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시련
“뭐?”
회의장 안이 순간적으로 싸늘해지는 걸 느꼈다. 비단, 그걸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리데우나가 말했다.
“칼리, 지금 장난해?”
이젠 길드장도 아닌, 본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아마, 그만큼 화가 많이 났다는 거겠지.
“뭐가 말인가?”
“콰앙은 브론즈급 모험가야. 근데, 오크 족장을 죽이는 별동대의 핵심 멤버라고? 너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왜, 안 된다고 생각하나?”
“그야….”
“그가 브론즈급 모험가니까?”
“그래!”
“족장의 등급은 골드급 이상으로 측정되고 있지만, 그건 놈이 가지고 있는 능력 때문이지. 무력 자체는 그리 높지 않다. 콰앙의 저격 실력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럼, 왜, 하필 콰앙인데? 다른 마법사들도 있고 궁수도 있잖아? 위력 면에서는 걔들이 더 높을 텐데?”
“족장 근처에는 네 마리의 하이 오크가 호위를 맡고 있다. 그런 놈들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거나, 엄청난 궁술 실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럼, 쟤는?”
“콰앙은 무려 두 마리의 정령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정령 궁사다. 바람의 정령을 사용할 수 있으니, 저격의 정밀함에 있어서는 그를 따라올 자는, 여기에 없다.”
칼리의 말에 모험가들이 수군거렸다.
“정령 궁사면 확실히 그렇겠네.”
“기둥 서방인 줄 알았는데,보기보다 대단한 남자였잖아?”
하지만, 리데우나는 아직도 납득 못하겠는지 계속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그래도….”
“왜, 그렇게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가 단순히 브론즈급의 실력자가 아니라는 건, 가장 가까이에서 본 너가 제일 잘 알고 있을 텐데?”
“그게….”
“설마, 그가 남자라서. 그래서, 그러는 건가?”
“그건…!”
리데우나는 입술을 열었다가 다시 꾹 닫았다. 여기서 대답을 하는 순간, 나를 무시했다는 게 전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거기까지 하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푸른 머리의 여성이 말했다. 가슴에 금으로 만들어진 문양이 달려있는 걸 보아, 리벨룸의 유일한 골드급 모험가인 듯했다.
“그레이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여기서 그만하도록 하겠다.”
칼리는 주변을 쭉 둘러보더니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이전과 변함이 없다.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 어제의 전투로 지쳤을 테니, 오늘은 푹 쉬도록 해라. 내일은 바로 출전이다. 그럼, 이상.”
그녀는 말을 끝마치고는 걸음을 옮겼다. 막사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뒤를 돌아보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아, 그리고. 리오테르와 콰앙은 지금 바로 내 막사로 오도록 해라.”
칼리가 밖으로 나가자, 막사는 곧바로 시끌벅적해졌다. 대부분은 출전에 대한 불만이었는데, 그녀가 한 말 때문인지 탈영을 하자는 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일단 나가도록 하지.”
여자 모험가들이 나를 노골적으로 보고 있어, 우리는 막사 밖으로 나왔다.
“콰앙.”
“네, 누나.”
“별동대에 대한 이야기. 혹시, 사전에 길드장과나눈 이야기인가?”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눈빛에는 조금이나마 섭섭함이 담겨 있었다.
“그럴 리가요. 길드장이 갑자기 마음대로 말한 거라고요….”
“그런가?”
“네.”
“그럼, 일단 막사로 가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사건에 전말에 대해 알 수 있겠군. 바로 가보도록 하지.”
리오테르와 함께 길드장의 막사로 들어갔다.
“아, 왔나?”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막사에 음식을 준비해놓았다. 식당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게 아닌, 조금 더 고급스러운 형태였다.
“일단 먹으면서 대화하도록 하지.”
우리 둘이 멍하니 보고 있을 때, 그녀가 손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일단,시키는 대로 앉았다.
“한 번 먹어봐라. 맛있을 거다.”
포크로 면을 말아서 입에 넣었다. 진한치즈의 풍미가 확 입 안을 덮치는 게 느껴졌다. 뒤이어느껴지는 톡쏘는 후추의 맛이 무척이나 일품이었다.
“와.”
바다 도시인 마레아에서 먹은 것만큼이나 맛있었다.
“입에는 좀 맞나?”
“네. 이건 대체…?”
“내가 직접한 거다.”
“그 짧은 시간에요?”
“뭐, 믿거나 말거나지. 리오테르, 너의 입에는 좀 맞나?”
“제 입에도 맞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다만, 저희에게 이런 음식을 제공하시는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혹시, 별동대에 대한 대가라면….”
“아, 그런 의도로 주는 건 결코 아니다. 아니, 완전히 없다고도 못하겠지만. 이게 대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자, 칼리가 차까지 끓여서 우리에게 직접 내려주었다. 대접해주고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지는 상황.
“그래서, 이제는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리오테르가불만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길게 얘기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별동대는 그 상황을 외면하기 위해서한 말이니까.”
예상은 하고있었는데 너무 당당하게 나오니 할말이 없었다.
[여신 :이거 진짜 미친년 아니야?]
[성신 : 아, 이건 좀,,ㅋ]
[사신: ㅋㅋㅋㅋ]
마침, 신들도 지켜보고 있었는지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머릿속에 없었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다. 애초에 별동대는 계획하고 있던 게 맞으며, 거기에 핵심 인원은 콰앙. 너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말에어폐가 있다는 거. 길드장님도 알고 계시죠?”
내 말에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설명할 말이 없군. 아무튼, 거듭 말했다시피 나는 별동대를 꾸려 오크 족장을 잡을 생각이다. 놈을 잡지 못하면, 승리는커녕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할 테니까.”
“어떻게요?”
“그건 그대에게 달려 있겠지. 별동대에 대한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콰앙. 전적으로 너에게 맡길 생각이니까.”
“예? 브론즈급인 저한테요?”
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부담되나?”
“당연히 되죠. 고작, 브론즈급인 저한테 전쟁에 승패가 달려있는 별동대를맡기시는 거니까요.”
보다 못한 리오테르가 끼어들며 말했다.
“맞습니다, 길드장님. 이번 계획은 브론즈급인 콰앙이 맡기기에는 너무 큰 부담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유례없는 속도로 승급을 한 탓에, 다른 모험가들보다 경험이 현저히 적은 상태입니다. 그런 그에게 별동대를 책임지라니요?”
“나는 콰앙이 고작브론즈급 모험가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길드장님이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길드에 기록되어 있는 그의 등급은 브론즈입니다. 그건 어떻게 되었든 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둘의 의견은 전혀좁혀지지 않았다.
‘정작, 당사자인 내가 가만히 있는데 말이지.’
사실, 당황스럽긴 한데. 길드장의 생각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녀의 말대로, 족장을 처리하지 못하면 죽는 건 우리 모두였으니까.
‘물론, 위험은 전부 내가 지는 거지만.’
[사신이 모든 스탯을 ‘2’ 후원하였습니다.]
[힘 : 19]
[민첩 : 18]
[체력 : 17]
어떻게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사신이 후원을 했다.
[사신 : 죽음의 기운 너무 맛있게 먹어서 주는 거다.]
[사신 : 그리고, 이건 네게 주는 시련과도 같은 기회.]
[사신이 죽음의 시련을 제공합니다!]
[날 죽이지 못한 시련은 날 더 강하게 만든다.]
[목표 : 오크 족장 제거.]
[제한 시간 : 지원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보상 : ‘전직 기회 제공’]
[수락/거절]
‘전직 기회?’
스탯 창을 봤을 때부터 뭔가 묘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전직이라니?
[여신 : 야! 이 방에 온지 얼마 되지도않았으면서, 갑자기 죽음의 시련이라니? 넌 상도덕도 몰라?]
[사신 : 응, 몰라~]
[성신 : 선 넘네,,]
두 여신이 당황했다는 게 채팅으로도 보였다.
“죽음의 시련이 대체 뭔데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신 : 말 그대로야. 사신이 내리는 죽음과 가까운 시련. 너를 죽음으로 몰기 위해, 저 년이 내리는 성배야. 물론, 그 안은 독으로 가득 차 있지만.]
[사신 : 대리자 영혼이 맛있거든.]
[여신 : 사신이 방송을 돌아다니며 후원을 하는 이유는 대리자의 죽음을 보기 위해서야. 저거 그냥 사이코패스 년이라고!]
‘소름이 돋네.’
그렇다는 건, 사신이 시련을 내리는 이유는 나를 죽이기 위함이라는 뜻이었다.
‘거절할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결심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별동대 해보겠습니다.”
[여신 :야!]
[성신 : ,,선 넘네]
[사신 : 좋았어~]
“콰앙!”
리오테르가 소리를 질렀으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대신에, 이번 작전이 잘 된다면, 길드장님도 제가원하는건 뭐든지 하나 해주셔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건 길드장님이 잘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제가 길드장님의 목숨을 구한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요.”
“알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그 무엇이든 하겠다고 신께 맹세하겠다.”
책임을 지겠다는 건 사실이었는지, 바로 맹세를 해버렸다. 푸른 마력이 나와, 서로의 몸에 스며 들었다. 맹세가 완료되었다는 의미.
“이러면 괜찮겠나?”
“네.”
전부터 드는 생각이지만, 이 세계의 여자들은 너무 약속을 쉽게 한다. 자신이 한 말이 어떤 형태로 돌아올지도 모른 채 말이다.
“별동대의 인원은 어떻게 됩니까?”
“다섯 명 아래로 마음대로 꾸려보게.”
“다섯 명 아래….”
수가 아주 적긴 했다.
‘하긴, 우리가 암살하려고 안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저격이니까.’
게다가, 예전보다 모험가의 수가 많이 줄어든 만큼, 너무 많은 인원을 빼는 건 부담스러울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방진 싸움조차 불가능할 수 있으니까.
“골드급 모험가인 그레이스님은 안 되겠죠?”
아까 전에 회의장에서 아주 잠깐 본 거지만, 풍기는 기세가 남달랐다. 그녀가 있다면, 저격이 아닌 암살도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마음대로 꾸리라고 했지만. 그녀는 안 된다. 그레이스가 없으면, 싸움의 균형이 무너질 테니까.”
이건예상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냥 압도적인 힘 파티로 주세요. 이 정도도 안 된다고 하진 않으시겠죠?”
비록, 골드급은 아니지만, 그레이스 다음으로 실력이 있는 여자들이다.
“그녀들이라면 아슬아슬하게 괜찮겠군. 알겠다. 그럼, 그녀들에겐 내가 말해둘 테니. 좀 있다가 회의장에서 대화를 나누도록 해라.”
“넵. 그럼, 나가볼게요.”
“그래.”
막사 밖으로 나오자, 리오테르가 바로 나를 바로 잡았다.
“콰앙. 대체 무슨 생각으로 수락한 거냐?”
척 봐도 흥분했다는 게 보이는 그녀였다.
“그냥 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니까. 그래서, 받아들인 거예요. 이대로 포기할 순 없잖아요.”
물론, 보상이 탐이 나는 것도 맞았다. 전직이라니!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날 것만 같은 단어 아닌가?
“그래도, 그래도. 이건 아니다. 지금이라도 가서 못하겠다고 하는 게….”
“누나.”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저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 좋아요. 엘프의 여관의 침대가 좋고, 거기서 제공해주는 식사도 너무 좋아해요. 제 노예인 레이나도 좋고. 바보 같지만, 제게 방어구를 만들어주는 실바나도 좋아요. 저를 믿고 따라와 준 델리카도 너무 소중하고.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해 준 루시도. 그리고, 무엇보다.”
리오테르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누나와 함께 가슴 두근거리는 모험을 하며 사는 게, 너무너무 좋아요. 저는 이런 일상을 잃고 싶지 않아요.”
사람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죽는 생물이라고 한다. 지금 여기서 도망친다면, 잠깐이지만 목숨을 연명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이전과도 같은 삶은 하지도 못할 것이며 내 마음또한 편치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제 고집 따라줘요. 네?”
내 눈빛에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알겠다.”
“고마워요.”
나는 싱긋 웃으며 살짝 입술을 맞췄다. 리오테르의 얼굴이 새빨개져 있는 게 보였다.
“돌아가면 마저해요. 알았죠?”
“그, 그래.”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멀쩡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작전은 있는 것이냐?”
“뭐, 대충은요?”
그거야 지금부터 생각해야 할문제겠지.
어제도 말했지만, 운명은 이렇게 살 수 있나 묻지 않는다. 선택의 여지없이, 우리에게 짊어지운다. 어찌 사느냐는 우리의 몫이다.
하지만, 운명이. 그리고, 사신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여신님이 정령 친화력을 후원하였습니다!]
[여신님이 마력을 후원하였습니다!]
[성신님이 모든 스탯을 ‘3’ 후원하였습니다!]
[사신 : 어어?]
내 곁에는 신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까짓 거 한 번 해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