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내기 (1)
“승급했다고 해서, 바뀐 건 없네요.”
나는 리오테르와 아침을 먹으며 말했다.
“이제 막 초짜 모험가에서 벗어났다, 딱 이 정도지. 엄청난 직급에 올라간 건 아니니 말이다. 뭐, 그래도. 조금씩 바뀐 걸 느낄 거다.”
“예를 들면요?”
“직원들이나 다른 모험가들 태도부터가 다르다. 아이언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면, 브론즈는 그래도 하나의 어엿한 모험가로서 인정받으니까. 받을 수 있는 의뢰나 퀘스트 종류도 다양해지고, 수입도 상당히 많이 올라간다.”
그래도, 이리저리 이득이 많았다.
“브론즈가 이 정도인데, 누나가 실버로 승급하면, 엄청나겠네요.”
“아직 승급이 확실한 것도 아니니 너무 경거망동하지 않는 게 좋다. 그랬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것만큼 추한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실버 등급이면 모험가 중에서는 엄청난 거잖아요.”
실버 모험가면 중견급 모험가는 된다는 소리다. 그래서, 권한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소문으로는 모험가가 부족한 도시에서는 준귀족 정도의 대우도 해준다고 하던데요.”
“앞으로 쭉 이 도시에 있을 거니, 내겐 해당 사항이 없는 얘기다.”
“파티장이 실버 모험가라니, 생각만 해도 기대되네요.”
리오테르는 쑥스러웠는지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 콰앙.”
“네.”
“이기적인 말일 수도있지만, 당분간은 파티 의뢰와 더불어 너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할 거 같다. 나도 승급전만큼은 확실하게 하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거야 당연하죠. 승급 퀘스트도 실패하면, 공적치를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면서요?”
리오테르가 얼마나 오래활동했는지는 몰라도, 실버 승급전에 도달하려고 엄청 노력했을 것이다. 그걸 통으로 날리는 건, 나도 용납 못한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나도 만약에 대비해 다시 단련에 힘쓰려고 한다. 아마, 짧으면 2주, 길다면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말이다….”
리오테르는 자신이 아닌, 다른 파티와도 한 번 퀘스트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승급전을 제외하면, 나와 단 둘이서 파티를 해서 그런지, 너는 경험이 너무 부족하다. 경험은 모험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 내가 없는 이번 기회에 그걸 한 번 키워보면 좋을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 하나?”
‘그냥 승급전 끝날 때까지 적당히 놀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백수 생활이 될 텐데, 그건 또 조금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고 놀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네. 알겠어요. 한 번 도전해볼게요.”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말했다.
“나 없이 다른 파티에 너를 보내려고 하니, 많이 불안하구나. 여자 모험가들이 너를 그냥두려고 하지 않을 텐데….”
나도 그게 불안하긴 했다.
‘진짜로 숲에 끌려가서 강간 당하진 않겠지?’
그래도, 브론즈급 모험가면, 아까워서라도 그런 짓을 안 할거다. 그렇게 믿고 싶다.
리오테르는 품에서 스크롤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건…?”
“긴급 탈출 스크롤이다. 찢을 시, 거점으로 설정한 도시로 즉시 이동할 수 있다.”
“이거 비싼 거 아니에요? 이런 걸 제가 받기엔 좀 그런데….”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설명만 들어도 비쌌다.
“내가 불안해서 주는 거니 받아둬라. 그리고, 이 정도쯤이야 너를 위해서라면 흔쾌히 지불할 수 있다.”
“누나….”
역시, 나 생각해주는 거는 리오테르 눈나밖에 없었다. 내가 감동했다는 듯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부끄러운 듯했다.
“어쨌든, 위험한 곳에 갈 때마다 항상 이걸 가지고 다녀라. 알겠나?”
“알겠어요.”
나는 스크롤을 받아, 내 품에 넣었다. 앞으로 계속 가지고 다녀야겠다. 위험은 언제 올지 모르는 거니까.
“이해해줘서 고맙고. 또 미안하다. 그럼, 나는 바빠서 먼저 일어나보마.”
언제 다 먹었는지, 리오테르의 그릇은 텅 비어 있었다.
“다녀오세요.”
나도 그녀를 배웅해주고는 자리에 앉아,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주인님….”
레이나가 낯간지러운 목소리로 내 앞에 앉았다. 딱 봐도, 뭔가 원하는 게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왜?”
“그게… 저번에 하신 약속 기억해요?”
“무슨 약속?”
“다음에 저랑 언제든지 섹스 한 번 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아.”
그래,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긴 했다.
‘성욕이 뭐라고….’
한 번 싸겠다고 그런 약속을 하다니. 나도 참 대단한 놈이었다.
“혹시, 기억 못한다고 발뺌하시려는 건아니죠?”
“야, 너는 네 주인을 뭘로 보고.”
“섹스를 빌미로 사람을 노예로 만든 양아치?”
“일로 와봐.”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녀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으나, 명령이라서 어쩔 수 없지 몸을 가까이했다.
“아아아악!”
레이나의 머리통을 손으로 잡은 다음 꽉 힘을 줬다. 몸을 비틀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내가 너한테 뭐 대단한 거 시켰니? 많을 걸 바랐어? 아니잖아.”
“네, 네!”
“그냥 선을 넘지 말란 말이야, 선을! 근데, 요즘에 왜 계속 선으로 줄넘기를 하려고 그래? 어? 다시 주제 파악할 수 있게, 교육 한 번 들어가?”
“죄, 죄송해요!”
그녀는 아등바등거리면서 외쳤다.
“레이나야. 우리 잘하자, 응? 제발 좀 잘하자.”
그녀가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이자, 나는 그제야 손을 놓아주었다.
주변에서 식사를 하던 여자들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남자한테 잡혀 사네. 저러면, 앞으로 힘들 텐데.”
“그래도, 저 정도 외모면 잡혀 살 만하지.”
나는 손을 놓아준 다음 물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싶다고?”
그녀는 머리를 문지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하고 싶은 섹스는 준비가 필요해서 지금 당장은 못해요.”
“대체 뭘하려고?”
이 변태 년이 또 어떤 플레이를 원할지, 상상조차 안 됐다.
“그건 그때 가서 까봐야지, 재밌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런데, 내일이나 이틀 뒤에 시간 좀 내주세요. 그때 하게.”
“그래, 뭐. 알았다. 용건은 그걸로 끝?”
“넹.”
“그럼, 빨리 가서 일해. 아, 그리고. 금고에 돈 좀 쌓였지?”
“3골드 정도 있어요.”
잠깐 사이에 많이도 벌었다. 역시, 여관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면, 2골드 가지고 간다?”
“넹.”
아까 전에 한바탕 갈궈서 그런지,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아마, 내가 나가면 실컷 욕하겠지.
“그럼, 갔다올 게.”
“네. 다녀오세요.”
여관 밖으로 나와, 길드로 향했다.
“보자보자, 어디보자~”
파티 모집 게시판을 보니, 아이언급 파티는 넘쳤으나, 브론즈급 파티는 거의없었다.
‘브론즈부터는 거의 고정 파티로 간다고 했으니까.’
하긴, 당장 나나 리오테르만 해도 둘이서만 다녔으니, 당연했다.
“어, 넌 다음에 보자.”
일단은 당장 브론즈급 파티에서 모집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나는 걸음을 옮겨, 레이나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여신 : 그때의 내기, 아직 기억하고 있지?]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여신 : 내기 대가가 모든 스탯 ‘1’에다가 틍성 ‘엘프의 친화력’이었지?]
“네.”
[여신 : 너 이거 내기 지면 어떡하냐~? 기껏 올린 스탯도 다 떨어지고, 정령술도 사용 못하면 그냥 석궁만 쏠 줄 아는 바보가 되는 거잖아.]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의도가 뭘까?
“그래서, 뭐요.”
[여신 : 나는 여신이니까, 특별히 기회를 한 번 더 줄 게.]
“기회요?”
[여신 : 어, 지금이라도 쫄리면 내기를 취소시켜줄 게. 무승부로 해주겠다, 이 소리지.]
‘잠시만….’
도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운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결국, 패가 잘 들어와야지,결과가 잘 나와야지 이기는 거니까.
하지만, 포커와 같이, 심리전이 걸리는 도박이라면 다르다. 운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한 가지 있다. 그건, 바로 포커페이스.
‘채팅을 치기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어, 하지만, 채팅 치는 것만 봐도어느 정도 심리는 파악할 수 있지.’
저런 제안을 먼저 하는 것부터가 이미 이상했다.
‘신의 힘으로 미래를 봤고, 그 결과 내가 이겨서 저러는 건가?’
그럴 확률이 높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심리의 심리였다면?’
저렇게 먼저 제안하는 것자체가 이미 심리전에서 지고 들어가는 거였다. 그런데, 무려 여신이 그런 것조차모를까?
‘하지만, 그게 또 심리의 심리의 심리였다면?’
수그리는 척하면서 수그리는 게 아닌 척 하는 게 사실, 진짜로 수그리는 거였다면?
‘모르겠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차라리, 이럴 때는 상대의 심리를 떠보는 게 좋았다.
“그럼, 제가 역으로 제안할게요.”
[여신 : 뭐를?]
“지금 내기 조건은 실바나가 1골드를 모두 썼느냐. 안 썼느냐고. 대가는 모든 스탯 ‘1’에 특성 ‘엘프의 친화력’이죠?”
[여신 : 그렇지.]
“이거 내기 조건이랑 대가 전부 다 바꾸죠.”
[여신 : 더 말해 봐.]
도도한 척 채팅을 치고 있었지만, 어딘가 흔들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기 조건은 실바나가 제가 준 1골드를 모두 도박장에서 사용했다는 걸로, 그리고 대신 대가로는 모든 스탯 ‘2’에다가, 모든 특성 올인(All in).”
[여신 : 싸, 싹 다?]
“네.”
[여신 : 진심이야? 너 이번 내기 지면, 진짜 빈털터리 되는 거야. 한 달 동안 한 고생들이 싹 다 날아가는 거라고.]
“반대로 내기에서 이기면 모든 걸 얻을 수 있는거죠. 자, 어떻게 하실래요?”
[여신 :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
“천하의 여신이손가락이 왜 이렇게 길어? 후달려요?”
[여신 : 뭐, 뭐? 참네. 그래, 오냐. 그 조건 받아들일 게.]
[내기가 수정되었습니다.]
[내기 승리시 보상 : 모든 스탯 ‘2’ 증가, 모든 특성 강화.]
[내기 패배시 불이익 : 모든 스탯 ‘2’ 하락, 모든 특성 삭제.]
꿀꺽-
막상, 대가를 보고 있으니 조금 쫄리긴 했다. 이번 내기에서 지면, 진짜 브론즈급 모험가 구실은 절대 못한다.
‘진짜 하루종일 섹스만 하고 다녀야할 수도….’
[여신 : 자, 네가 말하던 대로 했어. 됐지? 이제 더이상 돌이킬 수 없어. 네가 네 스스로 물러설 수 있는 다리를 불태운 거라고.]
“예예. 그러면, 빨리 확인해봅시다.”
[성신 : 미친 새끼들.]
“성신님이 할 말은 아니죠.”
[성신 : 내가 왜?]
“됐어요….”
대장간으로 향하는 걸음이 빨라진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숨이 가빠졌다.
“후….”
대장간 문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조심스레 귀를 문에다가 갖다댔다.
‘망치 소리, 절대 들리면 안 된다.’
무조건, 안에 쓰러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 그녀가 도박장에서 모든 돈을 썼다는 게 되니까.
까앙- 까앙-!
하지만, 애석하게도 문 너머에서는 강렬한 망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귀를 뗀 다음에 말했다.
“저기,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여신 : 지랄 마, 낙장불입, 몰라. 낙장불입? 한 번 시작한 내기는 되돌릴 수 없어!]
[여신 : 어이, 쾅씨. 아가리 여물고 빨리 문이나 열어!]
“시발….”
여신 채팅치는 본새가 진짜 양아치나 다름이 없었다.
[여신 : 그럼, 패 한 번 까보자, 까보자~]
까앙- 까앙-!
문을 열자, 귀가 얼얼할 정도로 커다란 망치 소리가 들려왔다. 이전보다 더 커진 거 같다.
“실바나, 실바나!”
“어, 콰앙!”
그녀는 작업하고 있던 검을 냅다 기름에다가 던져 넣더니 내게 다가왔다. 이전에나 복장이 가벼웠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심했다.
‘이젠 아주 속옷만 입고 작업하네.’
검은색 속옷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가슴을 감싸고 있었다. 언제 봐도, 거대한 가슴이었다.
“오랜만이네. 승급전은 성공했어?”
“당연하죠. 저도 이제 어엿한 브론즈 모험가라고.”
“와아. 대단하네… 너는 벌써 브론즈인데. 난 아직도 이런 구석진 곳에서 망치나 두드리고 있다니….”
그녀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에이. 사람마다 각자 맞는 속도가 있는 거죠. 실바나 씨도 언젠가는 인기 있는 대장장이가 될 거에요?”
“그, 그치?”
“네.”
사실 잘 모르겠다.
“어, 근데. 대장간 내부가 좀 변한 거 같네요…?”
변화한 대장간을 보고 있으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응! 네가 준 돈으로 망치도 좋은 걸로 사고, 화로도 업그레이드 했어. 엄청 더워서, 일부러 복장도 바꿨어.”
“아… 그래요? 돈은 다 썼어요?”
“어, 어!”
[여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신 : 내기, 이겨버렸쥬?]
[여신 : 내기 조건 안 바꿨으면, 네가 이겼는데. 괜히, 바꿔서 져버렸쥬?]
채팅을 아주 열받게 친다.
[여신 : 그러면, 이 내기 대가. 착한데 쓰겠습니다~]
[내기를 정산합니다!]
[내기 결과는……]
[축하합니다, 콰앙민슥님!]
[내기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여신 :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