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내기 (2)
[여신 : 아니, 시발. 뭔데. 잠깐만, 뭔데?]
올라오는 채팅을 보며, 나는 씩 웃었다.
‘뭐긴 뭐야.내가 이긴 거지!’
[내기 보상을 지급합니다.]
[모든 스탯이 ‘2’ 상승합니다.]
[힘 : 10]
[민첩 : 9]
[체력 : 10]
몸에 힘이 솟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후… 덤벼.”
[특성 강화와 관련된 보상은 내기 당사자인 여신과 대화하여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뭐, 뭐?”
실바나가 당황한 듯 나를 바라봤다.
“아니에요.”
[여신 : 아니, 진짜 뭔데? 이거 내가 왜 진 건데? 대체, 내가 왜 져야하는 건데!!!]
“실바나.”
“응.”
“도박장. 갔죠?”
“어어? 어떻게 알았어…?”
“돈만 있으면 도박장에 꼭 간다고 했잖아요. 도박장에서, 제가준 1골드 전부 다 칩으로 환전했죠?”
“응. 어, 근데!”
그녀가 급히 변명했다.
“오히려, 이번에는 내가 땄어! 1골드를 무려, 1.5배나 불려서 나왔다고?”
“그래서, 망치도 바꾸고 화로도 다 바꾼 거군요.”
“응. 그러고도 돈이 살짝 남아서 새로운 재료도 샀어, 헤헤… 나 잘했지?”
“잘했어요. 너무 잘했어요.”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내렸다.
[여신 : 아니, 돈은 오히려 땄는데. 대체 왜?]
여신은 아직도 납득하지 못했는지, 채팅으로 난리를 쳤다.
“급한 일이 생각나서 그런데, 잠시 나갔다 올게요. 금방 올 거니까, 편히 쉬고 있어요.”
“어어? 어.”
나는 다시 대장간 문을 닫고는 골목으로 나왔다.
[여신 : 설명해 봐, 내가 왜 내기에서 졌는지.]
[여신 : 내가 납득 못하면, 보상도 지급 못해.]
“내기 조건은 제가 준 1골드를 모두 도박장에서 사용한다. 이거였잖아요?”
[여신 : 어.]
“그게 끝이에요. 제가 준 1골드를 전부 도박장에서 사용했으니까. 그러니, 제가 이긴 거에요.”
[여신 : 오히려 돈은 땄다고 했잖아? 근데, 왜?]
“도박장에서 1골드를 칩으로 바꾼 시점에서부터 이미 제가 준 1골드를 전부 ‘사용’한 거죠.”
[여신 : 대체 왜?]
“제가 초점을 맞춘 건, ‘1골드’라는 ‘가치’가 아닌, ‘제가 준’ 1골드였으니까요. 실바나가 1골드로 돈을 더 땄든, 아니면 다 잃었든. 이미, 도박장에 가서 칩으로 바꾼 시점에서 제가 이긴 거에요. 그녀가 가지고 있는 건 1골드의 칩인 거지, 제가 준 1골드는 아니니까요.”
[여신 : 아니, 시발. 이건 사기지!]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이런 거 안 배웠어요? 이래서, 계약할 때,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는 건데?”
[여신 : 인정 못해, 난 인정 못해!]
[성신 : ㅊㅎㄴ]
저건 해석 안 해줘도 알겠다.
‘추하네라고 했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성신 : ㅈㄹㅁㄱ ㅃㄹ ㅈㄱㅇㄴ ㅎㄹ]
“지랄말고 빨리 지급이나 하라는데요?”
[특성 ‘침착함’이 ‘냉철함’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특성 ‘엘프의 친화력’이 ‘하이 엘프의 친화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특성 ‘매력적’이 ‘매혹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특성 ‘정력가’가 ‘엄청난 정력가’로 성장하였습니다.]
[특성 ‘모유 생성’은 성장이 불가능한 특성입니다.]
[따라서, 또 다른 보상으로 지급 받으시길 바랍니다.]
창이 쭈르륵 떠오르자, 함박 웃음이 얼굴에 떠올랐다.
“아, 네이스~ 네이스~ 그러면, 내기 보상. 착한데 쓰겠습니다~”
여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여신 : 아이씨… 너 다음에 한 판 더 해!]
“언제든지 환영이죠.”
[체력 : 11]
엄청난 정력가의 효과로 체력 스탯이 추가로 ‘1’이 더 올랐다.
‘와, 진짜… 거의 처음 여기 왔을때보다 세 배는 강해졌네.’
처음에는 잠깐 달리기만 해도 숨을 헉헉거렸는데, 지금은 10분 넘게 달려도 숨이 별로 안 찼다.
“모유 생성 보상은 어떻게하실 거에요?”
[여신 : 좀 기다려 봐. 나도 생각 좀 하자.]
“그러면, 나중에 주실 거라고 믿고. 저는 일단 다시 가볼게요.”
나는 근처에서 닭꼬치와애플 파이를 산다음, 대장간에 다시 들어갔다.
“자, 이거 좀 먹어요.”
실바나는 내가 말했던 대로 가만히앉아 있었다.
“고마워!”
애플 파이를 손에서 낚아채더니 바로 입 안에 넣었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많이 먹어요. 많이.”
그녀 덕분에 얼마나 많은 보상을얻었는데. 이정도도 못해줄까.
‘이럴 게 아니라, 차라리 더 대접해줄까?’
나는 손을 뻗어, 실바나의 입에 들어가는 애플 파이를 뺏었다.
“어어, 왜?”
“우리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더, 더 맛있는 거?”
“네. 실바나가 좋아하는 카지노. 한 번 가보죠?”
“진짜!?”
“네. 마침, 저도 돈이 있거든요.”
나는 품에서 2골드를 꺼내 보여줬다.
“보이죠? 이거면 실컷 즐기고도 남지 않을까요?”
“당연하지! 내가 이번에 그 2골드를 4골드로 불려줄 게! 내가 어떻게 하면 도박장에서 이길 수 있을지. 딱,깨달아버렸거든.”
“아, 네….”
도박하는 사람들 이상하게 다 똑같은 소리를 한다. 무슨 깨달았니, 진리를 봤니.
“빨리 가게. 옷 입고 나와요.”
“어어, 알았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옷을 입고 나왔다.
그냥 일반적인 원피스였는데, 실바나의 몸매 때문인지 굉장히 야하게 보였다.
“그럼, 갈까요?”
내가 웃으며 손을 내밀자, 그녀가 잠시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어? 어어.”
실바나와는 처음으로 함께 외출이었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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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카지노의 외관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화려했다.
“들어가자!”
실바나는 익숙하다는 듯 나를 이끌었다.
“환전하려고 왔는데요.”
직원이 잠시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저기요?”
여자는 그제야 내 말에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환전 절차 진행하기 전에, 신분증으로 사용할 만한 걸 보여주시겠습니까?”
환전 창구에 가자, 직원이 말했다. 나는 품에서 브론즈 모험가 증표를 내밀었다. 그러자, 직원이 놀란 듯 잠시 나를 보더니 말했다.
“브론즈급 모험가는 환전에 1% 혜택이 있습니다. 게다가, 남자이시니 추가로 2% 혜택 추가. 총, 3% 혜택이 있습니다.”
리오테르가 말한 대우가 달라진다는 게 이런 걸 의미하나 보다.
“3%나요?”
실바나가 놀랐다는 듯 말했다.
“네.”
“큰 거에요?”
“응. 1골드 환전하면 3실버 칩을 추가로 준다는 거잖아. 사실상, 처음부터 공짜로 돈을 버는 거지.”
“그러면, 이거 그냥 무한 반복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럼, 돈 복사 버그인데?
“칩에서 돈으로 환전할 때는 또 수수료가 발생해서, 그건 불가능해.”
“아….”
하긴, 돈과 관련 된일에서는 카지노만큼 머리가 좋은 곳도 없을 텐데.
“얼마나 환전하시겠습니까?”
나는 2골드를 꺼내, 직원에게 내밀었다.
“2골드 받았습니다. 혜택으로 6실버 칩이 추가로 제공됩니다. 칩은 어떻게 드릴까요?”
실바나에게 알아서 바꾸라고 맡겼다. 나는 카지노에 대해선 잘 모르니까.
“자, 들어가자!”
곧, 다량의 칩을 받은 실바나는 활짝 웃으며 카지노에 들어갔다.
“근데, 남자라는 것만으로도 환전 혜택이 있네요. 어째서일까요?”
“잘생긴 남자가 카지노에 있는 것만으로 여자 고객들을 오래 사로잡을 수 있거든.”
“그럼, 제가 잘생겼다는 거네요.”
“그렇지.”
카지노 내부에는 정말 다양한 도박들이 있었다. 그 흔한 슬롯머신부터 시작해서,룰렛이라던가, 포커 비스무리한 거라던가.
“뭐, 뭐부터 해볼까?”
“자주 와봤다면서, 왜 이렇게 긴장했어요?”
“이렇게많은 칩을 들고 온 건 처음이라서, 조금 긴장되네. 잘못했다가, 전부 날리면….”
끔찍하다는 듯 몸을 떨었다.
“걱정하지 마요. 변상하라고는 안 할게요.”
“진짜?”
“네. 대신에 벌을 좀 받아야겠지만.”
“무, 무슨 벌?”
“그건 전부 잃으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일은 절대 없어!”
“그럼, 가보죠.”
실바나는 가장 먼저 나를슬롯 머신으로 데려갔다.
“이건 알아?”
“네. 그냥 이거 내리기만 하면 되는 거죠?”
“맞아. 한 번 돌릴 때마다 1실버씩 나가.”
“세상에.”
비용이 진짜 더럽게 비쌌다.
“공짜로 받은 6실버가 있으니까. 각자 세 번씩 돌려보자. 어차피, 당첨은 잘 안 되니까. 기대는 하지 말고.”
“넹.”
나와 실바나는 나란히 앉아, 슬롯 머신을 돌렸다. 처음과 두 번째는 둘 다 꽝.
[당첨, 당첨, 당첨!]
그런데, 세 번째에는 실바나가 슬롯 머신을 터뜨렸다. 머신에서는 음성과 함께 칩이 쏟아져 나왔다.
“봤지! 내가 절대 전부 잃을 일 없다고 했잖아!”
“네네.”
이제 우리가 가진 칩의 양은 2골드 50실버가 됐다. 그녀가 잭팟을 터뜨린 덕분이었다.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전장으로 가보자.”
실바나는 칩을 모두 들고, 테이블로 향했다. 그녀가 선택한 게임은 다름 아닌, 룰렛이었다.
“이게 가장 쉬운데, 또 은근 잘 벌려.”
“그래요?”
“응, 내가 이걸로 돈을 좀 딴 적이 있거든.”
총 서른 여섯 칸. 그 중에서 하나의 숫자에다가 돈을 걸어 맞추는 거니까, 당첨 확률은 1/36.
‘36번 시도해서1번 당첨된다는 소리인데.’
배당률이 36배이니 한 번이라도 당첨이 되면 이득이긴 했다. 하지만, 확률이라는 게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아무리 확률이 50%라고 해도, 재수 없는 놈은 100번을 해도, 전부 실패가 나올 수 있는 게 확률이라는 거니까.’
그리고,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재수가 좋으면 바로 당첨이 될수도 있었다.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 그게 확률의 매력이자, 함정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실바나는 어떨까?
처음에는 무슨 깡인지 무려 30실버를 32번에 걸어갔다.
“당첨되면 무려 1080실버!”
하지만, 안타깝게도 31번에 구슬이 들어가면서, 아슬아슬하게 실패했다.
거기서 뭔가 감이 왔는지, 그녀는 아까보다 높은 50실버를 12번에배팅했다.
“당첨되면 무려 1800실버, 무려 18골드! 그 돈이면 상업 지구에서도 좋은 땅을 살 수 있어!”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안타깝게 11번에 구슬이 들어갔다. 열이 받은 실바나는 다시 한 번 더 돈을 걸었고, 또 다시 아슬아슬하게 실패.
“으아아아아!”
두 번이나 연속으로 아쉽게 실패하자, 그녀의 눈빛이 돌아갔다. 그때부터는거의 무호흡 배팅 수준이었다.
중간에 말릴까도 싶었지만, 어차피 소용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련의 과정이 몇 번 정도 반복이 되자.
“시, 시발!”
수중에 있던 돈을 전부 사용해버렸다. 불과, 1시간 만에 2골드 50실버를 탕진한 것이다.
이게 숫자로만 말해서 적어 보이는데, 평범한 가정집이라면 몇 달은 풍족하게 먹고도 남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돈이었다.
‘이래서, 도박장에서는 돈 벌자마자 바로 나가라는 거구나.’
처음에 슬롯머신 터졌을 때,그때가 가장 좋은 기회였다.
다행이, 내가 룰렛에 재미 삼아 건 2실버가 당첨이 되면서, 72실버를 다시 벌긴 했다. 물론, 수수료 때문에 더 떨어지긴 하겠지만.
모든 돈을 잃고, 우리 둘은 칵테일 바에 서서 공짜 술을 마셨다. 카지노가 선심이라도 쓴 듯 제공해준 것이다.
‘날린 돈이 얼마인데. 이 정도는 그냥 줄 수 있지.’
오늘 돈을 공짜 술로 메꾸려면, 대체 몇 잔을 마셔야 할까? 아마, 간이 알코올로 절임이 될 정도로 마셔도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말 없이 술을 마시고 있자, 실바나가 우물쭈물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 저기… 미안.”
기어들어갈 것만 같은 목소리. 정말로 미안한 듯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실바나는 울상이었다.
“정말로 미안해요?”
“응? 으응….”
나는 잔에 담긴 칵테일을 한꺼번에 들이켰다.
“그러면, 올라가요.”
“어, 어딜?”
“카지노 호텔요.”
카지노에도 따로 호텔이 마련되어 있었다. 칩을 사용하면 가격이 할인된다고 하니, 오늘 여기서 번 것들 전부 사용하고 가야겠다.
“거, 거기는 왜?”
“왜긴 왜에요.”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벌, 받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