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던전 (2)
“지원 사격 부탁한다!”
던전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언데드의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따닥- 따다다닥-
뼈 부딪히는 소리가 통로 안을 가득 채웠다. 앞을 채우고 있는 네 마리의 해골.리오테르는 망설임 없이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가장 앞에 있던 스켈레톤이, 그녀의 방패에 맞아 뒤로 넘어졌다.
“타올라라.”
화살에 불의 기운을 담아, 놈들을 향해 발사했다. 바닥에 넘어져 있던 놈의 두개골에 정확히 박혀들더니, 곧 불이 몸, 아니 뼈 전체에 옮겨 붙었다.
화르르륵-!
강렬한 열기가 주변에 있던 스켈레톤들을 잠시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보통의 불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솨악-!
그리고, 리오테르는 그 잠깐의 움직임조차 그들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어두운 통로를 푸른빛으로 빛내는 검이, 그들의 머리를 가로로 정확하게 베어들었다.
쿵-!
세 개의 두개골이 바닥에 떨어졌다. 불이 붙은 해골은 얼마 못 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후.”
역한 냄새에 정령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이제 제법 태가 사는 거 같군.”
그녀가 만족스럽다는듯,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바람에 의해 붉은 머리칼이 휘날렸다.
“합을 맞춘지 꽤 됐잖아요. 뭐, 이번이 세 번째로 함께하는 의뢰이긴 하지만요.”
“그건 그렇다. 그것보다 아까 전에 불의 정령과도 계약했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성장했을 줄은 몰랐다. 콰앙.”
“저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물론, 내가 노력했다기보단 신에게서 받은 거다. 그에 비해 리오테르는 정말로 순수하게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취.
‘성장의 척도로는 비슷할지 몰라도. 깊이가 다르겠지.’
쉽게 얻은 건, 그만큼 쉽게 사라지는 법이니까.
그러고 보니, 최근에 신들의 채팅을 못 본 거 같다. 여신은 가끔 이랬는데, 성신이 이러는 건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일개 인간인 내가 신을 걱정해봐야 뭐하겠는가. 언젠가, 적당한 때에 다시 찾아오겠지.
“이 정도 실력이면, 나보다 훨씬 빨리 실버급 모험가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말이라도 감사해요. 잡담은 그만하고 다시 들어가죠.”
언데드 무리를 두세 번 정도 더 만나자, 갑자기 통로가 끝이 났다. 그리고 그 앞에는.
“문?”
커다란 문 하나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이게 뭘까요?”
문에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주황빛 황소가 잔뜩 화가난 듯한 모양. 어디선가 많이 본 문양이었다.
‘이거 게임에서 중간 보스 표시할 때, 이런 식으로 하지 않나?’
내 생각이 맞았는 듯, 리오테르가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아마, 수호자가 있는 방일 거다.”
“수호자요? 그게 뭔데요?”
“말 그대로다. 던전의 중간을 수호하는 녀석. 그 형태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골렘일 수도, 언데드일 수도, 혹은 괴물일 수도 있다.”
“그런 게 왜 존재하는데요.”
“그 누구도 밝혀내진 못했지만, 던전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침입자에게서 던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더군. 유물이 나오는 만큼, 일단 가치가 높은 건 확실하니까.”
저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 중간 보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거 같다.
‘무슨 게임 같네.’
친근한 요소라서 반갑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을 여는 순간. 나는 그런 생각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라!”
문을 열자마자, 날아오는 거대한 도끼에 우리는 양옆으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해냈다.
콰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닫히고 있던 문에 거대한 자국이 나 있었다.
‘진짜 뒤질 뻔 했네.’
만약, 리오테르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 반으로 갈라져 죽었겠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쳐다봤다.
따다닥-
마기가 잔뜩 뿜어져 나오는 검은 갑옷에 거대한 도끼. 투구의 구멍 사이로는 명확한 흑골이 눈에 띄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텅 빈 구멍에서 붉은 빛이 가끔 새어나온 다는 거였다.
도끼를 날린 놈은, 다름 아닌 스켈레톤이었다.
“스켈레톤 워리어다!”
리오테르는 외침과 동시에 지면을 박차며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러가 씌인 검이 갑옷에 닿으려는 순간.
후웅-!
워리어가 거대한 도끼를 들고 한바퀴를 크게 돌아버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리오테르가 급히 방패를 들어 올렸다.
콰앙-!
도끼에 얻어맞은 그녀가 저 멀리 날아가 벽에 쳐박혔다.
“누나!”
나는 입으로는 리오테르를 부르면서도, 눈은 계속해서 워리어를 향해 있었다.
따닥-
미약한 뼈 소리. 그리고, 놈이 이번에는 나를 향해 들었다.
후웅-!
거대한 도끼를 천장을 향해 힘껏 들더니 앞으로 내려찍었다.
“불어라!”
콰앙-!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피해내고는 석궁으로 놈의 갑옷을 조준했다.
투두둥-!
질긴 와이반의 가죽조차 손쉽게 뚫어버릴 정도로 관통력이 대단한 석궁인데. 놈의 갑옷에는 흠집을 주는 게 다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충격은 줬는지 놈이 잠시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워리어치고는 무척이나 강한 놈이다, 조심해라!”
리오테르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패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방금의 공격으로 완전히 찌그러졌으니, 역할을 다한 것이다.
그녀가 오러를 끌어올리자, 워리어의 고개가 곧바로 돌아갔다.
후웅-!
이번에도 리오테르의 공격은 닿지 못했다. 다가가려 하자, 거대한 도끼를 휘둘러 견제를 한 것이다.
“비겁한 자식!”
아마, 스켈레톤 워리어에겐최고의 칭찬일 것이다.
“누나!”
“왜 부르나!”
“저 갑옷 뚫을 수 있어요!?”
“공격만 가능하다면… 말이지!”
대화하는 척, 순간적으로 검을 내찔렀으나 역시나 정확한 타이밍에 도끼가 날아왔다.
어느 정도 지능이 있는 건지, 놈은 절대 먼저 도끼를 날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신경쓰지도 않았다. 거슬리는 정도지, 위협적이진 않았으니까.
“제가 지원해드릴 테니까. 다시 시도해보실래요!?”
“어떻게 말인가!”
“도끼를 휘두르려는 순간. 어깨 부분에다가 화살을 맞춰볼게요! 저지력은 있으니, 아마 잠깐의 틈은 만들 수 있을 거에요!”
움직이는, 그것도 신체의 일부분을 맞춘다는 건 무척이나어려운 일이다. 아마, 활의 귀재인 엘프들조차 난이도가 높다고 할 만한 일.
‘실채하면 위험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놈은 언데드, 리오테르는 생명체였다. 지금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지 몰라도, 장기전으로 가면 우리가 무조건 진다.
그러니, 체력이 남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승부수를 걸어야 했다.
“알겠다.”
그녀가 검을 고쳐 잡더니고개를 끄덕였다.
“널 믿고한 번 해보도록 하지. 준비는 됐나!”
“잠시만요, 깃들어라.”
바람의 기운이 확실하게 화살에 담긴 게 느껴졌다.
“됐어요!”
“그럼, 셋을 세고 달려들겠다. 셋!”
나는 석궁을 들어올려 놈의 어깨 부분을 조준했다.
“둘!”
놈의 갑옷 사이로 리오테르가 바짝 몸을 숙이고 있는 게 보였다. 언제라도 튀어나갈 것만 같은 자세.
“하나!”
“후우.”
숨을 내쉰 다음 꾹 참았다. 미세하게 흔들리던 석궁의 떨림이 잦아들고, 완벽하게 멈춰 섰다. 그리고.
“간다!”
탁-! 투웅-!
지면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나 역시 방아쇠를 당겼다.
리오테르는 쏜살 같은 속도로 스켈레톤 워리어에게 달려들었다. 엄청난 속도였으나, 괴물인 놈은 그걸 또 반응했다.
놈의 갑옷이 움직이며 도끼를 휘두르려는 순간.
콰앙-!
연속으로 발사 된 세 개의 화살 중 두 발이 어깨와 팔에 정확하게 두드렸다.갑옷이 살짝 찌그러지며 날아가던 도끼가 힘을 잃었다.
리오테르는 정말로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허접하게 날아오는 도끼를 가뿐히 피해내더니 곧바로 놈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찔렀다.
푸욱-!
단단한 갑옷이 두부처럼 꿰뚫렸다. 그녀의 검에 푸른 오러가 하나 더 덧씌워지더니 그대로 수직으로 올라가, 투구와 두개골을 일도양단 내버렸다.
화악-!
그녀가 검을 집어넣자, 거대한 도끼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놈의 신형이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쿵-!
바닥을 울리는 진동에, 나는 이 싸움이 끝났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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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워리어를 처리한 우리는 수호자의 방에다가 텐트를 쳤다.
꺼림직했으나, 보통이런 방이 위험하긴 해도 다른 괴물이 습격할 확률이 적어 여기가 더 안전하다고 한다.
‘국룰이라는데 어떡해.’
잘 곳을 모두 마련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잘했다, 아주 잘했다!”
웃기게도 리오테르에게 강아지처럼 쓰다듬을 받고 있었다.
“저보다는 누나가 잘했죠, 뭐.”
“아니다. 너의 실력이 아니었다면, 그런 작전을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말 잘해줬다.”
오랜만에 듣는 칭찬이라서 그런지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근데, 이제 어떻게 할 거에요? 던전 공략, 계속 하실 거에요?”
“수호자까지 잡았는데, 이제와서 포기하기는 좀 아깝지 않겠나?”
그렇긴 했다. 들어간 돈도 꽤 있었으니까.
“그래도, 수호자한테도 이렇게 쩔쩔 맸는데, 더 강한 놈이 나오면 어떡해요.”
중간 보스도 있으니, 뭔가 최종 보스도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왜요?”
“보통 던전에서 가장 강한 게 수호자다. 그런데, 그걸 해치웠다는 건, 이미 우린 이 던전을 공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 강한 놈이 나올 경우는 없나요?”
“낮은 확률이지만, 없다고는 하기 힘들지. 하지만, 그건 골드급은 돼야지 그럴 거다. 실버급에서 그런 난이도의 던전은 찾아보기 힘들지.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알겠어요.”
찝찝하긴 했으나,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육포로 식사를 해결하고는 텐트에 들어가, 잠에 들었다.
던전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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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닥-!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수호자도 물리쳤겠다, 던전을 돌파하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破竹之勢).
앞을 가로막은 스켈레톤이 리오테르의 검에 맞아 박살이 났다. 그녀의 뒤로 구울이 달려들긴 했으나.
화르륵-!
내 화살이 놈의 머리에 박히며 몸을 통째로 태워버렸다.
“후, 잘했다.”
그녀가 검을 넣더니 말했다. 이젠 익숙해져서인지, 던전도 쉽게 느껴졌다.
‘어제랑 별 다를 바가 없네.’
이대로 무난하게 간다면, 던전을 깨는 것도 조만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문이네요.”
던전에 들어온지 사흘 째, 우리는 그때와 같은 거대한 문을 또다시 맞이했다. 보통, 던전 공략에 최소 일주일이 걸린다는 걸 생각해봤을 때, 기형적인 속도.
문제는 바로 앞에 있는 문이었다.
“새겨진문양… 이거, 그거죠?”
잔뜩 화가 난, 붉은 빛의 황소 모양. 너무나도 명백한 의미를 갖춘 문양이었다.
“그래, 최종 수호자가 존재하는 거 같다.”
“보통은 수호자가 던전에서 가장 강한 존재라면서요….”
“……미안하다.”
“딱히, 사과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세상 어디에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잖아요.”
우리 둘은 입을 꾹 다문 채 문을 바라봤다. 내 생각이 깊듯,그녀의 머리 역시 복잡할 것이다.
“어떻게 할 거에요?”
먼저, 침묵을 깨뜨린 건 나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나도 잘 모르겠다. 이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불확실성.
모험가라는 직업에겐 항상 따라다니는 요소였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성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대박을 노린다면 하는 게 맞을 것이고. 목숨이 아깝다면 안 하는 게 맞을 거다.”
우리 둘 다 굳이 대박을 노릴 필요는 없는 사람들이긴 했다.
하지만, 이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대체 얼마나 귀중한걸 숨겨놓았길래, 최종 수호자까지 존재하는지. 그게 정말 미치도록 궁금했다.
“후….”
나는 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저는 누나한테 맡길게요. 저는 이번이 던전을 처음공략하는 거라서, 판단이 안 서네요.”
“아까도 말했지만,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잘 모른다.”
“괜찮아요.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저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저는 누나의 선택을 존중할게요.”
리오테르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횃불의 열기가 주변의 공간을 가득 채울 때쯤,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