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토벌
“그래서, 대체 무슨 일 때문에 부른 거래?”
“나도 몰라, 이 새끼야. 불안해 뒤지겠네.”
길드 내부는 뭉글뭉글거리는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연초와 비슷한 물건으로 보였는데, 그만큼 불안하다는 의미이리라.
델리카를 제외한 우리 일행은 구석에 앉아, 길드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곧.
“오래 기다렸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면서 길드장인 칼 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소집령에 응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이번 소집령은 리벨룸의 주인이신 안토니 백작께서 직접 내리신 것으로 긴급한 사안이 발생해 내리게 되었다!”
“대체, 무슨 일로 부른 거야!”
모험가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긴 이야기는 필요 없을 테니, 바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그녀는 문서를 펼치더니 말했다.
“리벨룸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 대평야에서 오크 부족이 집결했다는 보고가 있다!”
“오크….”
판타지의 대명사와도 같은 괴물이었다.
“지금까지 보고 된 수는 100마리 이상! 그 중에는 오크 워리어와 하이 오크에 족장까지 함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칼리의 말에 길드 내부에 있던 여자들이 수근거렸다.
“놈들의 이동하는 방향을 보았을 때, 이대로 내버려 둘 경우, 도시와 맞부딪힐 가능성이 있어 이렇게 소집하게 되었다.”
“보상은 뭐야!”
“참가하는 사람에게 1골드는 무조건적으로 보장. 거기다, 오크 한 마리당 1골드, 워리어는 5골드, 하이 오크는 25골드, 족장을 잡는 사람에겐 100골드와 함께 원하는 유물을 하나 제공해준다고 하셨다!”
“유물을?”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네.”
“조용!”
칼리가 소리를 지르자, 길드 내부가 확 조용해졌다.
“오크는 브론즈급 이상의 괴물인 만큼, 브론즈 모험가들은 혼자서 활동하기보단 실버급 모험가와 함께 파티를 이루도록 해라. 출발은 2시간 뒤에 바로 하도록 하겠다. 그 전까지 길드 앞에 정렬하도록. 이상!”
그녀는 자신이 할 말만 하고는 바로 방으로 사라졌다.칼리가 사라지자 모험가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크 부족이라니, 이거 참 불안하네.”
“그러니까 말이야. 거기다가, 하이 오크까지 있다고 하니….”
“누나, 저희는 어떻게 할 거에요?”
“일단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리오테르의 말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관으로 돌아왔다.
“오크는 강한가요?”
“개체마다 강함의 정도가 다르긴 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브론즈 하급의 실력은 나오는 놈들이지.”
그런 괴물이 100마리가 넘게 모여 있다는 소리였다.
“지능이 엄청 높지는 않아, 고도의 전략은 못 짜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전략은 알고 있는 놈들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명예를 중요시 여겨, 교활하지는 않다는 거다.”
“그건 다행이네요.”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다. 콰앙, 너는 특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왜요?”
“암컷 오크들은 인간 남자를 납치해서, 돌려서 강간하는 습성이 있다. 별미처럼 여기지.”
“쉣….”
끔직한 말이었다.
“오크 워리어랑 하이 오크는 뭐에요?”
“워리어는 말 그대로, 오크 중에서 전사로 여겨질 정도로 강한 놈들을 말한다. 브론즈 상급에서 실버 중급 정도의 강함이지.”
“엄청나네요….”
“하이 오크는 수련을 통해, 종족 진화를 이룬 놈들을 말한다. 실버 상급에서, 골드 하급까지의 실력이지.”
“하이 오크가 그 정도면, 족장은 대체…?”
“사실, 족장은 그리 강하지 않다. 기껏 해 봐야, 실버 중급의 실력. 하지만, 오크들에게 주술을 사용해, 사기를 올리고 힘을 강하게 만들어주니.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하는 녀석이다.”
이리저리 귀찮은 구석밖에 없는 놈들이었다.
“이번 싸움에서 많은 사람이 죽겠죠…?”
가만히 있던 이사벨라가 조용히 말했다.
“아마, 참가하는 모험가 중 절반 이상은 죽을 거다. 그러니, 한 마리당 제공하는 보상금이 높은 거다. 목숨값이라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델리카가 참가하지 못한 게 다행인 거 같네요.”
“그래도, 너무 불안해하지 마라. 들어 보니, 골드급 모험가 한 명이 토벌전에 참여한다고 하니.”
“골드급….”
정말, 까마득한 경지였다. 언제 저런 등급에 들어설 수 있을까?
“따로 준비할 건 없나요?”
“대부분, 길드에서 제공해준다. 그래도, 몇 개 챙겨가는 게 좋긴 한데, 그건 내가 준비해주겠다. 그것보다 긴 싸움이 될 수 있으니, 인사를 남길 만한 사람들이 있다면, 모두 남기고 오도록 해라.”
“네.”
우리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관 밖으로 나갔다.
“그럼, 좀 있다 보자.”
“어, 너도.”
이사벨라는 어디가 그리 급한지, 저 멀리 아래까지 뛰어갔다.
‘2시간이라고 했으니, 나도 시간이 없겠네.’
나도 상업 지구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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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앙- 까앙-!
내가 가장 먼저 들린 건, 실바나의 대장간이었다. 건물 내부에서는 여전히 시끄러운 망치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실바나!”
문을 두드리며 외치자, 그녀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어, 콰앙!”
실바나는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진난만한 모습. 그녀는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고 내게 달려왔다.
“뭐야? 무슨 일로 왔어?”
“받을 물건도 있고. 인사도 좀 해야 할 거 같아서요.”
“받을 물건이라면 갑옷 말하는 거지?”
“네.”
“그거라면 잠시만.”
그녀가 창고로 달려가더니, 곧 안에서 경갑을 가지고 나왔다.
“자! 여기 네가 부탁했던 경갑. 네가 줬던 2골드를 거의 다 사용해서 만든 거야! 인건비 빼면은 하나도 안남는다고!”
“그야 인건비를 실바나가 받아가니까요.”
“아, 그렇지? 어쨌든, 한 번 착용해 봐.”
기존에 입고 있던 경갑을 벗고는 새로 받은 것을 몸에 착용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살짝 무거운 형태였는데, 힘이 늘어나서인지 그리 무겁진 않았따.
“어때?”
“살짝 조이는 감이 있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을 거 같은데요?”
“그래? 다행이다. 아마, 웬만한 공격이라면 세 번 이상은 막아줄 수 있을 거야.”
“오크의 공격도 막을 수 있어요?”
“어, 오크도 가능할 걸? 워낙 질긴 가죽이라서. 근데, 오크는 왜?”
“그게요….”
나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소, 소집령이면 엄청 위험한 거 아니야? 내가 이 도시에 있으면서 소집령을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아마, 그렇겠죠. 그러니까, 소집령을 내린 거일 거고요.”
“그러면… 죽을 수도 있겠네?”
“그렇겠죠.”
“……있지.”
“네.”
“우리 엘프들은 원래 죽음에 대해서 굉장히 담담한 편이야. 왜냐하면, 인간들과 지내다보면 그러한 것들을 많이 봐오거든.”
“그렇겠죠.”
그래서, 때때로 엘프들은 긴 수명을 세계수의 저주라고 하기도 한다.
“근데, 나는 그러지 못해. 왜냐하면, 매일매일 공방에 박힌 채 혼자서 지내왔으니까. 근데, 그런 나한테도 드디어 손님이 생겼는데… 네 덕분에 잘 지내왔는데….”
실바나가 내 소매를 꽉 붙잡았다.
“이, 이렇게 갈 건 아니지? 나, 나는 아직 준비 못했단 말이야….”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하는데,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 있었다.
“아니. 제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래요. 누가 보면 진짜 무조건 죽는 줄 알겠네.”
주변 사람들 반응이 전부 이러니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저는 원거리 지원이라서 비교적으로 많이 안전해요. 그러니까, 그 울음 좀 뚝 그치세요. 네?”
“으이잉, 그치만….”
나는 한동안 실바나를 안아서 달래줘야 했다.
‘가는 사람은 난데, 내가 달래주고 있네….’
이게 진짜로 나보다 몇 배는 더 살아 온 엘프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그, 그러면… 이거 가져 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그녀가 품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검은색 날이 인상적인 단검이었다.
“이건?”
“내가 너 선물하려고 만든 단검이야. 비싼 흑요석으로만든 거라서, 엄청 날카롭고 단단해! 아마, 이거면 오크 가죽도 쉽게 벨 수 있을 거야. 나중에 꼭 시험해 봐!”
“이걸 쓸 상황이 오면 최악이라는 소리인데요?”
전위가 뚫렸다는 소리일 테니까.
“아, 마, 맞지. 그러면, 어 이거 절대 사용하지 마! 알겠지?”
“예예.”
횡설수설하는 실바나를 뒤로하고는 공방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불안한지, 거리 밖까지 따라 나왔다.
“으으, 춥다.”
옷이 온통 땀으로 젖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중 나오지 말고, 빨리 들어가요. 이러다가 감기라도 걸리겠어요.”
“으응, 너 가는 거 보고 들어갈 게.”
“그럼, 가볼게요.”
손을 흔들고는 길을 나섰다. 실바나는 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서 있었다.
‘이제 다음이….’
사실, 도시에서 친해진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델리카랑 레이나는 여관에 있으니까, 남은 건 루시 뿐인가.’
금빛 상회로 가, 직원에게 말했는데.
“죄송합니다만, 회장님께서는 현재 일이 있어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가신 상태입니다.”
“아, 진짜요?”
“네.”
안타깝게도 루시가 자리에 없는 상태였다.
“그러면, 그냥 가봐야겠네. 나중에 오면, 저 찾아왔다고 안부 인사만 좀 전해주세요.”
그렇게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아, 잠시만요.”
직원이 나를 붙잡았다.
“왜요?”
“회장님께서 콰앙님이 오면 이 상자를 전달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직원에게 상자를 받았는데,내부가 꽤 무거웠다.
“일단은 감사합니다.”
“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직원의 배웅을 받고는 밖으로 나왔다. 여관으로 돌아오니, 델리카와 레이나가 이사벨라, 리오테르와 함께 앉아 있었다.
“주인님!”
레이나가 나를보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좀 대놓고 부르지 말라니까.’
그렇게 말을 해도 안 듣는 년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가, 앉았다.
“전부 모여 있었네요.”
“응. 어차피, 너도 마지막으로 인사 할 사람은 이 두 사람이었잖아.”
“그렇죠.”
“주인님, 주인님. 진짜로 토벌전에 참가하시는 거에요?”
“둘한테 설명 못 들었어?”
“듣긴 했어요.”
“근데?”
“그냥 주인님 입으로 들어야지 좀 더 실감이 날 거 같아서….”
“어, 사실인데?”
“그래요?”
레이나가 씩 웃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이건 좋은 기회네요.”
“왜?”
“그야 주인님이 죽으면 저는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될 수 있으니까요!”
그녀의 말에 주변이 싹 조용해졌다. 싸늘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레이나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농담, 농담인데… 갑자기, 왜 이렇게….”
“흠흠….”
우린 헛기침을 하며 슬쩍 넘어갔다. 추하게 변명을 하는 레이나를 무시하고는 고개를 돌려, 델리카를 바라봤다.
“울 줄 알았는데, 안 울고 있네요?”
“여자가 울면 재수 없다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델리카는 슬며시 웃었는데, 눈이 퉁퉁 부어 있는 게 보였다. 아마, 어제 많이 운 거겠지.
“그것보다 그건 뭐에요?”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상자에 대해 질문했다. 화제를 애써 돌리려는 건 줄 알면서도, 나는 그걸 받아주었다.
“아, 이건요. 오늘 작별 인사하려고 루시한테 갔는데 자리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안부 인사만 남기고 오려고 했는데, 직원이 상자를 주더라고요.”
“그럼, 빨리 열어봐요.”
그녀들의 시선이 상자에 집중됐다. 나는 조심스레 뚜껑을 잡고는 열었다. 안에는 두 개의 보석과 함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보석?”
붉은색과 초록색의 보석이었는데, 안에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건… 정령석이군.”
“정령석이요?”
“정령에게 먹여, 정령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보석이다. 정령사들은 못 구해서 안달이 난 물건인데, 이게 두 개나 있다니?”
그 말에 나는 급히 편지를 열어봤다. 안에는 안부 인사와 함께 이런저런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정령석은 네가 토벌전에 참여하고 나서 죽지 말라고 주는 거니까, 전부 써. 직접 못 줘서 아쉽지만, 일이 바쁜 걸 어쩌겠어. 그거 쓰고, 절대 죽지 마. 절대.]
맨 마지막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글씨가 어찌나 진한지, 진짜 절대 죽으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장을 갔다고 하더니,제가 토벌전에 참여하는 건 대체 어떻게 안 걸까요?”
“뭐.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상회를 운영하고 있으니, 안토니 백작과도 친분이 있는 거겠지. 보통, 이런 소집령이 내려오기 전에는 긴밀한 조사가 이루어지니 말이야.”
하긴, 루시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 알아내는 거야 일도 아닐 것이다.
“이건 어떻게 사용하는 거에요?”
“그냥 손에 쥔 다음에 마력을 집어넣으면 된다. 마력 소모가 심하다고 들었으니, 출발하기 전인 지금 사용하는 게 좋을 거다.”
리오테르의 말에 바로 보석을 하나씩 양손에 쥐었다. 마력을 끌어올려, 안에 슬쩍 집어 넣자, 내부에 있는 기운이 반응했다. 곧, 마력을 미친 듯이 빨아더니.
후웅-
화륵-
보석이 작은 바람과 불꽃이 되더니, 곧 내 몸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오….”
“뭔가 달라진 게 느껴지나?”
“이전보다 정령의 존재감이 명확해지긴 했는데, 직접 사용해봐야지 알 거 같아요.”
“실전에서 바로 시험하게 되겠군.”
옆에서 이사벨라가 부럽다는 듯 바라봤다.
“이래서, 부자 친구를 옆에 둬야한다는 건가?”
“친구라….”
하긴, 섹스 프랜드도 친구긴 친구니까.
“그럼, 슬슬 시간이 됐으니. 가도록 하지.”
리오테르의 말에 우리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관 밖으로 나갔다.
“그럼, 우린 이만 가볼게요.”
“네, 그럼. 몸 무사히 갔다오세요….”
델리카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애써 울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보였다.
“갔다올 게!”
손을 흔들고는 몸을 돌리는데, 무언가 내 몸에 안겼다. 아래를 보니, 레이나였다. 그녀는 내 가슴팍을 꽉 안았다.
“주인님.”
“왜?”
“아까 전에 한 말 거짓말인 거 알죠?”
“진짜로?”
“진짜로요. 그러니까, 무사히 다녀오셔야 해요.”
울먹이는 목소리. 등을 안아주니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평소에 밝았던 레이나가 이러니 마음이 무거웠다.
“무사히 다녀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가 잠시 가만히 있더니 슬며시 팔에 힘을 풀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했다.
“그럼, 안녕히 다녀오세요!”
레이나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나는 그제서야 웃으며 여관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수십 명의 모험가는 넓디넓은 대평야로 떠났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어떤지조차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