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이사벨라 (7)
“아, 오셨습니까?”
막내 경비원의안내를 받아,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악수를 나누고는 맞은편에 앉았다.
“부르신 이유가 뭔가요? 제가 알고 있던 사실 대부분은 저번에 알려드렸던 거로 기억하는데.”
이제 더 말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아, 그거 때문에 부른 게 아닙니다.”
“그러면요?”
“말씀 드리기 전에, 지금 뒷골목에 당신에 대한 소문이 가득하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저에 대한 소문이요? 왜요?”
“누가 뒷골목에서 당신이 싸우고 있는 걸 본 거 같습니다.”
“음, 싸울 때는 딱히 못 느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령으로 주변을 봤었지만,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었다.
“뭐, 모르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곳의 말은 낮에는 고아들이 듣고. 밤에는 거지들이 듣는 법이거든요.”
“그래서, 저에 대한 소문은 왜 돌고 있답니까?”
“뒷골목에 사는 조직의 보스 중 하나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를요? 아니, 왜요!”
오늘따라 ‘왜’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거 같다.
“뭐, 당신이 잡은 그 조폭년들이 조직의 주요 자금 공급원인 남자 노예를 잡는 담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금술사 역시 마찬가지로 마약을 만드는 담당이었고요.”
“그러니까. 제가 조직의 주요한 돈줄인 노예와 마약을 모두 한꺼번에 끊어버렸다는 겁니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경비대장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는 어이가 없었다.
“여기 차 있습니다.”
다른 경비원이 가져다주는 차를 바로 목구멍으로 퍼부었다. 뜨거운 차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아니. 조직 규모가 어느 정도이길래, 돈줄이 거기 하나밖에 없답니까?”
“뭐, 조직이 작긴 하죠. 기껏해봐야, 열 다섯 명 정도이니까요. 근데, 당신이 다섯 명 잡았으니, 이제 열 명 남았네요.”
“진짜 존나 작네요….”
“하하, 마레아는 관광과 무역의 도시인 만큼 치안에 들어가는 세금이 어마무시합니다. 덕분에,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시도조차 못하고 잡히죠.”
“시도조차 못하면 범죄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그렇다고 너무 무시하지 마십쇼. 그 조직이 그나마 이 마레아에서 두 번째로 큰 조직이니까.”
“아….”
그러니까, 도시에서두 번째로 큰 조직의 조직원 수가 열 다섯 명밖에 안 된다?
‘괜히, 쫄았네.’
나는 바짝 긴장했던 몸을 풀고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래서, 이렇게 겁이나 줄려고 부른 건 아닐 거 같고. 본론이 뭔가요?”
“그 두 번째 조직. 이번 기회에 싹 소탕해버리고 싶은데. 협조 좀 해주십시오.”
“제가 왜요.”
내가 왜? 굳이, 그런 귀찮은 일을?
“지금 조직이 당신을 노리고 있다니까요? 그들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네.”
규모가 겨우 열 명밖에 안 되는데, 내가 무서워 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거기 조직 보스는 과거 브론즈급 모험가로 활동했을 정도로, 상당히 강한 녀석입니다.”
“그래요?”
“예.”
“그래요.”
“예?”
“괜찮다고요. 저도 브론즈 모험가인데요, 뭐.”
경비대장이 침음을 삼켰다. 이렇게 협조를 안 해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한 듯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모험가라고 하셨는데, 모험가 길드 소속이신 겁니까?”
“예.”
“그럼, 지금 마레아 지부로 정식으로 지명 의뢰를 보낼 테니. 그걸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명 의뢰!’
리오테르에게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등급이 낮은 모험가에게는 절대 나올 일이 없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받게 된다고?’
조직을 소탕하고 싶은 마음이 확실하게 있는 듯했다.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뭐에요?”
“이때까지 계속 수사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던 놈들입니다. 거의 여섯 달가량을 아무런 수확 없이 보냈는데, 이번에 딱 콰앙 님이 잡으신 거죠.”
그래도, 생각보다 머리를 쓰는 놈들이었나 보다.
“게다가, 그 조직의 보스를 잡으면, 첫 번째 조직도 소탕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소문으로는 두 조직의 보스가 자매 사이라는 말이 있었으니까요.”
“즉, 제가 협조만 해서 잘만 해준다면, 도시의 큰 골칫덩어리였던 년들을 한꺼번에 모두 잡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예. 이런기회는 또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금줄이 모두 끊겨 급해졌는데다가, 콰앙 님에게 복수하기 위해 조직원이 모이고 있는 지금. 지금이야말로 적기입니다.”
확실히, 그런 기회라면 나라도 잡고싶을 거다.
“계획을 실행하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길어봐야, 일주일입니다. 그 안에 년들이 움직일 거고. 그러면, 저희가 딱 현장을 습격하면 됩니다.”
“음, 그러면 못할 거 같은데요.”
“아니, 어째서입니까!”
“저는 이틀 뒤에 마레아를 떠나야 하거든요.”
“무슨 급한 용무라도 있습니까?”
“마차 호위 퀘스트를 진행 중이라서요.”
“도시에 도착했는데, 무슨 마차 호위입니까?”
경비대장은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마레아로 갈 때와 리벨룸으로 돌아 갈 때. 모두 호위하는 게 조건이라서요. 퀘스트를 파기하면 패널티가 엄청난 데다가, 함께 다니는 동료들도 있어서. 힘들 거 같습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 거라면, 제가 도시를 운영하고 계신 공작님께 건의를 드려보겠습니다.”
“예!?”
갑자기, 공작이 나와버린다고?
‘아니, 이 양반 얼마나 급한 거야?’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공작 님께서 받아들이실까요?”
그녀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많이 바쁘시긴 하지만, 도시의 치안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시니, 아마 받아들이실 겁니다. 자, 이제 어떻습니까?”
경비대장은 씩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마치, ‘이래도, 거절 할 거냐?’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거 같았다.
“동료들과도 의논을 해야 하니, 일단 공작님께서 수락하시면, 그때 다시 와서 답을 해드려도 될까요?”
“예.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일단 먼저 일어나볼게요.”
일단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더 있다가는 경비대장의 말놀림에 넘어갈 거 같았다.
“아, 나가기 전에. 경비병 한 분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요.”
“예? 저희 경비병 중에요?”
“네. 이름은 잘 모르는데. 긴검은 머리에 녹안을 지니고 계신 분이었어요.”
“그런 경비병이라면, 한 명밖에 없는데….”
경비대장은 ‘일도 제대로 안 하는 년인데, 감사 인사를?’이라는 말을 슬쩍 집어삼켰다. 물론, 내 귀에는 들렸지만.
“대체, 뭘 했길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 건가요?”
“아, 저한테 그 가게를 추천해주셨거든요. 그녀 덕분에 이렇게 조직 소탕하기 위한 초석도 마련하고. 어우, 아주 뛰어난 경비병이 아닐 수 없지 않나요?”
그녀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걔가 그 가게를 추천해줬다고요?”
“예. 뛰어난 연금술사를 찾는다고 하니, 뒷골목을 추천해주더라고요.”
“그렇…습니까.”
“네. 뒷말로 뭐 좆같은 창남…뭐? 아, 뭐라고 했는데. 그때 있었던 일들이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된, 그런 일인 건지. 아, 모르겠네요~”
경비대장의 얼굴이 시뻘게 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 알겠습니다….”
“네, 그러면 수고하세요~”
웃으며 경비대를 빠져 나왔다. 곧 이어 건물이 발칵 뒤집혀졌지만, 그건 내가 떠나고 나서의 일이었다.
###
“그래서, 다들 어떻게 생각해요?”
잠을 푹 자고 나온 두 여자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해주었다. 그녀들은 입에 넣으려던 숟가락도 그대로 든 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스튜 흘러요.”
내가 말하고 나서야, 숟가락을 슬쩍 내렸다.
“거짓말이지?”
“제가 이런 말을 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요.”
“그건 그렇긴 한데, 우연히 방문한 연금술사가 조직의 마약을 담당하는 여자였고. 그 건물이 사실은 남자들을 납치해서 노예로 파는 인신매매 건물이었다? 너 같으면 이 말을 믿겠어?”
이사벨라는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원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게 현실 아니겠어요?”
“그건 그렇긴 한데….”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델리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 나는, 잘 모르겠어… 모험가가 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공작님의 지명 의뢰라니….”
그녀들이 고민하는 사이, 스튜를 몇 번 떠먹었다.
“음, 이게 제가 묻긴 했는데. 만약, 공작이 ‘알겠다’고 대답이 오잖아요? 그러면, 사실 저는 할 수밖에 없긴 해요. 거부권이 없다는 거죠.”
“왜?”
“공작의 부탁을 거절하는 순간, 공작의 명을 거스르는 게 되니까요. 거절 할 명분이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경비대장이 건의를 넣겠다고 한 이유도 그거였다. 빠져나갈 수 없는 절대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한 것.
‘거절할 거였으면, 그냥 바로 뛰쳐나왔어야지.’
근데, 솔직히 욕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실버급도 좀처럼 받기 힘들다는 지명 의뢰라니?
“그럼, 우리한테는 선택권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잖아? 대체, 물은 이유가 뭐야?”
“지명 의뢰는 저한테 들어온 거잖아요. 그러니까, 굳이 이사벨라와 델리카. 두 분이 함께 하실 필요는 없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 일에 함께하겠냐,아니면 그냥 너를 내버려두고 마차 호위를 하며 리벨룸으로 돌아가겠냐. 이런 뜻이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사벨라가 델리카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난… 하고 싶어.”
“왜?”
“지명 의뢰잖아. 우리 같은 아이언들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일이라고. 그런데, 그걸 지금할 수 있다? 그러면, 앞으로의 모험가 생활에 엄청 도움 될 거야. 그리고….”
그녀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콰앙 님한테 도움이 되고 싶기도 하고….”
이사벨라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 그래. 그렇겠지. 뭐, 나도 이때까지 신세를 진 건 사실이니까. 좋아.”
나는 감동받았다는 듯 둘을 바라봤다.
‘뭐, 받을 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예상하는 것과 실제로 이루어지는 건 다르니까.
“고마워요. 그래도,아직 답이 확정적으로 온 건 아니니까. 떠날 채비 정도는 해두는 게 좋을 거에요.”
“알겠어.”
“그러면, 오늘도 한 번 마셔볼까요?”
나는 종업원을 불러, 술과 음식을 시켰다.
“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원한 맥주가 나오자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경사와도 같은 날에, 어떻게 안 마시겠어요?”
앞에다가 맥주컵을 가져다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그냥 적당히 마시고 올라가서 기분 좋게 자자고요. 오늘 도시 구경도 못했는데. 내일은 해야죠.”
“그래!”
델리카도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럼, 건배!”
###
“에으에으에으에으….”
“술 더 가져와아아아아!”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그때 그랬던 것처럼 델리카를 안고, 종업원에게 부탁해 이사벨라를 위로 옮겼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종업원은 문을 잠가두지 않았다. 나는 침대 근처 의자에 앉아, 이사벨라를 가만히 지켜봤다.
호흡이 점차 안정되고 방이 조용해졌을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이사벨라, 자요?”
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자네.’
수면제 뚜껑을 딴 다음, 이사벨라의 입에다가 갖다 댔다. 수직으로 기울이려는 순간.
탁-
“지금 뭐하는 거야.”
이사벨라가 나의 손목을 잡았다.
‘좆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