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38화 : 폭군 下 (38/169)



〈 38화 〉38화 : 폭군 下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기도 전에, 귓가를 찢어발기는 폭음이 들려온다.


[불-태-워-라!]

어째서인지 익숙한 고함과 함께 들려오는 끔찍한 폭음.
흐릿한 시야 너머로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거대한 전함이 지상을 폭격하는 모습이 보인다.

광선에 닿은 지면이 뒤집히고 용암이 솟구쳐 올라오며 충격파로 흙먼지가 폭풍처럼 흩날린다.
그 강렬한 공격에 바닥을 기어 다니는 기괴한 괴물들이 재도 남기지 못하고 스러진다.

‘이건 또 뭐야?’

그 모습이 마치 블록버스터 SF 영화를 떠오르게 해서 잠시 고개를 젓는다.

시야도 흐릿하고 귓가도 멍-하게 울리는 걸 봐선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더군다나 고개를 젓는다고 시야가 바뀌지 않는 걸 봐선 내가 보고 있는 장면도 아니다.


[하지만, 폐하! 저 아래에 있을 신민들을 생각하여 주시옵소서!]
[저 괴물의 파도 속에 살아 있으리라 진정으로 믿는가, 장군?]

뚝뚝, 눈물이 흐르는  느껴진다.
뿌연 시야는 눈물 때문이었는지 이제야 앞이 제대로 보인다.


황금 왕관을 쓴 늙은 남자.
나는 본능적으로 이 ‘폐하’라는 사람이 불사르는 폭군이라는   수 있었다.
SF 스타일의 함선을 비롯한 붉은색으로 치장된 온갖 병기들을 보면 쉽게 유추할  있는 사실.

[장군, 알량한 도덕감으로 입을 열 시간에 저 빌어먹을 괴물들을 한 마리라도 더 처리하길 바라네. 신민을 생각해? 최정예 황실 근위병들도 지상에서 1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연락이 두절되었는데 저기에 있을 사람들을 구출할 방법이 있나?]

눈 밑이 퀭하게 패여 있는 늙고 추레한 남성.
허나 광기와 분노로 일렁이는  눈동자 때문일까.
나와 시야를 공유하는 사람을 비롯해 함선 내부에 있는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괴물이 가득한 지상은 물론 아직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까지 불태워 버리는 동안에도.

‘...이래서 폭군이라 불리는 건가.’

황제는 광기에 물들어 모든 것을 불태웠다.

여황께서 살아계신다면 격노할 거라 지껄인 신하도,
방위선을 유지하고 붉은 함대를 보자 환호하던 지상의 수비 병력도
정찰 중 발각되어 포위당했다고 지원 요청 연락을 보내온 정찰선도.

행성을 불태우고
우주를 누비는 외계 생명체를 불태우고
끝끝내 그들의 모성을 파괴한 다음 돌아와 오염된 모든 식민 행성을 파괴하는 동안-


그 누구도 감히 황제에게 반기를 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폐하, 마지막, 마지막 식민 행성입니다! 저 행성조차 불사르신다면 우주 끝자락의 미개척 지역을 헤매며 정착이 가능한 행성을 찾아 떠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겠노라.]

최후의 행성에 외계 비행종과 소형 콜로니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황제가 폭격을 가한다.
나와 시선을 공유하는 몇몇 신하들이 거품을 물고 만류하다 기계 병사에 의해 처형당한다.
그렇게 함선의 투명한 장벽 너머로 마지막 인류의 거점이 불타오른다.


이제 남은 것은 황제의 기함을 포함한 세 척의 우주선뿐.
무한 동력으로 영원히 우주를 항해할 수 있다 해도 내부의 자원은 부족하기 그지없다.
황제는 자신은 동면 장치에 들어가겠다고 말한 뒤 신하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선택을 했다.
미친 황제의 밑에 있을  없다며 항로를 변경한 함선  척이 있었다.
동면 장치 없이 늙어 죽기를 선택하여 함선 내부의 삶을 선택한 이들이 있었고
가족을 잃은 슬픔에 자살을 하는 사람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시야를 공유한 신하 또한, 권총  자루를 들고 사라졌다.
탕-! 짧은 총성, 고요해진 함선.


‘별, 씨발, 이쪽 대륙도 통째로 태우는 건 아니겠지?’


총성 이후에 자유로워진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귓가에 다시 속삭임이 들려온다.

[그래서, 이 기억이 도움이 되었는가?]


거인에게 머리채를 쥐어 잡힌 상태로 끌려다녀도 이것보다는 정신을 차릴  있을  같은데.

“여긴?”

[나의 비행선이라네, 어린 성좌여.]


점점 메말라 죽어가는 함선을 구경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비행선에 탑승해 있었다.
말 그대로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세상이 변한 것이다.

[드림 워커는  오래간만에 보는군. 그 빌어먹을 외계종들에게 가장 먼저 휩쓸렸으니까.]


하긴, 몽마족인 드림 워커 들은 외계종의 텔레파시에 휩쓸려 행성이 불타오르기도 전에 전부 미쳐서 죽어버렸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드림 워커가 몽마인가?
그리고 걔들이 먼저 죽은 건 어떻게 아는데.

[경험이 부족하긴 부족해 보이는군.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다면 나 같은 존재에게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말해 주고 싶은 것이 꽤 있지만, 더는 무리겠군. 영혼의 변이를 겪었는가? 어째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보는 기분이야. 간만에 대화를 나눌 상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더 성장하고 나서 오게나]


일방적인 축객령을 듣고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나는 내가 원룸의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랄 났네, 진짜...’






술을 진탕 퍼마신 것처럼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 누워 생각을 정리한다.


나는 내 화신들이 북 대륙으로 넘어가 불사르는 폭군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구경했다.
그러다 불사르는 폭군과 같은 화면을 봤는지 아니면 화신들을 통해간접적으로 연결되었는지
불사르는 폭군의 악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삼투압 현상처럼,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쏘옥 빨려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린 폭군은 자신의 정신세계에서 나를 가볍게 튕겨냈고.
말하는  들어보면 몽마족, 드림 워커도 아니면서 그냥 정신력으로 나를 이리저리 보내버린 건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세상이 바뀌니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뭐 저딴 괴물이 다 있어.


메슥거리는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침대에 드러누웠다.
스크린을 바라보니 신나게 괴물을 사냥한 한예지와 이하린이 여자답게 흥분하는 것이 보이지만
그 꾸물거리는 광경에 신물이 올라오는 것 같아 다시 눈을 감았다.

어지러움과 무기력증이 머리를 양쪽에서 두들기고 있어서.

불사르는 폭군의 말대로 나는 몽마가 된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걸음마를  아기?
너무 후하게 쳐주는데.
지금 수준만 보면 나는 딱 민달팽이다.
소금을 맞고 체액이 빨려 나가 몸을 비틀며 죽어가는 민달팽이.

“아오, 씨발... 오염 물질을 처먹어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목구멍이 말라붙을 것 같아 억지로 입을 연다.
혼잣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다시는 목소리를   없을  같아서.
부서진 천장 파편에 뒷머리를 찍혔을 때나 부푼 통조림을 억지로 삼켜도 이만큼 어지럽지는 않았는데.

결국, 정상적인 컨디션이 되어 침대에서 일어났더니 꼬박 하루가 지나 있었다.
한예지는 다시 출근했고, 이하린은 아카데미로 돌아가 수업을 듣는 상태.


[재능 진화 : 쾌快]
[재능 개화 : 극단極端]

놀라운 사실은  사람 모두 특성이 하나씩 늘어나 있었다는 것이다.

‘뭔가 실감이 안 나는데...’

불사르는 폭군과 대화를 할 때 그가 내게 도움이 되었냐고 물어봤었지.
몽마, 드림 워커를 알고 있으므로 뭔가 해  걸까?
미래에 들어오게 될 포인트와 특성  개.

이쯤 되면 행성을 태우던 지지고 볶았던 내게는 성군님이시지.
공짜 특성이 두 개, 불사르는 폭군님 만만세다.

‘근데 저건 무슨 특성이지?’

두 사람 다 동시에 특성이 개화되어서는 후다닥 보고를 하러 간다.
한예지는 제 선임에게 보고하고 반일을 받아 훈련장으로,
이하린은 수업 중 교관에게 보고하고 체력 단련장으로.


생각해 보니 화면 분할 같은 기능은 없는 건가? 있겠지... 포인트를 내면?


어지럼증과 무기력하고 나른한 피로감이 없어지긴 했지만
머리 돌아가는 속도는 아직인 것 같았다.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니까 누구를 관찰할지
어떤 대화를 나눌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으니까.


일단 화면은 이하린에게 고정해 두었다.
한예지의 쾌快 라는 특성은 딱 봐도 투사체가 빨라지는 특성일 것 같으니까.
맨날 마취총 쏘고 다니더니 거너 쪽으로 특성이 올라가나 보네.

하지만 극단極端이라는 특성인 단어만 봐서는  모르겠으니까 설명을 듣기 위해 화면을 고정했다.

“그래서, 이하린 생도. 불사르는 폭군님의 이번 행사 참여 뒤에 특성이 생겼다는 거죠?”

“극단? 이거 데이터베이스에 있을 텐데.”

“예, 아마 성장 방향성이 한쪽으로 몰리게 되는 특성일 겁니다.”

교관들과 이하린이대화를 나눈다.
물론 질문하는 쪽이 교관이고 특성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 이하린이다.
성좌와 화신만 잘 아는  아니라 특성과 권능까지 달달 외우고 다니는지 자기가 자기 특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마 육체와 정신  갈래로 나뉘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드는 특성이라고 기억합니다. 그렇다고 몸에 활력이 돌거나 체력이 좋아졌다는 기분은 안 드니까, 기초 마법에 대한 테스트를 받고 싶은데요.”

“그렇다면야 뭐, 일단 기초 마법학 교관님께 연락을 넣어두겠습니다.”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덤덤하게 교관과 대화를 나누던 이하린이 걸어가다 말고 벤치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럼 그렇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흐힛거리며 허공에 손가락질하며 제 특성창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게거품을 물고 기절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저건 많이 나아졌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악화하였다고 생각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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