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이사벨라 (5)
“우와아.”
도시 광장으로 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긴 계단 아래, 도시의 정경이 펼쳐지고 그 너머에는 끝없는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
“빨리 가봐요!”
델리카와 이사벨라는 신난 듯,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이거 한 번 구르면 죽는 거 아니야?’
감상에 빠져 있는 그녀들과는 달리. 나는 안전 걱정부터 됐다. 이렇게 계단이 긴데, 여기서 구르면 어떻게 될까?
죽을까? 아니면, 누군가 잡아줄까?
‘궁금하네.’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녀들을 따라갔다. 바다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바닷내음이 코를 찔러왔다. 정말 오랜만에 맡아보는 냄새.
‘저쪽에서도 바다는 안 간지 꽤 오래 된 거 같네.’
워터파크는 간 적이 있어도. 바다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항구를 지나, 부두의 끝으로 갔다.
“와아….”
끊임없이 펼쳐진 바다. 크고 작은 배들이 둥둥 떠 있고, 바다 저 끝에는 하늘과 경계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지평선이 늘어지게 있었다.
“들었던 얘기랑 완전 다르네요….”
“책에서 적혀 있던 거랑 완전 달라….”
“대체, 어떻게 듣고. 어떻게 적혀 있었어요?”
궁금한 마음에 물었다.
“엄청나게 큰 웅덩이라고 했거든요.”
“엄청나게 커다란 호수와 같다고, 책에 적혀 있었어.”
“바다를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긴 하네요.”
하긴, 바다를 어떻게 묘사해야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구경 다 했으면, 일단 숙소부터 잡으러 가죠.”
“그러자.”
그녀들을 데리고, 상업 구역으로 갔다. 무역만큼이나, 관광이 발달 된 도시라서 여관이 무척이나 많았다.
“여기로 하죠.”
나는 그 중에서 상당히 고급스러운 여관을 골랐다.
“비, 비싸 보이는데, 정말 괜찮겠어요?”
“네, 뭐. 기껏 온 거. 싼 곳보다는 비싼 곳에서 제대로 즐기고 싶잖아요. 상인한테 꽤 큰 돈을 받기도 했고.”
“뭘 꺼려하고 그래. 이런 건 거절하면 우리가 손해인 거라고. 빨리 들어가자.”
이사벨라가 웃으며 델리카를 안으로 데려갔다. 나는 뒤따라 들어가, 방 세 개를 부탁했다.
“두 개가 아니라, 세 개?”
이사벨라가 의아한 듯 바라봤다.
“네.”
“너야 남자니까, 그렇다고 쳐도. 나랑 델리카는 같은 방을 쓰고 있어서. 2인실로 줘도 상관 없는데.”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잖아요.”
나는 그 말을 하며 델리카에게 윙크를 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더니 말했다.
“그, 그래. 나 이런 곳에서 혼자 앉아 감상에 빠져보는 게 소원 중 하나였어.”
“그래? 그러면, 뭐. 알겠어.”
열쇠를 하나씩 받아, 그녀들에게 주었다. 여관의 비용은 역시나 무척이나 비쌌다.
‘3일 숙박에 30실버가 넘는다니.’
이게 바로 도시의 물가인 건가? 아니면, 관광지이기에 붙은 프리미엄 가격인 걸까?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숙박비에 포함이 안 돼 있나요?”
“네. 별도로 비용을 지불하셔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 일단 오늘 저녁은 필요 없으니. 나중에 필요하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열쇠를 받아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방 안의 모습은 꽤 괜찮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창문 밖으로 바다가 훤하게 보인다는 점이었다.
“아아아!”
양옆으로 델리카와 이사벨라의 방이 있었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방음은 확실한 듯했다.
‘잘 골랐네.’
방음이 잘 될 거 같아서 들어온 건데, 확실한 듯했다.
나는 짐들을 대충 내려놓고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푹신푹신한 게 좋은 침대인 듯했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왔다.
똑똑-
“저 잠시 나갔다 올 게요.”
둘한테 먼저 나갔다 온다는 말을 하고는 여관 밖으로 나왔다.
‘저녁 먹을 만한 식당도 찾아봐야 하고.’
이사벨라를 무너뜨리려면 물건들이 필요했다.
[‘성신’님이 미션을 등록하였습니다.]
[이사벨라 무너뜨리기.]
[제한 시간 : 3일]
[보상 : ‘친하게 지내자’ 특성 획득.]
[수락 / 거절]
오랜만의 미션이었다.
“친하게 지내자?”
특성 이름이 특이했다.
[성신 : 너한테 꼭 필요한 특성일 걸 ㅋ,,]
“그래요?”
무슨 효과가 있는진 몰라도, 일단 수락했다. 어차피, 해야되는 거였으니까.
광장으로 나가, 순찰하는 경비병 중 하나를 잡고 물었다.
“혹시,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아이씨, 누구… 어? 어어! 당연하지!”
그녀는 짜증난다는 표정을 잠깐 지었다가, 내 얼굴을 보고 방긋 웃었다.
“혹시, 연금술사 공방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연금술사 길드라면 상업 구역에 있어. 하지만, 실력 좋은 사람을 찾는 거라면 아래쪽의 뒷골목에서 찾는 게 좋긴 하지.”
“그래요?”
“어. 들어보니까, 몇몇 모험가들은일부러 뒷골목에 있는 가게를 찾아가서 물건을 산다고 하더라고. 그 중에서 제이너스의 공방이 좋다고 하던데?”
“음.”
그러면 뒷골목에 찾아 가보는 게 좋겠다. 돈도 아끼면 좋고. 성능도 좋으면 더 이득이니까.
“뭐, 남자한테는 좀 위험할 수도 있지만….”
“뭐라고요?”
뒷말을 했는데, 못 들었다.
“아, 아니야. 저기, 그것보다 어디 가서 나랑 술이라도 한 잔….”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가 던지는 추파를 무시하고는 길을 걸어갔다.
“쳇, 좆같은 창남 새끼. 호되게 당해라.”
들려오는 욕이 제법 살벌했다.
마레아는 특이한 도시였다. 광장을 기준점으로 위와 아래가 구분이 되는데, 양쪽에 전부 거주 구역이 있었고, 상업 구역 또한 존재했다.
높이에 따른 격차라도 만들고 싶었던 걸까? 도시 설계자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아래쪽 상업 구역의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그렇게 시궁창은 아니었다.
‘여긴가.’
[제이너스의 연금 공방.]
거의 다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간판이었다. 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외관만큼이나 허름한 내부. 한 마른 여자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어, 어서오세요!”
그녀는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얼굴에는 작게 미소가 떠올랐다. 무슨 의미일까.
“무슨 물건 때문에 찾아 오셨나요?”
“혹시, 수면제 있을까요?”
“수면제요?”
“네. 제가 잠을 못 자서. 기왕이면, 조금 센걸로 부탁드릴게요. 분량은, 이틀은 좀 강하게. 그리고, 하루는 약하게요.”
“잠시만요….”
그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뭔가 수상한 냄새가 흘러 나왔다.
‘밤꽃… 냄새?’
미약하지만 그런 냄새가 났다. 정령을 이용해, 살짝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자, 안에 있던 냄새가 명확하게 났다.
‘맞네.’
밤꽃 냄새가 확실했다. 물론, 가게에서 섹스? 할 수 있다. 나도 가게에서 섹스했으니까. 근데, 수상한 점은.
‘달콤한 냄새가 나는데, 뭐지?’
뭔가 이상야릇한 냄새가 난다는 거였다. 마치, 미약과도 같은.
“여, 여기요.”
내가 문 너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가 급히 닫더니 내게 병을 내밀었다.
“여기 있어요.”
수면제를 받았다.
“왼쪽의 두 병은 강한 거고. 오른쪽의 한 병은 약한 거에요. 주무시기 전에 물이랑 같이 마시면 바로 자실 수 있을 거에요.”
“아, 감사합니다.”
“혹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실래요?”
병을 챙기고 나가려는데,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아니요. 제가 바빠서요.”
“아, 네….”
그녀의 표정이 살짝 안 좋아지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나도 목례를 하고는 나왔는데.
“반갑다?”
밖에 웬 여자 네 명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여신 : 이… 이게 머선129…?]
[성신 : 뒷골목 집단 윤간…? 가능. 씹가능.]
[여신 : 어떻게 맨날그렇게 역겨운 소리만 하는지. 이젠 신기 할 정도야.]
이번 건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아, 들어가세요.”
문앞에서 슬쩍 비켜주며 손으로 안내했다.
“아니아니. 우린 가게에 볼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너한테 있는 거라서.”
역시나,그럴 줄 알았다.
“저한테요?”
“어.”
“무슨 일로요?”
“이렇게 잘 생긴 남자가….”
예쁘장한 여자의 손이 내 엉덩이로 다가왔다.
“골목을 함부로 다니면 쓰나? 안 그래? 그러다가, 엄한 사람한테 습격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꽈악-
손이 내 엉덩이를 떡 만지듯이 주물렀다.
‘이게 여자들이 가슴 만져지는 기분인가.’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딱히, 흥분되진 않았고 그냥 어, 그랬다. 어.
“그래서 그런데. 우리가뒷골목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켜줄 게. 어때?”
가게 내부에서 왜 정액 냄새가 나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보다.
[성신님이 힘 능력치를 ‘1’ 후원하였습니다.]
[힘 : 12]
이건 또 무슨 의미로 준 걸까. 싸우라는 의미? 아니면, 강간이라도 당하라는 의미?
‘그런 거였으면 그냥 미션을 줬겠지.’
아마, 저번의 보상을 뒤늦게 준 듯했다.
“음. 거절할게요. 제가 좀 바빠서요.”
“야. 우리가 지금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냐?”
여자들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했다. 그 어떤 남자라도 쫄만한상황.
“그럼, 저는 장난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뭐?”
내 엉덩이를 만지고 있는 손목을 잡은 다음 비틀었다.
으드득-
손에서 결코 나서는 안 되는 소리가, 뒷골목의 좁은 통로에 울려 퍼졌다.
“끼아아아아아악!”
“이 새끼가!”
그대로 손목을 놓으며, 날아오는 주먹을 고개를 숙여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는 바로.
퍼억-!
어퍼컷을 날려, 여자의 턱을 날려버렸다. 뒤로 뻥하고 날아간 그녀의 입에서 치아 몇 개가 나와 바닥에 뿌려졌다.
“씨발, 조져!”
손목을 부여 잡은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양옆에 있던 여자들이 주먹을 내찔렀다. 따로 반격하거나 피할 필요도 없이, 그냥 뒤로 살며시 물러났다.
콰앙-!
“끄아아아악!”
“끼아아아악!”
둘의 주먹이 그대로 맞부딪혔다.
“그러게 동선 같은 건 생각 좀 하고 행동했어야죠.”
다리로 한 명을 걷어차고는 팔꿈치로 가슴을 쳐버렸다. 둘다 바닥을 뒹굴고 벽에 부딪히며 그대로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부하 세 명이 모두 당하자, 손목이 기괴하게 뒤틀린 여자가 나를 괴물 보듯이 쳐다봤다.
“너, 너 정말로 남자 맞아?”
“그러면, 여자로 보여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여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씨발,진짜… 오랜만에 제대로 된 남자 따먹나 했는데….”
내가 다가가려고 하자, 품에서 단검을 꺼내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이걸로 찔러버린다!”
“찔러 보시던가요.”
“이 새끼가! 내가 못 찌를 줄 알고!”
바람을 압축시켜 그녀의 복부에다가 날렸다.
“컥!”
달려오던 여자가 갑자기 배를 부여잡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이게 되네.”
요즘에 정령술이 계속해서 늘고 있었다. 특히나, 이전의 전투로 정령이 성장하여 하급의 반열에들면서 범용성이 무척이나 늘어났다.
방금 전의 것도 성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력은 더럽게 잡아 먹지만.’
비효율적이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게 컸다.
나는 다시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갔다.
“힉!”
연금술사는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게에 있는 포션 전부 다 내놔!”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얼굴을 후려쳐 기절시키고는 뒤에 있는 문을 열었다.
“쉣….”
남자 셋이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빈 병의 냄새를 맡았다. 뭔가 몸이 달아오르는 듯한 향기.
[성신 : 미약이네.]
“미약….”
그 야동에 나오는 걸 말하는 듯했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있는 듯했다.
이불로 그들을 덮어주고는 근처에 있는 경비대를 불러 일을 처리했다.
“일단 수습이 먼저이니, 먼저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다만, 나중에 조사를 위해서 다시 오셔야 할 수도 있으니, 묵고 계신 여관을말씀해주시겠습니까?”
간단한 조사에 응한 다음, 경비병에게 주소를 남겨주고는 뒷골목을 빠져나왔다.
‘또 만나네.’
아까 전에 나한테 욕을 한 경비원도 그 중에 섞여 있었다. 그녀는 멋쩍은 듯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찔러야겠다.’
경비병이라는 년이 이딴 곳이나 알려주고 있고. 웃긴 년이 따로 없었다. 나를 엿 먹이려고 알려준 거겠지.
골목을 빠져 나오자, 어느새 해가 모습을 숨기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장면이긴 했으나, 감상에 빠질 시간따위 없었다.
“아,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