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엘프의 여관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잠시 뇌가 정지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말뜻 그대로야. 네가 여기서 일하면 돼. 그러면 전부 해결될 거야.”
아니, 무슨 왕자님과 공주님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동화식 결말도 아니고.
“대체 왜요?”
“왜긴 왜야. 잘 생겼으니까!”
“그거랑 여관 운영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네가 자연인이라서 아직 이 세계를 잘 모르나 본데. 잘 들어, 이 세계에서 잘 생겼다는 건 말이지. 권력이야, 권력.”
“권력이요?”
“그래. 어느 도시의 누군가 참 잘 생겼다는 음유시인의 노래 한 구절에 그도시로 여행을 가고, 잘생긴 남자를 찾기 위해, 그 자존심 높은 귀족들이 빈민가를 방문 할 정도라고.”
하긴, 잘생긴 남자와 잠자리를 가지기 위해, 적게는 수십 골드, 많게는 수백 골드까지 바치는 세상이니까.
“이제 알겠지? 네가 왜 이곳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지?”
사실, 이해는 안 된다. 근데, 그런 세상이라는데 어쩌겠나.
“아니, 근데. 제가 그렇게 잘 생겼어요?”
“어. 존나. 보자마자, 바로 섹스하고 싶을 정도로.”
솔직히,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잘 생겼다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도 딱히 인기가 많지는 않았으니까.
“그 정도인가? 음, 레이나, 나 잘 생겼어?”
얼굴을 들이대며 묻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네, 네….”
반응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거 같았다.
“모르겠다~”
잘 생겼다는데, 뭐. 그냥 좋게좋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근데, 만약 제가 여기서 일을 해서, 여관의 인기가 다시 돌아온다고 쳐요. 근데, 결국 제가 없으면 다시 인기가 사라지는 거 아니에요?”
나의 평온한 생활을 위해, 잠깐 고생해줄 순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고생을 하고 싶진 않았다.
“네가 이 여관에서 계속 살기만 한다면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인기를 끌고 나서는 일을 안 하는 게 나을걸.”
“대체, 왜요.”
“자주 보이면 소중함을 모르거든. 근데, 가끔 보이잖아? 그러면, 소문도 퍼질 거고. 나중에는 얼굴 보고 싶어서, 일부러 여관에서머무는 년도생길 걸?”
“허허.”
무슨 특정 시간대에만 나타는 전설의 푸킷먼도 아니고. 그게 뭔가 싶다. 뭐, 커다란 상회 운영하시는 분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알겠어요. 까짓거 한 번 해보죠. 어떻게해야 하나요?”
“일단, 너는 얘한테 카운터 보는 법이랑 요리 어떻게 하는지만 배워.”
“요리까지 제가 해야 해요?”
“잘생긴 남자의 요리를 먹는 건, 모든 여자의 꿈이라고. 네가 요리까지 하면, 여기서 일해야 하는 기간이 줄어들걸?”
“그렇다면야….”
“그러면, 나는 사람 불러서 견적 좀 짜고 올 게.”
“무슨 견적이요?”
“이 여관 리모델링 견적이지.”
“예? 굳이요? 저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그것도 손님이 조금이라도 찾아오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지. 이미 홀에서 자위하는 미친년이 운영하는 여관이라고 이름 다 알려졌는데. 어떻게 이 상황에서 운영하겠어? 안 그래?”
레이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해요.”
“그럴 수 있…진 않지만. 그래, 뭐. 알겠어요. 그럼, 이번엔 신세 좀 질게요.”
“그래. 미안하면, 나중에 나랑 섹스 좀 해 줘.”
“알겠어요.”
“어? 너 알겠다고 대답한 거다.”
“예예.”
“그럼, 나 먼저 가볼 게. 공사가 그리 크지 않을 테니, 이틀이면 끝날 거야.”
“예에~”
딸랑딸랑-
루시가 밖으로 나가고, 우리 둘만 남겨졌다. 레이나는 뭔가 기대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레이나.”
“네, 네! 주인님.”
“여관에 멀쩡한 방 있지?”
“제 방은 깨끗해요….”
“거기선 자위 안 했나 봐?”
“시트 더러워지잖아요….”
“그런 거 신경 쓰는 년이 홀에서 자위를 하냐? 어?”
“헤헤.”
“그러면, 네 방으로 가자.”
“네!? 주인님 설마….”
“그래.”
나는 그녀의 뺨을 만지며 말했다.
“나 잠 좀 자게. 피곤해 죽겠다야.”
“예?”
진짜 피곤해 뒤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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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공사 빠르다. 그치?”
“그러게요, 주인님….”
이틀 전만 해도 실프의 여관이었는데, 지금은 엘프의 여관이라고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건물 외견도 완전 변했다.
“근데, 루시 님은 뭐하시는 분이길래, 이런 일이 가능하신 거예요?”
“금빛 상회의 주인이잖아.”
“예에!?”
그녀가 화들짝 놀랐다.
“너 몰랐어? 네 여관에서 가끔 자지 않았나?”
“그건 주인님이랑 같이 왔을 때만 그랬고. 평소에는 오지도 않으셨어요. 애초부터, 금빛 상회의 주인이신 분이 제 여관에 왜 오겠어요.”
“그건 그렇네. 그러면, 나랑 술 마실 때는 왜 여기로 불렀던 거지.”
“아마, 너무 비싼 곳을 가면 부담스러울까 봐, 적당한 장소를 모색한 거겠죠.”
“오. 똑똑한데? 그렇게 똑똑한 년이 왜 홀에서 자위를….”
레이나가 양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진짜! 그 얘기는 그만하기로 했잖아요.”
“그래, 그래. 알겠어. 그럼, 들어 가보자.”
딸랑딸랑-
문의 종소리도 좀 더 세련되게 변했고 내부의 모습도 완전히 바뀌었다.
건물 자체를 뜯어고칠 수 없어, 구조는 비슷했으나, 인테리어가 완전 달라서, 아예 다른 장소처럼 보였다.
약간 초록빛에 숲의 분위기가 나는, 이리저리 화분이 많은 그런 여관이 되었다.
‘이름이랑컨셉을 맞추려고 한 거겠지.’
요즘, 왕도에서는 이렇게 확고한 컨셉의 여관이인기가 많다고 한다.
‘특성도 이런 걸 받았으니까.’
[특성 : 침착함, 엘프의 친화력, 매력적.]
고블린 의뢰를 완료하고, 엘프의친화력이라는 특성을 받았다. 이게 뭔지 물어보니, 엘프로서 가질 수 있는 친화력을 얻게 해준다고 한다.
‘그게 대체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특성이니까. 뭔가 특별한 효과가 있을 거다.
게다가, 최근에 방송을 못 봐서 미안하다고, 특성을 하나 더 받았다. 왜 이렇게 채팅을 안 치나 했더니, 일이 바빠서 그랬나 보다.
‘그것보다 여신은 어떤 일을 하는 거지?’
뭐, 세계라도 관리하는 걸까? 그 커뮤니티 중독자 여신이?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그럼, 오늘부터 영업하면 되나?”
“네. 제가 이미 게시판에다가 광고 붙이고 왔어요.”
“뭐라고 썼는데.”
“엘프급의 존나 잘생긴 남자 있는 여관이라고 적었는데요. 그거 말고도 더 적긴 했는데. 기억 나는 건 이거 하나네요.”
“야 이 미친년아.”
레이나의 턱을 한 손으로 잡았다. 볼살과 입술이 모이면서 붕어처럼 변했다.
“그걸 그렇게 쓰면 어떡해. 그랬다가, 손님들 실망하고 돌아가면 네가 책임질 거야?”
“그럴 리른 업는데요.”
“그걸 네가!”
딸랑딸랑-
뭐라 말하려고 할 때, 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운터 뒤로 몸을 숨겼다.
“진짜 왔잖아, 어떡해!”
“자기자신한테 자신감을 가지세욧, 주인님!”
“아오, 진짜 미친년.”
내 노예인데, 왜 내가 더 힘든 걸까. 잘 모르겠다.
“뭐야. 오늘 영업 안 하나? 초고교급의 잘생긴 남자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초고교급 이 지랄하고 있다. 진짜 뭘 썼길래 저런 말이 나오는 걸까.
“허허.”
오랜만에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었다.
“돌아가야하나….”
들려오는 말에,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 어서오세요. 손님. 엘프의 여관입니다.”
나는 최대한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모험가로 보이는 여자가 갑자기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봤다.
“와, 시발.”
“네?”
갑자기 왜 욕을 하는 걸까.
“여기 한 달 장기 투숙하는데 얼마입니까?”
“어, 10실버입니다. 손님.”
그녀는 흔쾌히 은화 10개를 내밀었다.
“한 달, 바로 결제해주세요.”
“어어?”
갑자기, 내밀어지는 큰 금액에 화들짝 놀랐다.
“주, 주인님. 대답하셔야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레이나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어어.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음식도 제공해드리고 있는데. 그건 별도로 요금을 받고 있어서요….”
“보통 여관들은 투숙 비용에 포함 되는데. 좀 그렇네.”
“제, 제가 직접 해드리고 있습니다.”
“한 끼에 얼마입니까?”
“10쿠퍼입니다.”
“지금 식사 됩니까?”
“네. 가능합니다.”
다시 10쿠퍼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지금 당장 한 끼 차려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아, 방은 2층에 첫 번째 방 쓰시면 됩니다.”
열쇠를 주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짐을 들고 위로 올라갔다.
‘박력 뭐야? 존나 박력분인 줄 알았네.’
굉장히 시원시원한 여자였다.
“나 요리하고 올 테니까. 카운터 보고 있어.”
“네엥.”
“이번에는 몰래 자위하지 말고.”
“안 해요!”
주방으로들어가,요리를 준비했다. 사실,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는 딱히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냥, 바싹하게 구운 베이컨과 계란 프라이에, 빵 두 조각이었다. 원래는 스프도 함께 준비하거나, 스튜를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못했다.
‘요리도 나름 재밌네.’
딸랑딸랑-
그렇게 요리를 하고 있을 때, 종소리가 났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어서오세요!”
폐쇄적인 이곳의 주방에 비해, 우리 여관은 개방향 주방이었다. 내가 요리하는 걸 손님들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루시의 주장 때문이었다.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남 요리하는 걸 봐서대체 어쩌겠다는 건지. 난 모르겠다.
그렇게 모든 음식이 준비되자 접시를 들고 홀로 나갔다. 근데, 어쩐 일인지, 여자들이 전부 턱을 괸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존나 무서워.’
뭔가, 마약한 사람 같은 얼굴들이라서 무서웠다.
“여, 여기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기괴한 풍경에 접시를 대충 던져주고는 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인님. 여기 음식다섯 개 추가요.”
“아라따.”
그래도, 뭔가 통하는 게 있긴 했는지. 사람도 계속 들어오고,음식 주문도 계속해서 들어왔다.
‘루시 말이 맞았네.’
역시, 성공한 사업가의 안목을 믿길 잘했다.
“여기 또 음식 추가요!”
그렇게 나는 하루종일 음식과 예약을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우, 힘들어.”
쉬지 않고 일한 탓인지, 영업 시간이 끝날 때가 되었을 쯤에는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나는 카운터에 머리를 박은 채 가만히 있었다.
‘차라리, 그냥 강간당하고 넘기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하루였다.
딸랑딸랑-
그렇게 가만히 있을 때, 다시 종소리가 들려왔다. 시간도 늦었고, 방도 거의 꽉 찼으니, 아마 이게 마지막 손님일 것이다.
“어서오세요. 숲과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는 여관. 엘프의….”
고개를 들어 말하는데, 익숙한 얼굴이었다.
“입니다….”
“콰, 콰앙?”
붉은 머리의 아름다운 여인, 브론즈급 모험가.
“리, 리오테르 씨?”
리오테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