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47화 : 성적 취향
식탁 위에 잔뜩 있던 음식들이 사라지고 옆으로 밀린다.
레스토랑 특유의 의자는 어느새 벽에 붙어 있는 길쭉한 등받이 의자로 변한 상태.
자연스럽게 내 옆에 달라 붙은 한예지의 얼굴이 다시 붉게 달아오른다.
기세에 맡겨 일단 달라 붙었는데, 아직까지 자기가 주도적으로 뭔가 하기에는 창피하다 이거지.
일년이 지났음에도 묘하게 숙맥인 부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남녀 관계 이전에 음식 나눠주는 거 하나로 질투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꿈에 나왔다는 게 더 창피해 보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응석을 부릴 줄 알았는데... 벌써 배부르니?”
그 점을 콕 집어 놀리니 그녀가 끄읍, 하고 억눌린 신음소리를 낸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창피할 만 하지.
태도나 행동에서 들킨 것도 아니고, 무의식이 범람해 자각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니까.
내 말에 허둥지둥 움직이던 한예지가 잠시 멈칫거렸지만, 다시 손을 뻗어온다.
은근하게 뻗어와 허벅지를 살살 쓰다듬는 나쁜 손.
직접적으로 고간에 손을 대지는 않고, 허벅지와 허리쪽을 쓰다듬으며 입을 맞춰오는 그녀의 모습에 나 또한 고개를 돌려 호응했다.
어째, 이런 구도는 야동에서 본 것 같은데.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AV 여배우와, 옆에서 껄떡대며 슬슬 쓰다듬는 AV 남배우의 모습이 머리 한 구석을 스쳐 지나가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하긴, 연애 경험도 없는 20살 숫처녀가 성적 지식을 어디에서 얻었겠는가.
꿈 속에서 내 몸을 만지작 거린다 해도 결국 알고 있는 지식 대부분은 야한 동영상에서 얻었겠지.
‘이쪽 세상 야동은 뭔가 다르려나?’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생겼지만 남의 집 컴퓨터로 야동 사이트나 뒤지고 싶은 마음은 딱히 없었다.
영화나 소설 등 문화 컨텐츠의 질이 올랐으니 야동도 질이 올랐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섹스에 재능이 있는 배우가 있을까? 같은 호기심도 생기긴 했지만...
놀려 먹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혼자 보는 야동으로 놀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남자와 여자 이전에 사람이 혼자서 즐기는 해피 타임은 건드리는 거 아니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음흉한 손길이 점점 반경을 넓히더니 식스팩 쪽 아랫배를 조물딱거리기 시작한다.
먹을 것이 부족해 삐쩍 꼴아있던 아포칼립스 세계의 육체에 너무 익숙한지라 볼 때마다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복근을.
“후우, 성좌님...”
남자와 여자가 슬슬 헐벗기 시작하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거리가 조금 있는데도 옆구리에 뜨거운 숨결이 와 닿는게 느껴진다.
중점적으로 만져지는 것은 허벅지와 복근.
꿈틀거리며 움직인 손이 슬그머니 밑가슴쪽을 살살 긁다 불에 데인 것 마냥 복근쪽으로 내려간다.
그 나긋나긋하면서도 망설임이 듬뿍 담긴 손놀림에 몸을 맡기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평소처럼 이끌면서 놀아주는 것 도 좋지만, 숫처녀의 어색한 봉사를 받는 것도 나름의 풍미가 있으니까.
뭐, 꿈 속에서 물고 빨고 했던 횟수를 생각해보면 숫처녀라 부르기 애매하지만.
현실에서의 한예지는 남자 경험 없는 모태 솔로니까 그렇다고 치자.
자각몽 속에서 뭘 했다고 현실에서 인정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으음, 벗, 기겠습니다아...”
내가 아무런 움직임 없이 쓰다듬는 대로 그녀를 내버려 두자,
언제까지나 쓰다듬기만 할 수 없다는 것처럼 행동을 개시하기 시작한다.
허벅지와 배를 쓰다듬던 손이 슬그머니 허리춤으로 다가와 바지를 벗긴다.
바지를 내려 벗기고, 웃옷을 올려 벗겨낸다.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아 잠시 소름이 돋았지만 내 피부를 본 한예지가 곧바로 공기를 따스하게 바꾼다.
주변 환경을 이렇게 쉽게 바꿀 정도로 자각몽에 익숙해 졌으면서 레스토랑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다니.
먹다 남은 파스타 반 그릇을 얼마나 부러워 하는거야...
“흐음, 날이 서늘하구나. 따듯하게 해 주지 않겠니?”
공기는 히터를 튼 것처럼 후끈거리는데 날이 추울 리 없었다.
제 아무리 20년 모태솔로 인생이라 해도 1년의 자각몽은 어디 가는게 아닌지 후다닥 내 위에 몸을 겹친다.
정성들여 내 옷을 벗겨내던 것과는 달리 옷을 찢어버릴 기세로 대충 벗어 던지고서는 허겁지겁.
부드럽고 탄탄한 육체가 몸을 덮어온다.
괜히 대형견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마치 커다란 개가 애교를 부려오듯 그녀는 나를 껴안고, 피부를 마주 닿게 하며 품 안에 고개를 묻는다.
온 몸을 부벼대는 대형견처럼 그녀의 나체가 내게 매달린다.
모양 좋은 젖가슴이 이리저리 어그러지는 걸 보니 눈이 즐겁다.
가슴팍을 껴안아오기에 그대로 내려다 보니 한예지의 흥분으로 달뜬 눈동자에서 처음 맛보는 강렬한 감정이 밀려온다.
강한 질투, 그리고 우월감.
그래, 파스타 반 그릇이 무슨 대수일까.
결국 나의 화신은 한예지고, 한예지의 성좌는 나였다.
커피를 받고 음식을 나눠 먹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
파스타 반 그릇 따위는 애저녁에 잊어버렸는지 어느새 레스토랑의 의자는 침대로 변했다.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감촉도 잠시, 푹신하다 못해 아래로 푹 꺼지는 침대의 쿠션감에 뒤로 발라당 자빠졌다.
그리고 시야 밖에서, 스으윽 하고 무언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난다.
이게 공포 영화라면 아래에서 귀신이라도 기어오겠네- 하는 엉뚱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성좌도 있고 화신도 있고 사령술과 주술도 있는데, 이 쪽 세상은 진짜 귀신이 있지 않을까?
그럼 이 쪽 세상 공포 영화는 실화를 각색한 게 엄청 많겠네?
이전 세상의 귀신 들린 집이나 인형에 관한 공포 영화를 떠올리고 있으니 그걸 한예지가 눈치채고 기가 죽는다.
평소처럼 토닥여주지 않고 손이 멈추니 서운한 모양이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봉사한답시고 달라 붙다 기절하는 이하린과 달리
한예지는 전력으로 응석을 부려오는 편이기 때문에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본다.
눈매가 축 처지고 눈동자가 대굴대굴 굴러가며 내 가슴과 얼굴을 오간다.
가슴을 만지작 거리고 싶은데 내 반응이 영 시원찮으니 눈치를 보는 것이리라.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어디 성인지에 나오는 민감한 남자도 아니고.
손바닥으로 복근이나 허벅지 좀 만지작 거리면서 피부 비볐다고 으읏, 가버렷! 하는 민감 조루가 아니란 말이다.
물론 부드러운 여자의 몸이 이리저리 비벼오는데다 꽤 풍만한 가슴이 철썩철썩 달라 붙으니 아래쪽에 피가 쏠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알몸으로 껴안은 상태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시무룩해져서 손이 느려지는 한예지의 정신을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파스타 반 그릇 만큼은 만족했니?”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시무룩하게 축 처지던 얼굴이 다시 열기를 받아 달뜨기 시작한다.
성적인 열기가 아니라 부끄러움에서 오는 열기지만, 뭐 이 정도 놀려 먹는 거는 괜찮겠지.
그대로 몸을 돌려 한예지를 깔아 뭉갠다.
남자의 몸에 깔린다는 상황이 익숙치 않아서인지 당혹스러워 하는 것이 보인다.
하기야 자세 상 남자가 주도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위에 올라갈 일이 없지.
“이 정도면 파스타보다 만족스럽니?”
탄탄한 배 위에 올라앉아, 가슴골 사이에 내 물건을 턱 올려놓는다.
꽤 큰 편인 그녀의 가슴으로도 미처 감싸지 못하는 거대한 물건.
크기는 흉악하지만 색은 고운, 한예지와 이하린의 망상이 만들어낸 걸작품이 눈 앞에 등장하자 결국 그녀는 평정심을 잃는다.
“먹으면 배가 가득 찰 텐데... 안 그러니?”
“네, 녜에...”
간만에 혀까지 꼬일 정도로 부끄러워 하는 얼굴을 내려다 보니 정복감이 가득 차 오른다.
남자의 몸에 응석을 부리는 것은 익숙하지만, 아직 잠자리 더티 토크는 못 받아들이나 보다.
생각해보면 나 말고 다른 남자가 없으니 이번이 첫 경험이라 봐도 좋겟지.
머뭇거리며 가슴에 손을 올린 그녀가 손에 힘을 줘서 가슴으로 내 물건을 뭉갠다.
어째서인지 크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와 함께 죄책감과 배덕감을 크게 느끼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와서성좌인 내가 부담스러운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런 걸까.
호기심에 슬그머니 허리를 숙이고 그녀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니까- 이 쪽 세상 남자들은 파이즈리를 싫어하는구나.
여자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는 것은 커닐링구스, 손으로 애무하는 것은 핑거링.
남자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는 것은 블로우 잡, 손으로 애무하는 것은 핸드잡.
남녀가 변했다 해서 가슴이 하나가 되고 쥬지가 더블 배럴이 되지는 않으니, 이런 부분에서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녀 역전 세계가 되면서, 변한 것은 하나.
“으음, 하, 하겠습니다?”
여자의 가슴이 꽤나 마이너한 취향이 되었다는 점.
두근거리면서 혼란스러운 얼굴로 가슴을 찰싹 치대는 한예지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성적인 흥분도 있지만, 이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이래도 되나? 하는 의문도 가득 차 있었다.
하기야 여자 가슴 자체를 성적인 시선으로 보는 게 아니라
각선미 정도의 서브적인 요소로 생각하는 세상이다.
각선미처럼 여성의 곡선을 보듯, 가슴의 볼륨감만 보는 세상이니까.
대충 오금대딸을 하는 기분일까?
생존자들과 함께 모여 있을 때 험상궃은 얼굴을 살려 홍등가 호위를 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밥을 빌어먹을 때 머리카락이나 귀, 무릎 뒤 쪽 오금에 비비다가 창녀랑 싸운 부랑자들이 꽤 봤었지.
손이나 입이 아닌 신체 부위로 성기를 만지작거려도 되나 조금 걱정하는게 보인다.
그래도 더운 공기 때문에 땀에 젖은 가슴은 기분 좋으니까.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가슴과 입 등 온 몸을 이용해 내게 봉사하던 한예지는
꿈의끝자락에 가서는 질투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야 풍만한 가슴도, 매끈한 11자 복근과 탄탄한 허벅지도 전부 꼴리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그녀에게는 이러한 부분까지 전부 사랑해주시는 취향이 폭 넓은 성좌님으로 보였나보다.
나의 성욕이 그녀에게는 자애로 느껴지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