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금태양 (1)
“아, 왔나? 들어가자, 콰앙.”
“네.”
리오테르와는 건물 앞에서 만나, 안으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했던 길드는 무슨 일인지, 상당히 조용했다.
‘뭐지?’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여자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게 보였다.
접수대 근처의 탁자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구릿빛 피부에 호리호리한 슬렌더 체형의, 입술이 굉장히 매혹적인 여자였다. 묘한 색기가 흘렀다.
“흐응?”
그녀는 나를 빤히 보더니 입술을 핥았다.
[성신 : 섹스 각?]
‘안해요….’
차라리, 신이 한 명일 때가 나았다.
여신은 채팅은 자주 안 치고그냥 지켜보기만 하는데, 저 성신이라는 신은 여자만 보면, 섹스 각 떴다고 아주 난리가 났다.
“이교소 소탕 퀘스트 때문에 왔다만.”
“이름이 혹시….”
“리오테르라고 한다.”
접수원은 종이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2층으로 올라가셔서, 접견실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그런데, 아까 전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따라 올라왔다.
‘설마, 이 사람도?’
무언가, 뭐라고 해야 할까. 어딘가 무척이나 불안한 여자였다.
‘마치, 저쪽 세계로 치자면, 거근의 금발 태닝 양아치를 보는 거 같다고 할까….’
물론, 가슴이 크지도 않았고 덩치도 크지 않았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물씬 났다.
접견실로 들어가자, 그녀역시 따라 들어왔다.
‘역시나….’
불안한 예감은 항상 틀리질 않는다.
“약속 시간보다 빨리 왔네. 어어, 일단 앉아, 앉아.”
그녀는 우리를 지나쳐, 맞은 편에 앉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덜떨 하긴 했지만, 우리 둘도 일단 앉았다.
“당신이 이번에 교단에서 파견되었다던 기사인가?”
“응. 왜? 생각했던 기사의 이미지랑 달라서 실망했어? 미안해서 어쩌지, 교단의 기사는 꽤 자유로워서, 복장에 제한이 없거든.”
확실히 그래 보였다.
그녀는 지금 위아래의 검은 속옷이 훤히 드러나 있었으니까. 위아래에 천 같은 게 있긴 했는데, 시스루처럼 얇아서 그런지 전부 보였다.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무희의 옷 같았다.
‘진짜, 존나 야하다.’
구릿빛 피부에 흰색의 생머리. 키는 좀 작았지만, 워낙 다리가 길고 비율이 좋아서 그런지, 전혀 안 이상했다. 게다가, 몸집에 비해 큰 가슴까지.
꿀꺽-
보는 것만으로 음심을 자극하는 그런 옷이었다. 그런,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녀가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흠흠.”
나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든 말든 리오테르는 입을 열었다.
“미안할 거까지는 없다. 그것보다 혼자인가?”
“응.”
그녀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리오테르는 눈매를좁히더니 물었다.
“보통, 이교도 소탕에는 분대 인원 정도의 성직자와 기사가 동원되지 않나?”
“보통은 그런데, 보고서 올라온 걸 보니까. 규모가 그렇게 큰 거 같지가 않더라고. 그래서, 돈도 아끼고, 일도 쉽게 처리할 겸 내가 온 거지.”
“규모가 크지 않다는 건 어떻게 아나?”
“뭐, 할 줄 아는 건 칼 휘두르는 거밖에 없는 천박한 모험가들은 딱 보면 알 수가 없겠지. 우리랑은 태생부터가 다르니까.”
“뭐?”
리오테르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그녀는 별로 그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
“고작, 와이반 수준의 마차를 털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는 거 자체가 규모가 작다는 거야. 규모가 크다면, 마을을 습격하는 게 훨씬 자금 마련에 편리하고, 마물 소환에도 도움이 되니까.”
“그 정도 규모가 아닌, 그보다 작을 수 있지 않나.”
“중간 규모만 되더라도, 상단의 마차를 털려고 하지. 이렇게 마차 하나만 털진 않아. 그러니, 적으면 다섯 명. 많아 봐야, 10명 정도의. 소규모 이교도 집단이라고 할 수 있지.”
“저, 저기….”
그녀가 말하고 있을 때,내가 조심스레 끼어 들었다.
“응, 왜?”
이때까지의 차가운 표정과 어투가 사라지고, 갑자기 상냥해졌다.
“제가 이 도시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교도 때문에 도시 치안이 흉흉해졌다고 들었는데, 저희 마차를 습격한 이교도 소행일까요?”
“아, 그런 적이 있었어?”
“그래. 뒷골목에서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되고, 상단의 마차가 털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도시 치안이 강화 태세에 들어갔었지.”
“그때가 언제인데?”
“아마, 이제 한 달이 거의 다 돼가는 거로 기억한다.”
“그 정도 시기이면… 아마, 걔들은 아닐 거야. 교단에서 들려오기로는, 드라니오 도시 근처에서 중규모 이상의 이교도 집단이 발견됐다고 했거든.”
리벨룸이 아닌,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긴 듯했다.
“뭐, 원래 이교도들이 한 곳에 자리를 잡는 경우는 드무니까.”
“그러면, 새로운 이교도가 무리가 이쪽으로 넘어왔다고 봐야겠네요.”
“그렇지. 그것보다 너 몇 살이야~?”
“네, 네…?”
뜬금없이 나이를 묻고 있었다.
“아니, 그게. 교단의 기사라는 특성상, 출장이 굉장히 잦거든? 그래서, 아주 다양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입술을 핥더니 말했다.
“너처럼 꼴리는 남자는 처음 봐서 말이야.”
“남자에게 갑자기 무슨 추태란 말인가!”
쾅!
리오테르의 주먹에, 책상이 흔들렸다.
“왜?무슨, 네가 여자 친구라도 돼?”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러면, 내가 이렇게 해도 상관없는 거 아니야? 아,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 게. 근데,진짜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내가 표현하는 게 조금 서툴러서 그런데, 용서해줄래?”
“네….”
딱히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잃어버린 보상을 받으려면, 협조는 해야 하니까.
“기분 나쁜 언행은 주의해주길 바란다.”
“알았어~”
“그래서, 이교도 소탕은 언제 시작할 건가?”
“오늘 밤에 바로 출발해서, 사흘 안에는 끝내야지.”
“이교도가 대체 어디 있는지 알고, 끝낸다는 말인가?”
그녀는 품에서 나침반처럼 생긴 걸 꺼냈다.
“이건 이교도의 불길한 마력을 추적해주는 유물이야. 교단측에서 특별히 만든 건데, 피해자의 시체나, 피만 있다면 이걸로 추적이 가능해.”
“유물을 만들 수가 있어요? 사람이 만들었다면, 인공물이지 않나요…?”
“성남님의 힘이 있다면 가능해. 그건 사람의 힘이 아닌, 신의 힘을 빌려 만드는 거니까.”
“아….”
그래서, 인공물이 아닌 유물이었구나.
“이해했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풋하고 웃었다.
“귀엽네.”
“그래서, 그걸로 이교도를 찾아서 죽이겠다는 건가?”
리오테르가 끼어들며 말했다. 어딘가 급해 보였다.
“응. 여기 오기 전에 시체에 묻은 불길한 마력을 이미 추적해놓았어.”
나침반의 화살표는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게 왜 이렇게 불안한지.
“마력이워낙 진해서, 사흘 이상은 계속해서 방향을 가르쳐 줄 거야.”
“오….”
진짜 대단한 물건이었다.
“어쨌든,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피해자가 더 안 나오니까. 각자 개인 텐트랑 음식과 물, 필요한 물건들 전부 챙겨서, 저녁 6시까지, 북문으로 나와. 알겠지?”
“알겠다.”
“넹.”
“그러면, 나는 급해서 먼저 나가볼 게.”
그러면서,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근데, 우리 서로 통성명도 안 했는데?’
원래 교단 기사랑 일할 때는 이런 식인 걸까?
“콰앙.”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리오테르는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네, 누나.”
“저 여자, 어딘가 불안하니. 조심하는 게 좋겠다.”
그건 나도 느끼고 있었다.
“주의할게요.”
“그래, 남자가 조심해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 그러면, 우리도 헤어지고 이따 저녁에 만나도록하지.”
“어디 가시게요?”
“단련.”
그 말과 함께 리오테르는 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결의에 차 있었다. 뭔가 다짐이라도 한 것일까?
“그것보다 진짜 단련에 미친 건가….”
나도 필요한 물건들 살려면, 빨리 움직여야 했다.
‘아, 근데 돈이 없네.’
레이나한테 가서 좀 털어 먹어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음?”
아까 전에, 기사가 앉아 있던 자리에 물 자국이 살짝 나 있었다.
“이거 설마….”
차마, 만져 볼 용기는 나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아니겠지….”
아무리 발정 난 여자라고 해도, 회의하는데 흥분하진 않을 것이다. 설령, 진짜라고 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성신 : 섹스 각 떴다!]
[여신 : 창피하니까, 제발 네 속으로만 생각해, 병신아….]
채팅을 보고 있으니, 더 불안해지는 건 왜일까?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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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어보겠답시고, 마차 온종일 모는 마부들, 물건 운반하는 상인들, 괴물이랑 싸우는 모험가 새끼들.
정직하게 사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냐? 니들이 정직하게 사는 동안에, 노예 있는 애들은 그냥 돈을 무료로 받고 있다고, 돈을 창조하고 있다고!
음식? 그건 노예한테 받아서처리하면 돼, 포션값? 그것도 노예가 사준다.
“씨발 깝치지 마, 나는 무적이다. 노예는 신이고.”
[여신 :와….]
[성신 :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웬일인지, 섹스가 아닌 다른 채팅도 쳤다.
“흠흠.”
엘프의 여관에 있는 금고를 털은 덕분에, 나는 포션과 함께 필요한 것들을 모두 중급 이상으로 살 수 있었다.
‘가져가기 전에 레이나가 매달리긴 했지만….’
나중에 자유 섹스권 하나 주는 거로 합의 봤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내 노예가 벌은 돈, 내가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왜 허락을 맡았지?
‘모르겠다~’
북문으로 가자, 리오테르와 금태양 여자가 서로 떨어진 채, 서 있는 게 보였다.
‘나 없었으면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겠네.’
나는 웃으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죠?”
“괜찮ㄷ….”
“괜찮아~ 아직, 약속 시간이 아니니까.”
리오테르가 말하려고 할 때, 금태양이 말을 끊었다.
“시간이 급하다면서요! 우리 빨리 가요!”
나는 그녀들의 양 팔을 하나씩 붙잡은 다음, 북문으로 갔다.
“어어?”
“어?”
둘 다 얼빠진 얼굴을 했으나, 금태양녀는 바로 활짝 웃었다.
도시 밖으로 나오자, 긴 마차 행렬과 함께 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마차가 아닌, 이렇게 걸어서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인 거 같다.
“근데, 마차나, 말을 타고 가는 게 더 빠를 텐데, 굳이 도보로 가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 주변에는 산도 많고 숲도 우거져서, 마차로는 이동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말을 데려가자니, 잠깐 쓰고 버리는 수준이라서, 그냥 가는 게 훨씬 나아.”
“아하.”
거지 같은 마차 타고 가는 것보다 이렇게 걸어가는 게 나은 거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못 나눴네요. 이름이 뭐에요?”
“그걸 이제야 물어보는 거야?”
“그때 급하게 나가셔서….”
금태양녀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 이름은 도리스야.”
굉장히 나쵸가 생각나는 이름이었다.
“저는 콰앙 민슥이라고 해요. 민슥이라고 불러주세요.”
“잘 부탁해.”
그녀와 악수를 하는데, 검지가 내 손등을 스쳤다. 그러면서, 웃는데, 역시 금태양 타입이 확실했다.
“누나도 빨리 인사 나눠요.”
“누나? 둘이 많이 친한가 보네.”
“네. 같이 고정 파티로 다니고 있거든요.”
“흐응… 그으래? 재밌겠다.”
대체 뭐가 재밌겠다는 걸까?
“누나, 빨리요.”
리오테르는 마지 못해 손을 내미더니 말했다.
“리오테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
“나도 잘 부탁해?”
둘은 악수를 했지만, 여전히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아, 불안하네….’
이번 파티 뭔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신 : 섹스 각 제대로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