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4화 : 아카데미 입학 (4/169)



〈 4화 〉4화 : 아카데미 입학

한 달의 시간이 흐르며 천 포인트가  번  지급 되고
나는 슬슬 냉장고에 저절로 생겨나는 냉동 식품들을 대부분 맛 보았다.
죽은 사람 영혼을 끄집어 온 것처럼 먹기는 해도 싸지는 않는 편리한 육체에 감사하며
침대 매트리스를 끌고 와 화면 앞에 누웠다.

“전 생도들, 정렬!”


아침 식사를 하느라 잠시 시선을 돌렸더니 화면 속에서는 벌써 아카데미의 입학식을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냉동식품을 맛보며 한예지를 구경하고 목록을 보며 가상의 쇼핑을 하는 동안 그녀는 꾸준히 생활하고 있었으니까.

외모만 보면 냉정해 보이는 늘씬한 슬랜더 미녀인데 성격은 긍정적이고 노력도 꾸준히 한다.
한 달 내리 계획적으로 맨몸운동을 하며 아카데미를 대비하는 모습이 아주 만족스럽다.


내가 사람의 잠재력을 볼 수 없으니, 성실한 사람을 고르는 것만 해도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교복보다는 제복에 가까운 단정한 차림으로 많은 사람들이 넓은 강당에 정렬해 있었다.
화면에 빽빽이 들어찬 머리를 하나 하나 셀 수는 없지만 대충 봐도 거의 삼백명은 될 것 같은데.


“웅성거리지 마, 이 새끼들아! 여기가 놀이터인  알아!”


“벌써 얼 빠진 티 내는 썅년 누구얏!”


“남자라고 봐줄 것 같아! 미쳤다고 지금 화장 고쳐!”

교사라기 보다는 군 교관에 가까워 보이는 여자들이 묵직해 보이는 곤봉을 들고 다니며 분위기를 잡고
남자들은 정갈한 단화를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태도 불량으로 지적된 생도의 명찰을 보고 이름을 기록한다.


욕설을 섞어 윽박지르는 여성들과, 대놓고 이름을 기록하는 남성들.

화신에 대한 관심 때문에 동서남북 모든 대륙에서 어느 정도 알고 왔는지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 카메라를 의식해서 화장을 고치려다 뒤통수를 얻어 맞는 남자들이 있었을 뿐.


군기를 바짝 잡기는 했지만 입학식의 내용은 평범했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노파가 화신으로서 대륙을 위해 해야 할 일과 가져야 될 사명에 대해 길게 연설을 하고 끝났으니까.
그 기나긴 연설 때문에 대륙 외곽에서 내부로 침투하려는 괴물들의 존재와
타락해서 인간을 습격하는 화신들의 존재도  수 있게 되었다.


하기야, 살아 남은 사람과 재능을 꽃 피우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전부 성인 군자라는 보장은 없겠지.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는 지하 벙커에서도 실컷 봐 왔고.

“오와 열을 기대하진 않는다,  새끼들아! 적당히 떠들고 제대로 따라와!”

섬 하나를 통째로 감싼 담장과 입구, 입구에서 가까운 강당.
건물은 하얗고 검은 색으로 잡티 하나 없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운동장은 이곳 저곳 깨지고 파여 있었다.

크기를 보면 운동장 보다는 공터 같은데.
운동장을 둘러싼  모양의 건물을 생각하면 평범한 학교처럼 보이지만
운동장의 크기가 비행기도 착륙할 수 있을 수준이라 건물의 길이도 장난 아니었다.

거기에 아카데미를 전체적으로 둘러보다 작은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검은 안개가 없네?’

아카데미가 아닌 대륙을 보면 꽤나 많은 곳들에 검은 안개가 쳐 있었다.
아마 화신들이 가족들을 위해 포인트를 소모하거나, 성좌가 관찰 못하게 하는 장비라도 있는 것처럼.
하지만 화신이 득실득실 모여 있는 아카데미에는 안개가 없었다.


어미를 따르는 새끼 오리처럼 교관을 따라 몰려가는 화신 생도들. 그 중에서 한예지를 찾아보았다.
아카데미의 제복을 입고 교관의  뒤를 따라가니 화신이 된 사실이 한층 더 실감이 나는지
허리가 꼿꼿히  있고 목에 뻣뻣하게 힘이 들어간 모습.


군기가 바짝 들어간 신병 같은 모습이 재미 있었지만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


나는 주저 없이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성좌, 무기력한 악몽이 아카데미에 장막이 없는 것에 호기심을 가집니다.]


대충 왜 여기는 가려지지 않았니? 라고 쳐도 필터링이 알아서 되는 것이 이럴 때에는 편했다.
검은 안개라 생각 했는데 정식 명칭은 장막인 걸까.
목록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외우기에는 너무 많아서 그런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한예지가 움찔거렸지만 곧바로 교관을 불러 세우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다만 줄의 맨 앞에 서 있어서 뒷사람 몇 명이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멈출 뻔 했을 뿐.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지.’


저 상황에서 교관을 불러 세우는 것은 밝고 활기찬 사람이라기 보단 그냥 분위기 파악 못하는 멍청한 사람아닐까.
외로움 때문인지 첫 화신이라는 점에 콩깍지가 꼈는지 그녀의 행동 대부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강당에서 거대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건물로 도착한다.
매년 초에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매달 신입생이 들어오는 방식이다 보니
지나오면서 보인 교실에서는 신입생이 오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고 수업을 듣고 있었다.

“다들 자리에 착석! 초, 중학교도 아니고 자리 골라 앉으려 하지 마라! 들어온 순서대로 앞에서부터 앉아!”


여교관이 두꺼운 팔뚝을 과시하듯 서류철을 교탁에 쾅쾅 내리친다.
여성이 남성보다 강인한 육체를 가지게 되어서 그런지, 키는 몰라도 근육량은 확실히 늘어난 것 같네.
평균적으로 키는 남자들이  크지만 근육질 몸매의 비율은 여성이 더 많았다.

“성좌들과 계약해 이 아카데미에 들어오면서, 기초적인 정보도 없이 온 얼간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나? 수업 방식과 졸업을 위한 것, 그 정도는 알아서 할  알아야지!”

앞으로의 수업 계획 같은 것을 들으려던 나는 교관의 외침에 조금 당황했다.
화신 아카데미가 생각보다 사람을 험하게 굴리는구나.
아카데미라는 이름 때문에 특수한 고등학교 정도를 생각했는데 방식이 대학에 가깝다.

“다만, 아카데미 입학의 첫 날임을 고려해 질문 정도는 받아주겠다. 정확히 10분 뒤, 보급품을 지급하니 그 전까지 물어보도록!”

그러자 교탁 바로 앞에 앉아 있던 한예지가 손을 번쩍 들어올린다.
아까 전 보냈던 메시지를 기억 해 준건가.


“그래,  참 빠르군. 뭘 물어보고 싶지?”


“아카데미에 장막이 없는 것은 어떠한 이유 때문입니까?”

그 질문에 교관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서류철을 살폈다.
일종의 출석 기록부 같은 걸까? 그 중 한예지의 사진이 있는 서류를 살피는  보니 맞는 것 같은데.


“후, 성좌님의 질문 같으니 이번 번만 봐 주마. 아카데미에 대한 대부분의 상식, 그 것도 성좌님들을 위한 정보도 당연히 정리 되어 있었는데... 한예지 생도, 성좌님의  걸음을 함께 한다면  많은 준비를 해라.”

“네, 알겠습니다.”


가볍게 면박을 준 교관이 설명을 빙자한 질문을 시작한다.

“아카데미는 낙오자를 만들 생각이 없다. 교육에 따라오지 못하더라도 아카데미가 직접 학생을 쫒아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경쟁은 있을지라도 낙오는 없는 곳, 이유가 뭔지 짐작이 가나?”

화면을 돌려 교관과 같은 시점을 유지하자 몇몇은 아는  같은 눈치였지만 딱히 나서지는 않았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걸까, 아니면 눈에 띄는 것이 싫어서 그럴까.

그래도 상관 없다는 것처럼 교관이 곧바로 말을 이어나간다.


“대륙 저 멀리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괴수는 어째서인지 끊임없이 생성된다. 또한 화신이 되었어도 사악한 성좌의 꼬임에 넘어가 인류를 배신하는 년들도 많지. 그렇기에 우리는 너희가 얼마나 덜 떨어져도 상관 없다. 남들보다 느리더라도 교육을 완수해 전쟁에 나서게 된 다면, 그 것으로 족하니까.”

 말에 몇 명의 얼굴이 밝아진다.
몸에 살집이 좀 있는 남학생이라던가, 앞머리로 눈을 가린 소심한 여학생처럼 싸움을 무서워 하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


그 모습을  교관이 갑작스레 쾅! 소리가 나게 교탁을 후려친다.


“그러나!”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학생들도 나도 화들짝 놀라 교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교탁을 후려친 굵은 주먹이 손가락을 쭉 뻗어 위를, 천장을 가리킨다.


“너희를 지켜보시는 성좌들도 영원히 기다려 주실까? 우리야 1년이고 5년이고 너희가 신병이 되어 전장에 나서는 것을 기다려 주지만... 너희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성좌님들도 계속 기다리실까? 알겠나, 한예지 생도. 어째서 이 아카데미에 성좌님들의 눈을 가릴 장막이 없는지?”


“저희의 평가는 아카데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좌님들도 하시는군요?”


“그렇다. 우리가 할 것은 너희를 가르쳐 전장으로 보내는 것이지, 화신이 될 사람이 아니라고 판별하는 것이 아니니까.”


교관과 한예지의 대화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뒤쪽 학생들의 안색이 울그락 불그락 변한다.
걱정이 좀 많아 보이는 학생들은 성격이 급한 성좌와 계약을 한 걸까?
아카데미는 대학교처럼 훈련을 통과해 학점을 쌓아 올리는 구조.
평범하게 육체 단련부터 전투 기술까지 배운다면 졸업 기간을 평균 1년으로 잡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성좌 중에서 기술을 지원해 주는 대신
조기 졸업을 못하면 화신 계약을 끊어버리는 성좌도 있다고  것 같은데.
한예지가 인터넷으로 성좌들을 구경할 때 옆에서 같이 본 게 전부라 잘은 모르겠다.


성좌를 위한 포인트 판매 물품 중, 인터넷 접속 기능 같은 것도 나중에 생길까?

 구석에 게임기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는 걸 보면 팔 것 같은데.
TV 화면에서는 화신을 관찰할  있고, 컴퓨터 모니터에는 포인트 상점이 열리지만
TV 화면에 연결 된 게임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설마 사치품 목록에서 게임 계정을 따로 구매해서 인터넷도 포인트를 내고 연결해야 하는 건가?
성좌에게서 악랄할 정도로 포인트를 긁어가려는 모습을 보면 맞는 것 같은데.


혹시나 목록에서 내가 못 본 것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우스를 잡는 김에
한예지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낸다. 이런  재깍재깍 반응을 해 줘야 화신 관리가 잘 되겠지.


[성좌, 무기력한 악몽이 자세한 설명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러자 이런 메시지는 화신 뿐만 아니라 내가 감사를 표한 대상인 교관에게도 보이는지
그녀가 절도 있게 목을 까닥이며 허공에 인사를 한다.
내 시점이 교탁에서 학생을 바라보는 모양새라 그녀의 뒤통수만 보이긴 했지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