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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화 〉대패 (77/84)



〈 77화 〉대패

쿠르륵—!

하이 오크는 신경질적인 울음을 내뱉더니, 대검을 들어 올렸다.

“지원 부탁한다!”

“네!”

리오테르가 지면을 박차며 하이 오크를 향해 달려갔다. 놈의 검이 크게 휘둘러지는 순간.

후웅-!

그녀는 몸을 아래로 바짝 숙여,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어지는 검격.

푹-!

검이 복부에 정확하게 박혀들긴 했으나, 피부가 워낙 두꺼워서인지 완전히 박히진 못했다.

쿠르악-!

놈의 커다란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런 약한 공격에 당할 그녀가 아니었다. 리오테르의 몸에 푸른 기운이 솟아오르더니, 곧바로 뒤로 몸을 내뺐다.

‘엄청 빠르네.’

오러를 사용하고 있어서인지, 내가 정령술을 사용할 때부터  빠른 거 같았다.

“깃들고 타올라라.”

화살에다가 불과 바람의 힘을 담은 다음, 하이 오크를 조준했다.

“누나!”

리오테르를 부름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겨,  발을 연속적으로 발사했다. 하이 오크는 가만히 화살을 바라보더니,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티잉-!

두 발은 막아냈지만, 변칙적으로날아오는 마지막 화살은 어깨에 그대로 적중했다. 그리고 동시에.

푸욱-!

“쿠르아아악!”

오러가 맺힌 리오테르의 검이 이번에는 정확하게 놈의 오른팔을 베어냈다.

‘역시, 센스가 좋아.’

그저 불렀을 뿐인데, 화살을 발사하는 타이밍에 바로 공격에 들어간 것이다.

상처가 난 곳에서 보라색 피가 팔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쿠아아악!”

어깨에 박힌 화살이 피부 내부에서 계속타올라서인지, 놈이 신음을 뱉으며 뽑아냈다.

고작, 두 번의 합을 나눴을 뿐인데, 놈은 많이 지쳐 보였다. 실제로, 기세가 우리 쪽으로 넘어오기도 했다.

‘실버 상급에서 골드 하급이라고 하더니, 생각보다 싱거운데?’

하지만, 곧 그건 나의 착각이라는  깨달을 수 있었다.

쿠르르륵-!

놈의 눈이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갑자기 몸에 난 상처가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뭐야!?”

“광폭화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기도 잠시, 리오테르가 곧바로 달려들었다.

“완전히 변하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하이 오크가 대검을 가볍게들어 올리더니, 앞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별다른 기교따윈 없었으나.

후웅-!

 기세만큼은 어떤검사보다도 흉폭했다. 마법이나 정령술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주변에 바람이 일렁일 정도로엄청난 힘이었다.

“깃들고 폭발해라.”

세 발에다가 모두 정령의 힘을 담고는 하이 오크를 조준했다.

후웅-!

조준기 너머, 리오테르가 아슬아슬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 저 대검에 닿이는 순간. 베이는 게 아닌, 몸이 아예 찢어져버릴 것이다.

그래도, 아직 완전히 광폭화한  아니라서, 움직임에 조금 어색했다.

“누나, 피해요!”

내 외침에 그녀가 뒤로 구르며 대검을 피해냈다.

콰앙!

땅이 울릴 정도로 강력한공격. 놈이 무기를 뽑아내는 찰나에 복부를 향해 화살을 발사했다.

투두둥-!

세 발의 화살. 정령술이 담겨 있다는 걸 알았는지, 놈이 대검 뽑는 걸 포기하고 팔을 X자로 교차시켰다.

퍼엉-!

세 발이 부딪히더니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검은 연기가 잠시 풀풀 휘날렸다.

“해치웠나!?”

바람을 일으켜 연기를 날려 보냈는데, 하이 오크가 우뚝 서 있는  보였다.

‘미친!’

저걸 맞고 살아있을 거라고는생각조차 못했다. 하지만, 놈의 상태가 정상적이진 않았다. 오른쪽 팔 한짝이 없었고, 온 몸에서 보라색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마무리 하겠다!”

리오테르는 곧바로 지면을 박차며, 푸른 오러가 담긴 검을 내찔렀다.

푸욱-!

놈이 왼쪽 팔을 들어서 막아보지만, 폭발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피부는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검이 그대로 팔을 관통하더니, 두개골마저 꿰뚫어 버렸다.

촤악-!

검을 뽑아내자, 놈이 비틀거리더니 곧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실버와 브론즈급 모험가 둘이서 하이 오크를 잡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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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오크 한 마리를 잡은 건, 분명 기뻐할 일이었지만. 전선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살려줘!”

아니, 오히려 전선은 급속도로 밀리고 있는 상태였다. 모험가들이 오크 기수와 전투하는 사이, 오크 부대가 바리케이드를 부수고 참전한것이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과 냉병기 부딪히는 소리에 귀가 얼얼했다. 짙은 피 비린내 때문인지, 코 역시 마비된 듯했다.

쿵쿵쿵쿵-!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북소리는, 사람의 심장을 더욱더 거세게 만들었다.

투웅-!

“꺼져,  새끼야!”

쿠르윽-!

촤악-!

내 화살이 오크의 미간을 적중시키고, 리오테르의 검이 목을 베어냈다. 우리 둘은 나름대로 합을 맞추며, 천천히 오크를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이거… 괜찮을까요?”

이때까지 죽이고 베어 넘긴 오크만 해도 10마리가 넘었는데, 여전히 주변에는 초록색 피부가  많이 보였다.

“후퇴해, 재정비해서 다시 싸우는 게 좋을  같다. 이런 난전은 우리에게 좋지 않아.”

삐이이이이이이-!

그런 그녀의 판단이 맞았는지, 갑자기 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퇴, 후퇴해라!”

오러가 담긴 칼리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외침에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던 모험가들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엄호 해드릴게요! 폭발해라!”

나는 폭발 화살을 마구잡이로 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오크를 견제했다.

“타올라라!”

“파이어 월!”

조금이나마 마력이 회복 된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해, 오크들의 움직임을저지했다. 언덕 주변에 불이 피어오르자, 놈들도 더 이상 접근하지 못했다.

그렇게, 모험가 부대의  전투는 패배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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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본부로 돌아온 모험가 부대의 분위기는 절망적이었다.

“그냥 도망칠까? 저쪽에 3왕국 연합은 제국의 영향이 닿지 않아, 우리 같은 탈영 모험가들도 받아준다고 하던데.”

“거기까지는 어떻게 가게? 그러다가, 추적대한테 잡혀서 목 걸린다.”

“여기 있으나, 도망치다가 걸려서 목 걸리나. 어차피, 둘 다 개죽음인데.”

너무 압도적으로 패배한 탓인지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도망치자는 말이 가장 많이 나왔다. 칼리는 그걸 모두 들었으면서도, 차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오히려, 길드장이 먼저 안토니 백작을 귀족 회의에 고발한다고 해서 다행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 모험가들의 손에 죽었겠지.”

“어째서요?”

“모험가 부대의 경우 전투에서 패배할 경우, 지휘관을 죽이는 일도 더러 있다. 특히나, 이렇게 지휘관의 실책으로 일이 벌어지면… 대게는 모두 죽임을 당하지.”

“칼리에 대한 원한보다는, 원인 자체를 제공한 백작에 대한 원한이 더  거네요.”

“그래. 하지만, 이러한 여론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안토니는 리벨룸에 있지만, 칼리는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살벌한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회의는 하루가 채 가기도 전에 다시 열렸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막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정말로, 미안하다. 이번 일이 무사히 마무리된다면, 도시로 돌아가 일을 마치고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

모험가들이 모인회의장에서,그녀는 허리를 깊게 숙여 사과했다. 이때까지 냉철해 보였던 그녀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진심 어린 사과에도 모험가들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뻔뻔한 건 알고 있지만, 우리는 다시 방어선을 짓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방어선 얘기를 꺼냈으니, 여론은 순식간에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할 말이야!?”

“이거 진짜 미친  아니야!?”

짙은 살기가 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눈빛으로만 사람을 죽일  있었다면, 칼리는 골백번은 죽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럼, 이대로 무력하게 모두 죽을 생각인가?”

“도망치면 되지! 저쪽 3왕국 연합은 우리 같은 모험가들도 받아준다고 하던데!”

낮에 모험가들 사이에서 화제거리였던 이야기다.

“3왕국까지는 대체 어떻게  생각이지?”

“그거야 도시에서 마차를 타면….”

“어디서?”

“리벨룸에서 타면….”

모험가의 말을 끊으며 칼리는 날카롭게 말했다.

“탈영자인 너희가 리벨룸에서 마차를 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토벌전에 나간 모험가 일부가 도시로 간다면,병사에게 잡혀 심문을 당하겠지. 그럼, 그 과정에서 너희가 탈영자라는 사실은 바로 밝혀진다.”

“그럼, 다른 도시에서 타면 되잖아!”

“대평야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리벨룸을 제외하곤 없다. 그 이외에는 마차를 타고 며칠은 가야 나오지. 가까운 마을에 가서 얻어 탄다고 해도, 도시를 거쳐서 가는 순간, 바로 잡히게 될 거다. 탈영 모험가는 마법 서신으로 바로 전달이 되니까.”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설령, 정말 운 좋게 국경 근처에 갔다고 해도, 몰래 탈출하는 건 불가능할 거다. 국경 수비대는 결코 만만한자들이 아니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탈영을 하고 싶나?”

“그럼, 뭐, 어쩌라는 거야! 이대로 뒤지라고!?”

악에 바친 모험가의 말에, 칼리가 이번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이 아니다. 이번 전투는 분명, 나의 실책으로 인해 패배했다. 그것에 대해선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대가도 치를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살아나가야 하지 않겠나?”

“어떻게?”

리데우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수가 꽤 많이 줄었어. 부상자도 많고. 원래의 인원으로도 불가능에 가까웠던 마당에, 이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싸워 이기겠다는 건데?”

“이기겠다는 게 아니다.”

“그러면?”

“전에도 말했지만, 다른 모험가 길드에서 지원이 오기로 했다. 서신을 받기로는 며칠이면 온다고 하더군. 우린 그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

“그게 말이 쉽지. 그 새끼들 늑대  봤어? 벽을 세워놓아도, 그걸 그냥 뛰어넘어 온다고!”

칼리는 잠시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바라봤다.

‘갑자기, 나는 왜?’

그녀는 무언가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내더니 말했다.

“그건 족장의 주술 때문에 그런 거다. 족장만 처리한다면, 별 문제는 없을 거다.”

“그러니까, 지금  족장을 못 잡아서 이 사단이 난  아니야? 하이 오크가 지키고 있는 족장을 대체, 어떻게 죽일 건데?”

“저격.”

“뭐?”

“저격으로 죽이면 된다.”

“저격? 저격으로 대체 어떻… 아.”

리데우나는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왜, 갑자기 나를 봐?’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내 등줄기를 타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겠지….’

“설마….”

“그래. 패배 이후, 우리가 압도적으로 패배한 이유를 계속 생각해봤다. 기습으로 인한 난전 때문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족장 때문. 오크는 대대로, 연장자에 대한 존경심이 강한 종족으로, 그런 연장자가 죽으면 사기가 크게 꺾이는 습성이 있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족장을 죽이는 별동대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 별동대의 핵심 모험가는 바로.”

‘아니겠지, 아니겠지, 아니겠지, 아니겠지?’

운명은 이렇게 살 수 있나, 인간에게 묻지 않는다.

“콰앙, 너다.”

선택의 여지 없이, 우리에게 짊어지게 한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사느냐는 우리의 몫이다.

“씨발.”

그래, 이제부터 어떻게 사느냐는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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