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이사벨라 (2)
“으으, 머리 아파요….”
“나도….”
델리카와 이사벨라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식탁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숲의 매혹은 그 맛과 향기가 좋은만큼, 숙취 역시 심했으니까.
“자,이거라도 먹어요.”
나는 소고기 스튜를 그들의 앞에 놓아주었다. 이럴 때는 오히려 기름진 게 해장에 좋다고 들었다.
“크….”
일부러 살짝 매콤하게 해달라고 해서, 그런지 속이 시원했다. 스튜를 떠먹으며, 슬쩍 이사벨라를 봤다.
“뭐. 뭘 봐.”
“아니에요.”
여전히 퉁명스러운 걸 보면, 어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 못하는 듯했다. 그랬다면, 저런 태도는 못 고수할 테니까.
“다음 의뢰는 뭘 받는 게 좋을까요?”
시원한 물을 들이 킨 델리카가 물었다.
“음. 호위 퀘스트나 의뢰를 받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호위요?”
“네. 괴수 토벌 다음으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바로 호위거든요. 특히나, 아이언에서는 가장 많이 맡는 의뢰가 호위에요.”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 데다가, 숙식 제공해주고 돈도 꽤 짭짤했으니, 돈이 없는 아이언급 들에겐 환영받는 일이었다.
운만 좋다면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 가능했다.
“아, 콰앙 님이 저희 마을에 오게 된 것도 호위 때문이었죠?”
“따지고 보면, 호위 및 토벌 퀘스트였죠.”
산적을 어쩔 수 없이 처리하긴 했지만, 호위 자체는 포함 돼 있지 않았었다.
“가장 자주 받는 의뢰인 만큼, 이번 기회에 배울 수만 있다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거에요.”
“우리 둘도 너처럼 빠르게 브론즈급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건 많이 힘들 걸요.”
“델리카한테 들어보니까, 너는 첫 의뢰가 약초 채집이었다면서, 근데 우리는 첫 의뢰부터 아이언-상급 퀘스트를 완료했는데? 그걸 생각해보면 우리가너보다 더 빠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나?”
“야야!”
델리카가 이사벨라를 흔들었다. 친한 사이이니, 얘기해준 듯했다. 나는 괜찮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긴 한데요. 제가 두 번째로 맡은 의뢰가 고블린 토벌이었어요. 브론즈급 의뢰에다가 고블린 킹까지 나왔으니, 최소 중급 이상의 난이도죠.”
“그, 그래?”
“네. 그 다음 의뢰가 와이반 토벌. 브론즈 중급 이상의 괴수, 거기서 베테랑 와이반까지 토벌했으니, 최소 브론즈 상급 이상이죠.”
이사벨라가 스튜를 젓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받은 게 이교도 소탕. 악몽 괴물까지 나와서, 난이도가 최소 실버급. 이게 2주 만에 해결 한 퀘스트와 의뢰들이에요.”
약초 채집을 제외하면, 최소 브론즈였다. 그것도 하급도 아닌 모두 중급 이상.
“이제 아시겠어요? 제가 왜 그렇게나 빨리 승급했는지?”
둘은 스튜 먹는 것조차 잊고, 입을 쩍 벌린 채 나를 바라봤다.
“콰앙님 대단하세요….”
“너, 너, 보기보다 엄청 대단한 남자였구나? 하긴, 성당에서 보여준 실력부터가 심상치 않았으니까….”
막상, 자기자랑을 하고나니 민망했다.
“브론즈 승급을 하면 좋지만. 굳이, 그거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어요. 저야, 어쩌다 보니 힘든 일을 하게 된 거지만. 여러분들은 좀 더 안전하게, 경험을 차곡차곡 쌓는 게 장기적으로 더 좋을 거에요. 둘 다 오래 살고 싶죠?”
“당연하지.”
“네….”
“그러면, 무리하지 말아요. 각자마다의 속도가 있는 거니까.”
내 속도는 거의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 수준이었다. 빠르고 강력하긴 했지만, 삐끗하는 순간 끝이었다.
“그럼, 호위 의뢰를 받는 걸로 할까요?”
델리카가 이사벨라를 보며 물었다.
“어어, 그러자. 나쁘지 않은 거 같고. 또, 다른 마을이나 도시를 구경하면 재밌을 테니까.”
“그러면, 밥 먹고 길드로 바로 가요. 호위 퀘스트와 의뢰는 인기가 많아, 아침에 동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네네, 그렇게 해요.”
우리 셋은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는 밖으로 나왔다. 역시,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길드 내부는 한산했다.
“일단 의뢰 게시판부터 확인해보죠.”
아이언급 의뢰 게시판을 하나하나 살폈다. 호위 의뢰가 제법 있긴 했는데.
“조건이 전부….”
“네. 별로 좋지 못한 것들뿐이네요.”
대부분 날로 먹으려는 심성이 보이는 조건들이었다. 숙식 제공은 안 해주면서 돈도 적게 준다던가. 숙식 제공은 해주지만, 그만큼의 비용이 의뢰비에서 뺀다던가.
“퀘스트 쪽으로 가보죠.”
델리카가 접수원에게 다가가 호위 퀘스트가 있냐고 물었다. 돌아 온 대답은 NO.
“브론즈급 호위 퀘스트라면 있긴 한데. 아이언급은 전부 나가고 없어요.”
“그, 그럴 수가….”
실망한 델리카와 접수원 사이를 살짝 끼어들며 말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먹는 법이니까요. 일단, 브론즈급 퀘스트들 좀 주시겠어요?”
나는 그녀가 내미는 종이를 받아 확인했다.
“조건은 전부 괜찮네요.”
리오테르에게 들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조건들도 많았다.
“아이언급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데, 브론즈급 모험가는 생각보다 도시에 적거든요. 그렇다고,실버급을 쓰자니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
조건이 왜 이렇게 좋나 했더니, 사람의 수가 적어서였다.
‘수요와 공급. 경제의 기본이지.’
공급은 적은데, 수요는 많으니. 자연스레 몸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마, 콰앙님이하겠다고 하시면, 추가 보수금이나 혜택이 추가로 더 들어올 수도 있어요.”
“어떻게요?”
“퀘스트를 맡긴 사람들한테 제가 메시지를 전달 드리는 거죠. ‘콰앙님이 퀘스트를 맡을 의사가 있다는데, 이런 조건을 추가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식으로요.”
“그게 가능해요?”
“네. 루키라고 불리고 계시는데다가, 길드장님 역시 루키라고 공인하셨거든요. 까다로운 분인데, 용케 인정받으셨네요.”
그 길드장이?
“또 길드장이 공인했다는 뜻은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높은 신뢰도가 자연스레 붙는다는 뜻이니, 상인들 입장에서는 눈에 불을 키고 데려가고 싶겠죠. 특히, 사람이 중요한 호위 퀘스트에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길드와 도시 내에서의 내 평가는 상당히높은 듯했다.
과도한 칭찬에 낯간지러워하고 있을 때, 옆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델리카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딱 봐도, 호위 퀘스트를 하고 싶다는 눈치.
“음, 그러면, 다른 건 괜찮으니까. 아이언급 모험가 두 명을 추가 고용하는 조건도 괜찮냐고 물어 봐주실래요? 둘의 실력은 제가 보증한다고 하고.”
둘의 눈이 띠용하고 커졌다.
“알겠습니다. 바로, 전달 드리겠습니다. 5분 안에 모든 답변이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둘이 급히 의자를 빼 앉더니 물었다.
“콰, 콰앙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맞아. 이건 네 경력이나 신뢰도에도 영향을 끼치는 거일 텐데?”
이사벨라답지 않게 내 걱정을 해주고 있었다.
‘어제는미친 년인 줄 알았네….’
델리카에 대한 일을 제외하면, 그래도 착한 여자인 듯했다.
“뭐. 실력에 자신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델리카와 이사벨라 씨. 두 분을 다 믿기 때문에 조건을 건 거에요.”
“나, 나를 믿어?”
“네.”
“왜?”
“델리카 씨랑 소꿉 친구라면서요.”
“고작,그 이유 때문에?”
“그거면 차고 넘치지.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콰앙 님….”
델리카가 감동했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저런 눈빛을 보니 양심이 좀 찔리긴 했다.
‘사실, 이유는 따로 있지만….’
소꿉 친구라는 건 그저 명분이고, 그냥 둘의 호감을 사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물론, 둘의 실력이 괜찮은 것도 있었다. 애초부터, 이사벨라는 사제다. 그런 그녀가 호위에 합류하겠다는데, 그 어떤 상인이 거절하겠는가?
그녀들에겐 내가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애초부터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물론, 굳이 이걸 말해 줄 이유는 없었지만.
“된다고 하시네요!”
곧, 접수원에게서 오케이 사인이 들려왔다.
“그럼, 가서 어떤 걸로 할지 고르죠.”
“그래.”
호위 규모는 퀘스트마다 제각각 달랐다. 소수를 요구하는 호위도 있었고, 상단 단위의 중규모 이상의 호위도 있었다.
“어떤 게 좋을까요?”
“규모가 작으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확률이 높고. 규모가 크면 한 가지 역할을 수행할 확률이 높아요.”
“지금 저희한테는 뭐가 제일 도움이 될까요?”
“음, 아무래도 이거겠죠.”
소규모의 인원을 요구하는 호위를 가리켰다.
“모험가 일은 함께 다닐 때보다는 혼자 다닐 때가많거든요. 그러면, 혼자서 여러 일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호위는 그걸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거에요.”
그리고, 규모가 크면 일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딱, 한 역할에만 충실해야 하니까.
“그러면, 이걸로 받아요.”
나는 종업원에게 퀘스트 종이를 받아, 약속 된 장소로 갔다.
“오오! 반갑습니다!”
중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반갑습니다. 조건이 부담될 수도 있었을 텐데,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루키이신 콰앙님께서 실력을 보증하신다는데, 당연히 받아야죠!”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항구 도시, 마레아입니다. 아마, 3일 정도 소요될 거 같으며, 거기서 3일 정도 머물고. 다시 리벨룸으로 돌아올 거 같습니다.”
‘여기도 항구 도시가 있구나.’
이 세계의 바다는 어떤 형태일까? 크라켄 같은 괴물도 사는 걸까? 궁금했다.
“다시 리벨룸으로 돌아올 때의 호위까지 원하십니까?”
“예. 갈 때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올 때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주의라서….”
“보수금은 각각 어떻게됩니까?”
“콰앙 님께는 각각 25실버와 40실버씩. 아이언급 모험가 분들께는 5실버와 8실버씩 드리겠습니다.”
“시, 실버!”
둘이 화들짝 놀라는 게 보였다. 하긴, 마을에서 용돈 받으면서 간간이 살아 온 그들한테, 실버는 상당히 큰 돈일 거다.
“도시에서 3일 동안의 체류 비용은요?”
“그, 그거까지는 제가 지급을 못해 드릴 거 같습니다. 대신에, 산적이나 괴물과 같은 위험들을 무사히 넘겨주시면, 보상금을 따로 지급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리오테르에게 들었던 것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하긴, 규모가 이 정도이니….’
혼자서 중급 규모의 마차를 두 대나 운용하는 걸 보면, 상당한 욕심쟁이인 듯했다.
그 외에도 다른 조건들을 물어보며 따졌고, 그것들이 만족스럽자 계약서에 서로 계약을 맺었다.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네.”
우리는 마차 뒤에 바로 올라탔다. 다행히, 물건들이 많이 실려 있지 않아, 앉을 자리는 넉넉했다.
“출발!”
우렁찬 말소리와 함께 마차가 도로를 따라 움직였다.
“시, 심장이 두근거려요.”
“나도! 이렇게 멀리 여행가는 건 처음이야!”
‘야한 냄새 나네…’
둘다 굉장히 들떠있었다. 마을에 있다가 도시에 온 것만 해도 엄청난 변화였을 텐데, 거기서 또 다른 도시로 가는 거니, 신이 날만도 했다.
‘나도 다른 도시를 가는건 처음이네….’
조금은 기대가 됐다. 하지만, 그건 항구 도시에 대한 기대감이지, 결코 마차에 대한 기대감은 아니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는 눈을 감았다. 3일 동안 지겹게 타고 있어야 하는 마차였다.
“저것 봐봐!”
“와아!”
둘은 마차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떠들었다. 하지만, 그 대화는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하늘의 풍경에 전율하지만. 이내, 푸른 하늘과 구름만 반복해서 나오면 흥미를 잃듯.
마차도 숲에 들어서, 계속 같은 나무만 반복해서 나오자, 그녀들도 역시 이내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거기서 흥미를 잃자, 그들에겐 마차 지옥이 펼쳐졌다.
“토, 토할 거 같아….”
도로가 마련되어 있었으나, 관리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길이 험악했다. 때문에, 마차는 수시로 덜컹거렸고. 그 결과, 멀미와 함께 불편함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델리카는 마부 언니를 둔 덕에, 그나마 익숙해보였는데. 이사벨라는 아니었다. 그녀는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기절한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자고 있네.’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자는 모양이었다. 그래, 차라리 자는 게 나았다. 물론, 밤에 자기 힘들겠지만.
나도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눈을 감았는데.
“자, 자요?”
델리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내 옆으로 슬쩍 다가왔다. 내가 가만히 눈을 떠 멀뚱멀뚱 바라보자.
쪽-
슬쩍 눈치를 보더니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베시시 웃었다.
“헤헤.”
쪽-
나도 얼굴을 가까이 해, 다시 입을 맞췄다. 가슴이 간질간질한 느낌. 연애할 때의 감정이 이러할까?
꽈악-
“데, 델리카?”
그렇게 서로 장난을 치던 중, 델리카가 갑자기 내 사타구니를 잡았다.
“이거, 뭐에요?”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 감촉과 달콤한 향기 때문인지, 아래가 볼록 솟아 있었다.
“저는 정말 순수한 의도로 한 건데… 이거 뭐냐고요.”
매혹적인 눈웃음과 함께 씨익하고 올라가는 입꼬리. 딱 봐도, 의도했다는 게 보였다. 표정만 봐도 결코 순수한 의도로 한 건 아니었다.
“그, 그게….”
물론, 그걸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한 채 가만히 있자, 그녀가 내 바지를 잡더니 갑자기 벗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