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33화 : 꿈 속으로 上
에프킬라 맞은 모기처럼 픽픽 쓰러지는 이하린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얘가 나한테 익숙해지는 것 보다, 내가 몽마 훈련을 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
손과 손을 마주 잡는 것이 자신의 한계라는 것처럼
거기서 뭔가 늘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조금씩 다가오는 것은 거리가 줄어드는 것이 눈으로 보이기라도 하지.
심리 상태에 따라 짧게는 3분, 길게는 6분 안에 기절하는 모습을 보면
이게 성장하는 거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한 달 동안 기절까지의 최고 기록이 4분 58초에서 6분 12초가 되었다고 이걸 성장했다고 봐야 해?
이걸 성장했다고 말하려면 나무늘보가 움직이는 모습은 질주한다고 표현해야지.
이대로 가다가는 삽입까지 십 년은 걸리겠다.
그동안 내가 두 화신의 자각몽에 들어가는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쟤들한테 들어갈 순 있어도, 쟤들이 나한테 들어올 순 없으니까.
꿈과 꿈을 넘어 남의 꿈속으로 침입하는 것은 몽마만의 특성.
재능이 뛰어나다 해도 인간인 두 화신은 불가능한 행위였다.
인류 역사상 수영을 가장 잘하는 수영 천재가 아가미 호흡을 못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예지와 이하린이 자각몽을 다루는 것에 익숙해지고
재능을 개화하여 뛰어난 화신이 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내가 권능으로 종족을 바꿔버리기 전에는 불가능한 이야기.
한예지와 이하린이 재능이 넘쳐나는 영혼이고 나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거다.
IQ 150을 넘는 인간이 손바닥을 파닥거려서 IQ 30짜리 새보다 빨리 날 수 없으니까.
“생도 이하린, 합격!”
“수고하셨습니다.”
화면 속에서 이하린은 기초체력 단련의 시험에 통과하고 있었다.
시험 통과 기준을 군사 학교에 있을 때부터 넘겼으니 아카데미에서 퇴보만 하지 않았으면 당연히 통과하게 될 시험.
이하린보다 한 달 빠르게 통과했으니 다음 달부터는 무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성좌, 무기력한 악몽이 이론 과목을 먼저 통과할 것을 부탁합니다]
“이론 시험, 알겠습니다!”
일단 특성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이론 수업부터 통과하라고 시켜두었다.
이 또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군사 학교에서부터 이하린은 부족한 체력을 이론으로 메꾸는 스타일이었으니까.
이론 수업들만 전부듣는다 해도 몇 달만 지나면 전부 통과할 테니까.
※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더니.
‘진짜 잡았네.’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한예지에게는 3개월 차이가 나는 후배가 생겼고
나는 몽마의 삶에 완전히 익숙해졌으며
이하린은 이제 기절이 아니라 짧은 혼절만 하고 있었다.
‘진짜 내가 익히는 게 빨랐어.’
내가 나의 자각몽 속에 한예지를 부르는 것에 성공했을 즈음,
이하린은 기절했지만 자각몽은 부서지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제 남은 것은 충격 요법뿐.
시간이 정답이란 것을 알았으니 그 시간을 듬뿍 투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하린이 자각몽에 들어갔을 때, 나 또한 나의 자각몽으로 들어가 이하린을 소환했다.
상상하는 것은 평범한 가정집의 안방.
침대 하나와 벽에 붙어 있는 옷장만 덩그러니 있는 자그맣고 안락한 공간.
“흐엑!”
주변을 둘러보다 손을 잡히니 바들바들 떨다 기절하는 모습을 그대로 내려다보았다.
역시, 나의 자각몽 속이라 그런지 꿈이 마모되지는 않고 있었다.
내가 모티브로 삼은 공포 영화 속 프레디 크루거의 능력이 그러했으니까.
꿈속에 끌려온 사람은 내 허락 없이 나가지 못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끔찍한 살인이 벌어지지만
내가 할 것은 야한 짓이라는 점이 다르다.
침대 위에 발라당 누워 있는 자그마한 몸.
군사 학교에서 단정하게 자른 단발머리에 여리여리한 몸매, 한예지보단 상대적으로 빈약한 가슴까지.
가녀리다 못해 자그마한 몸을 품 안에 가뒀다.
단순히 키 차이만 20cm가 넘게 나니 한 손으로도 품 안에 껴안을 수 있는 상황.
그대로 곁잠을 자듯 누워 가파르게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는 배 위에 팔을 올린다.
“어, 어, 어어어?”
“그래, 일어났구나.”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녀가 다시 눈을 감는다.
몇 번이고 눈을 꾹 감았다 뜨고 마른세수하며 눈을 비벼도 변하지 않는 상황.
평소대로라면 자각몽이 끝나고 침대에서 화들짝 놀라 일어나야 했지만
눈을 떠도 내 품에 안겨 있는 상황이 놀랍겠지.
단순히 손만 닿는 게 아니라 포옹을 하고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상황이니까.
“어, 이게, 이, 아니, 그?”
꿈속의 방을 군사 대학 기숙사와 비슷하게 만들어서 그런지
그녀는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어리둥절한 상태로 눈을 부릅뜬다.
품 안에서 느껴지는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란하게 흔들리는 눈동자와 벌벌 떨리느라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입까지.
심리학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하린이 받는 심적 충격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너무 큰 충격 때문에 현실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걸까
이제 그녀는 기절하지 않고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멍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헤실헤실 웃는 모습이 정신적으로 망가진 것 같아 오싹하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남자를 자극하는 부분도 조금이나마 있었다.
낡고 찢어진 의복도 아니고, 꾀죄죄한 모습도 아니다.
낡은 지하 쉘터의 음습한 구석에 웅크린 것이 아니라섬유 유연제 냄새로 가득한 침대 위에 웅크려 있으니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 작고 가녀린 감촉이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격렬히 나를 탐하는 한예지와는 정반대의 반응.
처음 보는 장난감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머리를, 목덜미를, 쇄골을 계속해서 쓰다듬지만 별 반응은 없었다.
다만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멍하니 나를 응시하다, 꾸욱 감겼다가, 한참 뒤에 다시 나를 바라볼 뿐.
전지가 나간 인형 같다는 생각과 가슴 한구석을 비집고 스멀스멀 밀려오는 죄책감을 떨쳐낸다.
중요한 것은 몽마의 정을 넘겨주는 것.
그녀가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하는 사소한 것은 상관없었다.
안 그래도 헛짓거리에 시간 낭비를 많이 했으니까.
“이런, 이런 불경한 꿈을...”
조금이나마 정신이 들었는지 그녀가 작게 중얼거린다.
마주 닿은 피부에서부터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정이 달짝지근하게 느껴진다.
마치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마사지를 받는 것 같은 나른하면서도 달콤한 감각.
“나, 나 따위가 감히...”
그와 동시에 꿈틀거리며 내게서 멀어지려는 이하린의 모습에 조금 짜증이 났다.
심각하게 화가 나는 것은 아니고, 낮잠을 잘 때 누가 툭툭 건드리는 수준의 거슬림.
등허리를 이용해 포복 자세로 품 안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모습에 군필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딜 도망가는 거니. 얌전히 있으렴.”
하지만 빠르다 해도 등과 엉덩이를 이용해 누운 자세로 포복을 할 뿐, 멀리 갈 수는 없었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이하린의 위에 올라탄다.
약간의 심술로 체중을 싣고 누르자 가슴팍 아래에서 끄에엥하고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랜 기간 운동을 해서 그런가, 자그마한 체구 치고는 탄탄한 몸매가 느껴지는데.
이러면 도망치지 못하겠지.
양팔로 감싸 안고 체중으로 누르자 보글보글 올라오는 감정의 격류가 극심해진다.
꿈에서 기절해서 깨어났는데 다시 꿈속이라는 기이한 상황,
성좌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자신의 모습과 익숙한 기숙사 풍경,
나와 그녀가 입고 있는 군사 학교의 체육복 차림까지.
죄악감과 배덕감이 몽글몽글 솟아 나와 내게 흡수된다.
... 아무리 그래도 내 품에 안겨 있는 게 악몽 판정이 나오면 기분이 미묘한데.
“성좌님, 이게, 제가 그러려는 것은 아닌데. 그게, 귀한 권능으로 이런 꿈을...”
벌벌 떨리는 목소리에 살살 가학심이 치솟는다.
자신의 잘못을 필사적으로 숨기고 싶어 하는 물기 어린 목소리.
차마 거짓말은 할 수 없는데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때문일까,
그녀는 끄윽거리면서도 말을 최대한 이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약간의 장단을 맞추기로 했다.
몇 달 동안 고생하다 결국 그녀의 자각몽이 아니라 나의 자각몽을 다루기 위해 어느 정도 고생했으니까.
두통을 꾹 참으며 원룸 안에 개를 몇 마리씩 풀어 놓았던 별 것 아닌 노력.
그러니 나도 별거 아닌 심술로 약간만 괴롭혀야지.
“저런... 이런 걸 원하고 있었니?”
“히, 히익- 아니에... 맞, 맞아요?”
체육복을 벗겨내고 그 안의 헐렁한 셔츠 아래에 손을 집어넣는다.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여자가 먼저 들이 대주는 남자를,
그것도 화신이 성좌를 거부하는 건방지고 불손한 모양이 된다.
반대로 원한다고 말하면 감히 화신이 성좌에게 음욕을 품고 이런 꿈을 꾸는 불경한 모양이 된다.
그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이하린은 고장이 난 기계처럼 횡설수설 뭔가 말하려다 말고 숨을 고르는 것을 반복한다.
손끝에 느껴지는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몸매.
나이는 한예지보다 두 살 많지만, 겉만 보기에는 오히려 이하린이 훨씬 어려 보인다.
키도 작고, 가슴도 좀 더 작아서 그런가. 운동 때문인지 살갗이 더 탄탄하긴 하지만 우락부락한 근육은 아니라서.
체력은 뛰어난 편일 텐데 몰캉몰캉한 팔뚝과 겨드랑이, 눌러보면 폭 들어가는 배와 옆구리까지.
군살은 없지만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여체를 깔아뭉개고 있었다.
피부가 탄력 있고 허벅지가 탄탄한데, 몸은 말캉하고 부드럽다니.
이 무슨 모순적인 몸인가.
운동을 한 여자들은 다 이런가?
만났던 여자들이라 해 봤자 아포칼립스 때문에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사람들 뿐.
운동을 한 여자, 살집이 있는 여자가 존재할 리 없었다.
흐윽, 하는 신음과 함께 그녀가 눈을 꾹 감는다.
그 틈을 타서 불편한 체육복 상의를 벗어버린다.
그녀가 짧은 기절로 눈을 한 번 감았다 뜰 때마다 나와 그녀의 옷은 하나씩 사라지는 상황.
결국, 맨살과 맨살이 마주 닿게 되니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각이 마치 흔들어버린 콜라처럼 터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