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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화 〉99화 : 성좌, 자그마한 악몽 3 (99/169)



〈 99화 〉99화 : 성좌, 자그마한 악몽 3

처음 마력을 사용했을 때.

그러니까 내가 몽마에 대한 권능을 처음으로 상점에서 구매하고, 반 쪼가리 몽마가 되었을 때.

그때는 내가 누군가의 악몽을 엿볼 때마다 두통이 밀려왔었다.
환몽비약을 꾸준히 먹고 완전한 몽마가 된 뒤에는 그런 일이 없어서 깜빡했는데 말이지.
 세상에 마력이 있고 재능이 있다면 한계도 있는  당연하지 않겠는가.


한계를 넘어서서 무리하면 반동이 오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다.

‘아오, 머리야...’


오염 지역을 탐색하다 요단강 건너기 직전까지 갔던 때에도 머리가 이렇게 아픈 적은 없었는데.
하긴 그때는 온몸의 뼈마디가 으스러진 것처럼 아팠지 두통이 있지는 않았다.
몸은 멀쩡하고 정신은 쌩쌩한데 관자놀이를 누가 송곳으로 쑤시는 것처럼 머리만 아픈 상황.

가만히 있어도 눈에 눈물이 고일 지경이라 눈을 질끈 감았다.


“괜찮으십니까, 성좌님?”

찌푸려지는 내 미간을 보았을까, 목소리를 듣고 슬그머니 눈을 뜨니 누군가의 허벅지와 무릎이 보인다.
그와 동시에 부드럽게 이마를 매만지는 손길까지.

임시 성역은 성역인지, 정신을 차리니까 머리를 후벼 파던 두통이 곧바로 사그라든다.

“못  꼴을 보여줬구나.”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하린을 보자 입이 매끄럽게 움직이며 대사를 뱉는다.
나긋함과 느긋함을 가장하여 남녀 역전 세상을 연기하던 전과 다르게 훨씬 빨라진 반응.
이 능숙한 연기만 보더라도 몽마로서의 격이 많이 올라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자기가 모시는 성좌가 마력 때문에 기절했음을 알아도 오히려 기뻐하는 이하린의 모습을 보자 조금 소름이 돋았다.

세상에는 무명 시절의 연예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듯,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성좌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조금씩 큰 무대로 나아가는 연예인을 응원하듯 화신을 늘려가고 세력을 늘려나가는 모습을 응원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하린이라면 어떤 성좌든 일단 좋아하고 볼 같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코피 흘리면서 기절한 사람, 아니 성좌를 보살피면서 행복하다는 감정을 저렇게 흘려도 되는 걸까.
보니까 머리를 다쳤을까 봐 카펫 위에 그대로 놔둔 채 무릎베개만  준 상태.

“그, 움직이셔도?”

걱정 어린 목소리로 그녀가 나를 불렀지만 상관없다.
임시 성역의 기능인지 몽마의 능력인지 두통을 제외하면 육체는 최상의 상태였으니까.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자 이하린도 따라 일어선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파동.


역시나, 몽마의 격이 오른 게 맞는지 이하린의 감정이 숨기지도 못하고 내게 느껴진다.
정확히는 감정과 뒤섞인 그녀의 생각이 통째로 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임시 성역 밖으로 나서는 그녀와 나.

‘그건 아니지...’

정확히는 남들 앞에서 과시하듯 나를 업은 상태로 돌아다니는 상상.
이대로 문밖으로 나서면 자연스럽게 나를 껴안고 업어  것 같아 그대로 소파에걸터앉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있던 새하얀 늑대 인간은 못 봤니? 내가 만든 아이인데...”


등허리를 받쳐주는 고급스러운 감촉을 만끽하며 말을 걸었다.
 덩치면 눈에 안 띌 리 없는데 보이지 않았으니까.
내 질문에 허리춤을 주섬주섬 뒤지며 이하린이 내게 대답한다. 그녀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보석의 조각.

“아, 그 하얀 늑대 인간은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사라졌습니다. 이것만 남긴 상태로요.”


정확히는 내가 만들었던 연보랏빛 심장의 파편이다.

‘역시 마력이 부족했나.’

완벽한 성공 직전에 기절해서 유지를 못 한 걸까.
그런 고민을 하며 손안에서 잘그락 소리를 내는 파편을 만졌다.
이게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는 소린데.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악몽들은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사라져 왔다.
그러니 뭐라도 남으면 꿈속의 물건을 현실로 완전히 꺼내는 것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내가 창조주도 아니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건 아니지만,
마력으로 꿈속에 있는 것을 현실로 끄집어낼 수는 있으니까.

그렇게 잘그락잘그락 손장난을 치고 있으니 뭔가 오해를 한 이하린이 내 앞에 넙죽 엎드린다.


“죄송합니다, 성좌님!”

“무슨 일인데?”

맥락을 파악할  없는 엉뚱한 사과.
자는 사이에 몸을 만지작거리기라도 했나, 아니면 코피를 씻어주다 옷을 갈아 입혔나?
대체 뭐 때문에 사과를 하는지 몰라 물어보니 카펫에 얼굴을 묻고 그녀가 크게 외친다.

“그, 하얀 늑대 인간이 뭔지 몰라서 제가 조금 과하게 손을 쓴 것 같습니다. 방구석에 포획해 놨더니 버둥거리다 갑자기 크게 울부짖고 사라져서... 아마 제가 죽인  같습니다!”


외침과 함께 강하게 느껴지는 죄책감과 불안감.

어쩐지 기절하기 전에 고함과 함께 뭐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  같더니만.
차라리 기절하고 나서 들어왔으면 하얀 늑대 인간이 위험하지 않다는 걸 봤을 텐데.
기절하는 순간 정확히 들어온 게 문제였다.

“네가 죽인 게 아니고, 마법으로 만들어 낸 형상이니 전혀 상관없단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이하린을 혼낼 이유는 되지 않는다.
코피를 질질 흘리면서 쓰러지는 소년과 그 옆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늑대 인간을 보면
누구나 다 그렇게 반응하지 않을까.


방구석에서 마법진 연구만 하던 공붓벌레가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늑대 인간한테 주저 없이 달려들다니.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렇게 주저 없이 달려들지 못할 텐데.
역시 성좌와 화신이 엮이면  뒤집히는  여전하구나.

계약 첫날, 사관학교 생도의 신분으로 교관한테 게거품 물고 달려들던 성깔이 어디  가네.

“그러니까 고개 들렴. 우리 사이가 고작 이런 것 때문에 용서를 구하고 고개를 내리깔 사이는 아니잖니?”

엎드린 상태라 머리가 이리저리 흐트러진 것을 보고 손을 올려 살살 쓰다듬는다.
사관학교에서는 단발이고, 아카데미에 들어올 때는 어깨까지 왔던 단발이 이제는 날개뼈를 지나고 있었다.
이젠 단발이라고 부를 수 없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손장난을 치고 있으니
또다시 강렬한 감정이 치솟아 오르는  느껴진다.


“그래도, 검진을 한 번 받아 보심이 어떻습니까? 지금 성좌님께서는 분신이 아니라 강림을  육체를 지니고 계십니다. 이곳이 아무리 성좌의 공간을 본떠 만들었다고 해도 결국 인간의 기술일 뿐. 어디 크게 상하신 부분 없을까 걱정됩니다.”


천천히 고개를  그녀가 침착한 얼굴로 내게 말한다.

그 눈동자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을 애써 숨기며.

“그래, 그렇게 걱정되면 검사 한  받는 것도 좋겠지.”

까만 눈동자가 희열로 가득 찬다.
몽마의 능력 없어도 기분 좋다는  팍팍 티 내며 씰룩대는 입꼬리와 주욱 아래로 휘어지듯 내려가는 눈꼬리.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곧바로 시무룩하게 변하는 것 또한 보인다.

“단,  발로 걸어서 가겠다.”

“하지만...”

끝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새까만 눈동자가 나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눈과 눈이 마주치고, 다시 한번 몽마의 능력이 발동한다.
악몽을 읽기 위해 눈을 마주쳐야 했던 때와 같이.
자기 생각이 읽히고 있다는 걸 눈치를채지 못한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한다.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몸을 조심히 다루는 게 어떨까요.”
‘여기서 아카데미의 병동까지는 걸어서 10분... 느리게 걸으면 15분도 가능해.’

“검사 결과가 나온다면 저도 안심하겠습니다. 성좌님을 이곳에 강림시킨 제사의 주관자가 접니다. 그런데 성좌님께서 이렇게 피를 흘리고 쓰러지시니 불안한 감정이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화신의 어리광이라 생각하시고 한 번만, 이번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까 김하은이 성좌님을 내게 맡기고 갔으니 거기를 들리면 20분? 아니야... 그러다 모시는 영광을 뺏길 수도 있어. 그 녀석이 나보다 몸은 튼튼하니까.’

걱정하는 마음도 진실이지만, 너무나도 능숙하게 자신의 욕망을 뒤섞는다.
죄송하고 걱정되니 봉사하며 참회하겠다.
그런데  봉사가 너무 즐겁다.


대충 그런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음흉한 짓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성좌를 업고 다니는 화신이라는 걸 과시하고 싶다는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우리 사이를 들먹인  도화선이었나?’

평소대로라면 내가  마디 하면 알겠다고 고개 숙이고 물러날 이하린이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달랐다.
일반적인 성좌와 화신의 관계를 넘어선 관계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제대로 불이 붙은  같으니까.

시들지 않는 거목이 자기가 거느린 농부들의 이름을 알기는커녕
대리인으로 나를 보내 제사를 지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나처럼 성좌가 화신 개개인에게 깊은 관심을 주며 교류하는 일은 매우 특이하다는 것을.

시들지 않는 거목도 외롭고 심심했다면 자신의 화신들과 어떻게든 이야기를 나누고 친하게 지낼  있었지만
나와 만나기까지 식물만 가꾸며 지내지 않았나.

성좌와 화신은 일반적으로 그런 관계다.


나를 제외한다면.


“그래, 하지만 다른 곳 들리지 말고 바로 검사를 받으러 가자꾸나.”

“예!”
‘검사가 조금 늦게 끝나면 식사 시간이니까, 아주 조금만 느리게 걸어야겠다.’

한숨을  쉬며 대답하자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린 이하린이 후다닥 현관으로 향해 나를 기다린다.
그 모습을 보니 산책하러 나가자는 소리를 들은 강아지처럼 보여 뭐라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
멋대로 눈과 귀를 순환하며 감정과 생각을 읽는 마력을 갈무리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검사가 끝나면 생도 식당이라도 한번 가보고 싶구나. 너희가 평소에 뭘 먹는지 궁금해서.”

내 말에 그녀가 세상 행복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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