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43화 : 제사
성좌의 원룸에 에그마요 샌드위치와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전송하는 마법.
그 대신 성인 남성의 평균보다 조금 강한 성좌를 소환할 수 있다.
이딴 걸 어디에 써먹을까, 실망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재능이 극단적으로 발전해 봐야 별 쓸모 없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 하는 것도 잠시.
며칠이 지나자 이러한 걱정들이 다 멍청한 걱정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오늘은 여섯 건 있네요. 가능할까요?”
“네, 아슬아슬하지만 물건 규모를 보면 가능할 것 같네요.”
화신의 물건을 성좌의 공간에 전송한다는 행위는 정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쪽 세상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성좌에게 미쳐 있는 세상 다웠다.
“오늘, 잘 좀 부탁드립니다!”
“네, 이 것들이 오늘의 제물이 맞나요?”
예술을 담당하는 성좌의 화신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이하린에게 매달리는 상황.
인류 최후의 장송곡, 멸망을 담은 화폭 같은 생소한 성좌의 화신들이 마법학 교관과 연락을 했는지 아카데미로 모여든다.
“예, 예. 이 세 폭의 그림 맞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대륙 중앙에 있는 아카데미라 그런지 온갖 대륙의 사람들이 몰려온다.
한복과 기모노를 적당히 섞어둔 의상을 입은 사람의 수묵화부터
콧수염 기르고 빵모자를 쓴 조각가가 들고 온 팔뚝 크기의 조각품까지.
배로 옮길 수 있을 법한 예술 작품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화신들이 몰려온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로서는
제사는 명절과 제삿날에 상 차리고 향 피워서 술 한 잔 올리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르다.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이하린은 제물을 ‘온전하게’ 다른 성좌에게 보낼 수 있었다.
자신이 계약하지 않은 성좌에게 제를 올리는 데 성공하는 것은 재능이다.
제물이 포인트로 강제 환원되지 않게 하는 것도 재능이고,
그 와중에 변질되거나 상하지 않게 하는 것 또한 재능이다.
제사라는 단어를 이렇게 쓰니 이질감이 어마어마 하지만
일종의 신관이라 생각하니 이해하기 편했다.
아폴론을 모시는 신관이 제우스한테 기도를 올렸는데 들어준다는 소리 아닌가.
제물을 바치면 불타거나 상하는 것 없이 100% 신속 배달 되는 거고.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제사장이나 신관이 아니라 로켓배송 택배원인데.
아카데미 한 구석에서 마법진 위에서 향을 피우는 모습은 오리엔탈리즘에 취한 양키 게임사의 3류 개그처럼 보이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오, 오오, 성공한 겁니까?!”
"네, 성공했습니다."
마법진 중앙에 전시된 그림 세 점이 사라졌으니까.
혹여나 잘못되었을까 이하린의 말을 듣고도 안절부절 못 하던 비쩍 마른 중년의 여인이, 마법진의 중앙에 넙죽 절을 올린다.
헤벌쭉한 얼굴인 걸 봐선 성좌가 메시지라도 보낸 모양. 말 몇마디 들은 것 치고는 과하게 기뻐하는 모습이지만, 어쩔 수 없다.
예술과 관련된 성좌는 별로 없으니까.
솔직히 멸망하는세상에서 예술가가 최후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본인이 예술가거나, 예술가를 후원하고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이 성좌가 될 가능성 말이다.
그렇게 적은 수의 성좌가 이 세상 예술가들을 다 데려가니까.
전생의 세상에서 시인이 문단에 등단하는 것처럼, 이쪽 세상 예술가들은 성좌와 계약을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엄청 유명한 상위 1%가 아니면 성좌가 관심을 보일 일이 없다.
봐야 할 사람이 수천명인데 언제 그 작품을 TV 스크린 너머로 전부 감상하겠는가.
그러니 제사 마법을 배운 사람들에게 몰려드는거다.
성에 차지 않아 포인트로 환전하셔도 좋고, 미숙하다고 악평을 받아도 좋다.
성좌의 저택 한 구석에 처박혀도 상관 없으니 나의 성좌가 내 작품을 맨 눈으로 감상이라도 한 번 하셨으면.
그러한 열망을 가지고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니 마이너한 장르의 마법이라도 먹고 살 길이 열리는 것이다.
역시, 돈 벌려면 기술 배우라는 부모님 말씀이 틀린 게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딱히 전투 계열이 아니라는 점 정도?
※
꿈 속의 세상에서, 이하린이 넙죽 업드렸다.
”왜 그러니?“
”성좌님이 아닌 다른 성좌에게 너무 많은 예를 올린 것 같습니다.“
첫 만남으로 돌아간 것 마냥 바닥에 넙죽 엎드린 그녀는 내가 몇 마디 던져도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이상 성욕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내 앞에서 큰 절을 올리는 걸 기뻐 할 이유가 없는데도.
”차라리 어깨라도 주물러 주지 않으련?“
”네, 알겠습니다.“
옆에 앉아라 같은 말은 잘도 무시하더니, 어깨라도 주무르라는 말에 후다닥 일어나니 어이가 없었다.
단순히 뭘 시키는 것 보다는 내게 뭔가를 해 주라고 명령해야 말을 듣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소파에 그대로 엎드렸다.
다가오던 이하린이 발걸음을 멈춘다.
등 뒤에서 어깨를 주무를 생각이었겠지만 지금 이 곳에 만들어져 있는 것은 전형적인 4인용 가죽 소파.
당연히 거실 벽면에 등받이가 딱 달라 붙어 있다. 등 뒤에서 어깨를 주무를 수 없다는 소리.
감히 내게 일어나라고 명령할 수도 없고, 누워 있는 사람 어깨를 주무른다고 소파 옆에 서자니 어정쩡한 자세.
”괜찮으니 어서.“
”네, 네...“
이런 상황에서는 내 위에 올라타서 주무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건 이하린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지 머뭇거리는 것이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소파 앞에서 발바닥을 비비적 거리다 슬그머니 한 쪽 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있으니까.
기나긴 망설임 끝에 그녀가 내 등 위에 올라탄다.
등허리를 눌러 배를 압박하는 체중. 육체적 재능이 사라지며 근육이 빠지기라도 한 걸까?
예전보다 명백히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말캉한 엉덩이의 감촉을 등허리로 느끼고 있으니 어깨 위에 살포시 올라오는 보드라운 손이 느껴진다.
나름 운동을 했지만 전문적으로 검을 잡거나 총을 쏜 건 아니라 굳은살은 없는 작은 손.
그런데 생각보다 어깨를 꾹꾹 쥐어오는 아귀힘이 강해 몸이 나른하게 늘어진다.
음흉한 사심을 채우기 위해 안마를 핑계로 스킨십을 시작하려 들었는데,
어깨와 목덜미를 기분 좋게 꾹꾹 눌러오는 손길 때문에 잠시 생각을 비우고 멍하니 안마를 받았다.
목덜미를 엄지로 꾹꾹 누르며 어깨를 안마하다 그대로 팔뚝까지 내려오는 이하린의 손길.
어깨에서 팔뚝을 조물조물 주무르는 손길이 야무지기 그지 없었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로 구성되어 있어 늘어진 팔뚝 살 따위 없이 단단한 근육질의 몸이었지만
작은 손으로 꾹꾹 누르니 근육이 풀어지는 게 느껴진다.
꿈 속 세상이니 근육의 피로도 따위는 없어야 정상인데
왜 없던 피로도 풀리는 게 느껴질까.
몽마가 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해하기엔 난해한 꿈 속 세상 매커니즘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니
슬금슬금 이하린의 손이 움직인다. 팔뚝과 팔꿈치에서 내 등 쪽으로 손길이 오더니그녀가 내 등 위에서 꿈지럭 꿈지럭 움직인다.
그러더니 올라탄 방향을 바꿔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하자 그와 동시에 그녀에게서 깊은 긴장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이하린이 느끼는 부담감은 간단했다.
엉덩이.
‘걍 입 다물고 있으면 알아서 하려나...?’
”그, 다리를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종아리를 주무르기 시작한 그녀를 놔 두고, 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사심을 듬뿍 담아 마사지를 받는 나로서는 그녀가 내 허벅지와 엉덩이를 조물딱거리다
슬그머니 앞으로 손을 뻗어 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지만,
그걸 적나라하게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엉덩이좀 만져봐, 이딴 소리를 입 밖으로 내고 싶지는 않았다.
수줍어하는 손길이 확연히 약해진 상태로 종아리를 조물딱거린다.
엉덩이나 허벅지는커녕 무릎 아래에서 올라올 생각을 못하는 여린 손아귀.
입을 열자니 분위기가 박살이날 것 같아 그대로 뒤로 손을 뻗었다.
엎드린 상태에서 등 뒤로 손을 뻗는 불편한 자세지만
이하린의 등허리를 톡톡 건드리니 그녀가 눈치 빠르게 몸을 다시 돌렸다.
그렇게 그녀가 엉덩이를 살짝 든 와중 나 또한 몸을 돌려 드러누웠다.
허리를 퉁겨 슬쩍 위치를 바꾸니 자연스럽게 그녀의 엉덩이가 내 물건 위에 털썩 주저 앉는다.
반 쯤 발기된 녀석을 느꼈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이하린이
불에 데인 짐승마냥 펄떡 일어나는 모습을 누워서 바라보았다.
”안마 솜씨가 뛰어나구나. 계속 해주지 않겠니?“
”으, 그게...“
웃으며 말하자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엉덩이를 내리는 이하린.
감히 성좌 위에 풀썩 주저앉을 수 없으니 느릿하게 엉덩이를 내리니까 나 또한 그에 맞춰서 몸을 위 아래로 살짝 움직인다.
그러더니 조금 울상이된 상태로 그녀가 앉아 있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투명의자처럼, 허벅지 힘으로 엉덩이를 슬쩍 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봤자 소용 없을텐데...’
얇은 옷을 입고 서로 피부를 비볐는데, 아래에 힘이 안 들어갈 리 있나.
이리저리 몸을 돌리고 일어났다 앉았다 난리통에 헐렁한 셔츠가 이리저리 흔들리기까지 했는데.
내 고간부 위에 슬쩍 엉덩이를 들고 있던 이하린이지
마치 식물 자라는 걸 빨리감기 한 것 마냥 내 물건도 우뚝 솟아버리니 어쩌겠는가.
”정말 시원한데... 다른 곳도 구석구석 주물러주렴.“
성욕 보다 부담감과 황송함, 죄송함을 느끼는 이하린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발기된 남성기를 보고 자신감을 가지는 게 아니라 자기 비판을 하다니, 갈 길이 먼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