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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화 〉107화 : 성좌의 일 2 (107/169)



〈 107화 〉107화 : 성좌의 일 2

인류의 발전을 저해하고, 오히려 인명 피해까지 만드는 타락한 성좌들.


그런 성좌들의 정체까지 알아내도 인류가 할 수 있는 대응은 소극적인 대응밖에 없었다.

일단 성좌라는 존재는 자신의 성역에 머무니까.
강림제를 통해 지상에 본체가 강림하고,
그걸 특별한 수단으로 죽이는 게 아니라면 성좌를 공격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타락한 성좌들이 미쳤다고 인류를 공격하고선 강림 요청을 수락할까?


결국, 인류의 대응은 타락한 성좌의 화신을 사냥하는 것뿐.


화신 계약서의 가격은 10만pt.
화신이 전부 제거된다면 월 1,000pt의 기본 금액으로 구매하긴 힘든 가격이다.

거기에 계약만 10만이지, 화신이 성장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보태줘야 할 포인트를 생각하면 더 많이 필요하겠지.

따라서 타락한 성좌는 제거할 방법이 없고, 화신을 제거하여 활동을 봉인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걸 불사르는 폭군이 납득  리 없다.

“나의 폐하께서 원하시는 것은 완벽한 복수입니다. 고작해야 화신을 제거하는 것이 아닌, 완전한 복수.”


여황의 현명한 배우자로서 뭇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현부양부(賢父良夫)였지만
아내가 죽었다는 이유로 행성 수십 개를 불태운 남자.
전쟁터에서 죽은 군인과 정화 당한 행성 시민의 숫자를 세면
억 단위를 넘어 조 단위의 인간을 불태운 남자다.


그런 남자가 미적지근한 봉인 조치 따위를 받아들이겠냐고.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뭐 때문에 불사르는 폭군을 건드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딱  가지는 명확하지.


보복당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화신들뿐이고,
자신이 직접 입는 피해는 없으니까 버릇을 못 고치는 것이다.
냉동 캡슐에 들어가서 추방당했으니 우주를 떠돌며 정신적인 피해를 받았었던 기억도 없다.
그냥 눈  번 껌뻑이니 성좌가  상황 아닌가.

“왜 나지?”


“성역 안에서 보호받는 성좌에게 접근할  있는 것은 오롯이 드림 워커뿐입니다.”

그 한 마디에 의문이 사라진다.


황제의 전함이 아무리 강력하고, 친위대의 충성심이 그 무엇보다 견고하다 해도
성역에 침입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성좌 하나를 손봐줘야 할 상황인데,
마침 자신의 주변에 아는 드림 워커가 하나 있으니 써먹겠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다른 의문이 생긴다.

“무엇에 대한 복수?”


이번에 당한 화신이 불사르는 폭군의 화신일까?
아니면 다른 것을 건드린 전과가 있는 걸까.
불사르는 폭군이라 하면 대륙 제일로 손꼽히는 강대한 성좌.
그런 성좌의 화신을 왜 건드렸단 말인가?

얻을  있는 이익이 없는데 사람을 죽이는 쾌락 살인마는 아닐  아니야.

그렇다면 뱀의 심장이 아니라 다른 성좌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겠지.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과의 계약을 거절한 화신이, 불사르는 폭군과 계약했다는 이유로?”

“그렇습니다.”

능력보다 비대한 자존감,
그리고 비대한 자존감과 대비되는 초라한 현실의 괴리감으로 인해 생겨나는 더러운 성질머리.

내가 화신이라 생각해 봐도 불사르는 폭군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무려 불사르는 폭군의 계약이다.
화신에 대해 잘 몰라 편의점에서 손님한테 조언을 듣던 한예지도 불사르는 폭군은 알고 있는 수준인데.

고작 그걸로 앙심을 품고 죽여버렸다고 한다.


“조금,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는데...”

“폐하께서도 진노하시기 전, 몇 번이고 확인하셨습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암살자라 해도 눈이 뒤집힌 불사르는 폭군에게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까?
아카데미 내부를 멋대로 헤집고 다닐 정도로 뛰어난 암살자를, 고작 계약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소모하다니.

내 생각이 맞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갑작스럽게 창문으로 들어오던 햇빛이 사라진다.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어려운 일은 맡기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성좌에게 말하기에는 조금 실례가 될 법한 말이지만,
 무뚝뚝하고 충성스러운 친위병은 마치 녹음기처럼 황제의 말을 내게 전한다
. 그 내용이 얼마나 파급력을 가졌는지 따위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그대로 할 말만 계속하고 있네.

“이 일의 범인을 그대로 데려올 테니, 폐하께 했던 것처럼 추방당한 뱀의 심장에게 침투해보라 하셨습니다. 안구와 뇌만 멀쩡하면  거 아니냐고 덧붙이시며.”

슬그머니 창가로 걸어가 하늘을 올려 보았다.

해를 가리고 있는 것은 구름이 아니라, 거대한 전함이었다.




날아다니던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짐승의 형태에 조금  가까워진 수인족들이 날카로워진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릉거린다.
경비원이라기보단 흥분한 벌 떼, 굶주린 들개 무리에 가까운 날  반응.

그리고 맞은 편에 있는 것은 반대로 모든 것을 무시하는 거대한 강철의 갑주들이었다.

그러니까, 강철의 갑주가 아니라 강철의 갑주 ‘들’.

“이곳은 아카데미의 상공! 당장 전함을 물리시오!”


“폐하께서는 하루빨리 이번 사건의 범인을 체포하시길 원하십니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화를 내는 경비 팀장과 여전히  할 말을 하는 거대한 강철의 갑주.
커다란 기계 슈트가 다 똑같이 생겨서 내게 말을 전해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겠다.

불사르는 폭군은 아카데미의 거친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함을 몰고 등장했다.

태양조차 가릴 거대한 전함에서 기계 병사들이 내려온다.
등에 멘 제트팩에서 푸른 불꽃을 내뿜으며 아카데미의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비행하는 로봇 병사들.
막아선 사람들 따위 가볍게 무시하는 그 서슬 퍼런 모습에 아카데미의 교관들이 길을 비킨다.

‘이러면 그냥 기다리면 되나?’

내가 잡으러 가는 상황이 아니다.
불사르는 폭군이 원하는 것은 화신 따위가 아니라 추방당한 뱀의 심장을 직접 처벌하는 것.
그러니 잡혀 온 화신을 상대로 능력 사용을 연습하면 되겠지.


아마 미뤄 둔 악몽 탐험을  때가 된 것 같다.


악몽을 자극하고 터트려서 악몽의 편린을 얻는 행위.
당연히 화신에게는 하기 애매하고,  없는 시민들에게서 모으자니 범죄에 속해 미뤄 뒀던 일이다.
하지만 불사르는 폭군이 손수 잡아 온 화신에게는 얼마든지 해도 되겠지.


 화신은 어떤 악몽을 가지고 있을까.


“폐하께서 원하신 일이다.”

“아카데미는  대륙 모두의 합의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폐하께서 직접 행차하셨는데 그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능력이 없는 중립은 자유가 아닌 방종.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진작 범인을 색출했어야지.”

경비를 담당하던 마법사들과 수인족들은 어쩔  모르고 멈춰 있는 상황.
침략자도 아니고, 자신의 화신을 죽인 범인을 찾겠다고 성좌가 직접 온 상황이니 막아 세우기도 어렵겠지.
해를 가리고 떠 있는 것은 지난번 봤던 전함보다 거대하고 화려한 기함.

황제가 직접 행차했다는  거짓말은 아닌  같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래요?”

“괜찮으신  맞죠?”


 실랑이를 보고 있자니 슬그머니  등 뒤에 자리 잡은  화신이 질문을 던진다.
하기야 이하린도 김하은도 이상한 두루마리 서신 하나 펼치니 이 꼴이 된 것 아닌가.

창문을 열고 들려오는 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지만, 화신들이 이해하기는 힘들겠지.


종이 한 장 펼치니 성좌는 뭐라고 중얼거려,
문 앞에는 불사르는 폭군의 친위대가 있어,
머리 위에는 우주선이 둥둥 떠 있지를 않나.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너무 혼란스럽다.
아무리 눈치가 좋은 사람이라도 이걸 어떻게 알아차리겠어.

“죽은 화신이, 불사르는 폭군께서 눈여겨보던 아이였다고 하는구나.”

“아, 그런...”

“섬을 수색하는 것도 범인을 찾기 위해서겠군요?”


남자한테 홀려 헬렐레하는 모습은 둘째 치고, 재능 하나는 진짜였나?
아니면 화신을 건드리는 성좌, 그러니까 인류의 배신자를 경멸하는 걸까?
계약도 하기 전인 화신 하나를 위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과한 것 같은데.


등 뒤에서 이하린과 김하은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걸 흘려들으며 창밖에서 울려 퍼지는 고함에 귀를 기울였다.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심한 것은 아카데미의 경비 수준이겠지. 저 건물이 강림제를 올린 성좌님의 임시 성역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된  임시 성역에서 2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동생의 시체가 발견되냔 말이야! 심지어 성좌께서 발견하시지 못했더라면 이유도 모른 의문사가  뻔하지 않았나!”


갑주 속에서 날카로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딱히 귀에 마력을 집중하지 않아도 들려 올 정도로 커다란 고함.
치이이익- 하고 증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위협적으로 움직이는 갑주의 모습.
그 모습에 아카데미의 경비 인력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같은 친위대들이 먼저 그에게 총을 겨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이해하지만, 폐하께서 명령하지 않은 일을 행하려 들지 말게, 형제여.”


 무감각하고 서슬 퍼런 경고에, 한 발 앞으로 나섰던 친위대 한 명이 뒤로 물러선다.

 모습을 본 아카데미 쪽도 할 말이 없는지 끙, 하고 속앓이만 할 뿐.
다른 거라면 몰라도 자신들의 무능함 때문에 어제 가족이 죽은 사람에게 뭐라고 말하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 죽어버린 가족 때문에 눈이 뒤집힌 유족에게 할 말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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