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82화 : 욕구해소 3
침대에 발라당 드러누운 한예지는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쾌락 때문인지 무의식 깊은 곳이라 그런지 흐리멍덩한 눈으로 침대에 누워 색색 거친 숨만 몰아쉬고 있을 뿐.
그래서 나는 그녀의 곁에 내 분신을 남겨두고 꿈 밖으로 나왔다.
분신이라 부르긴 애매하고 나 대신 상황극을 해줄 인형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아침에 벌어질 2차 추격전의 망상 정도니까.
무의식 속에서 실컷 드라이브하고 달리고 도망 다니다 꿈이 끝나면
욕구가 전부 해소되어서 아주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 망상은 이 흐릿한 분신이 나 대신 할 수 있겠지.
무의식 속 세상인 만큼 한예지가 이걸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니까 적당히 맞춰만 주면 될 거다.
‘이 김에 다른 애들한테도 가 볼까?’
한예지의 망상 자체가 하룻밤의 불장난인지라 아직도 달이 높게 떠 있었다.
야밤의 아카데미는 화신과 교관들이 열심히 순찰하니 민폐 끼치지 않도록 성좌의 공간으로 돌아갈까.
한 밤중에 여자 숙소로 대놓고 들어가려다 순찰 인원이랑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아카데미 한가운데 존재하는 임시 성역에서 좁은 원룸으로 돌아오니 안락하다는 기분이 든다.
화신이 된 순서대로 이하린한테 먼저 가 볼까?
솔직히 김하은의 욕망보다 이하린의 욕망이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며 마우스를 움직여서 이하린의 자각몽으로 들어간다.
안락한 서고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내 시중을 들기 위해 일어나는 그녀.
“오셨습니까, 성좌님?”
인사와 동시에 서재를 호텔 방처럼 호화롭게 바꾸려는 이하린의 모습에 나는 곧바로 손을 뻗었다.
툭, 하고 이마를 건드리자 어리둥절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녀.
내가 엉뚱한 짓을 하자 곧바로 자기가 뭘 잘못했나 잠시 고민하는 사이
그녀를 깊은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었다.
“푹 자렴. 꿈속의 꿈에서.”
“네, 엥-?”
그러자 이하린이 자각몽 속에서 더 깊은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털썩 쓰러진다.
꿈속이니 뒤통수로 착지하는 고통도 없지만,
나 좋다는 여자애가 바닥을 나뒹구는 꼴을 보기 싫어 넘어지지 않게 부축해 주었다.
그러면 나도 들어가서 이하린의 무의식이 가진 욕망을 한 번 볼까?
“오셨습니까, 성좌님?”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조금 흐리멍덩하게 바뀐 눈동자라던가, 한 박자 느린 반응 같은 걸 보면 이곳은 이하린의 무의식 속이 맞다.
하지만 내게 인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내 근처에 서서 시중을 드는 모습을 보면 어째 바뀐 게 없는데.
내면의 욕망과 외면의 행동이 똑같다니, 이런 걸 표리부동이라 하나?
아닌데, 표리부동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 아닌가?
녹이 슨 깡통 같은 머리를 애써 굴려보려 하지만 이하린의 시중 들기가 더 빨랐다.
‘갑자기 뭔 코트 차림?’
부자연스럽게 생겨난 코트를 벗으니 이하린이 그대로 받아든다.
하긴 평소처럼 가벼운 셔츠 차림이면 겉옷을 받아드는 시중을 못 드는구나.
나는 인생 살면서 후드티에 바람막이 대신 와이셔츠에 코트를 입어본 적이 없는데.
숙련된 하녀처럼 슬금슬금 다가와 코트를 받고, 등 뒤에 생겨나 있던 가방을 받아가고, 의자를 뒤로 빼며 내가 앉게 해주는 그녀.
“...?”
“““시키실 일이 더 있으신지요?”””
이하린이 세 명으로 늘어난 사실을 자연스럽게 넘어갈 뻔했다.
첫 번째 이하린이 코트를 받고 옷걸이로 향하자,
자연스럽게 등장한 두 번째 이하린이 내 어깨에 갑자기 생겨난 가방을 받아가며,
세 번째 이하린이 성큼 걸어 나와 나를 티 테이블로 인도해 의자를 당겨주는 것이다.
‘이게 뭔 욕망인데?’
세 명의 이하린이 나를 극진하게 시중든다.
한 명은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차를 끓이는 동안 다른 하나는 어깨를 주무른다.
두 이하린이 각자 자리를 잡자 남은 한 명이 슬그머니 티 테이블 아래에 주저앉아 내 발을 품는다.
‘아니 뭔 상황인데 이게?’
무의식 세계답게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진행되겠지만 호기심이 해결되지 않으니 갑갑하기 그지없다.
요즘 피곤해 보이던데 몸이 여러 개면 좋겠다는 욕망인가?
아니면 이번에 내가 강림했으니 시중도 들고 연구도 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도 어깨와 종아리를 주무르는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손길을 만끽했다.
화신 삼인방 중 운동을 가장 꾸준히 해 와서 그런지 손아귀 힘과 안마 능력이 가장 뛰어났으니까.
이것도 성좌에게 해준답시고 어릴 적 부터 연습한 거면 좀 무섭겠는데.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 커피와 마카롱, 카스테라와 핫 밀크를 비롯한 다양한 군것질거리들.
SNS에 사진 찍어서 올려야 할 것 같은 디저트들이 계속해서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이쪽 세상 남자들 기준으로 극진히 대접하려는 건가?
‘뭘 원하는지 알 수가 없네.’
호기심을 못 이기고 테이블에서 일어난다.
내 발을 허벅지에 올려두고 열심히 주무르던 이하린이
내게 양말과 신발을 신겨주고 어깨를 주무르던 이하린이 반대쪽에 가서 선다.
등 뒤에 똑같이 생긴 두 명이 쌍둥이처럼 기립하자 기분이 조금 묘했다.
심지어 눈앞에 한 명 더 있으니까.
“““외출하시겠습니까? 모시겠습니다.”””
똑같은 타이밍으로 입을 맞춰 이야기하자 세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약간 공포 영화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에 생겨난 방문을 열자 또 이하린이 있다.
그러니까, 네 명의 이하린이 더해져서 일곱 명의 이하린이.
““““모시겠습니다. 올라오시지요.””””
네 명의 이하린이 문 앞에서 가마를 준비한 상태로 있었다.
“자동차도 아니고 가마?”
“차를 몰고 올까요?”
“아니, 아니야...”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할 수 없어
최대한 짱돌을 굴리다 포기하고 가장 간편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 상황은 이해 못 할 것 같아.
차를 몰고 오라 하면 운전기사 이하린이 등장할 것 같아서 등을 돌리려는 이하린 하나를 불러세웠다.
일곱 중 본체인 게 하나는 있을 거 아니야.
밖에 생겨난 가마꾼 네 명은 뒤늦게 생겼으니 본체가 아닐 것이다.
멀찍이서 차를 우리고 커피를 내리며 빵을 굽던 이하린도 본체가 아니고.
어깨를 주무르거나 발을 주무르던 두 명 중 하나가 진짜 이하린이란 소리인데.
그렇게 예상하며 양손을 뻗어 등 뒤에 기립한 이하린 둘을 동시에 붙잡았다.
‘발 주무르던 게 본체구나.’
어깨는 조금 친하면 건드릴 수 있는 부위지만,
양말을 벗기고 맨발을 주무르는 것은 훨씬 더 가까워야 할 수 있으니까.
직접적인 접촉으로 이 부분을 이해하니 이하린의 욕망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를 혼자서 모시고 싶었던 건가?’
성좌에 대한 독점욕.
그것도 봉사 욕구로 인한 독점욕이었다.
※
두 명의 이하린이 내게 착 달라붙어 어깨를 주무른다.
커피를 끓이던 이하린 하나는 어디 고대 황제나 쓸 것 같은 커다란 부채를 들고 와 살랑살랑 바람을 부쳐준다.
흔들림 없이 편안한 가마 밑에서는 어깨가 좀 더 튼실한 이하린 네 명이 가마를 옮기고 있다.
배고프다는 생각을 하니 요리를 하는 이하린이 나온다.
목마르다는 생각을 하면 물잔과 음료를 쟁반에 받쳐 든 이하린이 나온다.
TV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스크린과 상영기를 든 이하린 들이 나온다.
어디론가 빠르게 가고 싶다고 생각해 보면 가마가 사라지고 차를 운전하는 이하린이 나온다.
아마, 아카데미가 내게 남자 하인들을 붙여주려 해서 질투심이 무의식 속으로 스며든 것 같은데.
성좌는 화신을 늘려야 하는 존재다.
화신의 수가 늘어날수록 성좌의 능력은 강해지고 인류는 안전하고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화신 하나가 성좌의 총애를 받을 수는 있어도 성좌를 독점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이하린의 무의식이 바라는 욕망은, 성좌를 오롯이 독점하는 것.
먹고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잠시 걷는 행위조차 자신이 받들어 모시고 봉사를 하고 싶어 하는 게 그녀의 욕망이었다.
음식을 준비하던 이하린이 음식을 먹여주는 이하린으로 변하는 꼴을 보니 내 예상이 맞는 것 같다.
고대 황제의 하렘처럼 가만히 입만 벌려도 입안으로 과일과 음료와 간식이 쏙쏙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
이러다가 스스로 걷는 법도 까먹겠다 생각하며 꿈을 건드린다.
일방적인 음식 시중은 질렸어.
누가 나한테 계속 먹여주는 건 생각보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마사지도 받고 싶으니 목욕 시중이나 받아볼까?
약간 음흉한 생각을 하자 주변이 대리석으로 치장된 거대 목욕탕으로 변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러 명의 이하린이 내게 다가온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몸매를 가진 사람이 마치 클론처럼 우르르 몰려오자 등골이 오싹한데.
머릿속에 불사르는 폭군의 지식이 클론에 익숙해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아랫도리가 공포로 축 늘어질 뻔했다고.
세 명 정도까지는 쌍둥이라 받아들일 수 있는데, 열 명 넘어가면 좀 무섭네.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정신적 공격을 받은 나는 그대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까운 욕탕으로 걸어갔다.
그 잠깐 걷는 동안 몇 명이나 되는 이하린 들이 달라붙어 옷을 벗긴다.
목욕탕이라서 그런 걸까, 점점 이하린의 수가 줄어든다.
뭔가 표현이 이상하지만 어쩔 수 있나.
내 옷을 든 이하린 몇 명이 욕탕 밖으로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결국, 온수에 몸을 담그자 곁에 남은 것은 처음의세 명이다.
“물의 온도는 적당하신가요?”
“비누칠을 해 드릴까요?”
하나는 사자 머리 조각상으로 가서 물의 온도를 조절하고,
다른 하나는 욕탕 가장자리에 뽀얀 엉덩이를 걸치고 다시 내 목덜미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등 뒤에서 비누칠이라도 하는 걸까?
“...불편하신 것 같은데, 편하게 해 드릴까요?”
대답하기도 전에 퐁당, 하고 앞에 있던 자그마한 머리통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진짜 이하린은 주저 없이 욕탕 안쪽에 앉아 나를 마주 보는 상황에서 물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미적지근한 온수 가운데에서, 아랫도리 끝자락에만 느껴지는 끈적하고 뜨끈한 감촉.
내가 욕망이 아니라 그녀가 원하는 게 이런 거야? 진짜?
가슴에 거품 칠하고 문지르는 정도가 내 상상력의 끝자락인데.
온탕에서 잠수하는 수중 펠라는 감히 생각도 못 한 행위였다.
이게 나의 음습한 욕망이 아니라 이하린의 욕망이라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보니 몽마인 내 능력까지 의심스럽네.
미적지근한 온수가 몸을 감싸고, 따듯한 손이 부드럽게 목덜미와 어깨를 주무른다.
그와 동시에 물보다 후끈후끈하고 끈적한 살덩이가 내 귀두를 감싸는 게 느껴진다.
이래서 이하린의 분신이 온탕에 냉수를 섞었구나?
한예지의 욕망이 조금 유치하다면, 이하린의 욕망은 음습하기 그지없었다.
남녀 역전 세계라 그런지 가슴에 거품 칠은 하지 않네.
대신 부드러운 손들이 목덜미부터 등허리까지 살살 쓸고 지나가니 나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숨이 막히지도 않는지 물속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이하린 덕분에 더욱 오래 즐길 수 있었고.
‘이러면 꿈에 끝이 없겠네...’
축 늘어져서 소변을 누듯 여성의 입안에 느긋하게 정액을 싸지르기만 하는 행위.
허리를 흔들지도 않았고 몸을 격렬히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정액을 쭉쭉 뽑아가는 이 음탕한 상황.
‘이하린으로서는 좋아하는 여자 사타구니에 코박죽하고 계속 있는 건가?’
이런 상황에서 이하린이 얻는 것은 육체의 쾌락이 아닌 정신적 만족감이기 때문에 꿈이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싸지르면 싸지르는 대로, 그녀는 계속 정액을 받아 마시며 내게 매달려 있으니까.
이하린의 무의식이 나를 독점하길 원한다 해도 그게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걸 아니까 그녀도 내색하지 않고 약간의 질투심만 보여주는 것이겠지.
나른한 쾌락 속에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린 뒤 분신을 남겨두고 그대로 꿈 밖으로 나간다.
꿈 밖으로 향하기 직전,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니
세 명의 이하린이 때밀이용 침대에 누운 내 온몸을 열심히 주무르는 게 보인다.
본체가 등 위에 걸터앉아 어깨를 주무르고, 다른 두 명이 엉덩이와 종아리를 주무르는 상황.
멀찍이서 보니 정말 헌신적이다.
‘저게 저렇게까지 좋을까?’
이해는 할 수 없지만, 무의식에 잠든 욕망이니 그런 것이겠지.
애써 합리화를 하고 밖으로 향했다.
그래도 김하은의 무의식까진 구경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