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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24화 : 졸업 준비 (24/169)



〈 24화 〉24화 : 졸업 준비

부드러운 가슴을 조물딱 거리자 고개를 뒤로 꺾은 한예지가 호기심으로 가득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그 동그란 눈동자에 깃든 것은 순수한 호기심.


“이거 만지는 게 재미있으세요?”

“부드럽잖니.”


“하긴, 말랑말랑 하기는 하죠.”

자신의 가슴을 검지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대는 모습을 보니 없던 성욕도 생겨날  같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다루기 특훈이라는 명목 아래에 참지 못하고 붙어먹은 게 몇 번째인지.


아파트의 거실이 아닌 시골 툇마루에 앉아 있는 상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딱 달라붙어 있는 우리  사람의 체온을 적당히 식혀주고 있었다.

쟁반에는 큼지막하게 잘라 둔 수박으로 손을 뻗는 그녀와  팔뚝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맨가슴을 만지는 나.
격렬하게 엉겨 붙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기왕 자각몽 권능을 받은 한예지가 자신의 꿈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이었으니까.

“아, 실패했다.”


“저런, 조금 더 집중하렴.”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수박이 참외로 변했다. 수박을 보니 자연스럽게 참외가 생각 나는지 뒤죽박죽 변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녀의 손에 들린 참외는 어느새 다시 멜론으로 변해 있었다.
집중하라는 의미로 밑가슴을 위로 꾹 누른다.
그와 동시에 멜론은 멜론 맛 아이스크림으로 변한다.


햇볕을 받은 아이스크림이 곧바로 녹아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똑똑 떨어진다.
그녀를 다리 사이에 껴안고 있는 자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허벅지 위에 떨어지는 아이스크림.
자기 윗옷 자락을 당겨 아이스크림을 닦아내는 모습에 집중하라는 뜻으로 가슴을 크게 쥐고 한 번 더 조물딱거렸다.

“아하핫, 간지러워요.”

가슴을 아무리 주물러 봐야 이런 분위기에서는 섹스 어필이 되지 않는 건가.
여성의 가슴에 그다지 의미가 없는 세상이니까. 덕분에 마음 편히 가지고 놀긴 하는데.


남녀의 정조 관념이 뒤바뀐 세상에서 여성의 가슴은 이전 세상의 귓불이나 목덜미 정도의 의미를 지녔다.
원래 세상에도 예쁜 귀 모양이나, 머리를 묶을  드러나는 여성의 뒷덜미에 흥분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맨 귀나 목을 드러낸다고 길거리에서 풍기문란으로 잡혀가지는 않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가슴도 그랬다.


예쁜 가슴을 보고 흥분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딱히 음란한 부위라고 말하기는 애매한.

여자들이 가슴을 가리는 이유는 단지 상의가 가슴을 가리기 때문이다.
가슴 부분만 도려진 셔츠를 입고 다니는 난해한 패션이 유행한 적이 없으니까.
아무리 상식이 바뀌고 관념이 뒤집힌다 해도 배만 가리고 가슴은 노출하는 기괴한 복대셔츠가 유행하는 세상이 있겠는가.

그 때문에 이렇게 집에서 늘어지거나 편하게 입는 상황에서는 딱히 가슴을 가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집 앞 편의점에 갈 때 구두 대신 슬리퍼를 신는 것처럼, 가슴 정도야 드러내도 된다는 생각으로.

“아,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요.”


“수박에서 단팥빵 냄새가 나는구나.”

“오늘 갔던 빵집 때문인가 봐요.”

손안에 꽉 잡히는 적당한 크기의 가슴.
한예지의가냘픈 몸을  안에 가두고 멋대로 희롱하지만, 그녀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내  안에서 장난감처럼 주물러지는 가슴보다 수박에서 풍기는 갓 구운 빵 냄새를 신경 쓰는 중이니까.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을 다시 수박으로 되돌리는 것은 성공했지만 이제 향과 맛이 제멋대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집중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역시, 세세한 걸 조절하는 게 제일 어렵네요.”

그렇게 투덜거리는 그녀의 손에는 단팥빵 향 나는 수박 대신  원룸에서도 봤던 수박 탄산음료가 들려 있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정원, 선선한 바람 부는 툇마루, 물기 맺힌 쟁반과 냉수와 수박...음료

자각몽으로 그런 물건의 외형까지는 상상할 수 있었지만, 맛과 향 같은 감각은 쉽사리 조절하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하긴 수박의 생김새를 떠올리는 것이 수박의 맛을 떠올리는 것보다는 쉽겠지.

그러는 동안에도  양손은 품속의 가슴을 마음껏 조물딱 거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그대로 드러 누워버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한 상황.

“으, 오늘도 실패.”

“너무 초조해하지 마렴.”

손에 들린 수박 주스가 사라진다.
쨍하니 내리쬐던 햇볕도 사라지고 선선히 불던 바람도 멈춘 상태.
가장자리부터 무너져내리는 꿈속 세계에서, 품 안에 있던 한예지가 내게 인사한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렴.”





아무리 화신과 성좌의 관계라고 해도  붙어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욕망대로 움직인다면 온종일 한예지와 붙어 있겠지.
꿈속에서 원하는 걸 먹고 마시며, 원하는 장소를 만들어 내서 나만을 바라보는 여고생과 찐득하게 놀아날 수 있는데.

하지만 그 끝이 좋지 못할 거라는 것은 나도 알고 한예지도 안다.

물론, 그걸 알고 자제심을 가지게 될 때까지 얼마나 뒹굴었는지는 셀 수조차 없지만.


서바이벌 훈련장에서 모의 전투를 벌이게  한예지로부터화면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한다.
아카데미조차 아닌 다른 대륙으로. 이 세상을 이해하고 쓸만해 보이는 악몽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아카데미 밖의 다른 화신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아직 사회에 나가지도 않은 한예지 한 명을 데리고 있는데다른 성좌와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원치 않았으니까.
검은 안개가 피어난 도넛 모양의 대륙에서, 나는 사람들의 악몽을 모았다.

대륙은 참으로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아는 세상과 내가 모르는 세상이 적당히 뒤섞인 모양새.
가장 기본적인 음식 문화부터 사상까지 조금씩 뒤섞여있는 이질적인 세상.
내 고향 대한민국이 없는 것을 제외한다면, 내 세상의 외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익숙한 모습.

사람들의 심리를 조금씩 읽다 보면  기시감이 점점 더 커진다.

동대륙에서 보편적으로 무서워하는 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귀신이다.
스펙터, 레이스 같은 판타지 괴물이 진짜 있는 동네여서 그런지 영혼을 되게 무서워 한다.
머리 풀어헤친 처녀 귀신이 같은 게 악몽의 단골이다.


서대륙은 미국과 유럽을 적절히 섞어 둔 모습이라 해야 할까...
사실 세계 여행하기도 전에 지구가 멸망해서 잘 모른다.
이쪽은 영혼보다는 실체가 있는 괴물을 무서워한다.
광대, 가면 쓴 살인마, 침대 밑 털북숭이 괴물, 벽장 속 부기맨 같은 놈들.

위쪽, 눈 덮인 곳이 절반 이상인 북 대륙으로 가면 슬라브 미녀들이 잔뜩 있는 동네가 나온다.
동대륙과 비슷하지만, 유령 대신 사람에게 해코지를 가하는 사악한 정령들이 눈보라와 함께 등장한다.
웬디고, 사스콰치, 얼음 수정으로 만들어진 용 같은 괴물들.

아래쪽, 열대우림이 가득한 남대륙으로 가면 여기는 라틴 계열의 미녀들과 흑인들이 뒤섞여있다.
이쪽은 열대 우림이나 늪지 같은 험한 지형이 많아서 그런지 자연과 짐승에 대한 공포가 많았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늑대인간, 사람을 물어가는 식인 표범, 늪지에 도사린 거대 식인 악어 같은 애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표적인 공포의 상징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모르던 것도 많았다.


당장 비키니를 입은 포르노 스타가 두 명 정도 늘어난 것만 봐도 그렇다.
태닝이 잘 된 구릿빛 피부의 남미 미녀가 가슴보다 커다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금발 벽안의 글래머와 캣 파이트를 시작했으니까.


“아이 씨발, 저리 꺼져!”


E컵은 되어 보일 법한 거대한 가슴에 여인의 얼굴이 파묻힌다.
양손으로 잡아도 부족할  같은 커다란 갈색 빵뎅이가 새하얀 손바닥에 짝! 소리가 나게 얻어맞으며
사람 얼굴 크기 비슷한 거유와 골반이 출렁이고 흔들리는 장면은 분명 매혹적이다.


이 빌어먹을 년들이 좁아터진 원룸에서 지랄만 하지 않았더라면.

별생각 없이 두 명을 동시에 소환했더니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로에게 격렬히 달려들었다.
그 때문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음료 캔이 찌그러지고, 도시락 잔해가 침대에 튀었으며 나는 두 명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얻어맞았다.
물컹한 여성의 살에 얻어맞아서 아프지는 않지만 기분이 묘하게 나쁘다.


살인마나 광대, 귀신이 나를 해치지는 않지만 이처럼 방 안에서 지랄을 하면 그 여파에 얻어맞을 수는 있구나.
그 사실을 느끼며 다시 한번 대륙 구경을 시작했다.  전에, 이리저리 날아다닌 캔과 도시락 껍데기를 한구석에 치워 두고 나서.

결국, 가장 많이 들여다보는 것은 동대륙이었다.
멸망 전 아시아와 비슷한 동네여서 어쩐지 정감이 간다고 해야 할까.
형형색색의 머리카락 색이 아닌 검은 머리들이 우글우글한 세상을 보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학생들은 학교에, 직장인들은 회사에 박혀 있는 평화로운 도시의 풍경.
아주 가끔 허공에서 게이트가 열렸으나 곧바로 출동한 제압 반에 의해 허공에 포효를 지르기도 전에 사냥당한다는 점만 빼면 정말 평범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화면을 조금만 더 확대하면 보는 맛이 있었다.
길거리만 보아도 가슴골을 무방비하게 노출한 미녀들이 잔뜩 돌아다니는 중이니까.
특히 헬스장에서는 옆 가슴을 보이다 못해 옆구리까지 깊게 트인 민소매를 입은 여대생들이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들 대부분이 두려워하는 것은 근육 하나 없이 포근포근하게 살이 붙은 농익은 몸매라 악몽을 건질  없었지만.

그래도 악몽을 다양하게 모아 놨으니 괜찮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모으다 보면, 한예지가 실전에 투입되었을 때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아직 화신인 한예지 주변으로밖에 못 보내지만, 조금  몽마의 능력에 익숙해진다면 내가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고.

감각으로만 어렴풋이 느끼는 희망 사항일 뿐이지만, 어째서인지 내 직감은 그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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