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103화 : 몽마의 일 1
가슴 위쪽을 할짝, 혀로 핥을 때마다 한예지도 내 귀를 혀끝으로 콕콕 찌른다.
컴퓨터 화면 속에서는 두 여자가 닭 다리와 닭가슴살의 취향 차이로
뜬금없이 시청자 투표까지 시행하고 있지만 나와 한예지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이 모습도 멋지세요...”
달뜬 숨결과 함께 흘러나온 자그마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집에서 쓰는 의자치고는 꽤 넓어 둘이 함께 앉을 수 있었지만, 몸을 움직이기엔 불편한 넓이.
그러나 나도 그녀도 이 좁은 의자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꿈틀거리며 몸을 돌린다.
근육 덩어리 거구와 달리 유연하기 짝이 없는 소년의 몸.
그녀의 허벅지 위에 엉덩이를 올리고 다리를 감았다.
마치 코알라가 나무에 매달리듯이.
그 때문에 제 배를 꾹꾹 누르는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졌을까?
화신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자신만만하게 씨익 웃어 보인 그녀가 슬그머니 손을 뻗어 나를 마주 껴안아 온다.
그리하여 한예지의 품 안에 얼굴부터 처박히게 되니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커진 거 맞네.’
작다고 할 수는 없는 가슴이었지만, 이처럼 얼굴을 완전히 눌러버릴 크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 와중에 역전 세계라 하더라도 여자의 감은 여전히 존재하는지 다시 한번 속삭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조금 있으면 동생이 놀러 나가거든요...? 기름기도 그렇고 좀 씻고 싶은데.”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담긴 온갖 감정들.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었다.
작게 속삭임에도 달뜬 목소리를 숨길 수 없었으니 얼마나 기대를 하고 있는지
몽마의 능력을 사용하기도 전에 목소리만 듣고 알 수 있었다.
목욕탕이라, 얘가 이하린처럼 잠수해서 그러지는 않겠지.
“그러면, 나도 씻겨주겠니?”
“네에~”
곧바로 대답하자 원하는 간식을 받은 강아지처럼 눈꼬리가 활짝 휘는 게 보인다.
서로를 껴안고 체온을 느끼며 뱀처럼꿈틀대기를 잠시.
컴퓨터 속 방송은 진작 종료되어 검은 화면만 나오고 있었지만, 마우스로 손을 뻗는 일은 없었다.
귀를 입술로 깨물고, 머리를 쓰다듬고, 등허리를 살그머니 쓸어내리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뽀얀 살갗을 핥고, 의자에 눌린 바지 사이로 손을 넣고.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몸을 달궈가며 기다리기를 또 잠시.
“야! 나 친구 보러 간다!”
쾅-!
대꾸조차 없는 한예지와 배웅 따위는 바라지 않았다는 듯 곧바로 현관문을 쾅 닫는 동생.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그 큰 소리를 신호탄 삼아 그녀가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주님 안기.
‘여기서는 왕자님 안기일까?’
귀신 봤다고 아빠 찾는 것도 그렇고, 정말 미세한 부분까지 다르구나.
문이 다 닫히지 않고 슬그머니 열려 있는 욕실 앞에서, 한예지가 발로 욕실 문을 밀어내며 들어간다.
앞에서 내려줄 거라 생각했지만 욕실 안에서 내려주는구나.
씻겨달라고 말했으니 조금 도움을 받아 볼까.
한예지의 반응이 궁금해 슬그머니 양팔을 들어 올렸다.
마치 어린아이가 옷을 벗겨달라는 것처럼.
“으음...”
어린 남동생을 돌보던 소녀 가장이어서 그럴까?
망설임 없이 그녀가 내 셔츠를 위로 당겨 벗겨준다.
그렇게 드러나는 엘프의 육체.
인간의 모습처럼 식스팩이 선명한 근육질의 육체는 아니었지만 잔 근육이 예쁘게 붙어 있는 몸뚱어리.
‘엘프를 베이스로 살짝은 변하는 걸까?’
늙지 않기 때문에 조금 어린 모습을 당연하게 여겼던 시들지 않는 거목과는 조금 다른 반응.
하기야 한예지가 생각하기에 중학생은 좀 범죄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그 때문에 욕실 거울 속 나는 조금 작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귀여운 소년이 아니라, 앳된 티를 벗어가는 소년과 청년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몸.
그 모습을 보고 안도감을 느끼는 한예지 때문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벗겨 달라는 것처럼 보여 망설임 없이 벗겼는데 얼굴만 보면 애 같고, 벗기고 나니 애 같지는 않고.
그녀에게는 중요한 요소였겠지.
키가 커지거나 얼굴이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유순하게 휘어 있던 눈매가 살짝 올라가고 뺨에 붙어 있던 젖살이 사라져 턱선이 날렵하게 드러났을 뿐.
엘프라는 종족이 워낙 뛰어난지라 고작 그것만 가지고 인상이 확 변했다.
그렇게 거울을 바라보며 한예지의 욕망을 파악하는 동안, 그녀가 내 바지로 손을 뻗는다.
더위도 추위도 타지 않는 분신이라 언제나 입는 반바지를 향해서.
벨트도 없는 반바지가 팬티와 함께 저항 없이 스륵 내려간다.
그러더니 자신의 옷을 벗기 전에 욕조에 물을 틀어두고, 세면대에서 샤워기를 끄집어낸다.
생긴 것은 욕조 하나에 샤워기 하나 있는 전형적인 아파트 목욕탕.
하기야 두 사람 사는 집인데 호화 저택을 구매할 리 있겠는가.
평균 나이가 스물인 남매가 같이 목욕을 할 리도 없으니 욕조도 미묘하게 작고.
“그럼, 샤워부터 하겠습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욕조와 세면대 둘 다 샤워기가 달려 있다는 점일까.
덕분에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몸을 씻는 일이 가능했다.
수도꼭지의 레버를 이리저리 미세하기 조절하던 한예지가 내 목덜미와 어깨에 물이 흐르도록 샤워기 헤드를 대며 묻는다.
“뜨겁진 않으시죠?”
“딱 좋아.”
추위와 더위는 타지 않더라도 따스한 온기 정도는 둔탁하게 느낄 수 있는 분신의 육체.
그 덕에 목덜미에서 등과 가슴을 타고 흘러내리는 온수의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
둘이 들어가기에는 조금 작은 욕조.
눈으로 본 견적이 딱 맞았다.
샤워기로 대충 몸을 씻어낸 다음, 온수에 몸을 풍덩 담갔다.
마음 같아서는 한예지를 품에 안고 싶었지만, 신장 차이 때문에 그 반대가 된 상태로.
하긴 그녀도 성좌를 깔아뭉개는 건 부담스럽게 느끼려나.
몸을 휘감은 따듯한 온기와 발꿈치부터 엉덩이를 거쳐 목덜미와 머리로 느껴지는 말랑한 여체의 감각.
나른하면서도 기분 좋은 온기에 흐아, 크게 숨을 내쉬며 그대로 한예지에게 기댄다.
등 뒤에서 뻗어 나온 하얀 팔이 부드럽게 내 팔뚝을 주무른다.
‘이렇게 보니까 많이 변하긴 했네.’
화장실의 조명이 밝은 덕분에 그녀의 피부가 더욱 뽀얗게 보인다.
처음에는 적당히 그을린 전형적인 동대륙의 피부였는데, 지금은 서 대륙 혼혈이라 해도 믿을 지경.
잡티 하나 없이 피부가 뽀얀 것이 남녀 역전 세계에 소녀 가장으로 알바를 뛰던 사람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뽀얀 팔이 욕조 가득한 온기를 담아 내 팔뚝과 어깨를 주무른다.
“온수를 더 틀까요?”
“아니야, 지금이 딱 좋아.”
이 안락한 시간의 불만이 딱 하나 있다면, 자세뿐.
이 자세는 한예지가 품 안에 나를 넣고 즐기는 자세지, 내가 그녀의 몸을 만질 수는 없으니까.
아무리 유연한 엘프의 몸이라 해도 등 뒤에 있는 여자를 꺾인 팔로 애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마력으로 목욕탕 의자 비슷한 걸 만들며 슬그머니 탕 밖으로 나왔다.
악몽이 아닌 꿈속의 물건을 끄집어낼 수 있게 되니 정말 편하기는 하네.
대형 목욕탕도 아니고 가정집 욕실에 목욕의자가 있겠는가.
자연스럽게 의자에 털썩 앉아 내 앞에 다른 의자를 만들어 가져다 둔다.
“그으, 씻겨드리겠습니다. 아, 당근 싫어하세요?”
“냄새가... 강하지는 않네.”
무엇을 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친환경을 주장하는 당근 그림의 바디워시를 한예지가 쭈욱 짜낸다.
그러더니 샤워 타올 없이 제 손을 삭삭 비비는데 거품이 날 리 있나.
거품은 없고 미끈미끈해진 양손이 내게 다가온다.
그래도 욕조에서 따끈따끈해진 손이라 바디워시가 차갑지는 않았다.
샤워기처럼 어깨부터 시작해 팔뚝을 타고 내려가는 그녀의 손길.
부드러운 손가락 끝이 안마하듯 꾸욱 꾹 내 어깨와 팔뚝을 주무른다.
낮은 목욕의자에 마주 보고 앉아 손을 뻗은 상태.
애를 태우려면 등부터 해 달라며 뒤로 돌아 천천히 즐겨야겠지만, 그러기에는 분신의 지속 시간이 아까웠다.
그런 건 임시 성역에서 본체로 즐기기로 마음먹고 슬그머니 다리를 벌렸다.
부드러운 여자의 몸에 안겨 한 시간을 만지작만지작 당했는데 아래쪽에 피가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가슴 쪽에서 유두를 애써 피해던 한예지의 시선이 바로 아래쪽으로 훅 내려온다.
욕망에 솔직한 모습을 보고 킥킥 웃으니 그녀도 부끄럽다는 듯 웃는다.
“아래쪽도 씻겨 줘야 하지 않겠니?”
곧 네가 사용해야 할 텐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를 건너뛴 손이 곧바로 허벅지 위에 얹어진다.
그러더니 헤엄치는 뱀처럼 자연스럽게 고간으로 피부를 밀며 다가오는 손.
혀나 맨손이랑은 전혀 다른 감촉의 미끈하고 끈적한 손바닥이 물건을 휘감는 것이 느껴진다.
“피부가 후끈거리지는 않으시죠?”
“거품은 좀 없어도 아프지는 않네.”
바디워시를 윤활제 삼는 것이 조금 불안했는지 한예지가 내게 또 질문을 던진다.
얘는 가끔 내 분신이 고통과 과도한 감각을 느끼지 않는다는 걸 까먹는단 말이지.
내 대답에 마음을 놓은 그녀가 위아래로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엘프의 몸이라 해서 털 한 올 없는 민둥산은 아닌지라 이제야 거품이 좀 났다.
음모를 샤워 타올 삼아 일어나는 거품이 야하다고 느껴진 걸까?
어째 내 물건을 붙잡았을 때보다 더 얼굴이 벌게졌네.
챱챱, 위아래로 손이 점차 빠르게 움직인다.
아주 자그마한 비눗방울이 우리 얼굴 사이로 튀어 오를 정도로.
그제야 조금씩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는 걸 깨달은 걸까.
핫! 하고 눈이 동그래진 그녀를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이제는 치킨 기름 대신 욕탕의 증기로 촉촉해진 입술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