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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화 〉정찰 (73/84)



〈 73화 〉정찰

모험가들은 파티끼리 모여, 도로를 따라 쭉 걸어갔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대화가 오갔으나, 행군이 몇 시간이나 지속되니 모두 입을 다물었다.

수십 명이 넘는 모험가가 단체로 도로를 따라 걷는 모습은 사뭇 비장한 분위기가 흘렀다. 들짐승이나 산적도 우리를 보고 도망치지 않았을까?

다그닥-

“안 힘들어?”

나와 리오테르도 묵묵히 걷고 있을 때, 이사벨라가 말에  채 물었다. 길드에서 제공해준 것으로 사제라서 얻은 듯했다.

‘실버급 모험가도 걷고 있는데, 아이언급 사제한테는 말을 준다라.’

사제가 얼마나 높은 신분인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는 상황이었다.

“딱히,  정도야 모험가 일하면서 보통이니까.”

“그래? 대단하네.”

행군은 밤이 되어서도 지속됐으나, 불만을토하는 모험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해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쯤.

“도착이다.”

우리는 대평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나 급하게 출발하나 했더니, 도보로 하루면 올 수 있는 거리라서 그런 듯했다.

“길드에서 제공해준 텐트를 설치해 휴식을 취하도록 해라. 오늘은 불침번이 없지만, 내일부터는 있을 것이다. 이상.”

별다른 안내 사항은 없어, 우리는 편히 쉴 수가 있었다.

“오, 온도 조절에다가 청소 마법까지 걸려 있는 텐트네요.”

보통, 이렇게 단체로 주는 물건은 질이 낮거나, 하자가 있기 마련인데. 길드에서 준 물건들은 모두 고급 물품이었다.

“목숨 걸고 싸우는 이들에게, 쓰레기를 줄 순 없는 노릇이니까. 게다가, 이런 것조차 제대로 안 챙겨주면, 모험가들이 도시를 떠날 수도 있다. 그러면, 도시의 경제에 큰 타격이 생기지.”

“그렇군요.”

몸을 씻는 건, 클린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로 대신하였다. 음식 역시 그때 도리스가 먹었던 마법사의 음식이었다. 덕분에, 따로 기력을 낭비할 만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편하긴, 엄청 편하네.”

평소에 시골에서 살아 온 이사벨라 역시 놀라며 하나하나 이용했다.

“근데, 편하긴 한데, 심적으로는 되게 불편하다.”

그녀가 숟가락으로 스튜를 떠먹으며 말했다.

“뭐가 불편한데?”

“그냥, 뭔가 최후의 만찬 느낌인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곧 죽을 수도 있으니, 호사라는 호사는 다 누려봐라. 이런 느낌?”

무슨 말인지 알겠다.

‘사형수가 죽기 하루 전날에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주는 거랑 비슷한 건가.’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그런 느낌이긴 했다.

“그런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최대한 기력을 비축할 생각만 해라. 전투가 시작되면, 이럴 시간조차 없을 거다.”

리오테르의 말에 우리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을 먹었다.

식사가 모두 끝나자, 모험가들은 각자의방식으로 휴식을 취했다. 제법 가벼운 분위기이긴 했으나, 잔잔한 긴장감이 계속해서 머물고 있었다.

[‘성신’님이 모든 스탯을 ‘1’ 후원하였습니다.]

[힘 : 15]
[민첩 : 14]
[체력 : 13]

“오.”

정말 오랜만의 후원이었다.

[성신 : ㅇㅈㅇ ㅁ ㅈㄷ ㄱㄷ ㅂㅅ]
[여신 : 이전에  줬던 것들 보상이라네.]

채팅이 떠오르는 걸 보니, 여신도 함께 있었다.

“진짜 오랜만이네요. 두 분 다 어디가 계셨어요?”

[여신 : 뭐, 일하느라 바빴지.]
[성신 : 다른 채널 보느라 바빴던 거면서 ㅋ,,]
[여신 : 너는 왜 나 공격할 때만 채팅 제대로치냐? 뒤질래?]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신들이었다.

“시끄러우니까 싸우지 마세요. 아니, 그것보다 여신님. 다른 채널 보러 가셨다고요?”

신튜브니, 신클립이니, 이런 걸 들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 말고도 다른 채널이 있나 보다.

“저 말고 이세계로 온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여신 : 그, 그게….]
[성신 : 이셰계에 온 사람은 너밖에 없지만, 세계가 여기만 있겠어? 다른 세계에 있는 그 사람 채널 보러  거지.]

갑자기, 성신이 채팅을 아주 바르게 친다.

“저 말고도 다른 사람을 또 보냈어요?”

[성신 : ㅇㅇ 징한 년이지?]

“와….”

진짜로 징한 년이긴 하다.

[여신 : 그, 그게… 방송이 항상 재밌진 않잖아. 왜, 너도 아무리 좋아하는 스트리머라고 해도, 중간에 자리 비우거나 오디오 비워서 재미없을 때가 있잖아.]

맞는 말이긴 했다.

[성신 : 그렇다고 하기엔, 자리를 좀 오래 비우지 않았나ㅋ,,]
[여신 : 너 아가리 안 닥쳐?]
[성신 : 이미 다물고 있는데? 손가락으로 치고 있는데, 아가리는 무슨 아가리 ㅋ,,]

저번에 느꼈지만, 싸우는 수준이 거의 애새끼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저 말고도 이렇게 무고하게  사람이 또 있다고요?”

그 사람도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신 :  사람은 죽어서 환생한 거니까. 무고하지는 않은데?]

“저는요?”

[여신 : 너는 무고하긴 하지. 그래서, 내가 잘해주고 있잖아!]

“여신님보다 성신님이 훨씬 잘해주고 계신데요?”

[성신 : ㄹㅇ ㅋㅋ,  뻔뻔하네 ㅋ,,]
[‘여신’님이 모든 스탯을 ‘2’ 후원하였습니다.]

[힘 : 17]
[민첩 : 16]
[체력 : 15]

“하지만, 이렇게 후원을 해준다면, 그걸로 오케이 아니겠어요?”

[성신 : ㅋ,,]

여신들이 좀 떠들어줘서일까, 조금 긴장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때까지 다른 사람 방송보다가 이번엔  재밌을 거 같으니까, 이리로 왔다는 거네요.”

[여신 : ㅇㅇ, 왜 꼬와?]
[‘여신’님이 정령 친화력을 후원하였습니다.]

“그럴 리가요~”

[성신 : ㅋㅋ,,]

성신이 웃는 게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원래 사람이 이익 따라서 움직이는  아니겠나.

‘덕분에, 오늘 스탯도 많이 오르고, 정령 친화력도 올랐네.’

정령을 좀 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아마, 이 다음의 전투에서 많은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오랜만에 신들과 소통하며 대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새로운 신이 입장하였습니다!]
[시청신 : 3명]

“어?”

정말 오랜만에 새로운 신이 들어왔다.

[사신 : 어이, 성신.]
[성신 : 사신, 어서오고.]

성신이 아는 신인지 먼저 말을 걸었다.

“두 분 아는 사이세요?”

[성신 : 내가 불렀으니까 ㅋ,,]

“아, 그래요?”

[사신 : ㅇㅇ 이 방송에서 생명체가 많이 죽을 거 같다고 하길래, 한 번 와봤지. 재밌다고 듣기도 했고.]

“아이구, 감사합니다.”

[성신 : 처신 잘하라구 ㅋ,,]
[여신 : 선 넘네...]

새로운 신이 난입하자, 저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하길래 채팅창을 꺼버리고는 텐트로 들어갔다.

리오테르와 이사벨라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나도 자야겠다.’

하루종일 행군을 해서인지, 아니면 여신들의 대화 때문인지 몸에 힘이 없었다. 그녀들 사이로 들어간 다음 그대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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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이 지나자, 모험가 부대는 본격적으로 본부를 차리기 시작했다. 자재들과 함께 높은 벽과 망루가 설치되는 게, 정말로 전쟁이라도 치를 법한 분위기였다.

“저희는 여기서 방어를 하는 건가요?”

건설 현장을 보며 리오테르에게 물었다.

“아닐 거다.”

“그러면요?”

“아마, 처음에는 정찰조를 보내, 오크 부족이 얼마나 이동했는지를 확인할 거다. 그런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전진하며 방어선을 세울 거다.”

“그럼, 이걸 짓는 이유가 뭐예요?”

“임시 본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급도 받아야 하고 부상자도 치료해야 하고 이리저리 처리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고?”

“도시 이전의 최후의 방어선이라고 봐야겠지. 여기까지 오크가뚫었다는건, 도시로 후퇴해야 한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생각보다 무거운 의미를 가진 장소였다.

“그럼, 저는 여기서 일하게 되는 건가요?”

이젠 제법 말을 높이는 데에 익숙해진이사벨라가 물었다.

“그래. 소중한 사제를 전장에 내보낼 순 없는 노릇이니까.”

우리는 임시 본부를 돌아다니며 잠시 구경했다. 시간이 지나, 오후가 되자, 길드 마스터가 우리를 소집했다.

“오늘 정찰을 나갈 정찰조와 불침번조를 정해야 한다. 먼저, 정찰조. 혹시, 자원 지원할 사람 있나?”

그 말에 모험가들이 수근거렸다. 리오테르도슬쩍 고개를 숙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콰앙.”

“네, 누나.”

“처음 정찰조에 지원할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첫 정찰조에요?”

“그래.”

“위험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처음이 비교적 안전하다. 오크들이 우리가 온 지 모르는 상태에서 행하는 정찰이니, 준비가 안 돼 있을 테니까.”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했다.

“물론,  정찰인 만큼, 예상보다  깊이 들어가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두 번째 정찰조보단 나을 거다. 그때는 오크들이 제대로 된 준비를 하고 추격해올 테니까.”

나보다 오크에 대해 더 잘 알고, 토벌전에 참가해  리오테르의 말이니, 대부분 맞는 말일 것이다.

“저야 아는 게 없으니까, 누나 마음대로 해요. 저는 믿고 따라갈게요.”

 말에 그녀가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리오테르가 바로 손을 들었다.

“우리가 지원하겠다.”

칼리와 모험가들의 고개가 일제히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뭐야, 남자야?”

“토벌전에 무슨 놈의 남자가 왔데?”

“따먹히려고 작정했나.”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말하려고 했으나, 청각이 강화돼서인지 모두 똑똑히 들려왔다.

“먼저, 지원한 그 용기는 가상하다고 생각한다만, 2인은 정찰조로는 너무 적다. 하려고 한다면, 최소 세 명은 더 충족돼야 한다.”

“아, 그러면. 우리가 할게.”



칼리의 말에 한 모험가가 손을 들었다.

“압도적인 힘. 너희들이 말인가?”

뒤를 돌아보니, 중갑을 풀로 착용한 여자들이 보였다. 각각 대검과 배틀액스, 거기에 모닝스타를 들고 있는데,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했다.

“응. 우리가 맡으면 안 돼?”

“상관은 없다만, 그런 장비로 오크들에게서 달아날 수 있을지가 의문이군.”

“우리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빠른 건, 길드장이 잘 알고 있잖아?”

“음, 뭐. 곧, 골드 승급전을 앞둔 너희들이니 괜찮겠지. 그래, 너희 다섯 명이서 오늘 정찰을 나가도록 해라.”

‘골드 승급전?’

심상치 않은 모습이긴 했는데,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들인가 보다.

“정찰은 오후가 되기 전에 출발하도록 해라. 그래야, 저녁쯤에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바로 준비하고 바로 출발해야겠네. 알겠어.”

“정찰조는 먼저 나가보고, 남은 파티는 불침번을 정하도록 하겠다.”

“나가도록 하지.”

리오테르와 함께 천막 밖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압도적인 힘이라는 파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외로 얼굴들이  예쁘네.’

덩치에 비해 얼굴이 험악하진 않았다. 오히려, 깜찍한 편.

“반가워. 나는 파티에서 전위직을 맡고 있는 리데우나라고 해. 실버급이긴 한데, 곧 골드급 승급전을 앞두고 있어.”

리데우나는 보라색 머리칼이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리오테르가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반갑다. 나는 파티장을 맡고 있는 리오테르라고 한다. 실버급 모험가다.”

“저는 원거리 지원을 맡고 있는 콰앙이라고 해요. 브론즈급 모험가고요.”

“어, 특이한 남자 모험가네?”

리데우나는 나를 보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디 가요?”

“이렇게 손잡아준 것도 그렇고. 존댓말 하는것도 그렇고? 남자인 네 앞에서  말은아니지만, 보통 남자 모험가들은 싸가지가 없거든. 특히, 너처럼 잘생긴 애들은 더 그래.”

그거야 많이 듣긴 했다.

“그래요? 저는  그러니까, 안심하세요.”

“푸흡, 자기 입으로 그런말을?”

“사실이니까요.”

그녀는 나를 흥미롭다는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 아바라고 한다.”

주황색머리인아바. 눈매가 살짝 날카로운 것에 비해 부끄러움이 많아 보였다. 지금 맞잡은 손도덜덜 떨리고 있었으니까.

“나는 소피아라고 해!”

초록색 머리의 소피아. 장난끼가 가득한 얼굴인데, 리데우나보다  텐션이 높아 보였다.

“그것보다 남녀 둘이서 2인 파티라니. 특이하네? 혹시, 연인 사이?”

“네. 연인이에요.”

내 대답에 세 여인이 꺅꺅 소리를 질렀다. 리오테르는 부끄럽다는  고개를  숙였고 말이다.

“맨 크러쉬, 뭔데~ 완전 멋있네.”



소피아가  팔을 툭 치는데, 뒤로  발자국 밀려났다. 모닝 스타를 사용하는 만큼, 힘이 엄청났다.

“아, 미안미안.”

“괜찮아요.”

“근데, 보이는 것보다 힘이 센가 봐?”

“왜요?”

“아니, 얘가 이렇게 툭쳤다가 넘어진 모험가가 한둘이 아니거든. 그중에는 여자도 많았늗네, 남자가 이걸 버티다니….”

“이 정도야, 뭐.”

이번에 신들이 와서 스탯을 주지 않았다면 나도 넘어졌을 거 같다.

“오~ 능력 있는 남자~”

“장난은 그만치고, 슬슬 정비하고 출발하는 게 어떻겠나.”

압도적인 힘의 파티원들과 장난을 치는  마음에 안 들었는지, 리오테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 미안미안. 슬슬, 보급팀에서 우리 물건 준비했을 테니까, 그럼 출발해보자.”

우린 보급팀이 있는 막사로 가, 필요한 물건들을 받아 등에 매고는 임시 본부 밖으로 나왔다.

“그럼, 가자.”

광활한 들판, 모험가 부대의  정찰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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