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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15화 : 선택 (15/169)



〈 15화 〉15화 : 선택

아마도 악몽의 편린을 찾지 못한 페널티는 시간인 것 같았다.


평소대로의 자각몽을 꿨다면 한예지의 기상 시간인 6시에 맞춰 나도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는 게 맞다.
하지만 오늘은 눈을 떠 보니 아침 운동은커녕 이미 점심을 먹고 사격장에 붙잡혀 있는 그녀가 보인다.

“이런 대가리에 근육만 찬 새끼들. 이렇게 귀한 특성을 어디로 보내려고!”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교관보다 훨씬 나이가 있어보이는 중년의 여성.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살과 희끗희끗 보이는 흰 머리를 생각해보면 적어도 50줄은 넘어간  같은데.
대부분의 교관들이 20~30대로 보이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차이가 있는 외모였다.


교관이라기 보다는 교감, 아니면 길드 관련된 높으신  같은 느낌.


“머리가 그따구로 굳은 상태로 애들을 가르치면 쓰나! 특성이 특성인데 우리 쪽으로 연락을 먼저 했어야지. 서운하게 내가 다른 쪽 라인으로 소식 듣고 직접 찾아와야 해?”


진짜로 높으신 분이 맞는지, 무기술 교관과 사격술 교관이 둘 다 어쩔 줄 몰라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잔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는지 한예지의 표정도 썩 좋지는 않은 상태.


[무기력한 악몽이 현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합니다]

몸이 개운하지 않아 졸린 눈을 비비며 짧게 ? 한 글자 입력해본다.
늦게 깨어나는 것 말고 체력적인 페널티도  있는 걸까.
악몽 편린을 찾지 못해 피로가 누적되면 좀 귀찮기는 하겠다.

“아, 이거 참. 성좌님이 오셨군요. 성좌님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허공에 불쑥 튀어나오는 메시지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쪽 세상 사람들은 허공에 대화하는  어색하지도 않은 걸까.
무선 이어폰을 처음 본 촌놈의 기분이 이런 기분인가 싶기도 하고.

교관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을 멈춘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가 함께 데려온 수행원들에게 뭔가 명령한다.


“자, 한예지 생도. 미안하지만 잠시 도와줄 수 있겠나?”


“네, 뭘 하면 될까요?”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탁을 하지만, 내가 눈을 뜨기 전까지 어지간히 난리를  놨는지한예지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상태.
교관 앞에서도 저렇게까지 긴장하진 않던데.

“좋아, 강수진,  쪽으로 가서 방패 준비해. 그리고 희아는 트렁크 가서 준비해 온 물건 꺼내고.”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보인 수행원 둘이 후다닥 달려간다.
강수진이라 불렸던 여자는 대충 10m쯤 떨어진 곳에 가서 시위 진압용처럼 보이는 플라스틱 방패를 꺼내  뒤에 몸을 숨기고,
희아라고 불렸던 여자는 발바닥에 바람을 감싼 상태로 날 듯이 뛰어가 커다란 가방을 하나 들고 온다.

검은 가방, 정확히는 총기 케이스에서 나오는 것은 매끈하게 생긴 플라스틱 마취총.
총이 아니라 마취총이라 생각한 이유는 새파란 액체가 들어 있는 다트가 함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분해되어 있는 검은 부품들이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다.

“사격은 할  안다고 했지? 저 방패에 이걸 한 번 쏴보게.”

익숙한 손놀림으로 케이스에서 부품을 꺼낸 여성이 간단하게 총을 조립한다.
마취총이여서 그런지 진짜  보다는 플라스틱 장난감 총처럼 길쭉한 총신과 보조 손잡이까지.
자연스럽게 건네 받은 한예지가 총열 뒤 편으로 다트 하나를 밀어넣는다.


“네... 지금 쏘면 될까요?”


“그래, 방패에 쏴.”

퓨육, 하고 김 빠지는 소리와 함께 푸른 다트가 날아가 방패에 튕겨나간다.
그야 머리카락 크기의 얇은 침이 강화 플라스틱 방패를 뚫을 리 없겠지.

그게 뚫리면 제압 무기가 아니라 살상 무기잖아.

“강수진, 상태 보고!”


“예? 별 일 없는 것 같습니이이잉?”


갑작스러운 외침에 화들짝 놀란 여인이 방패 뒤에 웅크리던 자세를 풀고 일어나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는다.
일어나려다 약효가 도는지 방패를 놓은 손이 흙바닥을 바르작 바르작 휘젓다 포기하고 그대로 드러 눕기까지 고작 1분.


“이게 무슨...?”


“추가 타격, 검을 맞대도 랜덤한 위치에 들어간다며? 마법도  번씩 발현되고. 고폭탄도 두 번 폭발하고 저지탄 충격파도  번 밀어내는데,마취총이라고 뭐 다르겠어? 애 각성제부터 놔 줘라.”

허벅지에 각성제 주사기를 푹 찔러 넣는 장면을 뒤로하고,
이름도 아직 모르는 그녀가 뒤돌아서서 한예지에게 다시 말을 건다.
뭔 상황인지 파악도 못하고 굳어 있는 한예지에게 쥐어지는 명함.

“파견간다 해도 살던 대륙쪽으로 가는 게  편리하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후방 민심 안정 작전은 적어도 최전방보다는 사망률이 적습니다. 첫 화신이고 아직 어린 나이인데, 전쟁에 보내는 것 보다는 시민들을 지키는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손에 꼭 쥐어서 내가 명함을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슬쩍 보기에 동대륙 화신특임대 대테러- 까지는 보였다.
그렇게 굳어 있는 한예지를 재촉하기는 애매해서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는 와중에도 끝없이 설명을 이어가는 높으신 분.

높으신 분, 맞나?
그러니까 갑자기 사람한테 마취총을 쏘고 각성제를 꽃고 그러겠지.
교관에게 머리가 돌이라느니 굳었다느니 막말을 내뱉는데 찍소리 못하는 것도 있고.

저런 사람 밑에서 일하면 피곤하긴 하겠다.





교관들도 그 명함을 준 사람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물러났기에, 한예지는 훈련 2일차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사격술 교관도  할 말은 없었는지 명함을 흘끗 보고 사라진다.
덕분에 한예지는 남은 시간 동안 보급된 노트북으로 명함을 검색하는 중.

최전방에서 길드에 소속되어 밀려오는 괴물과 싸우는 화신도 있지만,
반대로 내륙 지방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괴물이나 타락한 화신을 제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찰특공대 같은 느낌으로 공무원이 될 수도 있고, 상호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민간 길드에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했다.

[성좌, 무기력한 악몽이 당신의 안전을 기원합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안전하니까.


한예지는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다.


사람은 쉽게 죽는다.
어제까지 웃고 떠들던 놈이 아침에  한 잔 잘못 마셨다 죽기도 하고,
누구보다 건강해 보이던 놈이 내장부터 썩어 문드러지는 경우도 있었지.

내가 몽마의 정을 나눠주고 권능을 전해준다 하더라도 결국 한예지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여학생일 뿐이었다.
각오도 덜 된, 그런 아이를 포인트나 벌겠다고 전쟁터에 던져버려도 되겠는가?


더군다나내가 한예지와 계약한 이유는 전생에 알고 지내던 놈과 비슷하다는 이유였는데.


[아카데미행 여객선이 도착 직전, 항구에서 일어난 무분별한 폭력 행위]
[화신들끼리의 자존심 싸움에서 시작된 길드간의 마찰이라고 합니다]
[현장에 즉시 출동한 민간경비업체의 협력 덕분에 피해자 없이 무사히 제압되었습니다]


화면 속에서는 짧은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테러같이 커다란 사건은 아니고, 권능에 취한 얼간이 둘이 서로의 성좌를 비난하다 싸움이 난 경우였다.

짧은 영상 속에서 콘크리트 바닥과 금속 가교가 얼어붙으며
그 위로 풀쩍 뛰어올라 강철 봉을 휘두르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바닥을 내리 찍은 봉 때문에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촬영자가 놀라 악! 하고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그 직후, 인파를 헤치고 튀어나온 세 명의 사람들.
아까 한예지가 직접 쐈던 마취총과 그물총 등, 다양한 비살상 무기를 준비한 민간 경비 업체의 화신들이 두 명을 지체 없이 제압한다.

위로 뛰쳐나가려는 발목에 올가미가 걸리고, 그 위에 강철 그물이 던져진다.
바둥거리며 반항하려 하자  소리와 함께 마취총의 푸른 다트가 발사되며 곧바로 진압되는 모습.

그러니까, 저렇게 날뛰는 놈을 제압할  팀에 사격 담당으로 들어가는 건가.

확실히 올가미가 화신의 발목을 따라가 완벽히 옭아매는 모습이나,
강철 그물이 깃털처럼 위로 휙 치솟는 모습은 보였지만 마취총은 평범하게 마취총이었으니까.
자신감 넘치는 놈들이 마취총 다트를 쳐 냈다가 그대로 잠들면 제압이 훨씬 편하긴 하겠다.

 이후에도 화면을 돌려 한예지의 등 뒤에서 검색 결과를 함께 보았다.


뭐라 해야 할까... 최전방의 화신들이 중세 판타지 코스프레처럼 보인다면,
내륙지방의 치안을 담당한 사람들은 SF나 사이버 펑크 쪽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주로 도시에서 시가전을 벌이는 만큼,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든 방어구에 화신의 축복을 담아 사용하는 모양새여서 그런가.


책상에서 노트북을 보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던 한예지가 까무룩 잠에 들었다.
곧바로 잠든  보니 자각몽을 사용했구나. 저렇게 계속 동영상을 찾아 본다는 것은 마음이 기울었다는 뜻일까?

모르겠다, 어차피 선택은 그녀의 몫.


[화신 한예지의 자각몽에 간섭 하시겠습니까?]
[Yes / No]


익숙한 메시지 창을 누르자 세상이 변한다.
그러고보니 자각몽에 들어갈 때에는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 있는데, 자각몽에서 나올 때에는 침대에 누운 상태네.
꿈을 꾸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들어가는 걸까?

한예지의 꿈은 어제보다는 나았다.
정리 잘  거실이 나를 반겨줬으니까.

소파에 앉아 있으니 현관문이 열리고 한예지가 등장한다.
첫 날처럼 학교에서 돌아오는 꿈이라도 꿨는지 책가방을 내팽겨치면서.

“어, 성좌님?”

“왜 그러니?”


그리고 이제야 제 정신이 들었는지 내 앞에서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 또한 자각몽에 익숙해 지고 있나보다.
이전에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던데.


먹을 게 있으면 먹고, 마실 게 있으면 마시고.
침대가 있으면 눕고 소파가 있으면 앉아서 TV를 키고.
그러다 내가 옆에 있으면 팔짱을 끼거나 어깨에 기대 오는 식으로 1주일을 보내던 그녀.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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