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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41화 : 성장 2 (41/169)



〈 41화 〉41화 : 성장 2

눈부신 성장을 보여주는 한예지와는 달리, 이하린은 아직 이론 공부에 매달려 있었다.
불사르는 폭군의 이벤트에 참여해 얻은 [재능 개화 : 극단極端]은 성장 가능성을 한쪽으로 몰아주는 특성이지만
어느 쪽인지 알려주지는 않는 불친절한 모습을 보여주니까.

심지어 이하린이 말하기를 극단(極端)의 성장 가능성은 말 그대로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쓰는 일을  하게 되고 마법 능력이 늘어나는 그런 애매모호한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몸치가 되는 것과 더불어 다른 마법적 재능이 전부 사라지고 마법의 다양한 속성 중 딱 하나에 쏠리거나
모든 마법과 전술 전략 등 두뇌 싸움 대신검이나 창 등 무기술 하나에만
극단적으로 치우칠 수 있는 것이 극단(極端)이라는 특성.

“체력이 나빠지는  봐선 마법 쪽이 맞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 해도 특성이 문제겠죠?”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체력 등급이 특급 턱걸이에서 1등급 후반대로 급격히 낮아졌다며
육체 재능일 경우를 부정하고 곧바로 마법학을 배우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마법학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마어마한 분량을 자랑한다는 것.


‘저게 이과생인가...’

판타지 마법 하면 곧바로 생각나는 화염, 번개 등의 원소 마법을 시작으로
신성 마법과 저주 같은 마법에 포함되나 싶은 것들.
거기에 강령이니 제령, 부적술과 마도 공학, 룬어, 마법진과 계약술식 등
다양한 세상의 성좌들이 화신들을 통해 세상에 퍼트린 마법들이 수  가지다.

“너무 조급하게 느끼지 마세요. 극단이라는 특성은 대기만성형 특성 중 최상위의 것. 아무리 늦게 발견한다 해도 늦은 게 아니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 때문인지 주름이 자글자글한 마법학 교관이 인자하게 웃으며 그녀를 격려한다.
곱게 늙은 지적인 노파는 교관보다는 교수에 어울리는 인상이었는데
귀찮은 기색도 없이 이하린을 위해 수 십 가지 기초 마법학 교재를 들고 그녀를 돌봐주고 있었다.


조금 웃긴 것은 다른 교관들은 그녀가 심리적으로 몰리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것.
마법학 교관이 아닌 다른 기초 테스트를 하는 교관들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상황이다.

[성좌, 무기력한 악몽이 조금 쉬라고 조언합니다]


“아 네, 여기 하던 것만 마저 하겠습니다.”

오히려 오타쿠 기질이 발휘되어 건강을 해칠 정도로 즐겁게 몰입한다는 것을 모르고.


아침 운동을 제외하고는  달째 온종일 책상 앞에 붙어 있는 그녀.
게임기 앞에 붙어 있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랬을까.
좋다고 온종일 서류와 각종 마법 시약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보니 약간 불안해진다.

전에는 운동과 식사, 훈련을 규칙적으로 반복했는데 요즘은 그 비율이 깨지고 있었다.
운동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보면 운동의 양이 줄어들고 식사도 간편해지는 게 보인다.
육체의 능력이 감소한 영향일까?


더 놀라운 것은 내가 뭘 시켜도  번 대꾸한다는 점.

‘세상에, 쟤가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야?’

성좌로서 화신의 성장은 기뻐해야 할 일이다.
자기 개발을 하는 것은 막아서는 안 되고 나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니 오히려 칭찬을  줘야겠지.


그게 이하린만 아니었다면.


첫 만남에 석고대죄를 하며 도서관 돌바닥에 이마를 박고,
권능을 하사하자 게거품을 물며 꿈속에서 만났다고 기절을 하던 그녀였다.
그런 주제에 내가 쉬라고 직접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있다가’ 쉬겠다고 미룬 것이다.

알콜 중독자한테 저녁 식사에 반주 한잔하자고 말했을 때,
나중에 마시자고 한 것 보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내가 메시지를 잘못 보낸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면을 확대해서 책상에 고개를 푹 처박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똘망똘망한 눈이 게슴츠레하게 반쯤 감겼고,  아래가 거뭇거뭇하다.
기초화장 없이도 말끔하던 피부가 로션 안 바른 아저씨처럼 거칠거칠하게 상한 것도 보인다.


이대로 가다간 또 화신이 쓰러지는 꼴을 보겠다 싶어 정신을 집중했다.

[성좌, 무기력한 악몽의 아바타가 등장합니다]

아직 피로감이 남아 있어 5분도 채울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아, 성좌님!”

화들짝 놀라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는 이하린의 뒤로
서류와 양피지가 책상을 어지럽히며 무너진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의자에 주저앉혔다.


“조금 쉬엄쉬엄 하라 하지 않았니. 벌써 며칠째 수면이 부족해 보이는데.”

체력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수면 시간까지 줄인 여파일까?
그녀의 모습은 건강미 있는 소녀에서 며칠 야근한 신입사원으로 급격히 변한 상태.
정말 며칠만  놔두면 강의실 책상보다 병원 침상이 어울릴 것 같은 모습.

얌전히 의자에 앉은 그녀의 얼굴에 손을 뻗어 눈썹 쪽을 살살 어루만진다.
손끝으로 화장기 하나 없는 눈썹을 만지다 그대로 눈꺼풀을 눌러 내리고,
다크서클과 눈꺼풀을 아주 살살 문지르며 작게 속삭인다.


확실히, 손끝에 와 닿는 감촉이 다르다.
부드럽고 쫀득한 만득이 인형이 거친 그물망으로 만든 잔디 인형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
이대로 놔 둘 수 없으니 그대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 안고 속삭였다.

“꿈을 꾸는 시간을 너무 줄인  아닌가 싶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분신을 해제하고 원룸으로 돌아왔다.

마치 오랜 시간 수영을  것처럼 숨이 가쁘고 머리가 어질어질한 기분.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며 화면을 바라보니 어질러진 책상을 정리한 이하린이 급하게  준비를 하는 것이 보인다.







꿈속의 세상에서, 이하린은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몸  바 모르고 서성이고 있었다.

 모습에 걱정하지 말라고 토닥이고 싶은 마음 반, 조금 골려주고 싶은 마음 반이 뒤섞여
아무  없이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역시 비슷한 세상답게, 커피 믹스 맛은 똑같네.
탄산음료는 맛이 조금씩 달랐는데.

그렇게 따끈한 커피 믹스 한 잔을 전부 마실 때까지 이하린은 차마 내게 다가오지도 못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것처럼 주방에서 초코케이크를 가져온다.


일단 나는 남자니까 단  좋아한다고 생각한 걸까.
초코 빵에 찐득한 초코 무스, 그 위에 얹어진 코코아 파우더까지.


달달한 커피 믹스와 먹을 만한 음식은 아니지만
슬그머니 테이블에 초코케이크를 올려놓고 옆에서 눈치를 보는 모습이 귀여워 포크를 가져다 댔다.
혀와 뇌가 찌릿해질 것 같은 달콤함.

‘여자들, 아니 이쪽 세상 남자들은 이런  걸 좋아하는 건가?’


여자는 떡볶이를 좋아하고, 단  좋아하네! 같은 고정 관념이 스르륵 머리를 스쳐 지나갈 정도로 띵  단맛.
눈치를 보는 이하린이 불쌍하긴 하지만 차마 두 번 먹을 용기는 나지 않아 포크를 내려놓는다.

땅, 하고 포크 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리는 그녀를 옆으로 부른다.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건강은 돌보며 해야 하지 않겠니.”

꿈속이라 거뭇거뭇한 기운이 사라진 눈 밑을 살살 쓰다듬는다.
양 눈을 질끈 감고 내가 얼굴을 만지는 대로 얌전히 있는 모습이 정말 개 같았다.
어째 이렇게 말하니 욕설 같네. 그대로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내 허벅지에 닿게 누른다.


음흉한 짓이 아니라 베고 잘  있도록.


“서, 성좌님?”


눈꺼풀을 살살 문질러주는 내 엄지손가락 때문에 눈도 뜨지 못한 그녀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부른다.
하지만 부드럽고 따끈따끈한 얼굴을 만득이 인형 조물딱 거리듯 계속 만지니 알아서 입을 다문다.
군사 학교에서 자외선 맞으며 체력 단련을 한 것 치고는 뺨이 너무 부드러운데.
내가 이렇게 만져  여자라고는 한예지와 이하린 두 명밖에 없지만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특성의 영향인지 이하린의 얼굴은 작고 보드라웠다.


“몸에 힘 빼고,  쉬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구나.”


체중을 싣는 것이 송구스러웠는지 목과 어깨에 힘을 주고 버티는 그녀를 보고
미용실에서 자주 들었던 말을 해 봤다.

맨날 세면대에서 머리 감겨주는 누나가 어깨 힘 빼고 기대라고 말해줬는데.


머리는 잘  깎아줬지만, 샴푸 서비스는 잘하던 단골 미용실이 떠올라
얼굴이 아니라 머리카락에 손을 뻗었다.
대충 옆으로 누워서 흐트러진 단발머리.


목덜미에나 오던 머리카락이 슬슬 자라서 어깨 언저리까지 내려오긴 했다.

여자 헤어스타일은 잘 모르니 이게 무슨 머리인지도 모르겠네.
어쩌면 남녀가 바뀌면서 이하린도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써 머리 길이를 맞춘 게 아니라
적당히 자라도록 내버려 둔 것일지도 모르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살살 빗고 있으니 결국 포기한 그녀가 어깨와 목에 힘을 빼고 내게 기댄다.
눈을 떠야 할지 감아야 할지 몰라 미간을 잔뜩 찡그린 상태로.
곧바로 미간의 주름을 꾹꾹 눌러주자 눈꺼풀을 파들파들 떨며
힘을 빼는 모습에 온몸 구석구석을 건드리고 싶어졌다.



“무리하지 말고, 밥 거르지 말고, 쉴 때는 쉬고, 하루에 6시간은 꼭 자야 한단다.”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되었는지 자각몽의 세상에서 어렴풋한 알람 시계의 기계음이 들린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들어보았던 잔소리를 최대한 귓가에 속삭였다.

어쩌다 보니 장난만 잔뜩 쳤지만, 뭐 하루 정도는 참아도 상관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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