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종전 (81/84)



〈 81화 〉종전

피잉-! 피잉-! 피잉-! 피잉-!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연속으로 전장에 울려 퍼졌다.  소리가   날 때마다 앞에서 달려오는 오크들의 미간에 화살이 차례대로 박혔다.

‘진짜 개 재밌네!’

석궁을 쏠 때는 전투 방식이 워낙 단조로워서인지 사실 쏘는 게 재밌진 않았다. 근데, 활은 직접 쏘는 맛이 있어서 무척 재밌었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 레골라스가 된 듯한 느낌.

크르아아악-!

바로 앞에 다가  오크의 공격을 바람의 힘으로 피해낸 후, 허리춤에 착용하고 있던 단검을 뽑아 들었다.

촤악-!

지면을 박차, 순식간에 다가가 목을 단검으로 베어버렸다. 오크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흐으아아아압!”

옆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기합 소리. 리데우나가 커다란 대검으로 오크 워리어 세 마리와 맞붙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필요… 없어!”

촤아아악-!

커다란 대검이 워리어들의 몸을 반으로 두동강 내버렸다 엄청난 괴력. 역시, 골드급에 가까운 모험가다웠다.

쿠르악- 콱!

“조심…하세요.”

내가 구경하는 사이에 다른 놈이 접근했는지, 바로 앞에 오크의 얼굴이 보였다. 물론, 머리에 폴암이 박혀 있어 더 움직이진 못했지만.

“감사합니다.”


사실, 아바가 구해줄 걸 알고 반응하지 않았다.

“크헤헤헤, 드루와. 드루오라고,  새끼들아!”

저 멀리를 보니, 소피아가 모닝 스타로 오크들의 머리를 박살내고있었다. 오크가  마리가 넘는데, 광기에 가득 찬 움직임 때문인지 쉽사리 접근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대단한 파티이긴 하네.’

압도적인 힘 파티가 어째서 그렇게나 빨리 골드급에 근접했는지, 알  있는 대목이었다.

촤악-!

리오테르는 묵묵하게 오러를 다루며 오크들을 베어넘기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들. 오러 운용에도 낭비라곤 전혀 찾아볼  없었다.

“빨리 마무리하고 바로 방어선으로 붙도록 하지.”

“알겠어요, 누나.”

나도 다시 활시위를 당겨 주변에 있는 오크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



“방어선이 거의 다 박살 났습니다!”

오크 족장이 죽은 건 엄청난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선에는 눈에 띌 만한 큰 변화가 없었다.

수적으로 워낙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촤악-!

칼리는 앞에 있는 오크 워리어를 베어 넘기며 주변을 둘러봤다. 완전히 박살  방어선. 바닥엔 오크와 늑대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인간의 시체는 그 아래에 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마법사들, 남은 마력은 얼마나 되나!?”

“전부 다 떨어졌어요!”

“저도입니다!”

수는 계속 밀리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마법사들의 마력까지 전부 떨어진 상황.

빠득-

칼리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번에는 정면으로 부딪혔음에도 패배했다.

‘면목이 없군.’

물론, 그녀에게도 변명 거리는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방어선을 세워놓고 버티라고만 하였다. 결코, 이길려고 하지는 말라고 했다.

근데, 오크 족장이 죽자, 모험가들이 신나서 앞으로 돌격을 한 것이다. 이게 바로 모험가 부대의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체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명령 따윈 언제나무시될 수 있는 사항. 그렇다고, 불복장한 사람을 벌하기엔 이미 죽은 상황.

‘여기서 물러나면 남은 방어선은 임시 본부밖에 없다….’

심지어, 그곳은 언덕이 아닌 평야. 그런 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그녀 역시 단호히 고개를 저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번 전쟁 역시 패배였다.

“모두 후퇴…!”

그녀가 말을 외치려는 순간. 갑자기, 주변에 보이던 오크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보였다.

‘뭐지?’

검으로 앞에 있는 오크들을 베어넘기며 너머를 슬쩍 엿봤다. 바닥에 쌓여 있는 오크들의 시체.

“화살?”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머리나 심장에 화살이 박혀 있다는 거였다. 혹시, 지원대라도 온 것일까?

크르아아악-!

정신이 팔린 사이, 하이 오크 한 마리가 그녀를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이런!”

급히, 검을 들어 놈의 공격을 막아보지만 갑작스레 날아 온 공격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쿠웅-

검과 함께 그대로 밀려나 바닥을 굴렀다. 급히, 일어나 검을 들어보지만 팔에 경련이 와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방심했다….’

원래라면, 아무리 기습이라고 해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죄책감 탓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인지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후우, 후우, 후우….”

그녀의 상태를 눈치챘는지 하이 오크가 씩 웃었다.

크라악!

놈이 소리를 지르며 대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피잉- 콱!

대기를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귀 끝을 스쳐 지나가더니, 하이 오크의 손을 꿰뚫었다. 놀라운 명중력.

크아아아아악!

손에 박힌 화살 탓에 대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놓칠 정도로 칼리는 멍청하지 않았다.

푸욱-!

떨리는 팔로 애써 검에다가 오러를 담아, 하이 오크의 머리를 꿰뚫었다. 놈은 비틀거리듯 움직이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후우, 후우….”

그녀는 뻘뻘 흘리는 땀을 소매로 닦아내며, 화살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피잉-!

그곳에는 오크를 학살하며다가오는 별동대 인원들이 있었다.

###

쿠르아아악-!

 멀리 오크들이 언덕 아래로 달아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활을 들었다. 조금 더 죽여야 했다.

“그만해라.”

그런 나의 행동에 리오테르가 손을 잡더니 살며시 아래로 내렸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네….”

나는 활을 인벤토리에 넣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수많은 시체. 피로 이루어진 작은 시냇물. 역겨운 시체 냄새와 피비린내가 코를 저릿하게 만들었다.

전쟁에서 우린 승리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승리라고 할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아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죽음은 그것만으로 슬퍼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리오테르와 멍하니 가만히 있을 때, 칼리가 내게 다가 와 말했다.

“네가 족장을 죽이지 못했다면, 네가 그 수많은 오크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거다.”

“길드장님.”

“왜 그런가.”

“이 전쟁에 정말로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걸까요?”

“……나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게 얼마나 옳든, 그르든 간에 말이다.”

우린 아무  없이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봤다. 석양빛은 광활한 들판을 주황빛으로 물들여,  참혹함을 숨기려는 듯했다.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

임시 본부는 금방 해제되었다. 애초부터, 대충 만들어놓았기에폐쇄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두가 전쟁 탓에 피로에 쩔어 있었지만, 부상자가 워낙 많아 이곳에서  수가 없었다. 하루 빨리 도시에 돌아가는 게, 최대한 많이 살리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전쟁을 마친 모험가들은 쉬는 시간조차 가지지 못한 채 도시로 행군을 시작했다.

“드디어 여관으로 돌아갈 수 있어….”

이사벨라가 우는 소리를 하며 말 위에 거의 눕다시피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그녀는  야위어 있었다.

험난한 치료소 생활 때문에 성격이 어두워졌을까 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나 보다. 그녀는 여전히 밝은 모습이었다.

“많이 힘들었나 봐?”

“너만큼은 아니어도, 이쪽도 엄청 힘들었어. 아니, 내가 고위급 사제도 아닌데 잘려진 팔을 붙이라면서 막 주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하긴, 내가 그걸대체 어떻게 붙여? 신성 마법 써준 다음에 잘린 팔은 고히 얼음 물에다가 담가서 옆에 나뒀지.”

“나중에 신전 가서 치료 받으라고?”

“응. 내가 할 수 있는  그거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말이야 모험가들이 막 나한테 꿀빤다면서 짜증을 내더라고. 지들 살려주는 게 누군데!”

그녀는 이런저런 불만을 모두 뱉어냈다. 쌓인  많나 보다.

“후우, 이야기 좀 하니까 풀리네. 그래서, 전장은 어땠어?”

“개판이었지. 힘들기도 했고.”

그녀는 주변을 쓱하고 둘러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올 때보다 수가 많이 줄어들긴 했다. 그치?”

“그러게.”

거의 100에 가까운 숫자의 모험가가 이 들판에 왔었는데,  절반이  되는 숫자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만큼 이번 전쟁이 힘들었다는 이야기이리라.

그들의 표정에는 피곤함이 공통적으로 깃들어 있었다. 그 외에는 분노, 절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했다.

이렇게나 많은 모험가가 죽었으니, 당분간은 의뢰가 쌓이다 못해 폭발할 것이다. 물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만.

밤에 물든 숲을 걷고 있을 때, 이세벨라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우린 전부 살아남아서 다행이다.”

그녀의 말에 우리 둘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말 다행이지.’

만약,  전쟁에서 리오테르를 잃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런 상황을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 머리를 흔들었다.

“왜 그러나, 콰앙. 괜찮나?”

“아, 네. 괜찮아요.”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리오테르의 모습이 보였다. 몸은 피로 젖어 있었지만, 얼굴만큼은 깔끔했다.

쪽-

왠지 모르게 벅차오르는 마음에 그녀의 입술에다가 가볍게 뽀뽀를 했다.

“왜, 왜, 왜, 그러나?”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아니요. 그냥 믿기지가 않아서요.”

“뭐, 뭐가 말인가?”

“이렇게 함께 도시로 걸어가고 있다는 게?”

그냥 모든 게 다행이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조금 오글거렸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리오테르는 워낙 딱딱한 사람이어서인지, 감성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모험가들은 묵묵히 걸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해가 밝아오려고  때쯤, 우린 드디어 도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도시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의미이리라.

거기서 다시 걷기를 1시간, 저 멀리 푸른 깃발이 성벽 위로 펄럭이는  보였다.

“리벨룸이다, 리벨룸이야!”

한 모험가가 감격에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서 돌아왔어. 우리가 살아서 돌아왔다고!”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게, 비로소 도시를 봄으로써 실감이 난 듯했다. 나도 깃발을 보고 있으니,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모험가들의 걸음걸이에 탄력이 붙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시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들의 마음을 속도가 대변해주는 듯했다.

때앵- 때앵-

도시 내부에서 희미하게 벨소리가 울려퍼지는 게 느껴졌다. 우리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도시 역시 알아차린 듯했다.

쿠구구궁-

거대한 문이 열리자, 우린 묵묵히 차례차례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전부입니까?”

“예. 안타깝게도….”

옆을 보니, 칼리가 경비대장과 대화하고 있는 게 보였다. 우린 그걸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크고 작은 집들이 오르막길을 따라, 눈앞에 쫙 펼쳐졌다. 늘 보던 광경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색다르게 느껴졌다.

내부에는 방금 막 잠에서 깬 주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걸 보면, 돌아 온 가족을 찾기 위함이리라.

“콰앙!”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와락-

곧바로 몸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갈색 단발이 휘날렸다.

“델리카.”

나는 그녀를 품에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몸이 떨리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울고 있는 것이리라.

“죽, 죽은 줄 알았어요…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매일 밤마다… 흐끅, 흐끅…”

결국 터져 나온 울음에 그녀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그래.”

나는 묵묵히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도시의 위에는 태양이 슬며시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남았고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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