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2화 〉소원 (82/84)



〈 82화 〉소원

“한가롭네.”

여관에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일상을 연유하는 게 보였다.

이전에 더럽고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 있어서인지, 지금 이렇게 평화로운 상황이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좋긴 한데 말이지.’

토벌전이 끝나고 도시로 돌아와서, 거의 일주일 정도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냈다. 정확히 말하면, 섹스만 주구장창 했다.

예상 외로, 리오테르가 가장 먼저 달려들 거라고 했는데. 그녀랑만 못했다. 전장에서 또 무언갈 깨달았는지, 수련을 하기 위해 떠났기 때문이었다.

‘그게 누나다워서 좋긴 하지만.’

솔직히, 이런 평화로움이 좋긴 한데. 뭔가 심심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주인님.”


“왜?”

“주인님 앞으로 우편이 두 개 왔던데요?”

“우편?”

레이나에게 우편을 받아 단검으로 뜯어 내용물을 읽어봤다.

“음, 빨리 끝났네.”

재판의 결과가 적혀 있는 편지였다.

칼리는 모험가들과 한 약속을 정말로 지켰다. 도시로 돌아오자마자 안토니 백작을 고발했고. 바로, 귀족 회의에 안건이 올라갔다고 들었다.

덕분에, 보상금 지급이 늦춰지긴 했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불만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별 다른 소식은 못 들었는데.’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안토니 백작은 모험가들을 기만하였으며 그로 인해 도시의 치안이 위협받고 더 나아가, 도시 자체가 무너질 뻔한 위기를 만들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이에  귀족 회의장에서의 의논 결과. 그를 도시 영주 자격을 박탈을 결정하였으며, 자작으로 강등을 명하는 바이다.

토벌전에  건 보상은 기만의 대가로 기존에 약속한 것의 다섯 배로 보상하며, 도시 재정이 아닌 안토니 자작의 개인 자산에서 제해야 한다.

-이상, 귀족 회의장, 도니오 공작.

‘급하긴 급했나 보네.’

내가  세상의 체계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백작에서 자작으로 작위가 강등됐다는건 상당히 큰 일임에 틀림 없다.

‘게다가, 불명예스러운 일로 된 거니까… 어쩌면, 귀족 취급을 못 받을 수도 있겠지.’

귀족만큼이나 명예를 중시하는 작자들도 없으니까.

거기에 보상금도 무려 다섯 배나 높게 책정해서 줘야하니, 개인 금고가 아주 탈탈 털릴 거다.

정치와 전쟁은 돈으로 하는 것이라던데, 어쩌면 말만 귀족이지. 사실상, 망한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을까?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편지를 책상 위에 두고는 또 다른 우편을 뜯어보았다.

“음.”

길드장인 칼리한테서  것으로, 시간이 된다면 모험가 길드로 와서 대화를 좀 나누자는 내용이었다.

‘지금 할 것도 없으니….’

마시고 있던 커피를 마저 들이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 좀 나갔다  게.”

“네, 다녀오세요~”

레이나의 인사를 받고는 모험가 길드로 걸음을 옮겼다.

“와하하하하!  년, 아주 쌤통이다. 쌤통이야!”

“아주 잘 됐어!”

길드 건물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보상금을 무려 다섯 배로 준다고 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물론, 슬퍼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받는다고 해도,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모험가들이 나를 알아봤다.

“어, 이거 우리 영웅님 아니야!”

“영웅이다, 영웅!”

“폭풍의 활이다, 폭풍의 활!”

여자들이 술을 마시다 말고 나를 영웅이라고 불렀다. 폭풍의 활이라니, 내게도 이명이 생긴 걸까? 나는 멋쩍게 웃으며 카운터 직원에게 다가갔다.

“콰앙님, 오셨습니까.”

근육질의 남자가 웃으며 나를 반겼다.

“길드장님은 위에 계십니까?”

“예. 지금 기다리고 계시니, 길드장실로 가시면 될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똑똑-

“들어와라.”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칼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많이 바쁘신  같은데, 다음에 올까요?”

“아니다. 대부분 처리가 완료  서류들이니, 괜찮다. 이제 콰앙,  일만 처리하면 끝이다.”

“그래요?”

나는 의자를 꺼내, 그녀 앞에 앉아, 얼굴을 바라봤다. 며칠동안 고생했는지 다크 써클이 진하게 나 있었지만, 그게 그녀의 외모를 가리진 못했다.

살짝 올라 가 있는 날카로운 눈매, 고양이 상이라기 보다는 재규어와 같은 육식 동물이 더 어울리는 그녀였다.

그 아래로는 검은 가죽으로 만들어 진 말끔한 차림이 육감적인 몸매를 감싸고 있었다. 최근에도 꾸준히 단련을 하고 있는지, 몸에는 흐트러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잠시 구경을 하고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보상과 관련 된 일 때문에 너를 불렀다.”

“아.”

하긴, 이번 토벌전에서 내가 세운 공을 생각하면 받아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다른 모험가들에겐 대부분 보상을 지급을 완료했다. 문제는 너다, 콰앙.”

“벌써  하셨다고요?”

“그래. 적어도, 길드장 자리를 내려놓기 전에 내가 벌여놓은 일들은 모두 처리해야 하니까. 그래서, 며칠 동안 밤을 새며 일을 처리했다.”

“길드장 자리에서 내려오시게요?”

이건 또 처음 듣는 소리였다.

“이번 토벌전에서 너무나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그것에 대한 책임은 내게도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길드장 자리는 내려놓을 생각이다.”

“아….”

그리 말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씁쓸함과 죄책감이 엿보였다.

“그래서, 빨리 일을 처리하고 다음 길드장을 정해야 하는데, 문제는 너다. 콰앙.”

“제가 왜요?”

“줘야할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기존에, 토벌전에서 안토니 백작이 내  대가는, 오크 한 마리당 1골드, 워리어는 5골드, 하이오크는 25골드. 거기에다가 족장을 잡는 사람에겐 100골드와 함께 유물을 제공하기로 했었다.”

“그렇죠.”

“근데, 지금 확인  것만 해도, 오크는 20마리를 넘게 잡았으며, 워리어도 10마리를 넘게 잡았다. 하이 오크 역시 2마리 이상을 잡았다 하며, 족장까지 잡았지.”

진짜 많이도 잡긴 했다.

“심지어, 이것도 그때 보여 준 폭발과 폭풍의 시를 제외한 것이다. 그것들까지 포함된다면, 아마 여기서 숫자가 1.5배 이상 늘겠지.”

“폭풍의 시요?”

“그때 전장에서 갑자기 폭풍같은 바람이 불며, 오크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여. 폭풍의 시라는 이름을 모험가들이 붙였다. 왜, 마음에 안 드나?”

생각보다 폼나는 이름이었다.

‘조금 씹덕 같긴 한데.’

원래, 이런  씹덕 같은 이름일수록 멋있는 법이다.

“괜찮네요. 그것보다 그래서요?”

“이 모든 걸 합산하면 최소 221골드에 유물 하나를 너에게 지급해야 하는데, 귀족 회의의 결과 다섯 배의 보상을 지급하라고 했으니….”

그녀는 계산을 끝마치더니 숫자를 내게 보여줬다.

“무려, 1,105골드와 유물 다섯 개를 너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소리다. 아마,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다 합치면 1,300골드가 넘어가겠지.”

“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숫자였다.

“그걸 지급할 수 있기나 해요?”

“할 수 있을 리가. 안토니백작에겐 그 정도의 재력이 없다. 아니, 있었지만. 벌금과 모험가들의 보상금으로 모두 나갔다고 하는 게 맞겠지.”

“그러면 저는요?”

“그래서, 지금 골치를 앓고 있는 거다. 네 보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려, 도시를 구한 영웅인데 보상을 인색하게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영웅이라고 하니, 뭔가 굉장히 어색했다.

“그래서, 귀족 회의에서 회의를 진행  결과. 보상금을 축소하는 대신에 새로운 보상을 지급하려고 한다.”

“새로운 보상이요?”

“그래.”

“뭔데요?”

“일단, 도시 리벨룸의 땅을 지급하기로 했다.”

“땅을요?”

“그래. 그것도 상업 구역 위에 있는 중산층들을 위한 보호 구역에있는 땅을 하나  예정이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뛰어다녔으니, 도시의 재산을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흠, 그래요?”

뭔가 확 와닿진 않았다.

“거기에다가 도시를 구한 영웅 신분으로 인정. 그에 따라 훈장과 함께 갖가지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훈장이라….”

이것도 별로 좋진 않았다. 귀족들이 돈 아끼려고 지급하는 게 그럴싸한 신분과 훈장이라고 들었으니까.

“또요?”

“거기에, 원래대로라면 서사급의 유물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특별히,이번에 전설급 유물을 제공하기로 했다.”

“전설급을요?”

전설급이면 국가에서도 상당히 애지중지하는 수준의 유물이다. 그걸 내게 주겠다니?

“아마, 다섯 개의 서사급을주는 것보다는 전설 하나를 지급하는 게 수지타산에 맞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리고, 네가 다른 제국에 가는 걸 막기 위함도 있는  같다.”

이건 의외긴 했다.

“유물은 제가 고를 수 있는 거죠?”

“그래.”

“그건 좋네요.”

그럼, 정리하면 보상금을 축소하는 대신 땅이랑 새로운 신분에 훈장, 거기에다가 전설급 유물을 하나 제공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끝이에요?”

“아, 그리고. 전장에서의 활약에 따라, 특별 승급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녀는서랍에서 실버급 뱃지를 꺼내더니 내게 내밀었다.

“넌 이제부터 브론즈가 아닌 실버급 모험가다, 콰앙.”

“와!”

혹시나 했는데,진짜로 승급 시켜줄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골드급으로 해야하냐는 의논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 이르다고 판단되어 기각했다.”

“괜찮아요.”

사실, 지금 실버급이  것도 비현실적으로 빠른 거였다.

“이제 정말로 끝인가요?”

“그래. 정리해주자면, 300골드 및 보호 구역의 땅을 제공. 신분 상승과 함께 훈장과 갖가지 혜택을 부여, 전설급 유물 제공 및 실버로의 상승이다.”

토벌전 한 번 참여했을 뿐인데, 어마무시하게 많은 것들을 얻었다.

“뭔가 부담스럽네요.”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넌 수많은 모험가들의 목숨을 구했으며, 도시의 평화를 지킨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감사해요. 아, 생각해보니까. 받을  하나 남아 있는데요?”

“뭔가?”

“길드장님이랑 저랑 약속 하나 했잖아요.”

“아.”

별동대 작전을 수행하는 대신에, 길드장이원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지 간에 들어주겠다고. 신의 가호 아래에서 맹세했었다.

“이제 그 대가를 받아도 될까요?”

“물론이다. 무엇을 원하나?”

그리 말하는 칼리는 어딘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내가 무엇을 요구할지 알고 저렇게나 당당한 걸까?

말을 꺼내기 전에 조금 뜸을 들여야겠다.

“제가 예전부터  생각인데요. 여자들은 너무 약속을 쉽게 하는 거 같아요.”

“뭐, 그건 여자의 특성이라 어쩔  없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일단 저지르고, 수습은 나중에 생각하는 편이지. 물론, 나 역시 그러한 습관은  고쳤고 말이다.”

“그게 문제라는 거에요.  말이 어떻게 변하여, 어떤 형태로 돌아올지 알고 그런 짓을 하는 걸까요?”

“글쎄다….”

대답하는칼리의 모습에는 살짝 불안함이 엿보였다. 원래라면 나의 이런 말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겠지만, 며칠동안 밤을 샌 게 영향을 끼친 듯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더니 말했다.

“아직 할 일이 많아서 그런데, 빨리 말해주지 않겠나? 소원이 뭔가?”

내 대답을 들으면 그녀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게 너무 기대되서 웃음이 삐죽삐죽 튀어 나왔다.

“제 소원은요….”

밤하늘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칼리가 제 노예가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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