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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화 〉칼리 (84/84)



〈 84화 〉칼리

“길드장 자리에 올라간 건 역시 폼이 아니었네요.”

내 말에 그녀는 싱긋 웃더니 말했다.

“실력이 없으면 올라가지 못하는 자리니까요. 그럼, 다시 가시죠. 주인님.”

칼리와 함께 오크 군락을 향해 다가갔다.

쿠르아아악-!

군락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수십 마리의 오크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보였다. 그녀는 검을 들더니 말했다.

“그럼, 지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인님.”

그녀의 몸에 푸른 오러가 깃들더니, 신형이 무너지듯이 흔들렸다.

후웅-

순간적으로 바람이 일더니, 그녀가 이미 저 앞까지 당도해있는 게 보였다.

‘괴물은 괴물이네.’

나는 활시위를당겨, 앞에 있는 오크를 조준했다.

피잉-!

공기를 꿰뚫는 듯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더니, 화살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정확하게 미간에 적중했다.

쿠르륵-!

칼 리가 다른 오크들과 난전을 벌이는 사이, 오크 워리어 다섯 마리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아마, 나를 죽일 생각인 듯했다.

‘귀엽네.’

폭발의 힘을 화살에 담은 다음, 바로 시위를 놓았다.

퍼엉-!

화살이 정확하게 놈들의 발아래에 적중하더니, 폭발하며 살 조각이 사방에 날렸다. 마치, 폭죽이라도 터진 것처럼 꽤 화려한 모습이었다.

쿠드아아악!

갑자기, 오크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강렬한 목소리. 고개를 돌려 보니, 검은 가죽의오크가 눈을 붉히며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하이 오크?’

아니, 그것보다 좀  기세가 강력했다. 하이 오크의 상위 호환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했다.

‘이길 수 있으려나?’

지원을 해줘야하나 싶어, 활을 다시 들어올렸는데.

촤악-!

그녀의 검에서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갑자기 주변을 확하고 휘감았다. 동시에 주변에  뿌려지는 핏물들.

“이야….”

오러를 이용해, 주변에 있던 오크들을 한꺼번에 정리한 것이다. 오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저 정도로 날카로우면서 절제 된 오러를 사용하기 위해선 엄청난 재능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리오테르 누나는 검에 씌우는 것만으로 힘들어 하던데.’

방출하는 건 그 이상의 재능이 필요할 것이다.

칼리는 검에 묻은 피를 확하고 들판에 털더니, 검은 오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중간에 격돌하는 둘의 검. 소리가 어찌나 큰지,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들려  정도였다.

그녀는 웃으며 뒤로 물러서더니, 다시 오러를 몸에 휘감았다.

쿠다아아악!

검은 오크가 대검을 하늘을 향해 힘껏 들어올리더니, 그녀를 향해 내려찍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엄청난 속도. 칼리는 그걸 피하기는커녕.

촤악-!

오히려, 정면으로 받아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예 통째로 베어버렸다는 말이 맞으리라.

대검의  조각이 바닥에 떨어지고 이어서 검은 오크의 목이 함께 떨어졌다.

쿠아아악!

믿고 있었던 검은 오크가 당하자, 주변의 오크들이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게 보였다.

‘그렇게는  되지.’

화살 세 개에 동시에 바람의 기운을 담은 다음 활시위에 걸었다.

투웅-!

그대로 당긴 다음 놓자, 세 개의 화살이자아를 가진듯 제각각의 방향으로 날아가더니, 오크들의 뇌를 꿰뚫었다.

푸욱-!

피와 뇌수가 묻은 화살은 멈춰서지 않고, 다시 새로운 먹이를 찾듯 다른 오크를 향해 날아갔다.

세 개의 화살이 끊임없이 움직이더니,  모든 오크를 학살하고 나서야 멈춰 섰다.

‘이게 되네.’

나도 설마 될까 싶어서 해본 건데. 정말로 가능했다. 약간, 이기어검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근데, 마력 소모가 너무 심하네.’

 차 있던 마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게 느껴졌다.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대단하시네요.”

어느새 다가 온 칼리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거 맞아요?”

“물론입니다. 활로 이런 기행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전장에서 만났다면 상당히 힘들었을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진다는 말은 안 하네요?”

그녀는 대답 없이 싱긋 웃었다.

“그것보다 아까 전에 검은 오크는 대체 뭔가요?”

“베테랑 하이 오크입니다.”


“역시….”

뭔가 상위 호환 느낌이긴 했다.

“이전에 토벌전 때는 못 본 거 같은데.”

“아마, 그때 이후로 각성을 한 거일 겁니다. 오크들은 분노로 인해 강해지는 경우가 가끔 있으니까요.”

“그래요?”

“네. 그것보다 저희가 토벌하러 와서 정말 다행입니다. 베테랑 하이오크는 골드 상급 이상의 괴물이니까요.”

그걸 너무나도 쉽게 이긴 칼리는 대체 뭘까? 역시, 괴물과도 같은 여인이었다.

‘이거 내가 노예로 데리고 있어도 될지 모르겠네.’

주인보다 강한 노예라니.

“그럼, 이제 돌아갈까요? 여기서는 별로 자고 싶지도 않고, 마차에서도 잘 수 있을  같으니까요.”

“네, 그러시죠.”

그녀와 함께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다시 리벨룸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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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나네요….”

접수원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무리 잔당이라고 해도, 그 수가 결코 적지 않았을 텐데. 하루만에 처리하고 오실 줄은 몰랐어요.”

“워낙 강해서요.”

물론, 나 말고 칼리 말이다.

“보수금은 여기 있습니다.”

5골드가 넘는 돈. 실버급 모험가는 돈을 아주 쓸어 담는다고 하더니, 확실히 엄청난 수입이긴 했다.

“이걸로 식사나 하러 갈까요?”

“식사 말입니까?”

“네. 오랜만에 의뢰 완료한 기념이랑, 제 노예로 들어 온 기념으로요.”

“보통, 그걸 기념으로 삼지는 않습니다만.”

“에이, 뭐 어때요. 빨리 가요.”

칼리를 데리고는 엘프의 여관으로 갔다.

“기념으로 식사하자고 한 곳이 이곳입니까?”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고급 식당이라도  줄 알았나 보다.

“고급스러운 곳은 저랑 입맛이 안 맞아서요. 그리고, 칼리는 그런 음식이라면 많이 먹어봤을 거 아니에요?”

“귀족들을 접대할 때, 자주 먹긴 했습니다만….”

“그럼, 오히려 여관 밥이  어색할 수도 있겠네요. 와서 앉아요. 여기 음식 맛있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녀가 내 옆에 앉았다. 종업원을 부르자, 레이나가 왔다.

“주인님, 오셨어요?”

“응.”

“옆에 계신 분은…?”

“응? 아, 노예야.”

“노예요? 저랑 같은 노예?”

“어어.”

레이나가 눈을 빛내더니 말했다.

“그러면, 제 후배라는 소리네요?”

“어, 그게 그렇게 되나?”

“제가 주인님 첫 번째 노예고. 이쪽이 두 번째 노예인 거면, 제가 선배인 거죠!”

그건그랬다.

“뭐, 그러면 인사라도 나눌래?”

“네!”

“그래, 뭐.”

슬쩍 몸을 뒤로 빼자, 그녀가 웃으며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반가워! 나는 네 선배 노예인 레이나라고 해.”

“반갑습니다. 주인님의  번째 노예인 칼리라고 합니다.”

“칼리? 예쁜 이름이네. 주인님에 대해 궁금한  있으면 뭐든지 물어 봐! 내가 선배니까, 잘 대답해줄 게. 그리고, 앞으로 선배님이라고 불러. 알겠지?”

“알겠습니다, 선배님.”

칼리는 귀엽다는 듯 레이나를 바라봤다. 레이나는 바보처럼 헤실헤실 웃었다. 후배가 들어온  그렇게나 기쁜가 보다.

“선배님은 어쩌다가 주인님의 노예가 되신 겁니까?”

“어어?어, 그게… 그런 게 있어. 하여튼, 음, 그것보다 너는?”

차마, 자위하다가 협박 받아서 노예가 됐다고 말할 자신은 없나 보다.

“저는 주인님께 아주  신세를 져서 이렇게 됐습니다.”

목숨을 빚진 거니까, 그렇긴 했다.

“그래? 이전에 직업이 뭐였는데?”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이었습니다.”


“음,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 그래? 음, 응? 뭐라고?”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이었다고 했습니다만, 뭐가 잘못 됐습니까?”

“어어, 아니야! 아이구, 내가 급히  일이 있는데. 지금 이렇게 농땡이를 피워버렸네. 머, 먼저 일어나볼 게!”

“예. 안녕히 가십시오.”

레이나는 급히 어딘가로 뛰어갔다. 마치, 사자에게서 도망치는 토끼 같은 느낌.

옆을 보니, 칼리가 쿡쿡 웃고 있는 게 보였다.

“귀엽죠?”

“네. 사랑스러우시네요.”

“근데, 설마. 칼리의 얼굴을 모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네요.”

“모험가라면 모를까, 제가 대외적으로 나서는 직급은 아니니까요. 시민들 중에는 의외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요?”

“네.”

“그건 신기하네요. 저기요!”

다시 종업원을 불러, 음식과 함께 술을 시켰다.

“여기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잠시 대화를 나누자, 음식이 빠른 속도로 나왔다. 평소에 먹던 저녁 특선이 아닌, 조금 고급스러운 음식들.

“여관에 이런 음식을 팔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비프 스튜와 닭을 통째로 구워서 낸 요리. 그 외에도 이리저리 음식이 많았다.

“한 번 먹어봐요.”

닭다리를 뜯어 내밀자, 그녀가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칼리는 잠시 냄새를 맡고는 바로 입에 넣어 뜯었다. 야만적인 식사 방식.

“음.”

닭다리 살을 씹자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하는 게 보였다.

“맛있죠?”

“네. 맛있습니다. 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 먹었던 것만큼이나, 아니 더 맛있는  같습니다.”

“많이 먹어요.”

그녀가 만족한 걸 보고는 나도 함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간간이 밥을 먹으며 칼리를 힐끔 봤는데, 눈빛이 뭔가 애틋했다. 뭔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느낌.

“주인님,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그녀의 예쁜 눈동자가 나를 향하는 게 보였다.

“아니, 뭔가 그리워하는 거 같아서요.”

“아. 그게 옛날 일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옛날 일이요?”

“예. 귀족과의 식사 자리가 어떤지 아십니까?”

“아니요.”

“귀족과 식사를  때는 철저하게 예법을 따라서 식사해야 합니다. 그걸 지키지 않으면 이미지에 손상이 가, 정치적으로 별로 좋지 않습니다.”

어쩐지, 아침에 여관에서 식사할 때도 고급스럽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저는 방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도 예법을 지키면서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하던 습관이 귀족들과 함께  때도 나올까 봐, 염려가 되어서였죠.”

“직급이 높으면 마냥 좋을  알았는데, 이리저리 피곤하네요.”

“원래, 높이 올라갈수록 책임감과 부담은 커지는 법이죠.”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야만적인 식사방식이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모험가 일을 시작했을 때, 보수금이 얼마 되지 않아 동료들과 야생에서 잡은 닭 한 마리를 이렇게 통째로 구워 먹었었죠. 저희 중에는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옛날이야기를 하는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빛나 보였다. 추억으로 인해 눈은 생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고, 동작에는 그 나이 때에만 나올 수 있는 농염함이 짓게 베어 있었다.

전장에서의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도, 칼을 휘두르며 멋진 모습을 보일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터인데.

“그때는 껍질이 타서 정말 맛없다고 불평하며 뜯어 먹었었는데, 이걸 다시 먹으니 왠지 다시 그리워지네요.”

나는 팔을 뻗어,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칼리의 몸이 움찔거리는  보였다.

“칼리.”

“예, 주인님.”

“오늘 밤에 시간 괜찮아요?”

“밤이라면… 제가 생각하는 바가 맞습니까?”


“네.”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입이 우물쭈물 말을 뱉으려다가 다시 삼켜졌다.

“거절해도 괜찮아요.”

 말에 그녀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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