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내 판타지 돌려내!!!
“누나!”
여관을 그만둔 다음 날, 난 곧바로 리오테르 누나와 길드 앞에서 만났다. 같은 여관에서 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서 와라, 콰앙. 여관일은 잘 마무리 하고 왔나?”
“네. 확실하게 하고 왔죠.”
확실하게 전부 레이나한테 떠넘기고 왔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래도, 여관 손님들에겐 조금 미안하군. 전부 너를 보러 온 이들일 텐데, 내가 혼자서 독점한다니.”
“에이, 뭐 그런 걸 신경 쓰세요. 우리가 어떤사이인데.”
그녀는 잠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흠흠. 그래. 며칠 만에 하는 의뢰인데, 어떤 걸 받을 생각이냐?”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이번에는 리오테르 씨, 의뢰를 따라 다니면안 될까요?”
“내 의뢰를 말이냐?”
“네. 처음에야 제 실력을 잘 모르셔서 거절하셨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아직은 무리이지 않겠나? 이제 겨우 세 번째 의뢰인데.”
“이래 보여도, 무려 슈퍼 루키라고 불리는 남자라고요.”
실제로 그렇게 부르는진 모르겠다.
[여신 : ㄴㄷㅆ]
솔직히, 내가 들어도 좀 씹덕 같긴 했다.
“게다가, 저 이번에 새로운 힘을 각성했다고요.”
“새로운 힘?”
“네. 보면 깜짝 놀라실 거에요.”
“흠, 그렇다면야… 알겠다. 체험도 할 겸 이번엔 브론즈급 의뢰를 해보도록 하지. 대신에, 난이도가 너무 높은 건 하지 않을 거다.”
“예압.”
그녀와 함께 접수대로 향했다. 오늘은 근육질 아저씨가 아닌, 젊은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리오테르님. 그리고, 민슥님. 무슨 일로 방문하셨나요?”
“어, 제 이름을 알고 계시네요?”
처음 보는 접수원이었는데, 용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네. 길드에서는 유명하시니까요.”
“보셨죠?”
나는 리오테르에게 가슴을 내밀며 자랑하듯 말했다. 그녀는 씩 웃더니 접수원을 보며 말했다.
“2인용 브론즈급 퀘스트로 부탁한다. 난이도는 중급 이하로.”
“민슥님은 아이언급 모험가인 걸로 알고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내가 책임지고 맡을 거니, 상관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접수원이 서류를 이리저리 보더니 곧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말씀하신 조건에 부합하는 퀘스트는 오늘 아침에 긴급 발주된 이걸 추천 드릴게요.”
[난도: 브론즈-중급]
[적정 인원 : 2인 이상.]
[종류 : 토벌]
[대상 : 와이반 세 마리.]
와이반이라면, 지금 입고 있는 견갑의 재료였다.
‘그때 실바나한테 듣기로는 브론즈 상급 정도의 괴물이라고 들었는데?’
근데, 왜 중급이라고 되어 있는 걸까? 딱히, 이상한 게 없는지, 리오테르가 태연히 물었다.
“보수는 얼마인가?”
“한 마리당 30실버씩 제공하기로 했어요.”
세상에, 그럼세 마리면 90실버였다. 거의 1골드에 가까운 금액.
‘브론즈급 모험가만 돼도, 수익이 확 늘어나는구나.’
이래서, 많은 아이언 모험가가 브론즈가 되기 위해 노력하나 보다.
“흠, 꽤 높게 측정됐군. 그렇다면, 더 잡았을 때의 추가 수당은?”
“똑같아요. 한 마리당 30실버. 대신, 상태가 안 좋으면 25실버까지 깎을 수도 있다고 하네요.”
“흠. 알겠다, 수주하도록 하지.”
퀘스트 내용이 적힌 종이를 받고 길드로 나오자, 나는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했다.
“와이반은 브론즈 상급 괴물이라고 하던데. 저희 둘로 괜찮아요?”
“검사가 와이반과 정면 대결을 했을 때의 경우는 그렇지만, 콰앙 너처럼 노련한 사수가 있으면, 그 난이도는 많이 줄어든다.”
“그래요?”
“그래. 놈들의 가죽은 단단하면서 질기지만, 날개 근처 부분은 가죽이 없기 때문이다. 그쪽만 잘 노릴 수 있다면,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지.”
“검사는 거길 노리기가 힘드니까. 난이도가 높은 거고요?”
“그래. 검을 사용하는 자들에게 날아다니는 괴수는 고역이니까.”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떠나야겠군. 혹시, 사야할 게 있나?”
“대부분 챙겨오긴 했는데…. 아, 갑옷 보수를 받아야 해서 대장간에 잠시 들려야할 거 같아요.”
“갑옷에는 손상 하나 없는 거 같다만?”
“그래도, 의뢰를 한 번 할 때마다 꼭 들리라고 해서요.”
사실, 진짜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예의상 방문하려는 거니까.
“흠, 알겠다. 나도 챙겨야 할 게 있으니, 30분 있다가 남쪽 문에서 만나도록 하지.”
“알겠어요. 좀 있다 봐요.”
리오테르를 보내고, 나도 발길을 돌렸다. 거주 지구를 지나, 상업 지구 안으로 들어갔다.
‘더럽게 머네.’
뒷골목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내가 찾던 가게가 보였다.
까앙-! 까앙-!
아직도, 망치 소리는 시끄러웠다.
“저기요!”
이번엔 한 번에 들었는지,그녀가 바로 망치를 내려놓았다.
“뭐야?”
여전히 날카로운 눈매에 날카로운 말투였다. 하지만, 곧 내 얼굴을 보자, 그런 기세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어, 뭐야? 왔어?”
아까와는 완전 다른 느낌의 말투였다.
“네. 의뢰하고 돌아왔어요. 가끔 들리라고 하셔서, 이렇게 방문했죠.”
“잘했어, 잘했어. 그럼, 빨리 벗어 봐.”
“그거 성희롱이에요?”
내가 짓궂게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그런 뜻이 아니라, 갑옷 상태 좀 보게 벗으라고 한 거야!”
“알아요, 알아요.”
갑옷을 벗어 넘겼다. 그녀는 갑옷을 이리저리 들어서 보며 상태를 확인했다.
“음, 하나도 훼손되지 않았네? 살짝 상태가 안 좋아지긴 했는데, 이거야 뭐. 좀 닦아주고, 보호제 발라주면 괜찮을 거야. 진짜로 의뢰 다녀온 거 맞아? 상태가 너무 좋은데?”
“그럼요, 당연하죠.”
“그럼, 증명해봐.”
“대체, 어떻게요?”
“도, 나한테 돈을 주면, 네가 의뢰를갔다왔다는 것도 증명할 수 있겠지!”
어쩐지. 그냥 돈을 받으려는 속셈이었다.
“돈이야 구걸만 해도 벌 수 있는데. 그걸로는 증명이 안 되죠.”
“아잇, 시끄러워! 빨리 나한테 갚아야 할 돈이나 내놔! 나 지금 사흘 째 굶어서 배고프단 말이야! 어어? 너, 나한테 돈 안 갚으면? 어어? 나무로 변해버린다?”
“그걸 협박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리고, 제가 준 4실버는 대체 어디 갔는데요?”
적어도, 일주일은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당연히, 네가 준 날에 전부 다 써버렸지.”
“허허.”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여자였다.
“그래서, 맛있게 드셨습니까?”
“아니, 먹고나서 전부 토했어…. 나무 뿌리랑 수액 같은 것만 먹다가, 기름진 걸 먹으니 속이 못 받아주더라고. 그러니까, 빨리돈 내놔아! 끄아악!”
생긴 건 예쁘장하게 생겨서, 하는 짓은 그냥 빡대가리나 다름 없었다.
‘이 정도면 레이나랑 비빌만 한 수준인 거 같은데.’
둘 중 누가더 병신일까? 참 궁금하다.
나는 품에서 4실버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 여기요. 이번에는 아껴 쓰셔야 해요.”
실바나는 낚아채듯 돈을 가져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번에도 내가 그렇게 돈을 쓰면 사람이 아니다! 그냥, 어. 개다, 개! 멍멍!”
“어질어질하네….”
안 그래도 더워서어지러운데, 그녀랑 더 있다간 나도 저렇게 돼버릴 것만 같다.
“그러면, 저는 퀘스트가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무슨 퀘스트?”
“와이반 토벌하러 가요.”
“와이반!?”
“네.”
“혼자서?”
“파티원이 하나 있어서, 같이 잡으러 가는데, 왜요?”
그녀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불쾌한 땀 냄새가 나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시원하면서 상쾌한 향이 났다. 엘프의 특성인 걸까?
“그 저기 있지….”
“네.”
“너, 와이반 잡으면. 나한테 와이반 가죽 한 장만 주면 안 될까? 헤헤?”
“네, 안 돼요. 헤헤.”
그녀가 뚱하게 나를 쳐다보더니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아, 왜애! 한 장 정도는 줄 수 있잖아!”
“내가 왜.”
“진짜로 딱 한 장만? 응?”
“저도 마음 같아서는 열 장이고, 백 장이고 주고 싶죠.”
“그럼 줘!”
“근데, 이게 제 퀘스트가 아니라, 파티원 퀘스트를도와주기 위해서 가는 거라서. 안 돼요. 애초부터, 저는 아이언급 모험가인데, 와이반 관련 퀘스트를 어떻게 받겠어요.”
“으윽.”
반박할 수 없다는 듯 뒤로 물러섰다.
“정 원하시면 돈 주고 사세요. 지인이니까, 제가 싸게 해드릴게요.”
“돈 없어서 쫄쫄 굶고 있는 내가, 그거 살 돈이 어디 있다고….”
“네~ 그러면 수고하세요.”
“아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가죽 가지고 오면, 내가 맞춤형 경갑 만들어줄 게.”
“맞춤형으로요?”
“어! 맞춤형 갑옷은 일반 갑옷보다 비싼 거 알지? 어때?”
성능이 특별히 좋진 않지만, 맞춤형이라서 더 편하다는 게 장점이었다.
“음. 일단은 알겠어요. 확실하게는 대답 못 해드리지만, 말은 해볼게요.”
“진짜지?”
“예예.”
“약속한 거다? 너 세계수의 앞에 맹세해.”
“아니. 뭐 이런 걸로 맹세까지 해요. 세계수가 무슨 우리 따까리도 아니고.”
“그런가?”
“그래요.”
“그러면, 알겠어. 약속한 거다?”
“네네. 알겠으니까. 빨리 갑옷이나 주세요. 저 빨리 가야 해요.”
얼마나 대화 나눴다고, 벌써 약속 시간이 다 돼 간다.
“아, 알겠어!”
그녀는 재빨리 경갑을 닦더니, 가죽 보호제까지 발라 내게 넘겨주었다. 바로 착용하고는 문을 열었다.
“약속 지켜야 해!”
“예예~”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어우, 기가 다 빠지네.”
재빨리 걸음을 돌려, 남쪽 문으로 향했다. 리오테르는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저 왔어요. 제가 조금 늦었죠?”
“괜찮다. 나도 이제 막 도착했으니까.”
그러면, 다행이었다.
“마차는 길드 측에서 미리 섭외를 해놓았다고 하니, 우린 몸만 가면 된다.”
“편하네요.”
“퀘스트를 받으면, 이런저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법이지.”
“오래 타야하는 건 아니죠?”
“여기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초원에 있다 하더군.”
그리 길지 않아 다행이었다. 만약, 또 4시간씩 마차를 타야 했다면, 가지 않았을지도모른다.
“그럼, 출발합니다!”
커다란 마차에 뒷좌석에 올라탔다. 리오테르는 정확하게 내 맞은편에 마주 앉았다. 우리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를 하며 가니, 마차 타는 시간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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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멈춰선 곳은 정말로 넓디넓은 초원이었다.
“이야.”
주변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 몇 그루와 풀이 나 있는 들판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보는 것만으로 가슴을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라. 그럼, 가자. 콰앙.”
리오테르는 마부에게 명령을 하고는 초원을 향해 걸어갔다.
‘왜 이렇게 큰 마차를 타고 가나 했더니.’
아마도, 와이반의 시체를 통째로 실어서 갈 생각인 듯했다. 가죽 말고도 쓸 만한 부위가 있는 걸까?
“와이반은 어디 있을까요?”
“글쎄다. 이쪽 초원에서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긴 했는데, 어쩌면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어떡해요?”
“허탕 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괴수 토벌 퀘스트는 보수에 비해서, 인기가 없는 편이지.”
“그렇구나.”
부디, 와이반이 있었으면 좋겠다. 기껏, 2시간 고생해서 달려 왔는데, 없으면 허탈할 테니까.
꾸에에에엑!
그런 나의 기도 덕분일까? 저 멀리 초원에서 괴상한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그래, 와이반의울음 소리다.”
“울음 소리 한 번 신기하네요. 와이번의 하위종 맞아요?”
“글쎄다. 나는 마물학자가 아니라서 말이다. 뭐, 생긴 건 비슷할지도 모르겠군.”
“진짜요?”
“두 눈으로 보고 확인해봐라.”
판타지하면 드래곤! 그리고, 와이번은 드래곤의 일종 중 하나라고 위키에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와이번의 하위종인 와이반도, 그것과 비슷하게 생겼을 확률이 높았다.
‘울음소리는 괴상해도, 엄청 멋있게 생겼겠지?’
그렇게 기대감을 가지고, 리오테르를 따라갔다. 와이반을 볼 생각에 절로 노래가 나왔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저기 보인다. 와이반이다.”
언덕을 넘어서자, 그녀가 손으로 가리켰다. 고개를 돌리자, 와이반의 모습이 보였다.
날카로운 눈빛에 머리에는 뾰족한 뿔 같은 게 달려 있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짧은 앞다리에, 그보단 긴 뒷다리. 거기다가, 조잡한 날개까지.
“한백년 살기 싫어….”
드래곤은 개뿔, 그냥 닭이었다. 그것도 조금 더 커다랗고, 깃털 없는 닭.
놈은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쩍 벌렸다.
꾸에에에에엑!
위엄이고 뭐고, 싹다 팔아 먹은 괴상한울음소리.
“아, 시발. 내 판타지.”
진짜 꿈도 희망도 없는 판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