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81화 : 욕구해소 2
신발장 옆 키 홀더에 글자가 지워진 낡은 플라스틱 부분을 꽂아 넣자 흐릿한 전등이 켜진다.
누런 전기장판과 작달막한 냉장고, 일회용 칫솔이 있는 화장대.
어째 다른 세상에 왔는데 우리 부대 앞 모텔이랑 한예지가 상상하는 모텔이랑 똑같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아니, 한예지가 모텔에 가본 적 없어서 내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건가?
“뭐 하고 있어, 들어 와.”
현관에서 쭈뼛쭈뼛 서 있는 한예지를 재촉한다.
화신 겸 제압부대의 떠오르는 루키 한예지가 아니라, 평범한 대학생 한예지여서 그런 걸까.
어째 꾸물대는 모습이 조금 답답하다. 하나밖에 없는 낡은 침대에 털썩 주저앉으니 그제야 그녀가 천천히 들어온다.
한예지가 내 눈치를 보는 동안 나는 일어서서 자그마한 냉장고로 향했다.
색도 로고도 다르지만, 공짜 캔 커피 들어 있는 건 똑같네.
낡은 냉장고는 낡은 만큼 출력이 낮은지 시원하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애매한 커피.
“저기, 설명을, 좀...”
“영화 같은 거 좀 봤어? 왜, 보면 안 될 걸 봤다면서 쓱싹 당하는 사람들.”
“그 사람이...?”
“그래, 너는 하필 그 골목에 있던 죄로 쫓기는 거야.”
미적지근한 커피를 마시고 설명을 대충 했다.
어차피 자세한 설정은 한예지의 흐리멍덩한 머리가 알아서 짜 맞출 것이다.
목격자를 회유도 아니고 다짜고짜 제거한다고 달려드는 양복 입은 경호원 집단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꿈속이기에 받아들여 진다. 자각몽도 아니고 무의식 속이니까.
“저, 저는 어쩌죠?”
“그래서 내가 왔잖냐. 적당히 시간 끌면서 도망치고 있으면 알아서 사건 마무리될 거다.”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얇은 바이크 슈트에서 이상할 정도로 열기가 치솟는다.
갑갑하고 습하고 덥기까지 해서 턱 아래 있던 지퍼를 배꼽 바로 위까지 지익 내렸다.
남자와 모텔 방에 단둘이 있는 게 어색한 한예지가 냉장고 앞에서 괜히 커피 스틱과 생수를 만지작거리다
옷 벗는 소리에반응해서 나를 돌아보더니, 화들짝 놀라 생수병을 떨어트린다.
“왜, 왜 벗어요?”
“아이 씨, 남자 벗은 거에 뭘 그리 반응해. 처녀도 아니고.”
“...처녀, 맞는데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한예지가 작게 중얼거린다.
너랑 나랑 자각몽 속에서 뒹군 게 1년을 넘어가는데 처녀는 무슨.
약간의 비웃음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오려는 비아냥을 집어삼켰다.
아까부터 너무 오그라드는 상황극 때문인지 자꾸 말이 험하게 나오려 하네.
악몽의 편린을 많이 먹었더니 옛날 성질이 좀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홧김에 처녀라고 말하고선 얼굴이 벌게진 한예지 앞에서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후끈거리는 바이크 슈트의 지퍼를 조금 더 내리고서.
허리 근처까지 내린 슈트 사이로 들어오는 찬 공기가 서늘하게 몸을 식혀준다.
머리가 간질간질 한 게, 내가 여기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 해 뜨기 전에 뒤질 수 있으니까 내가 처녀 딱지 떼 줄까?”
“...네?”
당황한 한예지 앞에서 허리를 퉁겨 벌떡 일어나자 그 반동으로 허리춤까지 내려온 지퍼가 치골 언저리까지 내려간다.
스윽 벌려진 슈트 사이로 내 물건까지는 안 보여도 아랫배 쪽의 털은 분명하게 보일 정도로.
“밤도 길고 할 것도 없는데, 이리 와 봐.”
아직도 생수통을 만지작거리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 그녀를 붙잡아 침대 위에 내던졌다.
남녀의 관념이 역전되었지만 잘생기고 듬직한 연상에게 의존하고 싶다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있을 수 있는 소망 아니겠는가.
소녀 가장으로 살아와 애정결핍의 증세를 보이는 한예지니까 이해할 수 있는 욕망이다.
“저, 저기?”
처음 본 사이니 남자가 그러면 안 된다느니
어디 싸구려 성인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말하는 한예지의 입을 입술로 막았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입술을 혀로 툭툭 건드려도 뻣뻣이 굳어 있길래 차렷 자세로 멈춘 손을 붙잡아 슈트 안쪽에 확 집어넣었다.
바이크를 타고 달려서 그런지, 냉장고에 있던 생수통을 만지작대서 그런지
차가운 손이 슈트와 살갗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뜨거운 몸을 차게 식혀준다.
맨살을 만지작대는 상황이 되어서야 드디어 정신을 차린 한예지가 조금씩 반응을 보인다.
“답답하게 굴지 말고, 싫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입은 끝까지 벌릴 생각도 못 하는 한예지에게 물었다.
키스하는 내내 입도 못 벌리고 코로 숨을 쉴 생각도 못 했는지 숨을 할딱거리던 그녀가 고개를 살살 젓는다.
그대로 침대에 눕힌 상태로 위에서 누르며 다시 얼굴을 가져다 댔다.
입술과 입술이 닿기 전, 거친 콧김이 내 얼굴을 간질이는 걸 느끼며 작게 한 마디 속삭였다.
“입 벌려, 안 벌리면 깨문다?”
협박하듯 가볍게 입술에 입술을 맞춘다.
새가 쪼듯 하는 버드 키스. 무의식 속이라도 나와 하던 가벼운 키스는 받아들일 만한지
이제야 입술을 살그머니 벌린다.
나무를 휘감는 뱀처럼 혀를 뻗어 그녀의 입안을 침범하자 화들짝 놀란 그녀의 혀가 도망친다.
그대로 혀를 깊숙히 집어넣었다. 살덩이와 살덩이가 찐득하게 추격전을 벌이다 휘감긴다.
자신의 입안에 타인의 혀가 들어와 있는 상황에 적응할 수 없는지
주사를 맞는 아이처럼 눈을 질끈 감은 모습을 보니 더욱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상의 멋진 남성에게 리드당하고 싶다는 게 그녀의 욕망이니 상관없지 않을까?
입술을 떼고 고개를 드니 타액이 길게 늘어지다 뚝뚝 떨어진다.
조금 더럽게 느낄 수 있음에도 산소가 부족해서 정신이 몽롱한지
턱이 타액에 젖은 상태로 해롱거리며 누워 있는 그녀.
축 늘어진 모습을 보니 간을 더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머리에 뭔가 떠오르지도 않고 이상하게 더워지거나 추워지는 일도 없으니,
이제 그녀의 욕망 중 남은 건 하나. 주저 없이 슈트를 벗었다.
“그, 진짜... 하시게요?”
“이제 와서 여자답지 않게 빼게?”
“아뇨.”
“그럼 니가 벗어... 아니면 벗겨 줘?”
내 말을 듣고 슬그머니 그녀가 츄리닝을 벗는다.
운동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만 하던 육체여서 그런지 팔뚝에 근육이 없고 아랫배에 애교 뱃살이 살짝 있다.
망상 속이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은근히 고증을 지키고 있구나.
몸매에 자신이 없는지 옷을 벗은 그녀가 슬그머니 손을 뻗어 아래를 가린다.
“아이 씨, 여자가 뭔 팔려온 숫총각처럼 그러고 있어.”
손등을 딱 때리자 약간이나마 젖어 있는 뽀얀 음부가 보인다.
한 번 혼나고 나서는 손으로 가슴을 가릴 생각은 없어 보이고,
어색하게 이불보를 쥔 상태로 내 나신을 뚫어져라 관찰하기 시작한다.
저러다 목에 담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
그래도 꿈속이니 괜찮겠지.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물건을 조준한다.
축축하게 젖은 살집에 귀두를 툭툭 건드리니 한예지가 어으... 하고 알아듣기 힘든 앓는 소리를 낸다.
“왜, 모자이크 없이 처음 봐?”
“네, 네?”
“아니면 맨날 플라스틱으로 된 것만 봤어?”
“그런 거 안 썼어, 욧?!”
실실거리며 섹드립을 치자 허둥지둥 반응하느라 정신이 팔릴 때, 곧바로 허리를 앞으로 찔러 넣었다.
좁아터진 속살을 억지로 가르는 느낌과 함께 귀두 끝자락이 옅은 살 쪼가리를 찢어버리는 게 느껴진다.
“왜, 아파?”
“좀, 좀 따갑네요...?”
그녀의 망상에는 처녀 상실의 순간도 포함되어 있었는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한다.
이쪽 세상에서는 여성이 우위에 있으니, 처녀막 없어질 때 울면 꼴사납다는 인식이라도 있는 걸까?
...하긴, 동정이 처음으로 삽입하고 나서 귀두가 쓸려서 아프다고 우는 걸 여자가 보면 천년의 사랑도 식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슬슬 허리를 뒤로 당겼다.
쯔쁘웁거리는 음탕한 소리와 함께 피가 약간 묻은 물건이 세상 밖으로 슬그머니 나온다.
“그래? 그럼 움직인다?”
“어, 얼마든지...?”
애써 허세를 부리는 한예지의 허벅지를 잡고, 완전히 뽑아내지 않은 내 물건을 그대로 들이박았다.
그녀의 무의식이 만든 세상답게 두 번째 허리 놀림부터는 고통 대신 쾌락을 느끼는지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우람한 물건이 뻑뻑한 속살을 비집고 들어간다.
망상 속에서 바이크 슈트를 입은 의문의 미남을 떠올리더라도 일단 큰 걸 좋아하는 건 마찬가지인가보다.
남자가 미녀를 떠올릴 때 일단 거유를 떠올리는 것과 비슷한 걸까.
아래에 깔린 상태로 열기에 달뜬 시선이 내 나신을 샅샅이 파악하듯 바라본다.
물도 고일 것 같이 오목한 쇄골부터 넓적한 가슴 근육에 선명한 복근.
몸 좋은 근육남 취향 하나는 확실하구나.
하긴 남자나 여자나 몸매 좋은 사람에게 이끌리는 건 당연하겠지.
고대 원시인 부족처럼 배가 삼겹 사겹으로 접혀야 풍만한 미인이라 생각하는 세상이 아니라면
좋은 몸매는 결국 매력 포인트가 된다.
배를 맞추고 입도 맞추는 와중에도
내 복근과 가슴 근육에서 시선이 떨어질 줄 모르는 한예지의 모습만 봐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왜, 만져볼래?”
“...”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고개를 끄덕인 한예지가 말없이 손을 뻗는다.
살금살금 다가온 손가락 끝이 명치 쪽에서 시작해 가슴선을 타고 살살 나를 쓰다듬는다.
가슴에서 쇄골과 어깨로, 다시 내려와서 유두 쪽으로.
툭툭 손가락 끝으로 내 가슴을 어루만지던 그녀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허리를 들어 올린다.
처녀 파과도 쾌락으로 받아들이더니, 첫 오르가슴도 빠르게 찾아온 건가?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바르르 떨며 죽일 것처럼 내 물건을 쥐어짜는 그녀의 몸.
이번에도 딱히 참지 않고 같은 타이밍에 허리에서 힘을 풀었다.
“후우, 처녀라고 계속 빼더니 생각보다 잘하네?”
사정의 여운을 느끼고 있으니 입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처음인데 잘한다는 칭찬도 받고 싶었던 걸까.
하기야, 한예지의 처음은 야한 꿈 때문에 이불보에 실례하는 엔딩을 맞이했었지.
아무리 포장하려 해 봐도 낭만적이라 볼 수는 없었다.
야한 꿈을 꾸는데 왜 이렇게 안쓰럽게 느껴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