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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화 〉101화 : 성좌, 자그마한 악동 2 (101/169)



〈 101화 〉101화 : 성좌, 자그마한 악동 2

유명세는 곧 성좌의 힘이 된다.


불사르는 폭군이 무엇을 위해 화신들을 모아 전함에 태워주는 행사를 하겠는가.
 한예지의 직장에 커피를 들고 갔더니 몽마의 격이 오르는 것에 도움이 된 이유는  무엇이고.

별자리에는 사람이 이름을 붙이듯, 성좌는 결국 사람들이 주목해야 빛난다는 것이겠지.


성좌의 이름에 걸맞은 포인트 상품을 90% 할인해 주는 것 또한 폭넓게 보면 같은 이야기다.
남들이 기억하기 쉽게, 성좌의 이름만 들어도 떠올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적일 테니까.

물론 유명세 하나만 보고 이러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관심을 받는 걸로 강해지려면 내가 방송을 시작했겠지.
이 세상 유일하게 강림한 몽마 성좌의 인터넷 방송.

게스트로 늑대 인간과 엘프까지 있으면
동대륙 말고 온 세상에서 다 내 방송을 보러 오지 않을까.

한예지와 취미를 맞추고 장난을 치기 위해 시작한 일이니까
그렇게까지 일을 키울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사소하게 인터넷 게시글에 며칠 캡쳐되고 말 정도.
딱 그 정도가 사회적인 후폭풍 생각 하지 않고 웃고 떠들며 넘어갈 수준이겠지.

[놀라지 않기만 해도 10만? 마우스 내놔!]
[아니, 내 방송이잖아!]
[아니, 내 시청자잖아!]

한예지가 내가 시킨 대로 돈을 걸고 메시지를 보내자
화면 속에서 장발 머리와 단발머리가 몸싸움을 시작한다.

생긴 것만 보면 학교에서 고백 꽤 받아봤을 것 같은 서글서글한 미녀 두 명.

그런 두 여자가 게임 방송을 하며 서로 멱살을 잡고
브래지어가 드러날 정도로 몸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진심으로 싸우는 건 아니겠지만 배꼽이나 속옷 끝자락이
살짝 드러나는 걸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있었으니까.

“너는 누구 방송을 보는 거니?”

“두 사람 방송 전부 보는데, 아이디는 저 장발머리 쪽으로 맞춰놔서 그래요. 그래도 진짜 싸우는 건 아니고 맨날 저러고 놀아요.”


“저 단발 방송에 장발이 놀러 온 거고, 네가 장발  닉네임을 가지고 미션을 걸어서 싸우는 거야?”

“그렇죠? 근데 저렇게 싸워도 나중에 나눠서 가지고 일정량은 기부도 하고 그래요.”

싸움 또한 방송 일부라는 것처럼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정리를 한 두 사람이 자리를 잡는다.
단발머리가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고, 장발 머리가 의자를 쭉 빼서 비켜주는 방식.
두 사람이 꿈질꿈질 움직일 때 카메라 너머로 방의 빈 공간이 보인다.

악몽 하나 보내기에는 충분한 공간.

“그런데 성좌님, 왜 저런 미션을...?”

어떤 녀석을 보낼까 고민하는 도중, 의아하다는 듯 한예지가 내게 물어본다.
작게 속닥이는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드니 어깨가 절로 부르르 떨렸다.

귀에 성감대가 생긴 건 아니지만 예민해진 건 맞네.


대놓고 손가락으로 만질 땐 몰랐지만, 숨결이 닿으니까 다른 부위보다 훨씬 간지럽다.


“당연히, 놀래켜 주려고 놀라지 말라는 미션을 걸었지.”

뾰족해진 귀 끝자락을 누가 손톱 끝으로 살살 긁는 것 같은 기분.
목덜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이라 등을 뒤로 기대며 뒷머리로 말캉한 가슴의 감촉을 만끽했다.
집 안에 처박혀 있느라 불편해서  입었구나.

팔걸이 대신 말랑하면서도 탄탄한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리고,
가슴골에 뒷머리를 기대니 세상 부러울  없는 의자가 완성되었다.

물론 나를 받쳐주고 있는 한예지는 좀 불편할까 걱정되었지만-


“아, 시작하네요.”


자연스럽게 내 몸을 껴안고 배를 조물딱거리는 손놀림을 보니
불편함을 감내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다리 좀 벌리고 어정쩡하게 앉은 게 뭐 대수겠는가.
품 안에 엘프 소년이 있는데.

그런 마음가짐으로 등 뒤에서 나를 껴안는 손길을 느끼며 정신을 집중했다.

[앞으로, 오른쪽, 오른쪽, 왼쪽, 전화기 찍고 뒤돌면 사진!]
[그새 외웠어?]
[돈이 걸렸는데 외워야지!]


귀신한테 얻어맞다 죽으면서 꺅꺅 소리를 지르던 것이 연출이었다는 것처럼
화면 속 여성은 신들린 것처럼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었다.

채팅창은 재미없다는 단어로 도배되고,
방송인은 그걸 비웃으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단서를 모으고.

[이러다 노히트 클리어 미션도 깨겠는데?]
[타임 어택까지 하면 35야!]

복도의 불이 꺼지고, 액자  남성이 피눈물을 흘리고
코드 뽑힌 전화기에서  소리가 울려도 놀라지 않는 두 여성.
심지어는 혼자 열린 문에서 새하얀 상복을 입은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와도 무시하고 지나치기까지 한다.

그 타이밍에 맞춰 악몽 하나를 불러낸다.

남녀 역전 세계의 처녀 귀신이라 할까, 게임 속에서 나온 것과 똑같이 생긴 귀신을.
팔다리를 가리는 헐렁한 흰 셔츠와 바지.
산발이 되어 눈까지 가리는 남자치고 긴 머리카락.
입가에 묻어 있는 피.

게임 속에서 보면 너무 고전적인 모습이라 무섭기는커녕 우스꽝스러울 귀신.

실제로도 돌아다니던 초등학교 저학년생에게서 뽑아온 악몽이긴 하다.


하지만 그게 모니터 속 게임에서 등장하는 것과 방문을 열고 우리 집에 등장하는 것은 전혀 다르게 느껴지겠지.
35만 원으로 저녁에 스테이크를 썰겠다며 히히덕거리는 두 여자 뒤로 천천히 방문이 열린다.

분위기를 잡기 위해 어두침침하게 만들어 둔 방과 달리, 거실은 밝게 조명이 켜져 있었기 때문일까?
나무문이 열리고 어두운 방에 새하얀 빛이 들어오자 시청자들이 곧바로 반응한다.
등을 돌리고 게임에 집중하는 두 여성과 달리 카메라를 통해 정면으로 문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문? 뭔 문? 여기 문에 힌트 없는, 우리 방문?]
[이상한 거로 방해하지 마!]
[아니, 진짜 열렸는데? 너희 집 고양이 이제 문도 열어?]
[걔 똑똑해서 현관문 빼고 다 열더라. 사실 니 지갑에서 돈 꺼내 간 것도 우리  고양이야.]
[그래? 잡으면 돈 돌려달라고 해야겠다.]


게임에 집중했는지 말이 빨라지는 단발머리와 문을 닫으며 주변을 살펴보는 장발 머리.


당연하지만 문을 연 것은 고양이가 아니니
장발 머리가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고양이를 찾을 수 없겠지.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만담에 시청자들이 웃는다.


나를 품에 안고 있는 한예지 또한.

“재밌어?”

“네, 제가 저런 헛소리를 좋아해서, 유머 코드가 좀 맞아요.”

[고양이 없는데?]
[문만 열고 갔나 보지. 말 걸지 마, 집중해야 하니까.]
[그럼 내 돈은?]
[츄르 사러 갔, 야! 한 대 맞았잖아!]

양탄자 밑에서 쑤욱 올라온 빼빼 마른 피투성이의 손이 캐릭터의 등판을 긁는다.
그와 동시에 다시 끼이이익, 천천히 열리는 방문.

억울하다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단발머리를 무시한 채,
장발 머리가 다시 문 쪽으로 가서 거실까지 둘러보고 온다.


[아니 진짜 없다니, 으악!]
[아, 지랄하지 마, 진짜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문 앞에 여성이 도착했을 때, 쾅! 하고 닫히는 문.

그리고 문 뒤에 서 있던 새하얀 옷의 남자.

[문? 문 뒤? 아니 어그로 좀... 내 등 뒤에 있는 문?]
[아 씨, 뭐야? 문이 왜 닫혀?]
[구라 치지 마, 너 시청자랑 짰지? 니 방송 팬이 건 미션이라고 그러지 마라 진짜.]


어두운 방에 약 0.5초 정도 서 있다 허공으로 흩어진 새하얀 옷차림의 남자.
문밖에 있던 장발도 게임을 하느라 등 뒤를 볼 여력이 없는 단발도
보지 못한 남자가 아주 잠깐 카메라에 모습을 비추고 사라진다.


시청자들은 난리가 나서 렉이 걸릴 정도로 채팅을 치고, 단발과 장발은 입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놀라지 않았다며 게임을 강행하는 모습까지.

한예지가 미션비를 걸 때, 장발 머리의  닉네임을 달고 걸어서 그런지
단발머리는 장발 머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긴, 공포 게임을 하다 등 뒤에 진짜 귀신이 등장했다는  누가 믿겠는가.
차라리 장난기 심한 동료가 몰카를 한다고 생각하겠지.


갑자기 튀어나오면 놀라는  둘째 치고, 진지하게 믿는 건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게임 속에 새로운 귀신이 등장해  공격을 피할 때, 다시 한번 문을 열었다.

[왜 자꾸 문문거려, 짜증 나게!]
[야, 너네 집... 아니다.]


방문이 아니라, 방문 반대편에 있는 옷장 문을.

고양이가 있을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슬슬 불안해진 장발 머리가 옷장 안을 헤집는다.
게임에 집중하는 단발은 모르겠지만, 장발 머리는 제 앞에서 문이 쾅! 닫힌 것을 목격했으니까.


불안함과 공포가 카메라 너머로 전해질 정도가 되니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녀가 헤집던 옷장 문을 닫아버린다.
그 와중에도 채팅창에는 하얀색 뭔가를 봤다는 사람과
거짓말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싸우느라 렉이 걸릴 지경.

“와, 저거 성좌님이...?”

“맞아.”


한예지가 그걸 보면서 낄낄 웃는다.
진실을 전부 아는 상태로 구경을 하니 얼마나 흥미롭겠지.
몰래카메라 예능이  세상에 넘쳐나겠는가.
단순하지만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으니까 생기는 거지.



이게 뭐, 나쁜 짓도 아니고.


방송에는 큰 도움이 될 거고, 놀랐다고 심장마비가 와서 거품 물고 쓰러지지는 않겠지.


우리 둘이 낄낄 웃으며 두 사람의 대비된 반응을 지켜보는 동안 게임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모아야 할 힌트 메모지는 전부 먹었고, 피해야 할 귀신은 전부 피한 상태.
이제 복도만 몇 번 달려나간 뒤 마지막 이벤트만 보면 게임이 끝난다고 한예지가 내게 속삭여온다.


[이제 더는 없어!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뛰어! 이제 얼마  남았어!]

게임의 스토리를 외운 건 두 여자도 마찬가지였는지 흥분해서 소리를 지른다.

타이머를 보니 타임 어택 퀘스트도 깰 수 있어 보이니까 흥분했구나.
노 히트 플레이는 실패해서 빨간 선이 그어졌지만 이대로 가면 25만 원은 벌  있는 상황.


[정말  무서워?]


그 상황에 우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무섭다, 니...까?]
[장난치지 마, 진짜.]
[나 아니야, 진짜로.]

여자만 둘 있는 방에서 남자 목소리가 나니 시청자도 방송인도 난리가 났다.
게임을 할 생각도 못 하는지 우두커니 멈춰버린 캐릭터.

머리카락이 얼굴을 찰싹찰싹 때릴 정도로  여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서로가 서로에게 휴대폰을 내민다.


[봐봐, 녹음 파일 안 틀었다니까?  껀?]
[나는 방송 중에 꺼 두는데.]
[나는 없어.]


마이크에 대고 속삭이는 남성의 목소리.
내민 두 여자의 손목 위에 슬그머니 얹어지는 빼빼 마른 피투성이의 손.

게임  양탄자에서 나왔던 귀신의 손과 똑같은 손이었다.


[어, 아빠아악!]
[뭐, 뭐야? 뭔데?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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