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6화 〉106화 : 성좌의 일 1 (106/169)



〈 106화 〉106화 : 성좌의 일 1

도넛 모양 대륙 중심에 있는 거대한 섬을 통째로 사용하는 아카데미.


아카데미에 있는 화신의 수만  단위에 가까울 것이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성좌도 수 십명은 있다.
최근에는 제사를 통해 임시 성역을 만들어 성좌 한 명, 나를 강림시키기까지 한 상황.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곳을 선택하라 하면 100명 중 140명은 아카데미라고 대답할텐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런 아카데미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정신 똑바로 못 차려!”


그 때문에 임시 성역 밖까지 아주 난리가 났다.
마치 돌팔매에 맞은 말벌집처럼 시끌벅적해진 아카데미.
경비를 맡은 화신들이 분노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사방팔방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성좌와 화신에 대한 존경이 광기에 가까운 세상.

그 광기에 가까운 존경은 당사자에겐 자부심과 자신감이  것이다.

대륙에서 토너먼트를 벌여 우승한 화신만 들어올 수 있는 아카데미다.
지금 저기서 내리 갈구는 경비팀장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어린 경비원도
전부 대륙 토너먼트에서 결승전에 도달한 인재라는 뜻이니까.

그러한 화신들이  단위로 있는데, 사람 하나가 죽은 걸 모르고 있었다?


그것도 성좌가 강림한 임시 성역 근처에서?


“이 무능한 것이 베풀어주신 은혜조차 갚지 못하니 감히 고개를 들  없습니다. 정말 죄송하다는  밖에 할 수 없군요.”

내게 받아 먹은 물건의 목록이 한두개가 아닌 상황이라 총장이 직접 고개를 숙이는 상황.
화신 치료비로 받은 물건 대부분을 아카데미쪽에 양보하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급히 달려온 것 같다.

현금으로 따지면 월에 억 단위의 예산을 기부해 주는 건데 이 정도 성의는 당연하겠지.
임시 성역에서 호들갑을 떠는 두 화신을 일터로 보냈더니 곧이어 경비 담당자와 총장이 사과를 하러 왔으니까.


마침 총장이  앞에 있으니 잘 되었네.
이 상황에, 내 건물 뒤편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하면 짐작이 가는 게 있어 질문을 던졌다.


“피해 본 게 없는데 내게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단다. 그보다 피해자는...?”


아무리 성좌라 하지만 이런 보안 관련된 상황에서는 외지인이지만,
 거 많은 성좌에게 숨길 수 없다고 판단했을까.


“예, 부끄럽게도... 저희 생도 중 하나였습니다.”


총장이 테이블 위에 자그마한 증명 사진을 슬그머니 내민다.
호탕하게 씨익 웃고 있는 여성의 사진은, 분명 어제 숲에서 봤던 얼굴이었다.

떡 벌어진 어깨에 미녀보다는 미남에 가까운 호쾌한 인상.
근접 계열의 화신이었는지 아마조네스 자세로 남자를 범하던 탄탄한 육체까지.
몇 년 방치된 미라처럼 삐쩍 말라 죽은 시체와 동일 인물이라고 믿을  없었다.

“혹시 뭐라도 짚히시는 게?”


아카데미에서 범인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을까?
내가 사진을 보고 보인 자그마한 반응조차 곧바로 캐치하더니 질문을 던진다.
하기야,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피해자 얼굴을 보여 달라 하면 좀 그렇지.

“어제 본 아이로구나.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애와 함께 이 건물 뒤편으로 향하는 걸 봤단다.”

원래대로라면 엿본 걸 알리기 싫어 묻어두려 했지만,
당사자가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는데 어찌 숨길  있겠는가.

남녀 역전의 상황을 제외한다면 아카데미에서 교수진의 눈을 피해 풋풋한 사랑을 나누는 청춘이었을텐데.
곱게 죽은 것도 아니고, 신원을 밝히기 힘들 정도로 시체가 망가진 피해자가 되다니.

“남자와 함께, 입니까?”


내 말에 총장의 미간이 곧바로 일그러진다.
곧바로 느껴지는 미약한 의심과, 그 의심을 지워버리는 강한 죄책감.

이해할  없는 반응에 나 또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단다,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니?”

“으음, 피해자의 행적을 조사하기 위해 CCTV와 다른 생도, 교관들의 증언을 들었습니다만.”

주저하던 총장이 눈을 질끈 감고 내게 말한다.

스스로의 의심을 떨쳐내기 위해서.

“피해자는, 오전부터 행적이 묘연해지기까지 계속해서 혼자 돌아다녔습니다.”







임시 성역의  밖에서 귀를 쫑긋거리는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닌다.
그러니까, 비유적인표현이 아니라 정말 뾰족한 귀를 쫑긋거리는 사람들이.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 귀에 꽃힌 무선 이어폰과 무전기,
그리고 머리 위에 솟아 있는 뾰족한 검은 귀.

‘도베르만?’


충성스러운 송곳니와 달리, 귀와 꼬리만 있는 수인족 여성으로 이루어진 특별팀이
이 건물 주변을 이 잡듯 샅샅이 뒤지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질끈 깨문 총장이 돌아가더니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한 백 단위의 사람들.

뒤이어 다시 돌아온 이하린의  덕분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는 모든 방면에서의 테러를 대비하고 있었다.
화신이 아니라 이 섬에 적용된 권능의 수만 세어도  단위에 가까울 정도로.
식수와 식재료 검토는 기본이오, 학생들이 돌아다니는 것 또한 사실 전부 체크되고 있었다.

공개는 하지 않았지만 사생활 따위는 개나 주라고 비밀리에 기록되고 체크되고 있던 것이다.
이를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성좌들이 관찰하여 교관에게 알려준 학생들만 벌점을 부여한 것이고.


교관이 없는 곳, 인적이 드문 곳, 성좌님이 보지 않을 타이밍?

그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항구에  디딘 순간  섬의 모든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체크되며 기록되고 있었으니까.
단순한 움직임마저 기록되는데 마력의 운용과 권능의 발현은 어떻겠는가?


하지만 범인은 기록되지 않았다.


내가 육안으로 본 것은 남자와 여자 한 쌍의 커플.
그러나 아카데미의 보안체계가 기록한 것은 오전부터 홀로 움직이던 여성 생도의 기록뿐이다.
주변에 있던 증인들도 기계인 CCTV도 마력과 권능으로 체크된 기록도
‘여성 생도가 혼자 산으로 향했다’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뜬금 없이 임시 성역에 처박혀 있던 성좌 하나가 기록되지 않은 미지의 인물을 들먹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거짓말을 해서 뭐 할까.

 말이 진실이라는 가정을 하면, 터무니 없는 결론이 나와버린다.

아카데미에 있는 모든 보안체계와,
구경하던 성좌들과 감시하던 화신들,
피해자를 목격한 학생들까지  명도 빠짐 없이 속았다는 것.


이 아카데미에 있는 화신들이 대륙에서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이야기인가.


“실례하겠습니다, 성좌님.”


“난 신경쓰지 말고  일 하라고 전해주렴.”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좌님!”


이야기를 들은 나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그 모든 것의 담당자인 총장은 어떤 기분일까.

또 그 사실을 전해 들은 경비팀장이라는 사람은 어떤 기분이고.


그 결과물이 이 것이다.

선글라스를 낀 개과 수인들이 코를 쉴 새 없이 킁킁, 움직이며 사방팔방 돌아다닌다.
슬쩍 고개를 들어보면 새파란 하늘에서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비행이 가능한 마법사나 날개 달린 수인족들까지 전부 불러들인 것이다.

그 와중에 참으로 대단한 것은, 범인은 찾을 수 없었지만 연관된 성좌는 예상을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를 유혹하는 남성,
혀에서 흘러나오는 역겨운 마력,
매연처럼 검은 안개 형태를 띈 권능까지.

“그러니까, 추방당한 뱀의 심장?”

“예, 새로운 성좌가 등장한 게 아니라면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 맞을 거라고 봅니다.”


“어떤 성좌인지 알 수 있을까?”

내 질문에 임시 성역에서 떠날 생각이 없는 이하린이 곧바로 설명을 시작한다.


“본디 추방당한 뱀의 심장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알려진 정보라고는-”

그렇게 김하은과 이하린 사이에 껴서 설명을 들으려는 순간, 절로 눈이 찌푸려지는 두통이 몰려온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해   없는 아릿한 통증.
뇌 주름 사이로 누군가 탄산음료를 부어버린  같은 따끔거리는 두통.

두통이라 하면 보통 날카로운 것으로 쑤시는 것 같다던가,
둔중하게 후려친 것 같은 통증 아니던가.

그와 달리 뇌 안에서 탄산이 팡팡 터지는  같은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두통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지식.

의심할 여지 없이, 불사르는 폭군이 보내  서신 때문이겠지.
마치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열리는 금고처럼,
추방당한 뱀의 심장이라는 성좌 이름을 들으니 곧바로 지식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성좌의 출신은 미래 SF 세계.

나의 세상보다는 발전했지만, 불사르는 폭군의 세상까지는 아닌 적당한 SF세계.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 달을 점령하고 화성의 테라포밍을 시도하는 세상에서  성좌.


그리고 인류를 멸망시킨 장본인이다.

“성좌님, 괜찮으세요?”

미간을 찌푸리니 곧바로 두 화신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떠오르는 지식을 정리하기 위해 괜찮노라 손을 휘휘 저어보인 뒤 관자놀이를 살살 매만지며 생각을 정리한다.


 출신 사람들과 지구 출신 사람들이 반목하며전쟁 직전까지 간 SF 세상.
능력에 비해 탐욕스럽던 추방당한 뱀의 심장은 일생을 이간질과 모함으로 살아  인간이었다.


악의적인 비방을 하고, 헛소문을 흘리고, 타인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던 추악한 인간.
하필이면 그런 인간이 무기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알량한 실력으로 적당한 규모의 회사 이사직까지는 달았다.



거기서 멈췄더라면 달의 대부호로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을텐데.
욕심을 버리지 못한 그는 무기 사업의 이익을 위해 험악하던 달과 지구 사이를 자극한 것이다.

적당한 소규모 교전과 경각심으로 무기를 팔아 먹을 생각이었겠지만,
수 백년간 이어진 악감정은 추방당한 뱀의 심장의 능력으로 정밀하게 다루기에는 너무 거대했다.

또한 그를 아니꼽게 보던사람도 많았고.


그렇게 추방당한 뱀의 심장은 성좌의 이름 대로,
기업이 있던 달에서 냉동 캡슐에 담겨 머나먼 우주로 추방당했다.
100년은 지속 될 영양제와 함께 외우주로 발사되었지만,
우주 한복판에서 누군가 해동  줄 리 없으니 사실상의 사형이겠지.


하지만 한 청년이 쏜 총알 한 발 때문에 1차 세계 대전이 열린 것처럼,
한 사업가의 세치 혀 때문에 지구와 달 사이에 커다란 전쟁이 발발했다.
달은 파괴되었으며 지구의 지표면은 방사능으로 완전히 융해되었다.


살아 남은 사람은 화성 테라 포밍 요원들과 냉동 캡슐에 담겨 우주를 떠도는 범죄자 하나.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 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계기가 된 범죄자였다.

그것이 성좌, 추방당한 뱀의 심장.

“정말 괜찮으십니까?”


두통이 사라지고, 복잡한 감정이 가슴을 어지럽힌다.
옆에서 걱정하다 못해 울 것 같은 이하린의 등을 토닥여주며, 어정쩡하게  있는 김하은에게 말했다.
이하린처럼 내게 달라 붙을지, 의사를 부르러 갈지 고민하고 있었나보다.

“괜찮으니까, 문 좀 열어주렴.”

“아 네, 알겠습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김하은이 임시 성역의 문을 연다.
그 곳에는, 며칠 전 봤던 거대한 갑주가 서 있었다.


보는 것 만으로 위압감이 넘쳐 흐르는 불사르는 폭군의 친위대가 노크 할 생각도 없이 정중하게.

그 때문에 나는 이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있었다.

“그래서, 폐하께서는 내게 뭘 원하시니?”


“복수.”


치익거리는 갑주 안에서, 묵직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미친놈은, 버릇 못 버리고 이쪽 세상에서도 건드려선   사람을 건드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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