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베테랑 와이반
‘와, 진짜 존나멋있다.’
아마, 그 어떤 남자라고 해도, 지금 리오테르를 본다면, 바로 한 눈에 반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로 그녀는 아름다웠고, 그 정도로 그녀는 멋있었다.
“일어나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녀는 내 손목을 잡아 일으켜주었다. 고개를 돌리자, 거대 와이반이 한쪽 눈을 부릅 뜬 채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베테랑 와이반이라니… 갑옷도 없는데. 곤란하게 됐군.”
“베테랑 와이반이요?”
“마물이나 괴물 중에서는 인간을 해치며 오래 살아남아, 특별한 힘을 가지게 되는 놈들이 있다. 우린 그걸 흔히 베테랑이라고 부르지. 베테랑 모험가처럼 강력하고 노련하니까.”
“저런 놈들이 자주 나오나요?”
“그럴 리가. 그랬다면, 인간은 지금쯤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한 마디로 저걸 만났다는 건, 운이 더럽게 없었다는 소리다.
‘진짜 운수 없는 날 맞았네?’
베테랑 와이반은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날개를 펄럭였다.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했으나, 눈이 하나 없어서 그런지 계속 비틀거렸다.
“어딜 가, 이 자식아!”
나는 오른쪽에 날갯죽지에다가 화살을 박아 넣었다.
꾸에에엑!
같은 곳에 화살이 하나 더 박히자, 놈이 그대로 추락했다.
“가겠다!”
리오테르는 검을 뽑으며 달려들었다. 무기를 휘두르려는 순간, 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가리를 쩍 벌렸다.
“누나!”
걱정과는 달리, 그녀는 백스텝을 밟아, 가볍게 피해냈다.
“내 걱정은 하지 마라.”
씩 웃으며 말하는데, 역시 존나 멋있었다.
‘진짜 반할 거 같네.’
이게 걸 크러쉬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진짜 전설이다.
리오테르가 압박하는 움직임을 넣어 시선을 돌리고, 내가 화살을 쏴 계속해서 피해를 누적시켰다.
간단한 방법이었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가끔, 놈이 도망치려고 날아오르긴 했으나, 모두 내 공격에 저지될 뿐이었다.
그렇게 그러한 방법을 쓴지도 약 10분. 어느새 지쳤는지, 놈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후우, 후우.”
리오테르도 옷이 땀에 젖어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계속해서 움직이며, 위험한 공격을 피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섹시하네.’
꾸에에엑!
그런 생각을하고 있을 때, 놈이 다시 날개를 펄럭였다. 흙 먼지가 날리며, 시야를 잠시 가렸다.
“큭!”
이번에도 도망치려는 건가 싶어, 하늘을 조준한 채 대기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쿵- 쿵-!
“콰앙! 피해라!”
갑자기 놈이 흙먼지를 뚫고 나오더니, 나를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콰아악-!
날카로운 이빨이 나를 집어삼킬 듯 다가왔다.
“이거나 쳐 먹어 이 새끼야!”
하지만, 이쪽도 완전바보는 아니었다.
나는 쇠뇌를 내려, 와이반의 입에다가 화살을 박아 넣었다. 그 상태에서 바람을 일으켜 화살을 위로 솟구치게 했다. 그러자.
콰지직-!
화살이 놈의 입천장을 뚫고 들어가더니, 뇌를 관통해버렸다.
꾸아아악!
베테랑 와이반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나는 바람을 일으켜 내 몸을 힘껏 밀었다.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아가리가 내가 있던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큭.”
살짝 베이긴 했으나, 죽을 뻔 했던 걸 생각해보면, 가벼운 상처였다.
치명상을 입은 와이반은 땅을 구르며피를 토해냈다. 놈은 살기 위해 계속해서 발악하다가 결국, 움직임을 완전히 멈춰버렸다.
“후.”
길고 길었던 싸움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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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무모한 방법이었다, 콰앙!”
“죄, 죄송해요….”
베테랑 와이반을 잡은 건 좋았으나, 나는 리오테르에게 혼나야만 했다. 이유는 마지막 공격이 너무 위험했다는 것.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실수가 조금만 있었더라면, 죽은 건 와이반이 아닌 너였을 거다. 천운이 따랐어, 여신님이 너를 살리신 거다.”
여신은 내가 살려달라고 할 때, 외면했는데? 그 채팅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어쨌든, 성공했다면 그걸로 오케이 아닐까요?”
“너란 녀석은… 됐다. 다음엔 이런 무모한 짓은 하지 말도록 해라. 알겠나?”
“예압!”
내 대답에 그녀가 씩 웃더니 말했다.
“또다시 이런 일이 있을 수도있으니, 이번엔 같이 가도록 하지. 밤의 초원에서 만나는 와이반은 특히나 위험하니까. 아, 그리고 걸어가면서 발밑을 잘 봐라.”
“왜요?”
“너에게 빨리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갑옷을 벗어 던져버렸으니까.”
어쩐지, 왜 갑옷을 입지 않고 있나 했다.
“제가 전부 찾아드릴게요.”
말은 그렇게했지만, 마차에 도착할 때까지 상의밖에 찾지 못했다.
“저 때문에 못 찾아서 어떡해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갑옷이었다. 게다가, 애착도 꽤 있어 보였고 말이다. 그걸 나 때문에 잊어버리다니.
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 그녀가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리오테르는 그대로 나를 쓰다듬더니 말했다.
“하지만, 덕분에 네가 살았으니. 그걸로 됐다.”
“누나….”
“오히려, 갑옷의 무게 때문에 네가 죽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면. 나는 평생 이 갑옷을 속죄처럼입고 다녔을 거다.”
진지한 목소리. 그녀가 말하고 있는 건 진심이었다.
‘진짜 이 세상 여자 같지가 않다니까.’
아니, 그냥 사람 같지가 않았다.
이제 만난 지 거의 일주일밖에 안 된 사람을 위해, 죽을 위험을 감수할 만한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거짓말로라도 그런 말은 못하지.’
그만큼 우리 사이에 많은 정이 쌓였다는 걸까? 아니면,그만큼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까?
만약, 좋아하는 거라면, 대체 왜 나를 따먹지 않는 걸까?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근데요, 누나.”
“응? 왜 그러냐.”
“절대 저 안 만진다면서요. 근데, 지금 제 머리 위에 있는 손은 뭐죠?”
내가 짓궂게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급히 손을 뗐다.
“미, 미안하다! 무심코, 쓰다듬어버렸다.”
“누나도 참 은근히 제 몸을 만지려고 한단 말이죠?”
“그, 그런 의도가 아니라!?”
“농담이에요, 농담. 이거 반응이 너무 격하니, 농담도 못하겠어요.”
“다, 당연히 농담인 거 알고 있었다!”
“예예, 그러시겠죠. 빨리 마차에 타기나 하세요.”
“진짜로 알고 있었다! 내 말을 못 믿는 것이냐?”
“믿는다니까요? 정말로 믿어요~”
“이, 이런!”
그녀가 마차 위에 올라타더니, 고개를 휙 돌렸다. 토라진 모습이 참 귀여웠다.
‘재밌네.’
그러니, 이 바보 같은 여자를, 좀 더 알아봐야겠다. 같이 지내다 보면, 뭔가를 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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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는 베테랑 와이반을 싣고, 바로 도시로 출발했다.
“저는 밤이 깊어서 야영이라도 할 줄 알았어요.”
“이 근처에는 불을 피우기 마땅한 장소가 없다. 설령, 피운다고 해도 자칫 옮겨 붙었다간 초원이 모조리 타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네요.”
“게다가, 불을 피우면, 와이반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렇게 늦게라도 돌아가는 게 맞다. 애초부터, 야영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 이유가 있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나 혼자 있었으면, 그냥 바로 불 피웠을 텐데.’
그리고, 아마 활활 타오르는 초원을 보며 도망치고 있지 않았을까?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거였다.
무거운 사체를 네 개나 실은 탓일까. 마차가 도시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거의 10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 시간. 이때는 길드도 문을 닫는다.
“이거 마차는 어떻게 할까요?”
마부가 도시 중간에 멈추더니 물었다.
“길드 보관소에 맡겨놓으면 괜찮지 않나?”
“거기 지금 꽉 차서 자리 없다고 들었습니다.”
“흠. 곤란하군. 거기만큼 안전한 곳이 없는데 말이야.”
“정 불안하시면, 제가 아는 마차 보관소 가서 밤새 지키고 있을까요?”
“그래도 되겠나?”
“돈만 더 주신다면야… 못할 것도 없죠.”
리오테르는 주머니에서 3실버를 꺼내, 마부에게 튕겨주었다. 그녀가 급히 손을 뻗어 잡았다.
“헤헤. 이렇게나 많이 주십니까?”
“실려 있는 짐이 워낙 귀하니까.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준 거다. 내일 아침에 왔을 때, 짐이 그대로 있으면 추가로 줄 테니까. 허튼 생각하지 마라.”
“예. 당연하죠. 제가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시고, 내일 길드 정산소에서 뵙겠습니다. 만약, 제가 없어도 미르바의 창고에 마차가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마부가 허리를 90도로 숙이고는 다시 마차에 올라 타, 말을 몰았다.
“가자, 콰앙.”
“저렇게 맡겨도 돼요?”
“뭐, 불안하긴 하다만. 별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나야 마차에서 자도 된다만….”
“어우, 저는 싫어요.”
그녀가 풋하고 웃더니 말했다.
“그래. 넌 항상 마차만 타면 죽을 거 같은 표정을 해서 말이다. 일부러 배려해준 거다.”
“감사합니다.”
마차는 정말 지긋지긋했다. 딱딱하고 불편하고 멀미도 나고. 최악이었다.
“그럼, 여관으로 가요.”
엘프의 여관으로 들어가자, 사람도 없었고 카운터도 텅 비어 있었다.
‘뭐야, 어디 갔어?’
곧, 주방에서 레이나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내 얼굴을 보더니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어, 퀘스트하러 가신다고 하더니, 벌써 오셨어요? 설마,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돌아온 건 아니겠죠?”
다가와서 재잘재잘 말하는데, 키가 작아서 그런지 약간 애새끼처럼 느껴졌다. 애가 아니라, 애새끼. 그러니까, 성가시다는 의미였다.
내가 대답하든 말든, 그녀는 계속해서 조잘거렸다.
“그런 거라면, 어쩌죠? 주인님의 자리는 이미 이 레이나가 차지해버렸다는 사실! 당신의 자리! 이미 레이나로 대체되었다! 그러므로, 주인님은 무쓸모!”
“허허.”
나는 레이나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내려쳤다.
“으겍.”
“그럴 리가 있냐? 퀘스트 완료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이 년아.”
“그, 그래요?”
“피곤하니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거 좀 차려줘. 술은 필요 없어.”
“목욕은요?”
“그건 내일 아침에간단하게 하고 갈 게. 빨리 먹고 빨리 자고 싶어서.”
“알겠어요.”
레이나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늦어, 요리사는 이미 퇴근했나 보다.
“저희는 일단 앉죠?”
“어어, 알겠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리오테르가 멍한 눈으로 앉았다.
“저 여자와는 꽤 많이 친근해보이는구나.”
“제가 이 여관에서 잠시 일했었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그때 지인이 한다고 했던 가게가 이곳이구나.”
“네, 맞아요.”
그녀는 물을 들이키더니 입을 열었다.
“저기… 궁금한 게 하나 있다만.”
“뭔데요?”
“아까 전에, 저 여자가 주인님이라고 부르던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아.”
맞다. 사람들은 레이나가 내 노예인지 모르지?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 쟤가 저한테 빚진 게 꽤 많은 데다가, 신세도 많이 졌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저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면서 깎듯하게 대하더라고요.”
“실제로 노예인 것이냐?”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쟤가 마음대로 부르는 거죠.”
“흠, 그렇군.”
그녀는 주방을 힐끗 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이건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거일 수도 있다만.”
“네.”
“네 지인이라는 사람, 어쩌면 변태일 수도 있지 않나 싶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일까?
“몇몇 여자들은 남자에게 복종하며 쾌락을 느끼기도 한다. 노예가 아님에도 저렇게 행동하는 걸 보면, 그런 종류의 여자일 수도 있다.”
노예 맞는데요? 근데, 또 웃긴 건 대부분 맞는 말이었다.실제로, 그녀는 내 손길 하나에 헐떡이며 내가 지배해주길 원하니까.
“그, 네 지인에게 심한 말을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같은 여자로서 걱정이 돼서 해봤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곧, 레이나가 주방에서 나와, 음식을 올려주었다.
“여관 상황은 괜찮지?”
“네. 주인님이 빠지고나서 사람이줄긴 했는데, 그래도 아직 엄청나게 많아요.”
“그러면, 됐다. 손님도 없는데, 너도 이만 들어가서 자.이건 내가 치울 게.”
“넹. 그러면, 저 들어가요.”
“아, 저기 주인장.”
레이나가 나를 힐끔보더니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리오테르는 품에서 5실버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팁이다, 가져가라.”
“우와, 이렇게나 많이요?”
“그, 그래.”
아마, 아까 한 말이 미안해서 주는 듯했다.
“정말로 이걸제가 받아도 돼요? 너무 많은데….”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주는 거니, 부디 받아주면 좋겠다.”
“그래,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받아.”
“그, 그럼 사양 않고. 감사합니다!”
그녀가 잽싸게 가져가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헤헿. 돈 벌었다. 그러면, 저는 들어갈게요.”
“그래, 들어가라. 저희도 빨리 먹고 쉬어요.”
레이나가 들어가고, 우리 둘은 빠르게 음식을 해치웠다. 원래라면 술이라도 마시면서 리오테르를 유혹했겠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했다.
“그럼, 들어가서 쉬어라. 아침에 나오는 건 잊지 말고.”
“네.누나도 수고하셨어요.”
그렇게 식사를 마친 우리 둘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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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저것 봐.”
“와, 여기에서 자고 간다는 게 정말로 사실이었나 보네.”
“진짜, 잘생겼다. 와… 보는 것만으로 아래가 저릿해지는 기분인데? 근데, 옆에 있는 년은 대체 누구야?”
아침에 무사히 일어난 나와 리오테르는, 여관에서 빠르게 식사를 하고 나왔다. 나도, 그녀도,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이 많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그것보다 역시, 넌 인기가 많구나. 콰앙.”
“왜요? 질투났어요, 누나?”
“그런 게 아니다.”
“그러면요?”
내가 얼굴을 들이밀며 묻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흠흠. 빨리 길드로 가도록 하자.”
그렇게 리오테르와 이야기를 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어, 없는데요?”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길드 정산소에는 마차가 한 대도 안 보였다.
“그 년이 거짓말을 한 건가?”
그녀가 갑자기 얼굴을 구기며 말하니,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다. 무섭기보단, 역시 멋있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간 거일 수도 있잖아요. 자기가 없으면 미르바의 창고에 마차를 둔다고 했으니까. 일단 그쪽으로 가봐요.”
“그래, 거기 가서 판단해도 늦지 않겠지.”
창고를 찾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워낙 외곽에 있는 데다가, 굉장히 협소한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 곳까지 왔나 보군. 그럼, 확인해보도록 하지.”
리오테르는 양손으로 문을 잡더니 활짝 열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자마자, 비릿한 쇠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굉장히 익숙한 냄새.
“누나 이거….”
“쉿.”
그녀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더니, 허리춤에 착용하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았다.
스르릉-
사방이 막힌 창고라서 그런지, 내부가 무척이나 어두웠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등에 매고 있던 쇠뇌를 꺼내 내부를 조준했다.
찰박-
내부로 들어가자, 발아래에서 젖은 소리가 났다.
그녀는 정면으로 쭉 걸어가더니, 반대쪽 문도 활짝 열었다. 그러자, 햇빛이 들어오며 그제야 내부의 모습이 완전히 밝혀졌다.
박살이 난 텅 빈 마차. 그리고 난도질 당한 시체. 피 웅덩이와 함께 혈흔이 사방에 묻어 있었다.
익숙한 냄새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피 비린내였다.
“우웁….”
시체는 많이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장면을 보니 역시, 올라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못 보겠다면 잠시 나가 있어도 좋다.”
“아니에요. 같이 있을게요.”
리오테르는 시체에 조심스레 다가가, 바닥으로 향한 머리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역시….”
그건 어젯밤에 헤어진 마부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