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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화 〉100화 : 성좌, 자그마한 악동 1 (100/169)



〈 100화 〉100화 : 성좌, 자그마한 악동 1

180cm 건장한 덩치에 흉악한 얼굴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일을 겪었다.


재수  번 했더니 대학교에서는 사람 패서 1년 꿇었다는 헛소문이 퍼지질 않나,
취업 준비하느라 과실에 서류 가방 놓고 가니 엄청 무거운 게  봐도 연장이 들어 있다는 소문도 돌아
친구 놈들에게 술안주로 두고두고 씹혔던 적도 있었다.


아포칼립스 세상에서는 험한 얼굴이 한층 더 사납게 변해서
얼굴만 봐도 생존자 무리들이 경계를 하는 일이 일상이었지.
여러 무리를 돌아다닐 때, 너는 눈매가 사납게 생겼으니까 사시미 하나 들고 뒤에 서 있어 달라는 의뢰도 많이 받았다.
생존자들이 협상할 때 기 싸움을 하기 위해 내 얼굴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게 효과적이어서 조금 어처구니가 없긴 했어.

아무튼, 내 인생에 작다, 귀엽다, 잘생겼다 같은 단어는 없었다.
중학생 때 170을 넘기고 고등학교 무렵 180을 넘긴 뒤, 입대 전에 친구 따라 헬스장에 가서 몸을 만들었으니까.
아마  인생 마지막 ‘귀엽다’라는 말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할머니한테 들은 것이 마지막이라고 기억하는데.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낯설다.

“뭔가, 부드럽네요.”


“아프시지는 않죠?”


식당 테이블에 앉아 디저트로 제공되는 초콜릿 롤케이크를 먹고 있으니 양옆이 부산스럽다.
오른쪽에 김하은, 왼쪽에 이하린이 앉아 열심히 내 뾰족 귀를 만지고 있었으니까.
키가 작아진 것뿐만 아니라 엘프로 변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내 잘못 아닐까?

옆에서 1분에  번 수저를 움직일 정도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과 뭉글뭉글 솟아오르는 호기심 때문에
‘그렇게 궁금하면 한번 만져 보겠니?’라고 물어본 게 잘못이었던 것 같다.

“아프지는 않은데, 식사는 언제 하려고 그러니? 이미 다 식은 것 같은데.”

“저는 원래 차갑게 먹습니다.”

“저도 고양이 혀라 식은  더 좋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세상의 엘프는 에로프까지는 아닌지,
귀 끝을 만졌다고 헤으응~ 하면서 물건이 발딱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물론 내 뺨과 귀를 쓰다듬느라 착 달라붙은 가슴 때문에 조금 피가 쏠리긴 했지만.

“그래도, 식사는 똑바로 하렴.”

“네, 알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만 보고, 먹으라니까?”

여전히 내 귀와 뺨에서 쏠린 시선은 사라지지를 않는다.


아니, 셋이서 식당에 왔으면 1 : 2로 앉지 않나?
왜 셋이 나란히 앉아서 이 난리야.

목이 돌아간 채로 밥을 먹는 두 화신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을  쉬었다.
안 그래도 짧은 남자 머리카락으로는 엘프의 귀를 가릴 수 없어서 사람들의 시선이 아플 정도로 날아오는데.

아니, 생각해보면 몽마의 격이 올라가서 이런가?


정신은 아직도 180cm 흉악범의 면상인데, 주변 여자들이 꼬집고 쓰다듬고 귀엽다 귀엽다 난리를 치니까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심지어 식당에서 배식하던 아저씨들은 내가 성좌인 걸 모르고 귀도 발견  해서
이렇게 작고 어린데 화신이 되다니 대단하네~ 하면서 디저트를 잔뜩 챙겨주었으니까.

‘이게 미녀들이 살던 삶?’


그렇게 군것질을 즐기다 봉사 욕구와 성욕이 슬금슬금 두 화신을 잠식하는 꼴을 보고 후다닥 임시 성역으로 돌아왔다.
그래, 걔들도 인생 살면서 고운 얼굴 때문에 불편한 점은 있었겠지.
그리 생각하며 임시 성역이 아닌 성좌의 공간까지 와서 화면을 내려 보았다.


‘한예지는 뭘 하고 있나?’

성좌들이 보낸 전령이 자꾸 아카데미에 오기 때문에,
요즘 한예지에게 분신을 보내는 일이 뜸해졌으니까.
밤에 자각몽 속으로 찾아간다 하더라도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다.
화신을 공평하게 대하겠다며 세 명만 계약한 주제에 한 명을 섹스만 하는 사이로 놔두기는 좀 그렇지.


지난번에는 우리사이 질질 사이 배너 때문에 곤욕을 치르더니, 오늘은  하고 있을까.


오후 출동이 아닌지 오늘도 자기 방에 처박혀 꿈지럭대고 있는 걸 확인한 뒤, 나는 주저 없이 분신을 보냈다.
생각해보면 엘프의 몸이  뒤 한예지에게 분신을 보내는 건 처음 아닌가?

침대에서 몰래 즐길 땐 엘프가 되기 전이었지.

코끝을 맴돌던 세계수의 향기가 사라지고 약간은 쿱쿱한 냄새가 나는 방 공기가 느껴진다.
환기조차 귀찮아서 오랜 시간 방에 처박힌 냄새.

겉모습만 보면 어여쁜 여대생인데 행동거지는 방학을 맞이한 내 옛날 모습과 판박이였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보다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 TV 앞에 앉지만 1시간이 채 되기 전에 침대로 돌아오는 삶.
남동생은 학교가 끝나고 숙제라도 하고 있는지 한심하다는 눈길을 제 누이에게 보내더니 방문을 걸어 잠근 상황.

그녀의 무료한 일상을 타파해주기 위해, 또다시 내가 침대 이불 속에 분신을 보냈다.







오늘의 한예지는 컴퓨터로 게임 방송을 보고 있었다.


지난번처럼 GLGL사이 이딴 걸 보고 있었다면  번 더 놀려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등 뒤에 슬그머니 분신을 만들었는데 눈치를 못 채는 상황.
뭘 보고 있나 어깨너머로 화면을 보았다.

[뒤, 뒤, 뒤! 지금 보면 안 된다고!]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지금 보면 무조건 귀신 있다, 아팟!]


기괴할 정도로 흥분한 여성 둘이 마우스와 키보드를 나눠 잡고 게임을 하는 영상.

말하는 그대로 귀신을 보기 싫은 건지, 시청자 미션이 있는 건지
공포 게임을 반대로 조작하며 플레이하고 있었다.


진행 경로에 적이 튀어나왔는지 화면은 붉어지고 피격 판정이 나오며
등 뒤에서 으스스한 소리가 들리자 얻어맞으면서 화면을 비트는 두 명.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로와 비슷하게 장애물이 잔뜩 있는 어두운 복도에서
거꾸로 조작해 뒤로 걸으며 장애물을 피하는 게 가능할 리 없다.

연달아 들리는 퍽! 소리와 시뻘겋게 물드는 화면을 보며 한예지가 흐흐, 하고 그녀들을 비웃는다.
그 타이밍에 맞춰 등 뒤에서 양팔을 뻗어 그녀를 와락 껴안는다.


인기척과 마력을 이미 느꼈는지 딱히 놀라지는 않네.

“아, 성좌님 오, 셔엇?”

등 뒤에 내가 서 있는 것까지는 예상했지만 생김새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일까,
눈이 휘둥그레진 한예지가 벌떡 일어난다.


키가 작아져서 무게도 가벼워졌기 때문인지 어깨에 팔을 두른 상태로 내게 붕 떠오른다.


“어, 으어, 악!”

의자에 발이 엉기고 무릎은 책상에 박은 한예지가 휘청이는 나를 급히 업는다.
내가 넘어질까 허겁지겁 뻗은 손이 허벅지와 엉덩이를  움켜잡으며.
깜짝 놀라서 그런지 이게 분신이고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는 걸 미처 생각  했나 보다.

“그렇게 놀랍니?”

화들짝 놀라 내 엉덩이를 놔 주고 손을 허공에 꼼지락대는 한예지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물었다.

“아니, 그, 엘프를 보면 대부분 놀라지 않을까요?”

하기야, 성좌와 화신이 있는 세상이라 해도 엘프가 많을 리 있나.
당장 늑대 인간인 충성스러운 송곳니랑 몽마인 나만 봐도 그렇다.
대륙에 있는 성좌들 전부 모아놔도 99%는 인간 출신일 테니까.


그렇게 대꾸한 한예지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무릎을 살살 매만진다.


“야! 시끄러워! 책상은 왜 발로 차는데!”


그러자 신경질 난 소년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온다.
아무리 방 두 개가 떨어져 있다지만 책상을 걷어차는 소리까지 숨길  없겠지.


“넘어질 뻔한 거야!”

“집구석에서 혼자 자빠져? 병신이야?”

“아오, 저 싸가지 없는 거.”


방문 두 개를 사이에 두고 우렁차게 오가는 남매의 대화.
병에 걸려 있을 땐 서로 서먹서먹하게 눈치를 보더니,
지금은 건강해지다 못해 우람해진 사이가 되어버렸네.

내 웃음소리를 듣자 한예지가 얼굴을 벌겋게 붉힌다.

“애가 체력이 붙더니 성질머리도 붙어서요...”

“보기 좋은데 뭘.”

애꿎은 뒷머리만 벅벅 긁던 그녀가 다시 의자를 일으켜 세우고 책상 앞에 앉는다.


컴퓨터 화면 속에서는 단발머리와 장발 중 단발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전부 차지하고 진지하게 게임을 진행하기 시작한 상황.


웬일로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방송을 보는 게 아니라 책상에 앉아 있나,
하고 뒤에서 흘깃 봤더니 방송을 작게 띄워놓고 결제 사이트에 들어가는 게 보인다.


‘돈 좀 쓰라고 했더니, 정말 취미에 쓰고 있긴 하구나.’

 마우스와 키보드를 나눠 쓰면서 뒤로 걷는 이상한 짓거리를 하나 했더니, 한예지가 시켰던 건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멋쩍게 웃은 그녀가 내게 묻는다.
나도 한예지네 집에서 TV나 컴퓨터를 자주 빌려 썼다는 걸 아니까.


“그, 성좌님도 시켜보실래요?”

자기가 말해 놓고도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지  헤헤 웃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덩치가 작아지니 이게 되긴 하네.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어깨로 그녀의 턱을 받쳐주며 한예지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뭘 시킬 수 있는 건데?”


“그러니까 이 게임이  복도를 계속 걷거든요? 그걸 시청자가-”


한예지의 설명은 생각보다 이해하기 쉬웠다.


내가 설명을 듣는 동안 벌써 두  정도 죽어버렸으니까.


반복되는 공간을 계속 걷다 보면 미세하게 배경이 바뀌는 공포 게임.
전생에서도 이런 부류의 게임을  적 있는데.

아무튼, 그렇게 걷다 보면 플레이어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이상 현상이 등장하는 게임이다.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탈출을 위한 힌트를 모아 나가는 방식.

설명을 들으며 뒷머리에  닿는 푹신함을 만끽하고 있으니 내게 설명을 끝마친 한예지가
마우스를 달칵달칵 움직이며 미션을 후원할 금액을 미리 충전하기 시작한다.

[다음! 다음 미션  큰 거 없냐?]
[아니 내 방송에서 니가 왜 미션을 요구하냐고!]
[내가 깨면 내가 가져가는 거 아닌가?]

왁자지껄한 목소리와 함께 축소된 게임 방송의 하단부가 눈에 들어온다.
457k면 45만 7천 명이라는 소린가? 생각보다 유명한 방송이구나~ 하고 생각하다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한예지가 말한 것처럼 저 방송에서 잠깐 어그로를 끌어 볼까?


인터넷에 내 이야기가 올라와도 마력이 소폭 증가하던데.
그 때문에 한예지의 직장에 커피를 들고 오가며 구설수를 만든 게 아니던가.
성좌의 마력인지 몽마의 마력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나를 알아갈 수록 마력 다루기가 쉬웠지.

인터넷 방송을 하는 성좌님이  생각은 없지만, 잠깐 놀라게 해 주는 거로 인터넷의 화제가 될 생각은 있었다.
마침 저 두 사람이 공포 게임을 전문으로 하는 방송인이고,
 화신인 한예지가 십만 단위의 돈을 미션비로 거는 열혈팬이니까.


명분도 이득도 확실한 상황.


“예지야, 그러면 미션 하나만 걸어 볼래?”

“미션이요, 네. 뭐라고 쓸까요?”

등 뒤에서 나를 껴안는 형태로 한예지가 키보드에 손을 뻗는다.

“놀라지 않고 게임 클리어  10만,”


“놀라지 않고 클리어  10만... 성좌님?”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 지, 한예지가 이해했다는 것처럼 흐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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