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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17화 : 기념일 (17/169)



〈 17화 〉17화 : 기념일

누군가에게 이토록 조심스럽게 대해진 것이 언제였더라.


부드러운 손길이 가슴팍을 쓸어내린다.
마치 두부나 푸딩을 옮기는 것처럼 느리고 연약한 손길.
가슴에서 명치로 내려가 복근을 쓸어보던 손이 망설임을 떨치고 서서히 멀어져간다.


그리고 그게 한예지의 한계였는지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우뚝 멈춰서는 그녀.

모계 사회에 성적 주도권이 대부분 여성에게 있는 세상에서,
무방비 상태의 남자가 마음대로 하라고 양팔을 벌려 기다리는 중인데 남자를 대할 줄 몰라 손이 멈춘 상태라니.

그러니까 그녀의 고운 얼굴이 모호한 혼란과 좌절감으로 물드는 걸 보니,
속으로 ‘줘도 못 먹는 병신...’ 하고 자책하는 중 아닐까.
나로서는 남자를 모르는 순결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자신이 여자니까 뭔가 해야겠다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만지고 싶었던 걸까.
덜덜 떨리는 손이 다시 가슴으로 다가온다.

이번에 다가온 손은 아까와는 다르게 좀 더 노골적으로 유두 쪽을 어루만진다.
여자와 남자의 가슴은 결국 생긴 게 다르므로 이런 흥미를 느끼는 걸까.

다른 걸  잊어버리고 가슴만 만지작거리길래, 그녀의 손등 위에 슬그머니 손을 겹친다.
그제야 살짝 올라와  눈과 마주치는 그녀의 까만 눈동자.
순식간에 안색이 어두워지는 것이, 어떤 생각을 하는 중인지 뻔히 드러나는 게 참으로 귀엽다.

“그렇게 가슴이 좋니?”


“어, 그게...”


할 말이 궁색한지 눈동자만 뒤룩뒤룩 굴리는 모습에,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른다.
그대로 손에 부드럽게 힘을 줘 아래로, 아래로 내린다. 가슴팍에서 배꼽으로, 거기서 더 아래로.


벨트 없이 헐렁한 반바지와 속옷.
얇은 천 두 장으로는 가릴 수 없는 대물이 꾸물거리며 약동하는 게 보인다.
세상에, 예전의  몸도 아랫도리가 그렇게 꿀리는 몸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대체 한예지의 망상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 걸까, 하고 고민할 정도로 커다란 물건.
팬티는커녕 바지도 내리지 않았는데 허벅지에 딱 달라붙어 벌써 존재감을 뽐내다니.
이 정도면 동대륙이 아니라 남대륙 사람을 모델로 한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가 놀랄 정도인데 그 위에 손을 올린 한예지는 어떻겠는가.
부드러운 손길에 자극을 받은 놈이 움찔거리자 동시에 그녀도 히익, 하고 놀라 어깨를 파르르 떤다.


그렇다고 해서 손이 도망을 치지는 않고.

“와... 커다랗고 뜨거워...”


피부를 쓸어내리던 손길보다 더 가냘프게, 마치 순두부라도 쥐어서 옮기는 것 마냥.
쥔다기보다는 그냥 손을 얹어놓은 수준으로 쓱쓱 어루만진다.
그와 동시에 그 감질나는 자극에 반응한 아랫도리가 벌떡 일어난다.

“조금 불편한데, 벗겨주지 않으련?”

마음 같아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어쩌지도 못하는 어린 여체를 뒤로 넘어트리고 마음껏 유린했지만,
그래서야 아포칼립스 시대의 야만적이던 시절과 다를 게 없을 것 같아 꾹 참는다.


이런 사치스러운 느긋함이야말로 내가 멸망한 세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 주니까.


“네, 벗길게요.”

그녀가 작게 속삭이더니 곧바로 손을 뻗어온다.


폭탄을 해체하는 것처럼, 신중하게 양손으로 허리춤을 붙잡은 한예지가 천천히 바지를 끌어 내린다.
허나 헐렁하다고 해도 결국은 허리를 죄고 있던 탓에, 우뚝 솟아오른 물건에 턱 걸려버린다.


내려가는 바지를 한  막아버릴 정도로 굳게 솟은 놈이 꺼덕거리자 눈앞에 뭐라도 나타난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그녀.
그러더니 다 들릴 정도로 침을 꼴깍 삼키고 바지와 속옷 허리춤을 함께 당겨서 벗겨낸다.


엉덩이를 살짝 들어 바지가 벗겨지도록 도와줬다.
그러자 답답했던 구속구를 풀어내는 것처럼 내 물건이 그녀의 얼굴 앞에 우뚝 솟아오른다.
얼핏 봐도 꿈이니까 가능한 크기의 거근.

그 우람한 자태를 보니 한예지뿐만 아니라 나도 같이 놀라버렸다.

뭐라 해야 할까, 남자의 야한 꿈에 금발 외국인 미녀가 수박보다 커다란 가슴을 달고 나오는  본 기분.
정말 꿈이라서 가능한 이야기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또다시 두 손이 곱게 뻗어온다.
소녀의 손이라 하기에는 조금 거칠지만, 아포칼립스 세상의 여인들과는 비교하기도 미안한 보드라운 손.
굳은살이 배기지도 않은 소녀의 양손이 내 물건을 조심스럽게 감싼다.

남자의 넙데데한 가슴과는 달리,
 딱딱하고 길쭉한 살덩이가 치명적인 급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훨씬 조심스럽게  기둥을 위아래로 훑는다.
껍질을 깔 필요도 없이 포경이 되어 있는 것은 그녀가 봐 왔던 야동 때문일까.


내 물건을 조물딱 거리던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인다.
그와 동시에 귀두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한숨.


실수로 이를 세울까 불안한 마음 반, 시작부터 입으로 해 주는 건가 싶어 기대  섞인 마음으로 내려다 봤지만,
이번에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여유도 없는지 내 물건을 노려보던 그녀가 천천히 입술을 가져다 댄다.
스읍 하고 들이마시는 숨까지 느낄 정도로 예민해진 귀두 끝자락에 뜨겁고 몰캉한 감촉이 느껴진다.

“아...”

“으음...”


생각보다 뜨겁다고 느낀 것은 한예지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의 얼굴이 뒤로 한 번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온다.
이번에는 살짝 벌려진 입술 사이로 분홍색 혀가 앙증맞게 튀어나온 상태로.

처음 맛보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듯이 작은 혓바닥의 끝자락만이 내 물건을 슬쩍 핥고 사라진다.
그래도 꿈속이라 역한 맛이나 사람 피부 특유의 짠맛 같은  나지 않는지 다시 빼꼼 튀어나오는 혓바닥.

내 깊은 한 숨소리에 자신감이라도 있었을까.
고양이가 물을 마시듯 살짝살짝 움직이던 혀가 내 숨소리에 반응해 조금씩 활동 반경을 늘린다.
귀두 끝자락에서 귀두의 갓 부분으로, 거기서 또 옴폭 패인 부분에서 껄떡거리는 살 기둥까지.


얕고 간지러운 자극에 움찔거리는  때문에 핥기가 힘들었는지,
그녀의 양손이 다시 내 물건 뿌리를 손에 쥔다.


아까보다는 살짝  세게 쥐는 것이 기분 좋은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한 손으로는 내 고환 아래에 턱 받쳐두고
다른 손으로 물건을 쥐고 핥아가는 그 귀여운 모습에  인내심에 한계가 찾아왔지만,
이번에도 꾹 참고 소파에 기대 한예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머리를 쥐고 깊숙이 찔러 넣겠지만,
아까도 생각했듯이 그러면 너무 맛이 없지 않은가.
생명의 위협도 절망도 좌절도 없이, 오직 순수한 욕망과 사랑으로 행하는 섹스.


아무리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도 쫓아올 사람 없고,
아무리 풀어져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풋내 나는 소녀와의 황홀한 시간.
고작해야 잠깐의 욕망을 참지 못해 멋대로 움직여서  사치스러운 행복을 깨트릴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혀로 이곳저곳 핥아보던 그녀가 슬슬 자신감이 붙었는지,
아니면 성욕에 불이 붙었는지 행위는 점점 에스컬레이트하게 올라간다.
츄웁 하고, 물기 어린 소리와 함께 귀두만 겨우 삼킨 입.
이빨이 살짝 닿을 정도로 오물거리는 행위에 등허리 끝자락에서부터 쾌감이 밀려온다.


미숙한 혀 놀림 몇 번에 싸버릴 정도로 허약하지는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겨우 사정감을 참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쪽을 살펴보고 있는 열정적인 눈동자가 보인다.


그런가, 하기야 야한 꿈을 꾼다면 자신이 쉽사리 상대방을 절정으로 보내버리는 상상 정도는 하겠지.
그 기이한 열망으로 가득 한 눈동자를 보고 그대로 그 자그마한 입안에 사정했다.

“읍, 케엑...!”


“하아... 미안하구나. 참을 수가 없어서.”

“괘, 괜찮아요!”


그 자그마한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정.
이쯤 되니 한예지의 머릿속에 야동으로만 배운 잘못된 성적 지식이 있는  아닌가 싶어 걱정된다.
예전 세상에서도 야동으로 배운 지식만 있는 동정 놈들이 중립 구역 창녀들을 험하게 다뤄 난리가 났었는데.

입에서 뱉어낸 정액을  위에 뱉고 어쩔 줄 몰랐다가 갑자기 생겨난 물티슈로 전부 처리하고서는,
멍하니 내 하반신을 바라보는 그녀. 여기가 현실도 아니고 꿈인데 고작 한  만에 시들 리 있겠는가.

별일 없었다는 것처럼 다시 우뚝 솟아오른 내 물건을 바라보고 있기에 작게 웃으며 다시 한번 유혹했다.
성욕이 넘쳐나는 것은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걸로 만족하고 끝낼 셈이니?”

“아뇨.”

물티슈의 물과 정액으로 조금 젖은 손바닥을 바지 허벅지에 쓱쓱 문질러 닦은 그녀가 휙 하고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벗어 던진다.
색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없는 그 무신경한 모습이 남자를  몰라 허둥지둥거리던 모습과 어우러지니 되려 색향이 풀풀 나는 것 같았다.

남녀의 근육량과 체지방량, 근력은 바뀌었어도 평균 신장은 뒤바뀌지 않은 세상.
이렇게 거실 조명 아래에서 그녀를 보니 그녀가 작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너무 커졌지.

내 몸을 상상하느라 자신의 몸에 대해 그다지 강렬하게 생각하지 않은 걸까. 눈앞에는 평범한 여고생이 있었다.
강도 높은 운동으로 군살은 없이 잘록한 허리에 11자 복근이 드러날락 말랑 하는 매끈한 몸을 평범하다 하면 너무 깎아내리는 것 같지만.


감염으로 인한 피부 종양이나 몇 달이나 씻지 못한 찌든때,
돌조각과 칼에 베인 흉터나 크리쳐가 남긴 상흔 같은 것 하나 없는 매끈한 몸.


그러니까 평범한,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온 평범한 여고생의 몸.


흉 하나 없는 몸이 슬금슬금 다가와 내 위에 올라선다.
다시 우뚝 솟아서 꺼덕이는 물건 위로 천천히 앉아가는 그 극상의 모습을 말없이 관람한다.
옅은 수풀에 숨겨져 있던 소녀의 소중한 곳이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내 물건을 집어삼킨다.


귀두 끝에서부터 스물스물 느껴지는 뜨겁고 축축한 쾌감.
이번에는 그녀가 내가 바로 찍 싸버리는 것을 상상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느낄 정도로 생생한 감촉이었다.


“그래, 잘하고 있단다. 좀 더 힘내렴.”

스쿼트라도 하는 것처럼 허공에서 어정쩡 하게 머무르는 한예지의 손을 마주 잡는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얽매여 깍지를 끼고, 그대로 천천히 잡아당겼다.


가슴팍에 말캉한 감촉이 느껴지며 귓가에 학학 가파른 숨소리가 울린다.

“그래, 천천히, 옳지...”


180cm은 가볍게 넘어가는 근육질의 성인 남성 위에서,
170cm도 되지 않는 소녀가 엉덩이와 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방아를 찧는 모습.

그런데도 범해지는 것은 남자였고, 범하는 것은 여자였다.


맨살과 맨살이 비벼지는 감촉에 조금 안도감을 느꼈는지, 한예지는 서서히 허리를 들어 올린다.
그녀가 처음으로 꿈에 취하지 않고 나를 범하는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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