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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화 〉던전 (3) (68/84)



〈 68화 〉던전 (3)


“나는 더 갔으면 좋겠다.”

의외의 대답이라서 무척이나 놀랐다. 여태까지 봐온 리오테르의 성격은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했으니까.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곧 무언가를 결심한  고개를 들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을 같으니, 잠시 앉겠나?”

주변에 있던 언데드들은 모두 처리했고 문 너머에 있는 수호자가 튀어나올 리도 없어, 우리는 문을 등받이 삼아 잠시 앉았다.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말해주겠다.”

“충격적인 사실이요?”

딱히, 그럴 만한 게 있나 싶었다. 설마, 성전환한 남자였다던가?

‘그런거만 아니면 괜찮을 거 같은데.’

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

“사실, 나는 기사였다.”

그녀는 대단히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는데,나는 그 분위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저기… 저도 충격적인 사실 하나 말씀드려도 될까요?”

“뭔가?”

“기사인 거 알고 있었어요.”

리오테르는 입을 쩍 벌린 채, 나를 바라봤다. 정말로 놀란 듯한 반응.

“대, 대체 어떻게?”

“그야 예전에 술 마셨을 때, 비슷한이야기를 하셨거든요.”

“지, 진짜인가?”

“네. 그리고 간접적이긴 하지만, 기사인 게 티가 나긴 했어요. 말투라던가, 아니면 가끔 튀어나오는 말이라던가….”

아마,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그녀가 기사라는 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그렇군….”

그녀는 민망한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얼굴에 홍조가 가득한 모습을 보니, 꽤 귀여웠다.

“그러면, 이야기는 더 수월하겠군.”

억지로 화제를 돌렸으나, 일단은 가만히 들어주었다.

“실버 승급전을 받은 후, 너와 헤어지고. 옛 동료를 만났다.”

“옛 동료라면 기사겠네요.”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워하며 대련을 했다.”

“갑자기요?”

“기사라는 족속들은 원래 그런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에겐 이게 인사의 형식 중 하나였으니까.”



참, 이상한 집단이다.

“그런데, 그녀와 검을 맞대는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요?”


“분명, 예전에는 나보다 약했는데, 어느새 나를 훌쩍 뛰어넘어 있더군. 기사단에서 나온 지 3년도 되지 않았는데, 엄청난 차이가 느껴졌다.”

정말로 분했는지,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그게 환경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버는 모험가와 오직 강해지기 위해 수련에만 매진하는 기사는, 수련에 대한 질부터가 틀리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련 이후에 목욕탕에 가, 옛 동료의 몸을 봤을 때, 나는 그게 다  망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몸에….”

“몸에?”

“상처가 아주 가득하더군.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크고 작은 상처들이 말이야. 그중에는 분명, 생사를 달리할 정도로 심각한 상흔 역시 존재했다.”

리오테르는 씁쓸하게 웃더니 말했다.

“그걸 보고 상황을 탓하던 나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더군. 결국, 기사단의 커리큘럼. 환경은 내게 상관이 없었던 거다. 그녀는 엄청난 노력과 위험을 넘어섰기에 그렇게 된 거고. 나는 안정적인 상황만을 추구했으니, 이렇게 된 거다.”

마치, 무척이나 쓴 술을 마신 듯한 표정. 정말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모험가다.”

“알죠.”

“원래라면, 돌아가는 게 맞을 거다. 하지만, 이건 내가 승급에 성공해 처음으로 맡은 실버 의뢰였다. 이걸 위험하다는 이유로, 두렵다는 이유로, 물러선다면, 앞으로는 정말 모험가라고 부르기가 부끄러워질  같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러니 부디,  못난 동료의 무리한 부탁을 이번  번만 들어주면 되겠나?”

잠시간의 침묵.하지만,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안 될 건 없죠.”

“저, 정말인가?”

“네. 이때까지 무리한 의뢰 가져오신 게 한두 번은 아니잖아요.”

첫 의뢰를 제외하고, 그녀와 함께한 모든 의뢰는 내게 도전이었다. 지금이라고 해서, 별다를 건 없었다.

“그, 그건 미안하다….”

“같이 들어갈게요. 대신에.”

“대신에?”

“던전 공략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저의 무리한 부탁도 들어주시겠어요?”

뭔가 스스로 사망 플래그를 세우는 거 같은 기분이었다.

“무리한 부탁이라면?”

“그걸 알면 거절할수도 있으니까, 알려드릴  없어요. 그래서, 하시겠어요?”

리오테르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하겠다!”

“좋아요. 그러면, 이야기하면서  쉬었을 테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봅시다.”

그녀는 잠시 내 손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보자!”


###


드드드득-

거대한 문을밀자, 꿉꿉한 냄새가 확 풍겼다.

쿵-

우리 둘이 내부로 들어가자 석문이 다시 닫혔다. 칠흑과도 같은 공동. 리오테르가 들고 있는 횃불만이 간헐적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우린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문 채 주변을 둘러봤다. 섣불리, 자리를 벗어나진 않았다.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렇게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때였다.

따닥-

너무나도 익숙한 소리가 정면에서 들려왔다. 스켈레톤이 다가오는 건가 싶어, 석궁을 든 채 앞을 노려봤다.

“누나, 저 위에!”

아무것도 없던 어둠에, 갑자기 두 개의 푸른빛이 떠올랐다. 눈알처럼 작은 공의 형태.

따닥- 화아악-!

뒤이어, 뼈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검은빛의 불꽃이  피어올라 공동을 확 밝혔다. 그리고 동시에, 놈의 정체 역시 드러났다.

완전한 검은빛의 해골에 로브로 앙상한 몸을 가리고 있었다. 놈의 손에는뼈로 만들어진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는데,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다.

“리치다!”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놈이 지팡이 위에 떠올리고 있던 검은 불꽃이 우리를 향해 쇄도했다.

“마법! 피해욧! 구석으로!”

워리어와맞붙었을 때처럼, 우리는 양옆으로 갈라지며 마법을 피해냈다.

콰앙-!

방금 전까지 서 있었던 자리가 폭발하며, 바닥이 움푹 파였다. 엄청난 위력.

불꽃이 사라지자, 내부가 다시 칠흑처럼 어두워졌으나, 제단 위의 푸른 빛의 눈은 여전히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도깨비 불꽃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 소름이 돋았다.

“타올라라.”

불의 기운을 담은 화살을 장전해, 놈의 머리를 향해 조준했다. 불화살이 어둠을 가르며 놈을 향해 나아갔다. 몸에 닿기 직전.

투웅-!

검은빛의 보호막이 공격을 막아냈다. 화살은 맥없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저거 어떻게 해요!”

이야기하는 사이, 놈의지팡이가 다시 빛났다. 이번에는 검은빛의 화살이었는데, 리치 근처를 벗어나자, 어둠에 가려져 날아오는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시발!”

심장이 두근거렸다. 화살이 지금 어디쯤 있을까? 제단 근처? 중간? 그게 아니라면?

후웅-!

‘바로 앞!’

갑작스레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몸을 바짝 숙였다.

퍼엉-!

등 뒤에 있던 벽에 화살이 박히며 폭발했다. 한 발이라도 몸에 맞았다면, 신체 부위 중 하나는 날아갔을 것이다.

‘돌아버리겠네.’

마법 하나하나가 진짜 미친 듯이 위협적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라는 건, 이럴 때를 얘기하는 듯했다.

“어떻게  거예요!”

재차 외치는 물음에, 그녀가 말했다.

“일단, 제단 위로 올라가야 한다! 내가 시도해볼 테니, 그때 그랬던 것처럼 견제를 넣어보도록!”

“알겠어요!”

리오테르가 잠시 눈치를 보더니,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놈의 푸른 눈이 누나를 향해 돌아갔다.

“폭발해라.”

리치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는 순간. 불의 힘을 담아, 화살을 발사했다. 마력을 잔뜩 머금은 불의화살이 놈의 보호막에 적중하더니.

퍼버벙-!

곧, 연속으로 세 번이나 폭발했다. 잠시, 공동 내부가 흔들릴 정도로 강렬한 폭발.

“쉣!”

연기가 걷히자, 멀쩡한 놈의 모습이 보였다. 더불어, 계단에서 마법을 요리조리 피하고 있는 누나의 모습 역시 보였다.

위력은 대단했으나, 보호막은 뚫어내지 못한 것이다.

‘비장의 수였는데.’

폭발하는 화살의 위력은 확실했으나, 정말 마력을 어마무시하게 많이 잡아먹었다. 근데, 그게 막혀버렸으니 정말 막막하다.

“큭!”

리오테르가 급히 뒤로 몸을 날려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곧, 바닥에 새겨져 있던 마법진에서 검은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저걸 봤어?’

마법이 발동되기 전까지, 나는 마법진의 모양조차 보지 못했다. 저걸 보다니,누나도 참 괴물이긴 괴물인 모양이다.

“콰앙, 일단은 후퇴하도록 하자!”

“후퇴요!?”

“그래!”

리치의 마법을 감으로만 피한 그녀가 내게 다가오더니 스크롤 하나를  가슴팍에 쥐여주었다.

“찢어라!”

우리가 도망치려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갑자기 놈의 지팡이에서 검은빛이 나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화악-!

그게 내 몸에 닿기 직전, 나는 스크롤을 찢어버렸고.

퍼어엉-!

우리는 무사히 던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첫 보스 시도는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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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멀미와 함께주변의 시야가 점멸했다. 어두운 동공이 사라지고  푸른 숲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쇠뇌를 손에 꽉 쥔 채 주변을 경계했는데, 곧 어깨에 손이 올려졌다.

“누구… 아, 누나.”

팔을 쳐내며 석궁을 쏘려 했지만, 이내 리오테르라는 걸 깨닫자 나는 무기를 내렸다.

“여기는 안전하니 그렇게 긴장하지 마라.”

그녀의 말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뛰지도 않았는데, 숨이 찬 듯한 기분이었다.

‘진짜 뒤질 뻔했다.’

스크롤이 조금만 더 늦게 발동됐다면, 그 빛에 맞아 소멸했을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섬뜩해, 좀처럼심장이 진정되질 않았다.

“후우… 여기는 어디예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 그제야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를 물을 수 있었다.

“뒤를 봐라.”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조잡한 철문이 보였다.

“아.”

그걸 보자, 이곳이 어딘이지 깨달을  있었다.

“던전 앞이네요….”

“그래. 방금, 네가 사용했던 건 던전 탈출 스크롤이니까.”

그때, 그녀가 걱정하며 준 것과 비슷한 종료의 스크롤인 듯했다.

“시장에서 사는 거  봤는데. 언제, 이런 걸 챙겨 두셨어요?”

“하루 전날에 루시에게 가, 구입했다.”

“루시한테요?”

의외의 인물의 이름이 나와, 깜짝 놀랐다.

“그래. 리벨룸에는 마탑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곳에서 마법 물품을 구매할 만한 방법은 그녀를 통해서밖에 없지.”

그럼, 저번에 레이나가 섹스하겠다면서 가지고 온 스크롤은 대체 뭘까? 묻고 싶었으나 사용처를 물을까 봐, 나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것보다 문제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골치 아파. 설마, 리치가 나올 줄이야.”



“리치 정도면 어느 정도 등급의 괴물인가요?”

“저 정도 수준이면 실버 상급은  거다. 마법의 사용도 빠른 데다가, 위력도 강력하니까.”

역시, 운이 더럽게 없었다.

“하지만,  정도로 강하다는 건, 그만큼 좋은 유물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겠죠?”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잡을 수만 있다면, 정말 대박을 노려볼 수 있을 거 같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보호막인데… 저는 뚫기 힘들 거 같아요.”

폭발 화살도 안 먹힌 마당에, 내가 뚫기란 요원해 보인다.

“아마, 내가 오러를 담아 공격한다면 뚫을 수도 있을 거 같다. 문제는 가까이 다가가야 공격할 수 있다는 건데….”

아까 전의 시도로는 그것조차 어려워 보인다.

“누나가 제단 위로 올라갈 때, 가장 큰 문제가 뭐예요?”

“역시, 어둠일 거다. 어둠에 가려진 마법과 마법진이 기력을 끊임없이 갈아먹고 있으니까.”

“어둠….”

하긴, 나도 날아오는 마법이 안 보여서 미칠 것만 같았다.

“아까 전에 네가 폭발을 일으켰을 때는 내부가 잠깐 밝아져,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혹시, 그건 또다시 불가능한가?”

“가능은 한데 너무 잠깐인 데다가, 마력 소모도 심한 터라… 마법등을 설치하면 안 되나요?”

밤에 잘 때, 설치했던 등이 있긴 했다.

“설치해서 사용하기엔 빛의 세기가 너무 약하다. 그렇다고 들고 싸우기에는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니, 그것도 불가능하지. 지금도 마법을 피하는  아슬아슬하니까 말이야.”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된다. 이리저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콰앙.”

“네.”

“일단은 포기하고 도시로 돌아가서, 재정비하고 다시 도전하는 게 좋아 보인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건가요?”

“그래.”

그렇게 말하는 리오테르는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완전한 포기는 아니지만, 포기는 포기다. 첫 의뢰인 만큼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던, 그녀의 입장에선 아쉬울 만도 했다.

누나의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 내가   있는 게 딱히 없었다.

이때까지 힘이 없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게 그렇게나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령을 다루는 데에  더 집중할걸.’

바람의 정령은 자유자재로 바람을 일으키며 조종할 수 있었는데. 불의 정령은 마음대로 불을 일으키는 게 불가능했다.

기껏 해봐야, 화살에 불의 힘을 담아 발사하는 게 전부. 아마, 인간인데  개의 정령과 계약해서 그런 듯했다.

“도시로 돌아가서, 빛의 스크롤을 구매해. 다시 돌아오도록 하지.”

“빛의 스크롤이요?”

“빛의 구체를 띄우는 마법으로. 내부를 환하게 만들어주는 스크롤이다.”

‘빛의 구체?’

폭발, 그리고 빛의 구체.  개의 단어가 합쳐지자, 문득 현대에 있는 것 중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원리가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가능만 하다면….’

“전부 쉬었다면, 슬슬 일어나도록 하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콰앙?”

리오테르의 손이 어깨에 닿는 순간. 나는 뒤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누나.”

애써 감추려고 했으나,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어어,  그러나?”

콰앙은 뒤로 고개를 돌리더니, 그녀를 보며 말했다.

“이거 오늘 깰 수도 있겠는데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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