다면 아마 전부 쳐낼거다.”
슬슬 몰려오는 짜증을 눈치챘는지, 아니면 실컷 약올리고 만족했는지 드디어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튀어나온다.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듣다 보면 꽤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능력들.
누구에게 어떤 펫을 줘야할지 대충 감이 온다.
일단 치유 능력을 지닌 뱁새는 당연히 한예지와 어울린다.
세 화신 중 유일하게 현장을 뛰는 게 그녀니까.
아무리 대륙 밖이 아닌 내부에서 범죄자를 상대한다 해도 현장에서 다칠 수 있지 않겠는가.
잃어버리거나 놓고 온 물건을 물어오는 리트리버는 이하린과 어울린다.
그녀는 슬슬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책상에서 벗어나 있는 시간보다 길어진 상황.
자료를 챙겨주는 애완동물이 생긴다면 좀 시간적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그 남은 시간에 또 연구를 할 것 같지만.
마지막으로 저주나 마법을 튕겨내는 고양이는 김하은의 몫이다.
마력 장막을 이용해 타인의 악몽을 마음대로 다루는 중이니까,
혹시 내가 모르는 나쁜 기운이나 사고 같은 걸 한 번즈음은 막아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손을 뻗었다.
쓰다듬어 달라는 것처럼 곧바로 머리를 들이대는리트리버와 손목 위에 앉는 뱁새,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타는 고양이까지.
귀여운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러워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대로 데리고 가면 되냐?”
“그래. 먹이는 뭐, 지들이 알아서 챙겨 먹겠지.”
대충 자리를 털고 일어난 놈이 다시 천막을 걷어 올린다.
보름달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해 뜬적 없는 초원 저 멀리에서 워우우우- 하고 길게 울부짖는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들은 녀석이 가슴팍을 부풀리며 으우우우- 하고 더욱 낮은 소리로 울부짖어 화답한다.
“아무튼, 고맙다.”
그러더니 머리를 벅벅 긁고 네 발로 뛰어 초원 저 너머로 달려갔다.
그렇게 천막에 남은 것은 내게 매달린 세 마리의 동물과,
천막 밖에서 또 다시 눈을 빛내고 있는 무수히 많은 털뭉치들.
이번에도 나한테 떠넘기고 간 건가 싶어 마력을 집중하려는 찰나,
우웨옹-
고양이가 아니라 퓨마나 표범 울음소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묵직한 울음소리를 내는 새카만 고양이.
덩치가 조금만 더 크면 재규어라고 생각할 법한 녀석이 밖을 향해 눈을 부릅뜨자
천막을 긁던 녀석들이 우르르 도망치는 것이 느껴진다.
무릎 위에 떡하니 앉아 위엄 있게 눈을 부라리는 모습에 머리라도 긁어줄까 손을 뻗으니
그건 또 싫은 모양인지 앞발을 휙 휘둘러 내 손을 툭 쳐낸다.
…아니 잠깐만, 나 지금 얘 앞발 잔상도 못 본거 같은데.
※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은 이하린이었다.
정확히는 이하린에게만 직접 전해 주게 되었다.
충성스러운 송곳니의 성역에서 내 성역으로, 거기서 다시 아카데미의 임시 성역으로.
두 번의 공간 이동을 가볍게 따라온 녀석들. 그 모습을 보고 자그마한 고민을 시작했다.
여기서 내가 한예지의 곁에 분신을 만들면, 뱁새는 어떻게 데리고 가지?
그런 내 고민을 비웃기라도 하듯, 쪼롱쪼롱 맑은 소리로 몇 번 지져귄 녀석이
저 하늘 너머로 알아서 날아가기 시작 한 것이다.
주먹보다 작은 덩치에 손가락만한 날개를 가졌음에도,
파다다닥 날갯짓 몇 번만에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거 참 빠르기도 하네,
하고 감탄을 하고 있으니어느 새 검은 고양이도 기척을 죽이고 슬그머니 사라진 상황.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내 곁에는 꼬리를 흔드는 리트레버만 한 마리 남았다.
화신들도 아니고, 동물보다 내가 약한 것 같은데.
아니, 생각해 보면 인간은 원래 동물보다 약하지 않았나?
싱숭생숭한 내 마음은 알 바 아니라는 것처럼,
꼬리를 붕붕 휘두르던 리트레버가 머리로 내 허벅지를 꾹꾹 밀기 시작한다.
그 힘이 생각보다 강하지만 넘어지게 만들지는 않아 정신을 차리니 터벅터벅 아카데미를 걷게 되었다.
‘지금 시간즈음이면 이하린이 어디에서 연구하고 있으려나?’
생각해보니 뱁새도 고양이도 그렇고 산책나가는 것처럼 내 앞에서 걷기 시작한 이 녀석도그렇고
어떻게 내 화신들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처럼 가는 걸까.
충성스러운 송곳니가 이 녀석들을 ‘전령’이라고 불렀던 것과 관련이 있나?
아카데미는 여전히 북적였다.
얼마 전 사건이 크게 일어났지만 뭐, 전쟁 중인 세상이니까.
충격 받은 사람도 있고 분노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작 화신 하나 죽었다고 인류의 분위기가 바뀔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겠지.
땀에 젖어 헉헉거리는 남성 생도와,
슬그머니 눈깔이 돌아가는 여성 생도들이 운동장을 달린다.
대낮부터 체력 단련을 하는 여자들인지라 몸매가 하나 같이 좋아
출렁거리는 가슴과 슬쩍 드러나는 배꼽에 시선이 간다.
뭐, 저 여자들은 덜렁이는 사내 놈들 가랑이에 눈이 가 있겠지만.
숨 넘어가는 생도들과 열심히 갈구는 담당 교관들을 뒤로 하고 한 건물에 도착한다.
이하린이 평소에 지내는 건물이 아니라, 기초 마법학을 담당하는 늙은 교수가 있는 건물이다.
‘오늘은 협업할 일이 있나보네.’
땀내 나는 운동장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그것만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마법 연구에 관련된 교관들이 모인 건물이라 그런 걸까?
운동이랑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들이 박스 가득한 서류를 낑낑대며 옮기고 있었다.
종이가 아니라 양피지나 파피루스 같은걸 품 안 가득 들고 가는 츄리닝 차림의 마법사들.
하긴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데 로브나 망토보다는 츄리닝이 편하겠지.
내 얼굴을 아는 사람들 몇몇이 가볍게 목례를 올리고 빠르게 사라진다.
건물 안에 개를 데리고 온 걸로 뭐라 할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하긴 성좌가 개를 데리고 다닌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익숙한 방문 앞에 털썩 주저 앉는리트리버의 콩가루 묻은 색 털이 곱게 흐트러진다.
그 모습을 내려다 본 뒤 손을 뻗어 똑똑- 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순간적으로 성좌입니다- 하고 대답해야 하나? 하며 뇌정지가 왔지만,
내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안에서부터 문이 벌컥열렸다.
“오셨습니까, 성좌님?”
“그래, 여기 있었구나.”
당연하게도 문을 연 것은 내 마력을 느낀 이하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