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5화 〉회의 (75/84)



〈 75화 〉회의

“그게 정말 사실인가?”

“그러면, 우리가 거짓말을 하겠어?”

임시 기지까지 곧바로 달려온 우리는 칼리에게 곧바로 가, 오크들의 전력을 모두 설명했다.

“거짓말은 오히려 안토니, 그 씹새끼가 한 거지.”

리데우나의 직설적인 말에 막사 내부가 싸늘해졌다. 칼리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말은 신중하게 하라고, 저번에도 조언을 했을 텐데?”

“뭐, 내가 틀린  했어? 보상금이 왜 이렇게 높게 측정됐나 했더니, 진짜로 우리를 소모품으로  생각으로 보낸거야.  새끼가 우릴 고기 방패로 내세운 거라고! 길드장, 너도 알잖아?”

“그래서?”

“뭐?”

칼리의 싸늘한 한 마디. 리데우나는 어이없다는 듯 길드장을 노려봤다.

“설령, 안토니 백작이 우리를 속였다고 한들.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거지?”

“당연히, 지금 당장….”

“도시로 후퇴하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왜, 안 되는데?”

“우리가 안토니 백작에게 받은 임무는 대평야에서 오크 부족을 저지하는 것이다. 소집령에 응해, 이곳에 참가한 이상. 그것은 의무가 된다. 즉, 이곳에서 탈주하는 순간. 우린 탈주병이 된다는 소리다. 알다시피, 탈주병은 즉시 처분이지.”

“그럼, 다른 도시로 도망치면 되잖아? 우리 정도의 실력자들이라면 다른 지부에서 두 팔 벌리고 환영할 거라고. 왜, 범죄 모험가들도 그렇게 하잖아?”

“그건 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도시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데, 그걸 모른척하고도망친 모험가를, 다른 도시에서 받아줄 거 같나?”

모두 맞는 말이긴 했다.

“도망치려고 했다면, 소집령이 내려왔을 때, 진작 도망쳤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정상 참작을  여지는 있었겠지. 하지만, 그곳에 참가하고, 이미 이곳에 온 이상. 넌 이미 대평야를지켜야 할 의무가 생긴 거다.”

칼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망치기엔 이미 늦었단 말이다.”

막사 안에 전에 없는 싸늘함이 감돌았다.

‘사신이 온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나.’

새로운 신이 왔다고해서 좋아했는데,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닌 듯했다.

“도망치겠다면 잡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루살이와 다를 바가 없을 거다.”

“그럼, 이대로 뒤지라고?”

“물론, 그럴 생각은 추후도 없다. 도시에다가 최대한 지원 요청을 보내고. 다른 모험가 지부에도 지원 해달라는 서신을 보내보도록 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다.”

“알았어….”

“보고를 끝냈다면 나가보도록 해라.  일이 많겠군.”

우리는 터덜터덜 막사 밖으로 나왔다. 임시 본부의 분위기는 아직은 밝았다. 물론, 저것도 곧 사라지겠지만.

“우리는 먼저 텐트로 돌아가볼 게.”

“네, 수고하셨어요.”

압도적인 힘은 축 늘어진 채로 막사로 돌아갔다.

“저희도 돌아가죠.”

“그래.”

예상 외로 리오테르와 나는 담담하게 텐트로 돌아갔다. 이사벨라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아직 치료소에 있는 거겠지.

리오테르와 나는 나란히 텐트에 누웠다.

“누나는 안 무서워요?”

한동안 이어지던 침묵을 깬 건, 의외로 나였다.

“뭐가 말인가?”

“죽는 거요.”

“글쎄다.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기사 생활 때는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생각 할 겨를이 없었고, 모험가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여유가 생긴 건, 비교적 최근이니까. 내일을 보고 살기엔, 하루가 너무 위태로웠으니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리오테르의 삶은 험악했나 보다.

“그럼, 지금 생각하면 어때요?”

“옛날이었다면 두려워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두렵다.”

“왜요?”

리오테르는 옆으로 몸을 돌리더니 내 뺨을 매만지며 싱긋 웃었다.

“네가 있으니까.”

“아….”

“기사 생활을 그만두고 세상으로 뛰쳐나왔을 때, 내겐 목적도 목표도 모두 없었다. 그저 모험가로서 살다가 언젠간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강함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그것 역시 막연한 것이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서 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지켜야 사람이 생겼고, 그리고 강해져야 할 이유도 생겼다.”

리오테르의 양손이  손을 꽉 붙잡더니 말했다.

“난 여기서 죽을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러니, 너도 절대 죽지 마라. 알겠나?”

“저보다는 누나를 더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실. 나만 조심하면 되는 일이긴 하지. 하지만, 그래도 조심해라. 알겠나?”

“알겠어요.”

우리는 서로를정열적으로 바라봤다. 내가 눈을 감자, 리오테르의 얼굴이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서로의 입술이 부딪히려는 순간.

“나 왔어~”

갑자기, 이사벨라가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우린 급히 서로를 밀어냈고, 덕분에 둘다 텐트 기둥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쿵-

“뭐야, 둘이 뭐하고 있어?”

“아,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

그녀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딱 중앙에 누웠다.

“뭐하고 왔어?”

“치료소에 있는 사제한테 간단한 수업이랑 실습 좀 하고 왔어.”

“수업에선 뭘 가르쳐 줬는데?”

“내가 모르는 신성 마법 몇 개를 가르침 받았지?”

“신성 마법을말인가?”

“응… 아니, 네. 뭐가 이상한가요?”

“교회에서 공식으로 받아들인 사제가 아니라면, 가르침을 주는 건 금지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걸 알려줬다고?”

“아,  사제도 저한테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근데, 이제부터 많이 바빠질 건데, 자기 혼자 일하려면 신성력도 부족하고 피곤하니까, 알려준 거라고 하던데요?”

“그런가?”

“네. 그래서, 가르침 받은 건, 남한테 비밀로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지금 우리한테 와서 말하고 있네?”

“에이, 너랑 언니는 괜찮잖아.”

“언니?”

“어어, 네. 왜, 왜요? 그렇게 부르면  되나…요?”

잔뜩 쫄은 모습. 이사벨라가 저렇게 소심하게 말하는 건 처음 봤다.

‘같은 여자라서 그런가?’

리오테르는 씩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선만 지킨다면, 마음대로 불러도 좋다.”

“그러면, 앞으로 언니라고 부를게요!”

“그래.”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훨씬 화기애애한 분위기. 우린 텐트에 나란히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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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밝은 분위기와 달리, 오늘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니, 매우 안 좋앗다.

“오크가그렇게 많다고?”

“씨발,이거 진짜 봅됐네….”

오크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험가들 사이에서 퍼진 것이다. 길드장이 직접 말했을 리는 없으니, 아마 리데우나가 퍼뜨렸을 것이다.

덕분에, 임시 본부의 분위기는 초상집 수준으로 암울했고 동시에 험악했다.

분위기는 곧 사기를 나타냈고, 지금 이 상태라면 단체로 무단 이탈을 하거나, 반란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결국, 칼리는 공식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른 아침, 좁은 회의장이 잔뜩 화가 모험가들로 가득 찼다. 그런 험악한 분위기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들의 마음이 어떤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직감하고 있었는지, 그녀는 어제 리데우나에게 했던 얘기를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 말했다.

모든 걸 일목요연하게 설명했음에도 모험가들은 여전히 불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러한 불만은 그녀의 마지막 말로 종식됐다.

“이 일이 무사히 완료된다면, 도시에 돌아가는 대로, 길드장의 신분으로 안토니 백작을 귀족 회의에 고발해,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

“뭐?”

“미친.”

파격적인 발언.

비록, 칼리가 모험가 길드장이라는 높은 직위에 있긴 했으나, 그게 신분으로서 높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신분의 차이는 신이 점지해줬다고 할 정도로, 아주 엄격하고 보수적인 세상이었다. 그런데, 귀족도 아닌 그녀가 귀족 회의에 고발한다?

‘도박이랑 다를 바가 없지.’

지금 사태를 넘기기 위한 거짓말인가 싶었지만, 모험가들의 분위기를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길드장은 한다면 하는 여자잖아.”

“다른 모험가 지부는 범죄자라도 실력만 좋으면 받아주는데, 여기는 넘어오는 순간, 바로 즉결 처형해버리잖아.”

이때까지 대체 어떤 행보를 보여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에는 신뢰성이 실렸고, 덕분에 모험가들의 불만은 빠르게 잠식됐다.

“그러니, 부디. 모두 최대한 많이 살아남아라. 살아남아서, 함께 돌아가자. 그럼, 이상.”

그 말을 끝으로 칼리는 유유히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잡는 모험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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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원래 이렇게 쉽게 넘어  사안이에요?”

회의장 밖으로 나온 나는 아직도 의문이 들어, 리오테르에게 물었다. 모험가가 된지 얼마 안  이사벨라도 궁금하다는 바라봤다.

“우리가 리벨룸의 거주민이라면 이렇게까지 나서지 못하겠지만, 우린 모험가다. 귀족들의 수하가 아닌, 공식적으로 고용된 형태지. 그런데, 고용주가 허위 정보를 흘려, 모험가들을 위험으로 몰았다? 이건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왜요?”

“모험가와 도시는 서로 상생하는 관계다. 도시가 없으면 모험가는 일할 곳이 없으며, 도시는 모험가 없이, 그 많은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

“도시의 주둔군을 사용하면 되잖아요?”

“대도시라면 모를까. 기본적으로 도시를 운영하는 영주들은 주둔군을 많이 두진 않는다.”

“왜요.”

“돈이 많이 드니까.”

“아.”

“인건비부터 시작해, 사용하는 무기와 입고 있는 갑옷도 만들어야 하며, 그걸또 보수해야 하지. 그 외에도 식비와 보유하고 있는 병사에 따라 거두는 세금까지. 병사에 드는 돈이 이 정도인데, 그보다 높은 기사라면?”

“훨씬 많이 들겠죠.”

“그래, 그래서. 도시에는 최소한의 치한을 유지하기 위한, 병사와 기사만을 고용한다. 그래야지. 최대한 유지비를 줄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모험가가 필요한 거군요. 그 모든 걸 처리하기엔 병사의 수도 부족할뿐더러, 애초부터 힘드니까.”

리오테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귀족이라고 해도,모험가에게 허위 정보를 흘려 사지를 모는 건 선을 넘은 행동이다. 아마, 무사히 돌아가기만 한다면, 리벨룸은 모험가들에게 신뢰를 잃게될 거다. 그렇게 되면, 도시가 무너져가는 건 순식간일 거다.”

“오갈 데 없는, 범죄자 모험가를 받는 방법도 있잖아요.”

“그것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범죄자 모험가를 받으면, 치안은 급속도로 나빠질 테니까. 그렇게 되면, 거주민들은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되겠지.”

“거주민이 도시를 마음대로 떠나도 돼요?”

“같은 왕국이라면 범죄지만, 다른 왕국이라면 두  벌리고 환영할 거다. 새로운 거주민이 들어온다는 건, 거둘 세금 역시 많아진다는 소리니까. 명분 역시 확실하니까. 꺼릴 것도 없지.”

“정치는 정말 머리 아프네. 나는 저런 복잡한  생각도 하기 싫어.”

이사벨라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데, 나도 동감하는 바였다.

“그래서, 길드장이 저렇게 고발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왕국의 입장에서도 도시 하나를 잃는다는 건, 막대한 손실이니까.”

“그럼, 정말로 길드장이 안토니 백작을 고발하겠네요?”

“도시의 주인이 바뀌는 일은 흔치 않지만,사안이 사안인 만큼 성공할 거다.”

“귀족이라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당연히 알 텐데, 왜 이런 행동을 한 걸까요? 도시를 끔찍이 아껴서?”

무슨 다크나이트도 아니고. 설마?

“뭐, 우리가 여기서 모두 죽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게 아니면 길드장이 이렇게 나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실제로, 평민의 귀족 고발은 쉽게 일어나지 않으니까.”

안일함이 안토니 백작을 잡았다는 소리다.

“그러면, 일단은 최대한 많이 살아남아야겠네요. 모험가들이 많아야지, 길드장의 말에도 신뢰가 붙을 테니까.”

“아, 그래서. 마지막에 함께 돌아가자고 했구나.”

“그래. 그러니, 우리 모두. 함께살아가서 돌아가자. 알겠나?”

“알겠어요.”

“저는 죽을 일 없으니까, 언니나 조심해요.”

리오테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럼, 텐트로 돌아가 다시 쉬도록 하지.”

그렇게, 오전을 무료하게 보내고 맞이한 오후.

“출전이다!”

모험가 부대는첫 출전을 맞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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