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104화 : 몽마의 일 2
바디워시 때문에 욕실 안이 당근 향기로 가득 찼지만 우리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내 마력으로 만들어 낸 목욕의자에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상황이니까.
쪼그려 앉아 앞으로 허리를 숙인 불편한 자세지만 뭐 어떠랴.
거품 가득한 한예지의 손이 챱챱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내 물건을 흔들고 있는데.
남자의 손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여성의 손.
거기에 끈적한 바디워시까지 찌걱거릴 정도로 한가득 발라 놓으니 생소한 쾌감이 꼬리뼈를 타고 올라온다.
이 거품 가득한 봉사를 만끽하고 싶어 밀려오는 사정감을 참느라 엉덩이와 내 물건이 움찔거린다.
“기분 좋으세요?”
솔직한 내 몸의 반응을 알아차렸는지 한예지가 득의양양하게 미소짓는다.
은근슬쩍 우쭐거리려는 모습이 귀엽긴 하지만 가만히 농락당하는 건 취향이 아니라 손을 뻗었다.
목욕의자는 낮고, 한예지의 키는 엘프의 육체보다 크다.
그 상황에서 허리를 내 쪽으로 숙였으니 당연히 다리가 벌어지는 수밖에 없지.
욕조의 물에 데워진 따끈한 허벅지를 살살 문질러 보았다.
온수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익어버린 몸.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니 마치 찐득한 반죽에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파묻힌다.
갑자기 내가 만질 거라고 생각 못 했는지 귀여운 신음을 내는 그녀.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 한 번은 손으로 싸게 만들겠다는 생각인지 점점 손놀림이 빨라졌다.
쾌락이 방파제를 두드리는 파도처럼 몰려오고, 등허리에 오싹한 감각이 물려온다.
참는다면 끝까지 참겠다마는 그럴 필요는 없겠지.
반응 없는 여자가 석녀 따위로 불리며 꺼려지는 것처럼, 이쪽 세상도 사정하지 않는 남자를 썩 좋아하지 않으니까.
“이제 슬슬 쌀 것 같은데...”
“네에, 괜찮아요.”
작게 속삭이자 한예지가 손목을 돌리기 시작한다.
단순히 흔들던 손놀림이 손목을 돌리며 내 물건을 이리저리 꾹꾹 눌러댄다.
그 생소한 자극에 사정감이 밀려와 그대로 아래쪽에서 힘을 뺀다.
양옆으로 추욱 벌어지는 다리와 울컥하고 발사되는 정액.
풋내나는 바디워시의 향으로 가득 한 욕실에 갑자기 달달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게 내 정액 냄새라고?’
시들지 않는 거목의 몸에서 꽃향기가 나더니만, 내 몸에서도 과일 향기가 나는구나.
그 냄새는 나만 맡은 게 아닌지
한예지가 거품과 정액으로 더럽혀진 손을 슬그머니 얼굴 쪽으로 가져가 냄새를 맡는다.
“그 냄새를 왜 맡는 거야?”
“헤헤, 그, 향기가 신기해서...”
저대로 두면 혀까지 내밀 것 같아 어루만지고 있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멋쩍게 웃으며 샤워기로 거품과 정액을 씻어내는 그녀.
그대로 샤워기를 빼앗아 거품기를 씻어주었다.
몸도 불렸겠다, 서로 거품칠도 했겠다 다음으로 넘어가려 했지만-
‘여기서 서서 하기는 좀 그런가?’
안 그래도 좁은 욕실이다 보니 어디 드러눕기도 애매한 상황.
변기에 앉거나 욕조에 누워야 할 것 같아 슬그머니 한예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니 곧바로 수건을 들고 와서 내 머리를 털어주는 그녀.
말 그대로 씻겨 주고 싶었던 거지, 좁고 불편한 화장실에서 즐길 생각은 없었나 보다.
물기를 대충 말린 채 우리 둘은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서로 수건 한 장 허리춤에 걸치고 욕실에서 방으로 걸어가자 그게 생소하게 느껴졌는지 또 실없이 헤헤, 웃는다.
앞에서 걸어가는 뽀얀 알궁둥이를 보자 방문을 열기도 전에 덮쳐 누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다 남동생이 돌아오면 무슨 난리가 나겠는가.
스윽 열린 방문으로 재빨리 들어가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곧바로 촉촉하게 따끈따끈한 여체가 이불처럼 나를 덮어온다.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사르륵 내려와 내 몸 위에 얹어진다.
온수와 샴푸 향이 기분 좋게 어우러져 방 안을 따끈따끈하게 물들인다.
※
한예지의 집에서, 아카데미의 임시 성역에서, 그리고 화신들의 자각몽 속에서.
여자에 푹 빠져 사는 것 같은 방탕한 생활이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몽마인데.
이 모든 것이 나의 성장과 관련되어 있으니까.
놀고먹는 것 같지만 마력이 늘기는 늘었는지 더욱 다양한 악몽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지난번 동부 대륙을 침략했던 괴물들입니다.”
“음, 좀 그렇게 생겼구나.”
아카데미에 온 환자들의 트라우마를 끄집어낼 수 있으니 성장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겠지.
꾸물꾸물, 기분 나쁘게 움직이는 거대한 촉수 괴물의 환영을 보면 얼마나 발전했는지 실감이 난다.
처음에는 고작 주먹보다 큰 치와와였는데, 이제는 화물 트럭만 한 거대 촉수 괴물까지 다룰 수 있는구나.
기분 나쁘게 꿈틀거리는 촉수를 보면 전생의 크리쳐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촉수 끝자락이 꿈틀거리는 말미잘처럼 생겼다는 걸 제외한다면 말이지.
솔직히 곱게 비유하면 말미잘이지, 적나라하게 표현한다면-
“예, 군부대를 습격해 여군들을 녹여 양분 삼고, 남자들의 씨앗으로 잉태해 작은 괴물들을 양산하던 개체라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굴레를 베는 검의 화신들이 근방을 지나던 상황이라 큰 피해 없이 격퇴했다고는 하지만...”
“피해가 0은 아니었나 보구나.”
“예, 그 충격 때문에 입원한 환자들이 꽤 많군요.”
남자를 범하는 오나홀 촉수 괴물이라고 봐야겠지.
아카데미가 이토록 평화로워 보여도 대륙 바깥쪽은 언제나 전쟁터.
괴물들의 습격은 일상과도 같은 동네였다.
이 때문에 한예지를 군인이 아니라 경찰 쪽으로 보낸 것이기도 하고.
휠체어에 웅크려 검은 장막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로부터 김하은이 검고 끈적한 마력의 덩어리를 끄집어낸다.
남자를 강간하는 촉수 괴물부터 터질 때 산성 가스가 나오는 자폭 괴물, 거대한 크기의 인간과 동물 형태의 괴물까지.
동서남북 네 대륙의 침략자들의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인다.
언젠가 내 화신, 특히 김하은이 전쟁터로 갈지도 모르니 알아두면 좋겠지.
그렇게 외계의 괴물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이하린이 서류 뭉치를 들고 와 내게 보고를 한다.
“아, 그리고 아카데미 쪽에서 또 선물을 보내 왔습니다.”
“적당히 성역 쪽에 쌓아두렴.”
화신을 치료해 주지, 괴물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주지, 번제용 제물이나 귀한 아이템을 양보까지 하지.
아카데미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다이아몬드를 낳는 거위로 보이지 않을까.
그 덕에 내 임시 성역 건물이 창고처럼 변할 지경이다.
“그런데 이건 뭐니?”
화장품, 향수, 손수건, 남성용 장신구에 정장.
이런 사소한 것들은 상관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통도 크고 손도 크고 스케일도 커다란 몇몇 예술 관련된 성좌들이 보내온 선물.
나를 위한 임시 성역 제작에 들어간 제물을 보고 예상을 해야 했는데.
사람보다 큰 금덩어리 같은 걸 사용하는 세상이다.
“별을 조각한 손께서 감사 인사로 보낸 동상입니다. 그리고 인류 최후의 찬송가께서 보내신-”
“그 찬미가는 조금 부끄러우니 창고 가장 안쪽에 놓고 다시는 꺼내지 마렴.”
거기에 판타지 세상의 귀족 갬성 같은 게 뒤섞이니 참으로 낯부끄러운 물건들이 선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피규어도 아니고 동상, 그러니까 내 모습을 그대로 조각한 1:1 치수의 거대 순금 동상 같은 거.
하다못해 1:1 사이즈면 좀 낫지.
아카데미 직원이 내 노고에 감사하다며
치료관 앞에 5m짜리 동상을 세우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봐서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가.
뒤진 사람도 아니고 살아 있는 사람 동상을 왜 세우나 싶었지만 이쪽 세상에서는 좀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인지도가 곧 마력과 포인트로 돌아오는 성좌들이니, 활약에 따라 동상을 세우면 좋아하겠지.
심지어 음유시인 같은 애들은 나를 주제로 음악을 만들어 보내고 있으니 듣다가 손발이 오그라들어 사라질 것 같다.
성몽(聖夢) 찬미가라는 제목을 붙여 보내진 노래를 이하린이 몰래 챙기려 해서 말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가.
성좌인 나를 찬양하는 노래를 들으며 나보다 더 즐거워하다니.
어째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지?
음유시인이 영웅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걸 알지만,
정작 내가 그 주인공이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음악과 예술의 화신에게 음악을 하지 말라고 강제할 수도 없고.
벌게진 얼굴을 에어컨 바람으로 식히며 악몽을 골라낸다.
내가 아무리 성장했어도 김하은처럼 어마어마한 마력량으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은 아니므로,
만만한 녀석들을 하나씩 복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하은의 마력 장막 안에는 전투기처럼 날아다니는 익룡 괴물이나
땅굴을 파고 다니는 지하철 크기의 뱀 같은 괴물도 있지만,
내가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
욕심부리지 않고 마력 수련을 하는 기분으로 만만한 괴물들을 건드려본다.
이렇게 성장하다 보면 충성스러운 송곳니를 위한 완벽한 심장도 만들 수 있겠지.
몇 달은커녕 이제 한 달쯤 지나가는데 벌써 거대 괴수를 다루는 김하은의 재능.
전투기 비슷한 괴물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할 말이 사라진다.
그래도 내 화신인데 뭐 어때.
심지어 저 정도 재능을 가지고 감히 ‘세계 제일’ 같은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더 무서웠다.
쟤보다 더한 재능이 손에 꼽을 지경이지만 있기는 있다니.
커다란 커튼에서 실오라기를 한올 한올 뽑아가는 느낌으로 김하은의 마력 장막 속에서 내 마력을 휘둘렀다.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은 나의 성장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니까.
내가 그녀의 마력에 기대 성장한다는 걸 알고 있는지,
마력의 장막 속에서 거대 괴수 대신 만만한 녀석들이 주로 몰려나오기 시작한다.
자기보다 능력이 부족한 성좌를 진심으로 섬기다니, 조금 특이한 세상이기는 해.
리더고 뭐고 통조림 한 캔이면 등에 칼을 박아 넣는 세상에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일까.
가끔은 이런 맹목적인 충성심이 신기하다기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하린과 김하은의 도움과 아카데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