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고블린 소굴 (14/84)



〈 14화 〉고블린 소굴

“진짜로 올까요?”

마을의 입구, 나는 빵과 육포를 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여신 : 글쎄다.]
[여신 : 보니까. 좀 많이 화가 난 같긴 한데.]

“근데, 그게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

[여신 : 그렇긴 하지.]

바닥에 쭈그려 앉아 기다리고 있을 때,  멀리서 누군가 쭈볏쭈볏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델리카였다.

“어, 델리카 씨!”

내가 일어나 손을 흔들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더니 내게 달려왔다. 근데,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달리기 선수 해도 되겠네.’

[여신 : 우사인 볼트, 우사인 볼트, 우사인 볼트가 왜 빠른지 알아요?]

“왜요.”

[여신 : 끝까지 갔기 때문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죠?]

모르겠는데?

“어질어질하네.”

 여신은 또 왜 이러는 걸까.

‘진짜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

잘 모르겠다.

그 짧은 사이에, 어느새 델리카가 내 앞에 와 있었다. 그녀는 나를 잠시 보더니 급히 허리를 숙였다.

“저, 정말 죄송해요. 어제 갑자기 소리 지르고 들어가셔서놀라셨죠…?”

“아니요. 뭐, 언니 분께서 놀려서 그런 건데요.  같아도 화냈을 거에요. 저보다는, 델리카 씨가  걱정인데요.”

어제 눈물까지 보였으니까.

‘여자의 눈물은 무기라는데.’

여기선 남자의 눈물인 걸까?

‘남자의 눈물은 좆 같은데.’

“저, 저요…?”

“네. 어제 가시기 전에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혀 있으시던데. 그거 상처 받아서 그런  아니었어요?”

“그, 그런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하으으. 아무튼, 그런  아니에요….”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언니 분이랑은 화해하셨죠?”

“네….”

“그러면 됐어요.”

해결이 됐다면, 그걸로 오케이입니다.

“일단 걸어가면서 이야기 나눌까요?”

델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녀가 앞장을 섰다.

숲을 걷고 있자니,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가 기억이 났다.

‘그래 봐야, 4일 정도 됐나?’

체감으로는 거의 2주는 이곳에서 지낸 거 같았다.

“저, 저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델리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네.”

“모험가 님의 이름을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이름을 아는데, 델리카는 내 이름을 몰랐다.

‘원래 어제 얘기하면서 친해졌어야 했는데.’

이게 이렇게 스노우 볼이 굴러간다니.

“제 이름은 어, 콰앙 민슥이라고 합니다.”

[여신 : 이제 진짜 포기했나 보네.]

이것도 말하다 보면, 입에 착착 붙었다.

“콰앙 민슥이요…?”

“네. 편하게 콰앙이나, 민슥이라고 부르시면 돼요.”

“그, 그러면 저도 콰앙 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허허.”

어떻게 민슥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은   명도 없는 걸까.

“아, 안 될까요? 아, 혹시. 제가 만난지 얼마 안 됐는데. 너무 친한 척 한 걸까요…?”

거절하는  알았는지,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아니요. 마음대로 부르셔도 돼요.”

“가, 감사합니다!”

다시 목소리가 돌아왔다.

“델리카 씨는 고블린이랑 싸워보신 적 있으세요?”

“마, 마을 주변에 나타난 놈들을 마리 처리해본 적은 있어요….”

“혼자서요?”

“네….”

“대단하시네요.”

의외로 토벌 경력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저희 파티 대형은 간단해요. 델리카 씨가 앞, 제가 뒤에서 지원하는 형태에요.대신, 일반적인 전열처럼 탱킹에 집중하실 필요는 없어요.”

델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고블린을 죽이셔도 돼요. 대신에, 거리가 너무 벌어지지 않게 주의 해주세요.”

“아, 알겠어요….”

이것 외에는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다.

‘뭐, 아는 게 있어야 묻지.’

그렇다고 해서, 고블린 소굴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기도 뭐했다. 아까처럼, 델리카가 먼저 말을 걸어주면 좋겠지만.

‘그것도 큰 용기를 낸  같으니.’

여기선 내가 대화를 주도해야 했다.

“델리카 씨는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어떻게 하다니요…?”

“그러니까. 음. 어제, 도적이니. 암살자니. 그런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네….”

“언니 분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이 마을에는암살자, 도적 같은 사람이 필요하진 않잖아요. 오히려, 농부나 사냥꾼이 더 필요했지.”

사실, 도시에서도 암살자가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몸까지 단련하신 걸 보면, 어느 정도는 진지하게 생각하신다는 거일 텐데. 만약, 암살자가 목표라면, 좀 더 큰 세상에 나가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좀 더 큰 세상이요….”

그녀는  단어가 낯설다는 듯 다시 한 번 되뇌었다.

“네. 좀 더 세상이요. 마을을 비하할 생각은 아니지만, 이런 작은 마을에만 계속 있으면, 계속 같은 상태에 머무를 테니까요.”

반강제로 이세계에 오긴 했지만, 나도 그 짧은 사이에 많은  변했다.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런 조언을 할 자격이 있나?’

맨날 집에 박혀서 회사 원서만 내고, 기도나 하던 내가 할 말은 아닌  같긴 했다.

“그….”

키게겍-

델리카가 입을 열려고 할 때, 갑자기 앞에서 낮은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쉿.”

검지를 그녀의 입에 갖다 대자, 그녀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등에 매고 있던 쇠뇌를 들었다.

몸을 낮추고 앞으로 걸어가자, 고블린 한 마리가 숲을 가로지르는 게 보였다.

퉁-!

바로, 머리를 조준한 다음 고블린을 처리했다. 놈은 단말마조차 뱉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다행히, 고블린은 한 마리가 전부였다.

“처리했어요.”

“대, 대단해요…!”

그녀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뭘, 이런  가지고.”

고블린의 몸을 뒤지니 딱히 가지고 있는  없었다. 얼핏, 듣기로는 고블린 소굴에서 나온 놈들은 무기를 들고 있다고 하던데. 그냥 야생 고블린인 걸까?

[여신 : 복장 보니까, 정찰 고블린이네.]

‘정찰 고블린이요? 그런 게 있어요?’

[여신 : 고블린이 멍청해 보여도, 머리를 꽤  줄 아는 놈들이야.]
[여신 : 애초부터, 마물들 중에서도 최하위권. 짐승이랑 붙어도 지는 고블린들이 대체 어떻게 살아남았겠어?]
[여신 : 전부 그 교활함 때문이란 말이지.]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러면, 얘는 왜 아무런 장비도 없어요?’

정찰병이라면, 소리를 낼 만한 무언가라도 들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여신 : 고블린이 목청 하나는  발달해서, 그런 거 없어도 괜찮아.]

‘그렇구나.’

덕분에, 많은 걸 알아갔다. 평소에도 이렇게 설명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델리카 씨. 혹시, 이 주변에 고블린 소굴이 있어요?”

“네….”

“그러면, 여기서부터는 필요한 게 아니라면 대화도 하면 안  거 같네요.”

움직임도 작게 제한해야했다. 우리 파티는 도적에 궁수라는 해괴한 조합이니까.

“아, 알겠어요. 그러면 가볼게요….”

델리카가 단검을 뽑아 양손에 하나씩 들었는데, 진짜 무기를 들었다는 느낌보단, 장난감을  듯한 느낌이었다.

키에에엑-

키게겍-

그렇게 걸어가고 있을 때, 다시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수풀 너머를 보니, 고블린  마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런 무기도 없는 걸 보니, 정찰 고블린인가 보네.’

한 마리는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마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제, 제가 하나 맡을게요….”

“델리카 씨가요? 대체, 어떻… 아.”

생각해보니, 그녀에겐 특별한 능력이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제가 오른쪽을 맡을게요. 델리카 씨가 왼쪽을 맡아줘요.”

“…네.”

그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서 잘못되면, 소굴에 도착하기도전에 큰 일이 날 수도 있었다.

“하나, 둘,  할  처리해주세요.”

델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셋!”

나는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웅- 콱!

내 화살은 고블린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렇다면, 델리카는?

키게게겍!

옆에 있던 고블린이 놀라며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푹-!

바로 뒤에서 손이 생겨 나, 놈의 목을 찔렀다.

‘신기하네.’

다시 봐도, 신기한 장면이었다. 마치, 그 해적 만화에 나오는 광대를 보는 느낌이랄까.

‘안에 뼈나 살이 보였으면 조금 그럴 뻔 했어?’

확실히, 이렇게 조용하고 확실한 방법이라면, 암살자를 꿈꾸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근데, 왜 굳이 암살자인 걸까? 그건 나중에 물어보고, 지금은 일단 눈앞에 보이는 과제에 집중해야겠다.

“잘했어요. 아주 깔끔한데요?”

“벼,  거 아니에요….”

 거 아니라고 하기엔, 실력이 너무 깔끔했다. 아마, 연습을 많이한 거겠지.

‘진짜 이런 마을에 내버려두기엔 아깝긴 하다.’

얼굴도 귀여운 게, 가능하다면 동료로 데려가고 싶었다.

“혹시, 능력을 사용하는데 제한 시간이있어요?”

“그런 없는데… 제 기력을 소모하는 거라서. 너무 오래 사용하면 어지러워요….”

“방금과 같은 암살만 계속 하다면, 얼마나 더 사용할  있을 거 같아요?”

“30분 정도…?”

그 정도라면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음, 그러면 고블린 소굴에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밖으로 나오는 놈들을 하나하나 암살하는 게 어때요?”

나나, 그녀나. 숨을 곳이 없는 좁은 동굴보다는, 이런 넓고 우거진 숲이 훨씬 싸우기가 좋았다.

“암살이요?”

그녀의 눈이 빛났다. 암살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좋은 걸까?

“네. 시간은  오래 걸릴  있는데. 어쨌든, 고블린만  죽이면 소굴은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 그렇죠.”

“그러면, 굳이 우리가 고블린 소굴. 그러니까, 사지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랬다가, 눈치채고 고블린이  나오면요…?”

“그러면, 일단 수는 많이 줄이고 시작하는 거니까. 소굴 소탕이 훨씬 수월하겠죠.”

“아….”

델리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전부 맞는 말씀인  같아요…!”

“그쵸?”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힌 작전이었다. 이런 나를 서류 탈락 시킨 한국 회사들. 반성해라!

[여신 : 이런 병신을 거른 회사가 현명했던 게 아닐까?]

채팅은 무시했다.

“그러면, 제 작전대로 할까요?”

“그, 그렇게 해요!”

그때부터 나와 델리카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고블린을 하나하나 처리했다.

대부분이 정찰조여서 그런지, 손쉽게 처리가 가능했다.

키에에엑-

바깥에 있는 놈들을 모두 처리하고, 동굴 근처에서 잠자코 기다리자, 무기를  고블린이 조금씩 튀어 나왔다.

정찰조가 돌아오지 않자, 이상함을 느끼고 확인하러 나온 것이다.

 녀석들 역시, 정찰 고블린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처리해주었다.

‘고블린이 무기를 들어봤자. 무기를 든 고블린일 뿐이죠?’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우리는 천천히 고블린들을 처리해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날이 거의 저물 때가 되었을 쯤.

“이, 이제  이상 안 나오네요….”

“그러게요.”

고블린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낌새를 눈치 챈 걸까요, 아니면 다 죽은 걸까요?”

“그,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후자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그쵸?”

이때까지 죽인 고블린 수가 30마리가 넘었다. 고블린 소굴이 어느 정도 규모인진 몰라도, 이 정도면  큰  아닐까?

“그럼, 다 죽인  같으니. 저희도 이만 마을로 돌아….”

쿵- 쿵-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고블린 소굴 내부에서 거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륵-

고블린과 비슷한 얼굴. 하지만, 그와 반대로 거대한 몸집. 어깨에는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저게 뭐야, 시벌?’

고블린 중에서 저렇게 덩치가 큰 놈이 있었다니?

“고, 고블린 킹!”

내가 신기해 하고 있을 때, 옆에서 델리카가 말했다.

“고블린 킹이요?”

“네. 야생에 떠돌아 다니는 고블린을 모아, 소굴을 만드는. 이번 일의 원흉이에요…!”

그렇다는 건, 저놈을 잡지 않으면 이 주변에 또다시 소굴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아, 시벌.”

저걸 잡아야 한다.

그것도 둘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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