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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던전 (4) (69/84)



〈 69화 〉던전 (4)

드드드득-

거대한 석문이 먼지를 떨어뜨리며 열렸다. 칠흑과도 같은 공동으로 두 남녀의 신형이 들어왔다.

쿵-

곧, 문이 닫히자 내부의 공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횃불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공간. 그곳의 가운데 제단에서  개의 푸른 빛이 떠올랐다.

미련이 남은 마법사, 리치였다. 놈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검은 불꽃이 피어올라 공동을 밝혔다.

화르르륵-!

“마법! 피해욧! 구석으로!”

두 남녀가 동시에 몸을 날리더니 공격을 피해냈다.

“그럼, 작전대로 한다!”

“네!”

리치가 다음 마법을 준비하는 사이, 여기사가 지면을 박차더니 제단을 향해 달려왔다. 곧, 계단에 도달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그걸 리치가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우우웅-

지팡이 빛나더니 곧 검은빛의 화살을 만들어냈다. 마법이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정말 아예보이지 않았다.

따닥-

리치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마법을 준비했다. 이제 곧 저 기사는 화살에 꿰뚫려 온 몸이 터져죽을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그래, 만약에  공동이 여전히 어두운 상태를 유지했다면 말이다.

“쏴라!”

화살이 기사의 근처를 맴돌고 있을 때쯤, 그녀가 갑자기 외쳤다. 곧, 남자의 대답이 돌아옴과 동시에.

화아아아악-!

달려오는 여자의 뒤편에서 주황빛이 천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태양처럼 말이다.

그 빛이 어찌나 밝은지, 눈이 없는 리치조차 눈부심을 느낄정도였다.

석양과도 같은 빛은 화살을 따라 계속해서 공동 내부를 밝히더니 곧.

콱-!

제단 가장 맨 위에 정확하게 박혀 들었다.

이제  이상 공동은 어둡지 않았다. 리치의 마법을 숨겨 줄 어둠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뜻은 놈의 마법이 이전과 같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뜻이었다.

리치의 텅  구멍 너머로, 여기사가 달려오는  보였다.

이젠, 상황이 역전됐다.

###

리오테르는 검으로 마법을 쳐내고는 계단을 엄청난 속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나 높아보였던 제단을, 그녀는 이미 절반 이상 올라 있었다.

‘돌았네.’

인간의 속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아마, 오러를 사용한 거겠지.

따닥-

리치가 당황한 듯, 살짝 뒤로 물러서는 게 보였다.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자신이 준비한 필드에서는 무척이나강한 힘을 보인다. 그리고 그만큼의 자신감을 보이지. 그래서, 그게 깨질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한다.’

누나의 말이 맞았다. 놈은 자신의 가장 강한 무기였던 어둠이 사라지자, 아무 것도 못한 채 벙쪄 있었다.

콰앙-!

어둠이 사라진 놈의 마법은 이제 예전만큼 위협적이지 않았다. 여전히 위력은 강했지만.

후웅-!

마법을 맞추지 못하면 모두 의미가 없는 이야기였다.

리오테르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의 일부는 쳐내고, 일부는 피하면서 제단을 올랐다. 리치가 마법을 난사해보지만, 역시나 큰 소용은 없었다.

놈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가더니, 제단에 박혀 있는 화살로 향했다. 이제야 그게 빛을 내고 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펑-!

검은 불꽃이 뿜어져 나가, 화살을 터뜨렸다. 공간을 가득채우던 주황빛이 빠르게 사라져갔다. 하지만.

화아아아악-!

이쪽도 생각이 없는  아니다. 다시 한 번 섬광과도 같은 빛이 나와, 동공을 밝혔다. 이번에는 화살을 제단의 맨 위 계단에다가 박아버렸다. 놈이 제거하기힘든 장소.

리치의 신형이 앞으로 잠깐 쏠렸다가 다시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놈의 시선은 내게로 돌아갔다.

따닥-

이 빛을 내고 있는 게, 나라는 걸 깨달은 듯했다.

우우웅-

발밑에서 미세하지만 검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래로 시선을 내리니, 마법진이 보였다.

“와악!”


급히, 앞으로 몸을 날렸다. 서 있던 자리에 검은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살벌하네.’

놈이 다음 마법을 날릴 때쯤, 리오테르가 제단의 정상 위에 도착했다. 그녀는 바닥을 밟자마자 자세를 잡고 검을 내찔렀다. 무기에는 푸른 오러가 맺혀 있었다.

콰앙-!

검이 보호막을 아주 잠깐 뚫을 듯이 들어갔다가, 다시 튕겨져 나왔다.

‘시발?’

이건 계획에 없었다. 나는 누나가 보호막을 뚫어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얼굴을 보니 누나도 당황한듯한 모습이 엿보였다.

그녀가 다시 마법을 피해내더니 검을 아래로 확 내려쳤다. 보호막에 작은 균열이 일었다가, 다시 복구되었다.

‘이거 다시 도망쳐야 하나?’

근데, 그러려면 리오테르가 다시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아마,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마법사는 덤비는 적보다, 도망치는적을 훨씬 더 잘 잡아내니까.

게다가, 이번에 도망친다면, 다음에는 이 방법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화살이 박히기 전에 마법으로 사전차단 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결국에는 던전을 깨려면 지금 해결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게아니면 포기해야 해’

보호막을 뚫을 방법. 대체 뭐가 있을까?

제단 위를 보니, 리오테르가 기형적인 움직임을보이며 공격을 모두 피하고 있는 게 보였다. 다행히, 보호막에 많은 마력을 둘렀는지 마법은 이전만큼 위협적이진 않았다.

콰앙-!

그녀의 검이 보호막을 두드리자, 잠깐의 틈이 생겼다가 다시 메꾸어졌다.

‘잠시만, 틈?’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검이 보호막을 두드릴 때마다, 계속해서 균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공격은 통하고 있었다. 단지, 그녀의 오러가 보호막을 부술 정도로 많은 양을 머금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저 틈 사이로 화살을 넣어 공격만 할 수 있다면….’

그러면,  지긋지긋한 던전 공략에도 종지부를 찍을  있을 거 같았다.

“깃들어라, 폭발해라.”

화살의 바람의 기운을 담은 다음, 쇠뇌로 놈을 조준했다.

콰앙-!

리오테르의 검이 보호막을 두드렸지만, 곧바로 몸에 가려져서 쏠 수가 없었다.

‘이거 맞추기 힘들겠는데?’

나와 제단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먼데다, 높이 차이도있었다. 리치가 가만히 있긴 했으나, 검이 어디를 두드릴지도 모르는 상황.

그렇다고, 리오테르한테 말해서 유도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전투 중에 목소리를 듣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리치 정도면 알아들을가능성이 높으니까.

모든 것이 너무나도 불확실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도전해볼 만했다.

콰앙-!

‘아직.’

모든 기력을 보호막을 바라보는 데에 쏟아부었다. 검이 몇  더 두드리며 틈을 만들어냈으나, 매번 방향이 맞지 않거나누나가 몸을 가렸다.

조준쇠 너머, 리오테르의모습은 지쳐보였다. 슬슬, 오러와 함께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듯했다.

‘조급해하지 말자.’

언젠가 기회는 온다.

콰앙-!

그리고,  기회는 그리 멀지 않은 타이밍에 찾아왔다.

검이 보호막을 세로로 쭉 그으며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냈다. 누나가 몸으로 가리고 있긴 했지만, 충분히 시도해볼만 자리.

투두둥-!

방아쇠를 쭉 당겨 세 발을 발사했다. 바람의 힘을 머금은 화살이 공기를 꿰뚫으며 나아갔다.

“불어라!”

후웅-!

사방이 꽉 막힌 공동 내부에 바람이 불었다. 평소보다 마력이 배로 들긴 했으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모든 집중력을 화살을 조준하는 데에쏟아부었다. 세상이 순간적으로 멈춘 것처럼,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쾅-!

맨 앞에서 날아가던 화살이 순식간에 도달해, 보호막을 두드렸다. 잠시 버벅거릴 정도의 위력이었으나, 역시나 뚫지 못했다.

곧바로 두 번째 화살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 거는 좀 더 느낌이 좋았다. 균열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가고 있었으니까.

콰앙-!

“미친!”

하지만, 갑자기 균열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화살은 아깝게 보호막너머로 파고들지 못했다. 두 번째 역시 실패.

“후우….”

마지막으로 남은 세 번째 화살. 여기에 모든 걸 걸어야 했다. 남은 마력들을 모두 쏟아부었다.

후웅-!

화살이보호막에 거의 닿기 직전, 나는 바람을 일으켜 순간적으로 궤도를 바꿔버렸다. 정면을 향해 나아가던 화살이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더니.

콰악-!

아슬아슬하게 균열 사이에 들어갔다. 하지만,  보호막이 완전히 닫히면서 화살이 멈춰버렸다.

보호막에들어가는 건 성공했다. 하지만, 놈을 맞추진 못했다. 리치의 고개가 살짝 아래로 내려가더니 보호막에 낀 화살을 바라봤다.

따닥- 따다닥-

놈이 웃는 듯 해골이 살짝씩 흔들렸다. 마치, 이 멍청한 공격은 뭐냐는 듯말이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손가락 뼈를 뻗어 화살의 끝을 잡으려 했다. 조롱이라도 할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게 놈의 패착이었다.

놈의 손끝이 닿는 순간.

퍼어어엉-!

화살이 폭발해버렸다. 보호막 안이 검은 연기로 가득차, 시야를 가렸다. 리오테르에겐 전혀 피해가 없었다.

시간이 멈춘 듯, 동공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리치가 그러했고, 리오테르 또한 그러했다.

쩌적-

그러나,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보호막에 균열이 일더니.

쨍그랑-!

보호막이 완전히 사라졌다. 안에 있던 검은 연기가 나와, 천장을 타고 서서히 사라졌다.

완전히 밝혀진 제단의 정상. 그곳에는 오직 리오테르 혼자만이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


“건배!”

우리는 엘프의 여관에서 마주 앉아, 술잔을 부딪혔다. 충격에 의해 술이 밖으로 넘치긴 했으나, 지금 그걸 누가 신경 쓰겠는가?

꿀꺽꿀꺽-

시원한 맥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목이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동시에 그게 너무 시원했다.

“크하….”

둘  한꺼번에 맥주를 다 마셔버리고는 새로운 술을 주문했다.

“어제는 정말이지 잘해주었다. 이대로라면 답이 없다고 생각해, 도망칠 생각이었는데….”

“제가 그때  화살로 맞춘 거네요.”

“그래. 놈이 새로운 마법이라도 쓰는가 싶어 당황했는데, 콰앙 너의 화살이었더군. 그때는 정말이지….”

리오테르는 웃으며 조용히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만큼 신이 난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래도, 던전 공략이 성공적이어서 다행이에요. 안에서 나온 반전설급 서사 유물이라면서요.”

유물의 등급은  가지였다.

서사, 전설, 신화, 초월.

초월은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며, 신화도 열 개가  되지 않는다. 전설도 웬만해서는 가질 수 없으며, 그나마 서사가 조금 보기 쉬웠다.

‘모험가 신분으로는 서사급도 감지덕지지만.’

유물은 우리에게 필요 없는 거라서 그대로 길드에 처분했고,  결과 완료금과 함께 총 30골드가 넘는 수익을 벌 수 있었다.

위험한 만큼 확실히 높은 수익이긴 했다.

‘다음에는 절대 하고 싶지 않지만….’

누나가 왜 꺼려했는지, 한 번 경험해보니까 알겠다. 만약,  혼자도전했다면 빼도박도 못하고 끔살당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새삼스레 누나한테 너무나도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그저  번 도와주고 같은 마차를 타고 왔을 뿐인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마, 리오테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왜 그러나?”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붉은빛의 머리카락에, 술 때문인지 떠오른 홍조. 날카로운 고양이상의 얼굴이지만, 나를 바라보는 표정은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술집의 조명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모습이 터무니없이 아름다웠고, 그녀의 분홍빛 입술이 너무나도 탐스러웠다.

나는 아무  없이, 싱긋 웃으며 누나를 바라봤다. 그녀 역시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후….”

이전에 그런 다짐을  적이 있었다. 리오테르를 전력으로 유혹해, 반드시 나를 따먹게 만들겠다고. 절대, 내가 먼저 나서지 않겠다고.

마치, 맹세처럼 한 자신만의 약속이었지만.

“누나.”

이번에는 그걸 지키지 못할 것만같다.

“콰앙.”

그녀를 불렀는데, 갑자기 리오테르가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았다.

“왜…왜요?”

누나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숨을 내쉬었다.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올곧은 눈. 그때와 다를 바가 없는,여전히 아름다운 눈이었다.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10분 있다가, 내 방에 오도록 해라.”

“여기서는 못하는 거에요?”

내가 먼저 무리한 부탁을 하려고 그랬는데, 이렇게 선수를 쳐버렸다.

그녀는 얼굴을 더욱더 붉히더니 말했다.

“그, 그래. 던전과 관련 된 이야기니, 방으로 오도록 해라.”

“알겠어요….”

대체 무슨 이야기길래, 방까지 부르는 걸까?

‘오늘은 못하겠네.’

말하는 표정을 보니, 아마 진지한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애꿎은 술만 홀짝이며, 시계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정확하게 10분이 지나자.

“올라가볼까?”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똑똑-

리오테르의 방문 앞에 서, 문을 두드렸다.

“드, 들어와라!”

떨리는 목소리. 나는 손잡이를 당기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이야기 때문에….”

말하며 고개를 드는 순간, 나는 얼어붙은 듯 멈출 수밖에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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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테르가 수줍게 얼굴을 붉힌 채, 침대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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