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65화 : 화신, 김하은 (65/169)



〈 65화 〉65화 : 화신, 김하은

근원의 일부 개방
악몽의 편린 섭취
몽마의 격 상승.

하룻밤사이에 다양한 일이 벌어졌고 새로운 권능도 익혔으며
몽마라는 종족에 더욱 익숙해졌기에 나는 나의 화신들을 더욱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러니까 신 취급 받는구나.’

근원이 열리기 전에는, 고작해야 희노애락(喜怒愛樂), 호오(好惡) 정도만 느낄 수 있었다.
이걸 무서워하고, 이걸 좋아하고, 저건 싫어하고.

그런 표면적인 감정만 읽다 이제는 심층적인 욕망까지 느낄  있게 된 것이다.

한예지는 욕망이 별로 없다.
정확히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인생이었다.
시키는 것을 잘하지만, 이끄는 것은  하는 스타일.
화신이 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취직해서 시키는 일만 하며 동생 뒷바라지나  인생.
그녀는 이루고 싶은 꿈이랄게 없었고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욕망은 성좌인 내 말을 잘 듣는 것뿐.

시키면 하는 군인이나, 잘 훈련된 개와 같은 스타일.
조금이나마 있는 욕망 또한 동생을 구해주고 인생을 피게 해 줬으며
달콤한 쾌락을 선사하는 내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 정도.

반대로 이하린과 김하은은 욕망의 덩어리였다.


이하린의 욕망은 지적 탐구에 쏠린 상태.
인터넷에서만 접하던 성좌와 화신의 세상에 직접 발을 들였고,
극단적인 재능 덕분에 방향을 잡았으니 무한히 연구하려 들 것이다.
지금 하는 꼴만 보더라도 화신이 되어 연구를 시작하니 몇 있던 친구는커녕 가족과의 연락도 끊어지지 않았는가.
그녀는 자신이 화신이 되었다 해도 그게 금전적, 사회적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화신이 되었다는 것을 화신과 성좌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이걸로  먹고 잘살겠다~ 같은 욕망이 전혀 없다.
지금 이하린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욕망은 ‘자각몽 속에서 현실의 자료를  수 없나?’ 같은 고민뿐.


마지막으로 체육관에 축 늘어진 김하은은 이하린의 정 반대.
가족이 괴물에게 죽어서인지, 그녀는 힘을 원했다.
일신의 무력이던 사회적 권력이든 화신의 능력이든 성좌가 하사한 힘이던 전혀 상관없었다.
목마른 놈이 냉수 온수 가리지 않는 것처럼, 그녀는 빠르게 강해지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
화신 계약에 응한 것도 화신에 대한 동경이 아닌 강해지고 싶은 욕망 때문.
자신의 손으로 직접 괴물을 사냥하던지, 괴물 사냥하는 부대를 휘하에 데리고 다니며 명령을 하던지.
직접적 간접적 상관없이 이 대륙을 침략하는 괴물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만이 가득 차 있었다.

하긴, 가족이 죽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으니 가장 격렬하고 감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예지도 부모 없이 남매끼리 생활했지만, 그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고아였으니까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네.


‘이건  위험한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장 돌봐줄 필요가 있는 것은 김하은이다.
몽마의 권능은 개뿔, 나와 계약하기  몸의 관절이 망가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혹사하는 수준으로 운동을 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근데,  어떻게 달래지?’

문제가 있다면 달랠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핵폭탄에 가족을 잃고 돌연변이 생명체가   명 남은 친구를 눈앞에서 물어간 게 내 인생이다.
그 뒤로도 소규모 생존자 그룹에 있다가 괴물에게서 도망치느라 흩어지고, 식량난으로 찢어지고...

‘이런 쪽 감정이 너무 무뎌졌어...’


그 때문에 당장 생각나는 것은, 부끄럽게도 섹스밖에 없었다.


쾌락으로 뇌를 절이겠다는 어딘가의 성인 만화 같은 발상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가족들이 전부 사라져서 방황하고 있으니, 내게 의존시키는 방향으로.
화신과 성좌는 신도와 신의 관계처럼 다뤄지고 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일단 시도는 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텅 빈 집에 축 늘어진 김하은의 꿈속으로 파고들었다.





빙글빙글 도는 익숙한 시야와 함께,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나, 자각몽의 권능을 안 준거 같은데.’

혼자서 권능을 깨우친 김하은의 모습에 놀라고 나서 딱히 한 게 없는데 자연스럽게 자각몽 속으로 들어왔다.
어두컴컴하게  꺼진 체육관 속에서 혼자 운동하고 있는 김하은이 보인다.
희망 찬탈자는 자각몽을 포함한 권능인가?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박동하는 사자심의 체육관이지만,
김하은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것처럼 어두침침하다.


천장의 조명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있고 얼마 없는 전구도 흐릿하게 변해 있었으니까.

“이걸, 이렇게 하던  같은데...”

역시, 희망 찬탈자의 부가적인 효과인지 그녀는 운동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멋들어진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박동하는 사자심의 계약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 자세를 전부 알려주고 김하은을 운동 모델 삼으려 했었으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불안한 것인지, 아니면 꿈속이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혼잣말을 계속하는 뒷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헬스장에 맞는 복장에, 커피 대신 닭가슴살 샐러드와 이온 음료를 손에 만들고 앞으로 나섰다.


“쉬엄쉬엄하지 그러니?”


“으악!”

두 번째 대면은 그다지 로맨틱하진 않았다.
아령을 만지작대던 김하은이 내 목소리에 놀라 자신의 무릎 위에 쇳덩이를 쿵 떨어트렸으니까.
현실이었으면 무릎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러한 충격 속에서도 그녀의 자각몽은 살짝 흐릿해질 뿐 멀쩡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하린은 눈만 마주쳐도 자각몽이 깨지더만...’

꿈속인 만큼 그 비명은 고통보다는 당황에 가까워 보인다.


“저런, 많이 놀랐니?”

“네, 네... 성좌, 님?”


10kg 쇳덩이에 무릎을 찍히는 꿈 때문인지 조금 창백해졌던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마치 전기레인지 위에 올려둔 라면 물 같이 삐이익 달아오르는 것이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도 확연히 보인다.
김하은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점차 조명이 환해진다.

‘그래도 완전히 복수에 미쳐버린 건 아니구나.’


감정이 격해지고 욕망에 휘둘리며 어찌할 줄 모르는 상황이지만
복수에 미쳐서 다른 것이 눈에 안 들어오는 상황은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보고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그, 저기... 옷차림이.”

“장소에 걸맞다고 생각하는데, 아닐까?”


전생의 근육 헬창들이 자주 입던 패션, 무릎 위까지 오는 반바지에 옆구리까지 보이는 나시티.
소매가 없어 드러난 팔뚝의 근육 때문인지 김하은보단 내가 저 헬스 기구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욕망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머리가뒤죽박죽된 김하은을 자극하기 위해
그녀의 앞에서 내 상의의 아랫단을 툭툭 잡아당긴다.
얇은 어깨부분이 쭉 당겨지며 탄탄한 가슴 근육의 옆부분이 드러난다.

대흉근으로 여자를 꼬시다니, 여기는 헬창들의 이상향이 아닐까.

“흐음, 네가 있던 헬스장에서는 대부분 이런 옷차림을 하던데.”

“아니 그, 거기는 남성 전용층이니까 그러지 않을까요?”

드러날락 말락 하는  가슴팍에 그녀의 시선이 못 박힌다.
시선에 물리력이있다면 나는 벌써 상체 노출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


“성좌와 화신 사이에 그리 내외할 이유가 있을까. 더군다나 이곳은 꿈속 아니니.”

한 걸음 다가가자 그제야 가슴팍에서 시선을 뗀 그녀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마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몽마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꿈속에서 수련보다는... 다른 걸 잘해야 한단다.”

김하은이 걸터앉아 있던 운동 기구를 푹신한 침대로 바꾼다.
한예지나 이하린의 꿈보다 조금 저항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김하은이 자신의 자각몽을 확고하게 다룬다는 뜻이겠지.

 걸음 더 다가가니 여성의 향기와 은은한 땀내음이 뒤섞인 기분 좋은 냄새가 느껴진다.


보라색 머리, 새하얀 피부, 서양인처럼  가슴과 잘록한 허리와 넙데데한 골반, 연보라색 눈동자까지.
그녀의 육체는 내 마력에 반응해 몽마에 가깝게 변했다.
굳이 따지자면 판타지에 나올법한 하프 블러드 같은 존재 아닐까.


“물고기가 헤엄치는 연습을 할까, 사자가 악력을 기르기 위해 통나무를 씹을까. 몽마에게는 몽마의 방법이 있단다. 너도 네 육체가 변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 않니?”


뜨겁게 달아올라땀에 젖은 어깨를 쓸어내린다.
그 감각에 움찔거리던 김하은이 와락 내게 달려들어 내 어깨를 붙잡고 침대에 눕힌다.
이렇게 격렬하게 달려드는 것도 나름의 운치가 있네.

그녀의 보라색 눈이 진하게 변해 마치 이글거리는 불길을 담은 보석처럼 보인다.

“그럼, 제가 정말 강해질 수 있나요?”

그 강렬한 시선을 통해 간절하면서도 필사적인 감정이 미친 듯이 내게 흘러들어온다.
가슴이 간질간질하게 달아오르며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내 목소리가 이렇게 들뜰 수 있는구나 싶을 정도로 흥겹다.


“그럼, 내가  화신에게 거짓을 말할 이유가 있니?”

어지간한 서양의 포르노스타보다 음탕한 몸매를 지닌 여인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나를 원하고 매달린다.
원하는 것이 조금 다르지만 무슨 상관이랴, 나를 붙잡고 껴안은 여체는 이토록 부드러운데.


“그러니,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보렴.”


후욱, 거친 숨을 몰아쉰 그녀가 내 나시티를 찢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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