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13화 : 악몽 (13/169)



〈 13화 〉13화 : 악몽

왜, 꿈속에서는 눈치를 못 채지만 꿈에서 깨고 나서야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말싸움할 때  끝나고 이불을 팡팡 차며 어떤 말을 해야 했는지 그제야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처럼.


꿈에서의 일도 마찬가지다.

발굽처럼 두 개만 있는 기괴한 발가락, 내 몸통보다 두꺼운 발목,
근육과 핏줄이 징그럽게 돋아난 다리와 성인 남자 세 명이 양팔을 벌려야 껴안을  있을 것 같은 거대한 허리까지.
과장된 만화 그림처럼 생긴 생명체가 발소리를 안 내고 뛰는  말이 되나.

거기에 그런 덩치로 나와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과 나도 지치지 않고 전력 질주로 10분 넘게 달리는 점도 이상하지.
꿈속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당연한 일이지만, 대충 그런 규칙인 거다.


나랑 속도가 똑같은 괴물을 피해 미로를 헤매는 게임.


괴물이 나보다 빨랐다면, 어딘가에 괴물을 따돌릴 수 있는 구역이나 방법이 있었겠지만 그런 건 없는 것 같았고.
소리를 듣고 찾아온다기 보다는 눈이 마주치면 쫒아오는 것 같던데.

냉장고에서 차가운 탄산음료를 꺼내 마신다.
하필 메론 맛 탄산이라 반쯤 마시고 버렸지만 차가운 음료가 목구멍을 넘어가니 정신이 번쩍 든다.
이거,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괴물한테 안 잡히고 돌아다닐 수 있겠네.

조금 무서운 점은, 하반신 거적때기 아래가 평평했던 그 괴물의 중얼거림이다.
나를 보고 나음자? 라고 중얼거리더니 쫓아오던데, 만약 한예지가 지나가면서 봤던 그 공포 게임이 19금 게임이라면... 으웩.

차라리 찢겨 죽고 꿈에서 깨고 말지.
몽마 주제에 악몽에 휩쓸렸다는 사실이 조금 창피했지만, 누가 아는 것도 아니니 그 부분은 넘겼다.
물고기가 물에 빠져 죽는다는 소리랑 다를  없지... 빨리 몽마의 삶에 익숙해 져야 하는데.


화면  한예지는 내 품에 안겨 응석을 부리다 잠든 기억만 있는지 멀쩡히 아침 운동을 준비한다.
기초 체력 단련은 통과했지만 앞으로 전투 훈련을 수료하기 위해서는 그 체력을 유지해야 하니까.

더위 때문에 얇은 차림으로 무방비하게 스트레칭을 모습을 보다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유 포인트 1,000pt / 악몽의 편린 1 EA]


목록에는 또다시 N자 표시가 등장한 상태.
 할 때마다 자꾸 늘어나니 이제 목록을 완벽하게 파악했다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무기력한 악몽이 될 때도 목록이 거의 두 배가량 늘어났는데 이번에도 엄청나게 늘어났으니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2,000pt를 더 모아야 한다는 사실.

달콤한 자각몽을 한예지에게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사용한 다음 매일  한예지를 내 꿈에 초대했어야 하는  같은데.
그래야 한예지와의 섹스로 몽마의 정을 건네주고, 몽중몽으로 악몽의 편린을 찾는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온종일 한예지를 쳐다보는 것보다는 낮잠을 자면서 하루 두 번 악몽의 편린을 모으는 것이 더 생산적이잖아.

[무기력한 악몽이 느긋함을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네, 성좌님. 안 그래도 교관님들이 일주일의 유예 기간은 준다니까 더 고민해 봐야겠죠. 대신  일주일 동안에는 기초 무기 수업 말고 기초 마법 이론과 기초 사격술 수업도 청강하러 가야 하지만.”

교관과 학생이 뒤섞여 자율적인 아침 구보를 하는 무리에 합류해 운동장 몇 바퀴를 돈 한예지가 그리 말했다.
하기야 남은 인생을 결정할 일인데 맛보기도 없이 선택하는 건 좀 그렇지.
아침인지라 가볍게 씻고 식당으로 향하니 사람들이 득실득실하다.


건물이 거대한 만큼 식당도 여러 개로 분산되어 있는데, 사람 수에 맞춰서 지었는지 어째 빈 자리가 거의 없다.
그런 소란스러운 식당에서 몇 명이 수상쩍게 움직인다.


식판을 들고 제육볶음과 불고기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예지는 눈치를 채지 못하였지만,
식당을 둘러 보던 나는 확실하게 한예지의 이름을 속닥거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교관들과 함께했던 것이 벌써 소문이 났을까?


[무기력한 악몽이 아침 식사를 꼭꼭 씹어먹을 것을 당부합니다]

한창때의 여학생답게 고기를 듬뿍 식판에 담는 모습을 보고 체하지 말라 채팅을 친 다음 화면을 돌린다.
몇몇 사람들이 한예지를 손가락질하며 보고 있었다.
흉을 본다기보다는, 저 사람이라고 가리키는 것처럼.


한예지가 고기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할  함께 식사하던  명의 여자들이,
빈자리를 찾아 지나친  명의 남자가,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자 옆 테이블에 있던 남녀 혼성의 한 테이블이.
그들 모두가 한예지의 이름을 속닥거린다.


“유명인 다 되었네, 아주.”


질투가 넘치는 사람도 있었고 흥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호의와 악의가 뒤섞인 시선이 아무리 날아와도 식당의 소음에 묻혔는지 원래 둔감한 건지 한예지가 느끼는 일은 없었지만.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은 너무 많았지만, 마음이 조급하다고 시간이 빠르게 흐르지는 않는다.
한예지의 자각몽 속에서 내가 잠들면 그 악몽 세계로 갈 수 있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고,
3,000pt로 내가 자각몽을 구매해서 남을 불러올  있는지도 궁금했다.

해봐야 할 것, 해보고 싶은 것.
다양한 것들을 떠올리며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으니 식사를 마친 한예지가 운동장으로 나간다.
날이 더운지 웃통을 까고 스포츠 브라 차림이 된 여자들이 어제처럼 마네킹 앞에 붙어 있는다.

늘씬한 몸매의 여인들이 몸매를 자랑하며 목검을 휘두르는 장면은 AV 기획물 같다는 불온한 감상을 떠오르게 만든다.


교칙이 아카데미 내부에서의 불순 이성 교제를 금지한다고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막아 지겠는가.
성좌들도 나처럼  반반한 사람들 사이에서 화신을 뽑았는지 평균 이상인 사람들이 좋은 몸매를 뽐내고 있는 상황인데.

기초 무기술 수업에 들어왔다는 것은 기초 체력 단련은 끝냈다는 소리니까.
여자들은 다들 잘록한 허리에 복근이 있냐 없나 수준의 차이만 있었고,
남자들도 대부분 넓은 어깨에 단련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남자들도 더운 건 마찬가지라 두꺼운 체육복 대신 얇은 셔츠를 입고 나왔다.

음흉한 눈길들이 셔츠가 착 달라붙어 윤곽이 다 보이는 남자의 가슴으로 향한다.
내가 보기에는 곧 젖꼭튀가 시전  기분 나쁜 남자의 몸이지만,
이쪽 세상 여자들은 인중까지 헤벌레 늘리며 바라보고 있으니 참.

남자들이라고 다를  없었다. 반바지와 스포츠 브라 사이에 노출된 여성들의 자신 넘치는 근육 어필.
남사스럽다는 듯 시선을 내리깔며 내숭을 떨면서도 눈알은 뒤룩뒤룩 굴러가고 있었으니까.
섹스 어필로 가슴이 아니라 복근을 어필하니 좀 오묘하긴 하지만.


남자는 가슴팍과 고간을 어필하고, 여자는 복근을 어필하는 건가.
왜 복근일까, 정력 때문에?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마네킹 앞에 자리를 잡은 한예지에게 시선이 다시 모인다.
열혈 여아의 표본으로 보이는 교관이 무기를  아름 싸 들고 왔기 때문에.

“아직 정하지 못했다, 이거지. 신중한 모습 아주 좋다! 그러니 남은 일주일간, 너에게 맞는 무기를 찾아보도록 하지. 원래 별 마음이 없다가도 손에 익으면 끌리게 되는  무기니까 말이다.”

 이후의 하루는... 한예지에게 점점 더 미안해지는 일뿐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기 직전까지 한예지는 교관에게 1:1 집중 마크를 받으며 손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많은 무기를 휘둘렀다.
검과 창, 메이스 수준이 아니었다. 곡선적인 날을 가진 쿠그리부터 터번 쓴 사람이 휘두를  같이 확 휘어진 곡도.
일본도와 언월도를 비롯한 온갖 날붙이, 펜싱 검처럼 얇은 것부터 베는  보다 뭉개는 용도의 두꺼운 대검까지.

질투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화신들의 눈동자에 동정심이 깃들 때까지,
그녀는 옆에 착 달라붙은 교관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주는 대로 몇 번씩 휘둘러 보았다.

그렇게 지친 몸으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예정에도 없던 사격장으로 향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몸은 좀  편해 보였다.
안전장치에 고정된 묵직한 거치형 기관총을 붙잡고, 테스트 명목으로 방아쇠만 당기면 되었으니까.


충돌 시 충격파가 터지는 폭렬탄, 괴물들의 돌진을 저지하기 위한 대구경 HP 탄, 거대 괴수의 외피를 파괴하기 위한 고폭탄까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작은 탄환부터 사람 팔뚝 크기의 거대 탄까지  없이 발사하면,
옆에서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숨 가쁘게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기록했다.


음, 총을 쏴 보는  신기해서 그런가, 아니면 소질에 맞아서 그런가.
적어도 땡볕 아래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것보다는 행복해 보이는데.

그냥 거너 쪽으로 가라고 할까?

저녁을 먹고 나서는 짬을 내서 잠시 마법학 교관과 함께 생도 출입 금지 구역의 특별 실험실로 이동했다.
거기서는 생포한 연구용 몬스터를 상대로 스크롤을 찢어 보거나 반짝이는 마법석을 던져 깨트렸다.

“흠, 좋네요. 범위가 두 배가 되는 게 아니라 범위  대상에게 효과가 중첩되어서 사용. 200%의 효능은 아니지만, 처리에 따라 위력이 170%까지는 나온다... 양피지와 수정 등 매개체는 상관없이 내부에 담긴 마법만 공격용이면 된다면...”

“이제 돌아가도 되나요?”


“예,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언을 하자면 아마 총기 쪽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네요. 원래대로라면 마법을 추천하려 했지만, 2 중첩에 효율 170% 정도라면 특성이 성장했을 경우 효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솔직하게 대답해주는 교관을 뒤로한 한예지가 비실비실 발걸음을 옮긴다.
일주일의 유예 기간을 준다는 연놈들이 월요일 아침부터  까지 10시간 넘게 붙잡고 있으니 애가 지치지.

그런데 꿈속에서 나와 섹스를 하는 것과 꿈속에서 자는 것 중 어느 게 더 한예지의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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