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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화 〉정찰 (74/84)



〈 74화 〉정찰


정찰이라고 해서, 분위기가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다. 주변이 탁트인 들판을 특성상, 경계 할 요소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말이야?”

사실, 그것보다는 쉴 틈 없이 말을 걸어오는 압도적인 힘의 파티원들이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어찌나 말이 많은지, 남녀가 바뀐 게 많는가 싶을 정도였다.

‘저쪽 세계로 치면 상남자인데 말이지.’

하긴, 상남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꼭 말이 적으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이야기에 지쳐갈 때쯤이었다.

쿠르아아악-!

크게 울리는 포효 소리.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던 우리는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일제히 멈춰 섰다.

정면을 보니, 초록 피부의 거대한 덩치들이 우리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수는 우리와 같은 다섯 마리.

“뭐, 뭐야?”

“뭐긴 뭐겠어, 전투지!”

리데우나는 투구를 내려 닫고는 등에 매고 있던 대검을 망설임 없이 뽑아 들었다. 다른 파티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습과 다를 바가 없는데. 괜찮겠나?”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는데, 그녀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수가 많으면 몰라. 우리랑 같으면 그냥 이겨, 가자!”

그녀들은 마찬가지로 소리를 지르며 오크들을 향해 달려갔다. 리오테르는 황당하다는  보다가, 뒤늦게 따라갔다.

“그럼, 지원 부탁한다.”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석궁을꺼내는 사이, 오크와 파티원들이 격돌했다.

콰앙-!

철제 장비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판 전체에 울려 퍼졌다.오크의 덩치가 심상치 않았는데, 그녀들은전혀 밀리지 않았다.

콰악-!

아니, 오히려 오크들이 힘에 밀려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미쳤네.’

리오테르 역시 공격을 가볍게 피해내며 오크를 몰아치고 있었다. 확실히, 네 명 전부 실버급 모험가라서 그런지, 전력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쿠르륵!

남은 오크 한 마리가 무기를 꼬나들며, 리오테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건 내가 처리해야 한다.’

바람의 힘을 화살에 담은 다음, 놈의 머리를 조준했다. 그리고는.

“불어라!”

투웅-!

방아쇠를 당겼다. 화살이 빛이 된  잠시 사라지더니 곧.

콰악-!

쿠르악!

놈의 미간에 정확하게 박혀들었다. 오크는 몸을 비틀거리더니 곧 바닥에 쓰러졌다.

‘미쳤네?’

정령석과 감응력. 거기에 스탯의 상승까지. 세 가지가 모두 합쳐져 시너지를 발휘하자, 진짜 순식간에 엄청 강해졌다.

이전과는 거의 두 배 이상의 차이.

‘이 정도면 실버 노려볼 수 있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파티원들과 전투를 하던 다른 놈들 역시 뒤이어 쓰러졌다.

쿠웅-!

“어이, 도와줄까?”

이미 처리를 마친 리데우나가 리오테르에게 말했다.

“필요… 없다!”

촤악-!

그녀의 검에 푸른 기운이 솟아오르더니, 곧 오크의 목을 잘라버렸다.

“후우.”

무기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검집에 넣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멋있었다.

“오, 뭐야. 오러를 사용할  알아?”

“깨우친 건, 비교적 최근이다.”

“그래도, 대단하네. 그거 못 깨달아서, 실버에 박혀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칭찬이 낯선지 리오테르는 볼을 긁적였다.

“아, 그리고. 너도 대단했어!”

리데우나는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저격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령을 다룰  있을 줄이야.”

“어, 제가 말했었나요?”

“이때까지 바람  점 불지 않던 들판에 갑자기 강한 바람이 일어났다? 그러면, 안 봐도 정령이지. 그것보다정령 궁수라… 그 나이에 대단하네.”

오랜만에 듣는 칭찬이라서 그런지, 많이 어색했다. 리오테르는 칭찬을 잘 해주는 스타일이 아니니까.

“근데, 이 오크들은대체 뭘까요?”

“뭐, 장비 상태로 보나, 마리 수로 보나, 얘들도 정찰 나왔다가 우리랑 부딪힌 거 같은데?”

“그래요?”

“어. 오크들도 전략이라는 걸 쓰니까.”

“그럼, 이렇게 마주쳤다는 건….”

“아마, 이 근처에 오크 부족이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

“그럼, 후퇴하고 보고하러 가는 좋을까요?”

“아마, 그랬다가는 가서 싸대기 맞을 걸.”

“왜요.”

“우리가 첫 정찰인 만큼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가야 해. 다음 정찰 때는 이렇게 경계가 약하지 않을 테니까.”

“아.”

“적어도, 정확한 부족의 위치와 오크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그 정도는 알아가야할 거야.”

그렇다면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그럼, 더 나아가죠.”

모두 재정비를 마친 다음, 다시 들판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오크 부족을 발견할  있었다.

수십 개의 천막. 그리고, 수백 마리는 족히 돼 보이는 오크들. 그 중에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흘리는 오크도  섞여 있었다.

“봅됐네….”

리데우나가 작게 중얼거리는게 들려왔다.

“이건 우리한테 말했던 수보다 훨씬 많은데?”

“안토니 그 새끼가 수를 속여서 알려준 모양이야. 보상이 왜 이렇게 후하나 했더니, 진짜로 목숨값이었네. 빨리, 후퇴하자.”

“얼마나 있는지 안 세도 되요?”

“이 정도 수라면 세는 게 무의미해. 지금은 빨리 돌아가서, 지원 요청을 해야한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어. 빨리 돌아가자.”

그렇게 몸을 숙인  슬쩍 방향을 돌릴 때였다.

쿵쿵쿵쿵쿵-!

오크 부족에서 커다란 북소리가 울려퍼지며, 갑자기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건?”


“씨발, 꿰뚫음의 주술이다. 뛰어!”

압도적인 힘의 파티원들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들판을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둘 역시 뒤이어 달렸다.

“이게 대체 뭐에요!”

“위치를 밝히는 주술이야! 오크 부족장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챈모양이야!”

“부족장은 약하다면서요? 그러면, 딱히  무서워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쿠구구궁-

곧, 지면이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에이 씻팔, 직접 보면 알겠지. 모두 전투 준비!”

갑자기, 모두 멈춰서더니 뒤로 돌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나도 일단 그들을 따라 행동했다.

쿠구궁-!

“늑대?”

오크 부족 방향을 바라보니, 오크들이 커다란 늑대에 탄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어째서 리데우나가 도망치지 않았는지 단번에 알  있었다.

“선봉대를 빠르게 처리하고, 바로 후퇴하는 방향으로 한다!”

“오케이!”

“깃들어라.”

화살에 바람의 힘을 담은 다음, 맨 앞에서 달려오는 오크를 조준했다. 척 봐도, 다른 오크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녀석.

투웅-!

방아쇠를 당기자, 화살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정확한 궤도를 타고 날아갔으나.

티잉-!

“뭐!?”

놈은 검을 휘둘러,  화살을 막아냈다. 놈의 어금니가 씩하고 올라가더니, 혀를 낼름거리는 게 보였다.

‘이걸 막아?’

아무래도 하이 오크로 보였다.

“그럼, 이것도 막을 수 있나 한 번 보자. 깃들고 폭발해라.”

두 가지 힘을 동시에 담은 화살을 장전해, 곧바로 발사했다.

투웅-!

아까와 같은 궤적. 그러나, 놈은 늑대를 손으로 잡더니 갑자기 오른쪽으로 확하고 방향을 틀었다.

“불어라!”

바람을 일으켜 화살을 조종해보지만, 워낙 급커브라서 하이 오크를 맞추진 못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오크 워리어에겐 적중시킬 수 있었다.

퍼엉-!

커다란 폭발과 함께, 놈의 고기 조각이 사방에 퍼졌다. 늑대와 함께 폭사한 것이다.

“뭐야, 너 정령  개를 동시에 다룰 수 있어? 그것도 인간이?”

나는 대답 없이  웃으며, 또 다른 화살을 장전했다.

‘하이 오크는 못 맞춰.’

화살은 막아내고, 폭발 화살도 기운으로 감지해, 피해내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굳이 놈을 맞출 필요가 있나?

‘다른 녀석들 수만 낮춰도, 승산은 우리한테 있어.’

 개의 화살에 폭발의 힘을 담은 다음, 곧바로 연사했다.

투두둥-!

정확하진 않았으나, 그걸로 충분했다.

퍼버벙-!

애초부터, 폭발은 범위 공격이니까. 두 마리의 오크 워리어가 폭발에 휘말려 사라졌다.  마리는 운 좋게 살아남았으나, 늑대가 죽어버렸다.

우리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대부분이 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하이오크와 워리어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하이 오크를 맡는다, 나머지는 너희들이 맡아!”

리데우나는 커다란 대검을 들어올리며, 하이 오크를 향해달려들었다.

우웅-!

그녀의 몸 전체에 푸른 오러가 맺힌다. 커다란 늑대가 아가리를 들이밀고, 하이 오크의 도끼가 당도하는 순간.

촤악-!

대검이 도끼를 밀어냄과 동시에 늑대를 일도로 양단해버렸다. 하이 오크의 당황한 표정. 놈은 그대로바닥에 고꾸라졌고, 결국.

푸욱-!

일어나지도 못한 채, 대검에 목이 베어졌다.

‘미친.’

골드 승급전을 앞두고 있다는 건, 허세가 아닌 듯했다. 엄청난 박력.

쿠륵!

자신들의 대장격인 하이오크가 순식간에 당하자, 워리어들이 당황한 모습이보였다. 급히, 늑대의 방향을 틀어 도망치려고 해보지만.

“보내주겠냐고!”

리오테르와 아바, 소피아의 무기가 늑대를 베어 넘기더니,  떨어진 워리어들을 처리했다.

“빨리 이동하자!”

추격조를 모두 처리한 우리는 재정비 할 시간조차 못 가진 채, 임시 본부를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우우우우-!

뒤에서 들려오는 늑대들의 울음 소리.

“폭발해라!”

화살에다가 힘을 담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난사했다.

콰과광-!

눈 먼 공격이었지만, 놈들에게 위협이 되기엔 충분했다.

“이거 도망칠 수 있는  맞아요!?”

오크들이 어찌나 집요한지. 한참을 달렸는데도 놈들의 추격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몰라! 일단, 절대 멈추지 마!”

달리며 뒤를 돌아보니, 열 마리가 넘는 오크 추격대가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뒤로는 오크들이 달려오는데, 그 수가 만만치가 않았다.

‘멈춰서 싸우는 순간, 다른 녀석들까지 합세하겠구나.’

계속해서 화살을 쏘며 도망쳐보지만,  효과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우리 모두 잡히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희생해야만 한다.

최악의 상황.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고 있을 때, 바람에 휘날리는 기다란 풀이 눈에 띄었다.

‘이거라면….’

나는 살짝씩 속도를 늦춰, 무리의맨 뒤로 왔다.

“뭐하는 건가, 콰앙!”

리오테르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지만, 지금은 설명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처음인데 할 수 있을까?’

아니, 지금은 해야만 한다.하지 못하면 누군가는 죽는다. 긴장감에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잠시, 숨을 내쉬며 최대한 안정을 되찾았다.

마력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불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타올라라!”

시동어를 내뱉음과 동시에 모으고 있던 마력을 방출해냈다. 그러자.

화아아아악-!

몸의 뒤로 칼날과도 같은 불꽃이 솟아오르더니, 주변에 있던 풀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불어라!”

그 상태에서 오크들을 향해 바람을 일으켰다. 불씨가 확하고 날아가더니, 놈들이 달려오는 방향의 풀에 옮겨 붙었다.

화르륵-!

넓은 들판이 순식간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방이 풀이라서 그런지, 화마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쿠륵-!

사태가  지경까지 가자, 우리를 추격해오던 오크들도 멈출 수밖에없었다. 저대로 둔다면, 오크 군락까지 가는 건 순식간일 터였다.

놈들은 늑대에서 급히 내리더니, 옮겨 붙기 시작한 풀들을 잘라, 불을 끄기 시작했다.

“잘 있어라, 병신들아!”

주황빛으로 타오르는 들판. 우리는 불을 끄는 오크를 뒤로한 채,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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