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95화 : 살롱 3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가 작게 미소 짓는다.
아주 어렸을 적 생일 선물 상자를 눈앞에 두고 있었을 때처럼 두근거리는 가슴.
무언가에 이토록 기대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하지만 동성애자를 제외한다면 세상 모든 남자가 이 광경을 보면 가슴이 뛰지 않을까.
“아...!”
새하얀 속옷을 입고, 수줍게 내 옷자락을 벗겨나가는 아름다운 엘프 여인을 본다면 말이야.
물론 선물 상자를 풀어헤치듯내 옷자락을 벗기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지만.
부드러운 손길에 이끌려 속옷을 제외한 옷을 전부 벗어 던진다.
침대 밑에서 뒹구는 고풍스러운 양복과 드레스는 우리의 관심 밖이었다.
팬티 바람의 소년과 속옷 차림의 소녀가 한 침대에 올라와 있는 상황이니까.
술에 취해 짜내듯이 발휘한 용기라지만,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때문에 되도 않는 유혹이랍시고 스킨십을 하며 지난 시간을 보내온 것이니까.
벌벌 떨리는 손이 천천히 내 가슴께로 다가온다.
‘하긴, 다짜고짜 성기부터 만지는 건 좀 그렇지?’
그 풋풋한 태도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지만, 침을 꼴딱 삼키고 내 가슴팍을 노려보는 그녀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부드러운 손길이 가슴과 가슴 사이를 살살 쓰다듬으며 명치 근처를 어루만진다.
직접 가슴은 만질 용기가 아직 부족하다는 듯이.
그 답답한 모습에 슬쩍 손을 뻗어 가슴을 만지게 해 줄까 싶었지만,
그녀가 스스로 어디까지 용기를 낼지 궁금해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근육도 없이 평평하기만 한 소년의 가슴이 뭐 그리 좋은지 열중해서 조물딱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 손으로 명치 어림을 어루만지다 결국 양손이 전부 내게 다가온다.
맹인이 점자를 읽듯 손가락 끝이 아주 살그머니 피부에 닿도록 양 가슴을 어루만지며.
이 순진한 엘프 아가씨에게는 이 미세한 감각마저 너무 부끄러웠는지, 히엡, 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벗길, 게.”
“...”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코올을 연료 삼아 용기를 쥐어짜더니,
이제는 창피함을 기반으로 소녀가 여인으로 발돋움한다.
메이드가 입혀둔 뭔지도 모를 고급 속옷이 스르륵 내려간다.
그에 맞춰 나도 벗겨줘야 하나, 싶었는데 그녀가 스스로 속옷을 벗어버린다.
새하얀 비단 속옷 아래에 숨겨져 있던, 속옷보다 하얗게 보이는 뽀얀 피부.
그 아름다운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니 내 어깨를 잡은 그녀의 얼굴이 갑작스럽게 훅 다가온다.
입술에 쿡, 하고 강하게 와 닿는 그녀의 입술.
입술이 보드랍다느니, 얼굴이 작으니 입도 작다는 잡생각 따위를 할 수 없었다.
긴장한 그녀가 생각보다 강하게 달려들어 그녀의앞니가 내 입술을 쿡 찔렀으니까.
보드라운 온기보다는 입술에 딱밤을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어 그녀를 올려보았다.
“미, 미안햇!”
자기도 너무 빠르게 다가와 부딪혔다는 걸 느꼈을까, 화들짝 놀란 그녀가 다시 천천히 얼굴을 들이민다.
누워 있는 내게 아주 천천히 내려오느라 바들바들 떨며 슬쩍 실눈을 떠는 얼굴과 어색하게 쭉 내민 입술.
그 모습을 보고 몸에서 힘을 빼고 기다리자니 톡톡 두드리듯 입술 위에 입술이 다가온다.
“아프진 않지? 피는, 안 나네... 다행이다.”
두어 번 입술 위를 입술로 두드린 그녀가, 상처를 핥아주는 것처럼 혀를 빼꼼 내밀어 내 아랫입술을 핥는다.
음탕하기보다는 정말 벌레 물린 곳에 침을 바르는 것과 같은 단순한 혀 놀림에 오히려 흥분감이 치솟는다.
사회가 박살이 난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섹스는 그저 거래 수단일 뿐이었으니까.
내 주제에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의 풋내 나는 첫 경험을 만끽할 기회가 있겠는가.
성좌라서, 몽마라서, 그리고 엘프인 그녀를 처음으로 만났기에 얻을 수 있는 황금보다 귀한 경험.
아랫입술을 몇 번 할짝대준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린다.
자기가 한 행위가 남자애 가슴을 주무르는 것보다 더 창피하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가라앉았던 얼굴이 다시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로.
그 수줍은 자태에 손을 뻗지 않고 누워 있는 일에 어마어마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팬티가 벗겨져 은은한 조명 아래 드러난 내 물건이 우뚝 솟아올라 꺼덕이며 나를 재촉한다.
다행히 몸이 어려졌지만, 아랫도리까지 완전히 쪼그라들지는 않았다.
거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년의 육체를 생각하면 꽤 크다고 생각될 크기의 물건.
그런 것이 핏대를 세우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그녀의 시선이 다가온다.
그러더니 흐읍, 하고 발랑거리는 작은 콧방울을 꼼질대며 냄새를 맡는 것 아니겠는가.
‘몸에서 냄새나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편안하다 해도 세, 네 겹으로 두꺼운 셔츠와 재킷을 감싼 채 정원에서 따듯한 와인을 마셨으니까.
혹여나 몸에서 땀이라도 나서 발이나 겨드랑이에서 냄새가 나는 건 아닌가, 하고 불안한 마음이 잠시 들었다.
“역시, 달아...”
그러나 내 자그마한 불안감을 읽었는지 그녀가 핑계를 대듯 중얼거린다.
자세히 보니 자그마한 혓바닥을 날름 내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이유도 없이 허공에 대고 메롱 거리며 약을 올리겠는가.
눈에 마력을 담아 보니 아주 미세한, 연보라색 기류가 보인다.
‘내 마력?’
저게 몽마의 페로몬이라도 되는 걸까.
내 몸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을 정도로 미세한 마력이 흘러나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네.
※
몸이 뜨겁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쿵거리면 그에 맞춰 아랫배가 큥큥 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장 박동이 얼마나 거센지 머리끝부터 아랫배까지 심장 박동에 맞춰 피가 흐르는 게 느껴질 정도.
몸이 커다란 타악기가 되어 누군가에게 두들겨지고 있는 것 같았다.
“벗길, 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소년.
역시 몽마는 몽마라는 걸까, 수줍은 듯 시선을 내리는 모습을 보니 얼굴이 뜨거워져서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딱히 의미 없어 보이는 느릿하고 자그마한 몸동작만 봐도 술기운 뒤섞인 감정이 뇌를 헝클어트리는 게 느껴지니까.
속옷을 내리며 언젠가 들었던 음담패설들을 떠올린다.
‘남자는 확실하게 이끌고 찍어 누르라 했는데...’
세계수의 결계 안에서 평생을 지냈지만, 같이 일상을 보냈던 인간족과 수인족이 있었으니까.
그들이 연인이 되어 매일 밤 시끄럽게 열락의 밤을 보냈던 기억이 머리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일단은 입부터 맞춰야겠지.
어질어질한 머리는 이 행복한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판단이 느려졌다.
마치 업무를 보듯이 제멋대로 단계를 정하기 시작했지만, 헝클어진 이성은 감히 그것에 반박하지 못했다.
살살 피부를 만지고
속옷을 내리고
입을 맞추고
그다음에-
콩, 자그마한 충돌.
잡념이 많아서 그럴까, 침대에 누워 나를 올려보는 소년의 입술에 이가 부딪혔다.
내리찍었다고 말하면 조금 과장이겠지만, 두근거리는 첫 경험에 이런 어색한 실수를 한 것이 조금 미안해진다.
아무리 몽마라지만, 나보다 어린데.
“미, 미안햇!”
살짝 부풀어 오른 입술을 본다.
부드럽게 반개한 눈이 괜찮다는 것처럼 나를 올려다보지만, 완벽하게 조형된 입술이 살짝 부푼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그대로 입술을 아주 천천히 다시 가져다 댄다.
‘키스할 땐, 눈을 감던가?’
‘그런데 눈을 감았다가 코나 뺨에 부딪히면 어쩌지?’
결국, 살포시 실눈을 뜨고 입을 맞췄다.
아까와 같은 실수는 없었기에 입술 끝자락에 따듯하고 말캉한 감촉이 느껴진다.
예민해진 감각에 피 냄새가 나지 않고 부드럽기만 했으니 상처는 나지 않았겠지.
혹시 미세한 핏방울이라도 있을지 몰라 혀를 살짝 내밀어서 핥아 본다.
“아프진 않지? 피는, 안 나네... 다행이다.”
얼굴을 들어 올리자 괜찮다는 듯 다시 배시시 웃어 보이는 그.
입을 맞추며 호흡을 멈췄기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 하고 공기를 마시자 혀끝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달콤함.
지난번에도 느꼈었던 진득한 맛.
흐읍, 하고 숨을 몇 번 쉬었다.
겉보기에는 엘프 소년이지만 역시 몽마라는 걸까,
정신을 차려보니 은은한 침실이 마력으로 아주 옅게 둘러싸인 것이 느껴진다.
분무기로 물을 뿌리듯 온 피부를 감싸는 달콤한 마력.
숨을 쉴 때마다 혓바닥을 두드리는 달콤한 미세 마력 때문에 코가 절로 꼼질 거렸다.
‘달콤해.’
지난번, 마력을 맛보았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마치 어머니가 말한 식인 식물이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단맛.
식물 중에서는 동물을 유혹해 양분 삼기 위해 벌꿀보다 매혹적인 수액을 분비하는 종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보라색 마력 결정을 혀끝에 댄 순간, 나는이미 홀려 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달콤해진 공기를 혀로 핥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그 미세한 마력이 혀끝에 달라붙어 중독성 있는 달콤함을 선사한다.
마치 그릇에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핥는 것 같은 묘한 중독성.
“역시, 달아...”
갑자기 허공에 혀를 날름거리는 게 이상해 보였을까.
걱정 어린 눈길로 나를 올려보는 모습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서로 알몸이 되어 술김에 어른스러운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 애처럼 마력을 할짝거리고 있다니.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자 흔들흔들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새하얀 피부에 걸맞은, 새하얗고 길쭉한 살덩어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