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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19화 : 그녀의 악몽 (19/169)



〈 19화 〉19화 : 그녀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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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한 구석에 한예지의 자각몽에 입장하냐는 메시지가 등장했지만 나는 예상 밖의 상황에 잠시 손가락을 멈췄다.
3,000pt도 없어서 매 달 시간 흐르는 것만 기다렸는데  두 배가 떡 하니 나타났다니.


“왜 다섯 배가 된 거지?”


달콤한 자각몽 하나 사면 끝나는 포인트.
하지만 기본금이 5배가 되었다, 이렇게 표현하면 크게  닿는다.


기본 1,000pt에 무언가 4,000pt가 더해졌다고 봐야 할까?
일 년에 12,000pt였던 게 일 년 60,000pt...
이렇게 이야기하니 점점 더 커다랗게 느껴지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6,000pt가 있으면 성좌의 기본 기능 중 하나를 구매할  있으니까 그걸 먼저 사야 하나?
나는 게임을  때나 소비를 할 때, 무조건 기본 기능은 전부 구매하고 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같은 논리로 막 구매할 순 없었다.


“이 상점 시스템은 누가 만든 것인지 몰라도 씨발 진짜...”


컴퓨터 화면의 업그레이드가 단돈 5,000pt.

요즘 좀 줄어든 혼잣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가격이었다.
명품 가구야 있는 성좌 놈들이 십만 백만씩 FLEX 하면서 지른다 쳐도,
무슨 정렬 기능 같은 기초 기능이 저만큼 포인트를 처먹는단 말인가?

터무니없는 가격도 아니고 반 년 치 월급이라 생각하니까 기분이 더 나쁘다.
거기에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도 않아서 더욱더.

좀 더 비싸다면 재능 넘치는 화신을 데려간 성좌가 쓸 법하다고 이해할 것이고,
3천 포인트쯤만 되어도 기본 권능과 같은 가격이니 합리적인 선택이라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6개월 치, 반 년  월급을 고작 기본 기능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소모한다 생각하니 속이 쓰리다.

그리고  포인트가 영구적으로 증가한 게 아니라 이벤트성으로 한 번 주고 끝나는 거라면,
다음 권능까지 반년은 넘게 기다려야 하는데 컴퓨터를 우선 업그레이드하면 큰일나지.

일단 왜 포인트가 많이 들어왔는지 확인부터 해야겠는데.


[10월 기초 포인트 1,000pt 지급]
[특별 관리 화신 보너스 포인트 4,000pt 지급]

특별 관리 화신.


단어만 봐도 대충 알 것 같았다.

내 화신이 여럿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명 있는데 모를 리가 있나.
그나저나 특별 관리가 어느 쪽일지 궁금하다.

몽마로서 몸을 섞어서 특별 관리일까, 아니면 악몽의 파편을 가져와 정신을 케어해 줘서 특별 관리일까.

개인적으로는 전자였으면 좋겠다.
꿈속에서 몸을 섞은 것만으로도 기본 포인트의 4배를 지급한다니.
남자의 순결 따위를 중요시할 이유도 없고.


[화신 한예지의 자각몽에 간섭 하시겠습니까?]
[Yes / No]


다른 고민은 나중에.

포인트가 늘어났다고 뭔가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으니까 미뤄 둬도 되겠지.







 박자 뒤늦게 들어가서 그런지 한예지의 이번 꿈은 독특하기 그지없었다.

무너진 도시 모형부터 사막이나 정글, 콘크리트로 도배된 사격장과 벙커가 두서없이 사방팔방으로 뒤섞인 전장.
그녀는 이 전쟁터에서 열심히 마네킹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상대는 늘 그녀의 훈련 시간에 보던 검은 마네킹과 하얀 마네킹, 그리고 검은 드론.

꿈속에서 육체 훈련은  가혹하다고 생각해 몽환비약을 구매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총을 쏘는  스스로 재밌다고 생각하고 있나?


저공 비행 중인 검은 드론을 퉁퉁 소리가 나는 애매하게 생긴 총으로 깔끔히 격추하더니,
좋다고 총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만세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와 동시에 폭죽 터지는 소리가 전장을 가득 채운다.

“아싸, 최고 기록!”

웅크린 자세로 엄폐물 뒤에 숨어 있던 흰 마네킹들도,
달려오다 미간이나 어깻죽지에 총탄을 맞고 넘어진 검은 마네킹들도,
잘 날아다니다 픽픽 떨어진 드론들도 모두 깨끗하게 정리된다.


흰 마네킹들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잡고,
검은 마네킹과 드론들은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진다.
그러더니 한예지가 미리 노려 보고 있던 허공에 나타나는 메시지.

[94 / 100]

“이게 만점이 아니라고? 왜!”

그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이번에는 기뻐하던 그 모습이 어디로 갔는지 펄펄 날뛴다.
하지만 그런다고 저 점수가 바뀔  있겠는가.
아무리 꿈이라지만 그렇게 오락가락하지는 않는 것 같네.

점수 밑으로는 자잘한 내역들이 등장한다.
흰 마네킹 파손이나 놓친 검은 드론 같은 것이 0.2점, 0.5점씩 항목이 자세하게 맞춰져 있는 상황.
저 정도로 세심하게 계산이  걸 보니 한예지가 상상했다기보다는 현실에서 하던 훈련을 꿈에서도 하나 본데.


점수가 부족하다고 방방 뛰며 억울해하는 모습이 활기차서 보기에 좋았다.
근접 무기술은 별로 취향이 아니더니, 사격술에 이렇게 빠져들 줄이야.
이쯤 되면 남동생 부양을 위해 안전한 길을 택한 게 아니라 총을 쏘고 싶어서 진로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신나게 즐기고 있는데 흐름을 빼앗기도 좀 그래서 꿈이 어떻게 흘러기는 지  번 살펴보려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자각몽에 함께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지 나와 그녀의 꿈이 무대 위와 아래처럼 나눠진 기분.


“다시! 재시작!”


오락실에 있는 사격 게임을 하듯, 점수판을 쏴버리니 마네킹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앞으로 뛰는 놈, 뒤로 숨는 놈, 한예지 곁에 서는  등 다양하게 흰 마네킹들이 자리를 잡으니 저 멀리서부터 검은 마네킹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게임이나 시뮬레이션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한 마리가 걸어오다 미간에 총알을 맞고 픽 쓰러진다.
 다음에는 두 마리, 세 마리.


그렇게 늘어나다 앞과 뒤에서 동시에 오고, 시차를 두며 사방에서 몰려오는 등 다양한 패턴을 보여준다.


점차 늘어나던 검은 마네킹 사이로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검은 드론도 등장한다.
윙윙 소리를 내는 검은 드론이 흰 마네킹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니 보는 나도 정신이 없어 어지러울 지경.
하지만 그녀는 익숙하다는 것처럼 속도에 따라, 거리에 따라 가까이 다가온 녀석부터 딱딱 쏴서 격추한다.

[92.8 / 100]

하지만 점수는 아까보다 조금 더 내려간 상황.
훈련 기계가 어디서 감점이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하지는 않는지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가 분통을 터트린다.

 모습에 자각몽에 개입할까 말까 고민을 잠시 했지만, 다시 벌떡 일어나 총을 쥐는 모습에 그대로 구경이나 하기로 마음먹었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스트레스를 받아 억울해 미칠 것 같다기보다는,
어려운 게임에 이를 갈고 도전 정신을 불태우는 씩씩한 모습처럼 보여서 방해하기 좀 그랬다.
화신이 자기 계발을 하겠다는데 성좌가 방해할 수는 없지.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면 숨어들어오는 드론이나 은밀하게 접근하는 검은 마네킹이 보이지만 그걸 또 훈수하기도 애매하고.
어려운 게임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누가 훈수하면 진짜 짜증 나니까.


그렇게 남 게임 하는 것 구경하듯 한예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이 무너진다.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 총을 쏴 왔으니 집중력이 다 떨어졌나 보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며 우거진 정글과 무너진 콘크리트를 삼킨다.
무대의 막이 다시 올라가면  배경이 존재하는 것처럼 뒤바뀐 꿈속 상황.
명백하게 어려진 한예지가 그곳에 있었다.


교복을 입은  봐서는 중학생인 걸까.
초등학교 고학년인지 중학생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앳된 얼굴에 자그마한 몸집.
고등학생인 지금도 그렇게  편은 아니던데 중학생 때는 더 작았구나.

“야, 잡히면 뒤진다!”


“잡을 순 있냐!”

교복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이 치마가 훌러덩 뒤집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복도를 격렬히 달려간다.
교복에는 남녀 모두 타이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걸 풀고 도망치는 식으로.
그런 모습을 보며 남학생들의 무리는 교실 구석에 모여 어제  드라마네 예능이네를 떠들다 까부는 여학생들이 접근하면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청춘 드라마의 같은 광경 속에, 자그마한 한예지가 달리고 있었다.
아군도 적군도 없이 그저 손 닿는 대로 남의 넥타이를 풀고 도망치는 중학생들의 무리  가운데에서.

쉬는 시간마다 뛰어다니고, 수업 시간에는 열심히 존다.
남학생들이 섞여서 떠들 때도 있고, 여학생들끼리 모여 스마트폰으로 게임 점수 내기를 하며.
점심 종이 울리자 여학생들은 계단을 다섯 칸씩 뛰어 내려가며 식당으로 달려가고,
남학생들은 복도 저편에서 등장한 남자 교생에게 우르르 몰려가 무리를 이루고 천천히 식당으로 간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꿈, 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갑작스럽게 내가 학교 복도에 던져진 걸 보면 이 또한 그녀의 악몽이겠지.
지난번처럼 악몽의 편린을 구하지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중학생 때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한예지가 남동생과 단둘이 사는 걸 봐선 부모님이 죽었을 때의 기억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는다.


츄리닝 차림의 아줌마가 목검을 딱딱 두드리며 뛰어다니는 애들에게 고함을 치는 모습에 슬쩍 눈치를 살폈지만,
학교의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단순한 꿈인 건가?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운동장에서 소음이 들려온다.


슬쩍 창밖을 내다보니 기괴하게 생긴 생명체가 있었다.
양팔이 길쭉한 하얀 털 고릴라? 아니면  발로 걸어 다니는 존나 빠른 나무늘보?
날카로운 발톱으로 운동장을 긁는 기괴한 이족 보행의 짐승이 식당 쪽으로 향하더니-

휙, 하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발톱을 휘두른다.

“아이, 씨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것은 단  명.

아까 남학생들과 무리를 지어 식당으로 향한 남자 교생이다.
그리고 그 뒤에, 축구공을 양 손으로 들고 피를 뒤집어 쓴 채 벌벌 떨고 있는 한예지까지.


괴물의 머리가 터져 나가고, 한 박자 늦게 천둥 소리 같은게 우르릉 울린다. 그와 동시에 꿈  세계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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