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처리할까요, 마스터?
“이랴!”
마차는 대도시 리벨룸을 벗어나, 숲으로 향했다.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병사들의 훈련 소리가 희미해질 때쯤, 마차는 어느새 넓은 평야를 달리고 있었다.
마차에 타고 있으면서 뭔가 멍했다.
[여신 : 이게 통하네.]
“그러게요.”
사실, 그냥 한 번 시도해본 거였는데, 의외로 마부가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 아이언급 모험가라는 걸 깨달았을 때에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자기가 어쩌겠어.’
아이언급 의뢰에 아이언급 모험가가 왔다. 그게 뭐가 이상하겠는가. 오히려, 마을 입장에선 이거라도 감지덕지였다.
“세크레움은 어떤 마을인가요?”
“아이들이 들판에서 뛰어놀고 남자들은 강에서 빨래를 하고. 여자들은 나무를 베고 사냥을 다니는, 그냥 평범한 마을이에요.”
“그래요?”
하긴, 시골 마을에 어떤 특별함이 있겠나. 아마, 고블린 소굴을 제외하면 딱히 특별할 것도 없을 거다.
“아, 특이한 사람이 하나 있긴 한데.”
“특이한 사람이요?”
“나중의 재미를 위해서,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아마, 직접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걸요?”
그건 좀 궁금했다.
‘지루하네.’
대화말고는 마차 위에서 딱히 할 만한 게없었다. 심지어, 그것까지 끊겼으니, 대체 뭘 할 수 있겠나.
30분째, 비슷한 풍경. 비슷한 소리. 가끔 보이는 광경이 변하긴 했으나, 그래 봐야 나무가 더 생기거나 적어지는 변화였다.
‘속도는 또 왜 이렇게 느려.’
진짜 게임처럼 목적지로 갈 때는 스킵 좀 시켜줬으면 좋겠다.
“마을까진 얼마나 남았나요?”
“음, 아직 4시간은 족히 남았을 걸요.”
‘조졌네.’
이게 판타지인가? 이게 진짜 현실인가?
‘누가 습격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어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부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왜요?”
앞으로 기어가, 마부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누군가 도로를 막고 있습니다.”
저 멀리 누군가 마차를 가로로 세워 길을 막고 있었다. 근처에는 세 여자가 앉아 있었다.
“왜 저러고 있는 걸까요.”
“아마… 통행세를 받으려는 거겠죠.”
“통행세요?”
“네. 아니, 최근에 도시 측에서 산적 소탕을 해서 저런 년들은사라졌다고 들었는데. 한 달도 안 돼서, 다시 튀어 나왔네요.”
“이 근처에 산적이 많나요?”
“예, 많죠. 리벨룸 근처는 산과 숲이 우거져 있으니, 이쪽을 거점으로 하는 놈들이 많아요.”
“통행세는 보통 얼마인가요?”
“1실버 정도에요.”
더럽게 비쌌다.
“돈은 있으세요?”
“전부 다 물건 사는데 써버렸어요….”
“통행료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죽이거나, 물건들 다 털겠죠. 그게 아니면 마을까지 와서 깽판을 치던가.”
무엇이 됐든 간에, 곱게 보내주진 않는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저 년들당신이 있는 걸 알면 아마, 곱게 보내주진 않을 거에요.”
‘맞다, 여긴 그런 세상이었지.’
산적들한테 강간이라. 흥미롭긴 했으나, 얼굴을 보아하니 그럴 마음도 싹 사라졌다.
“처리할까요? 마스터?”
“예?”
“방법이 달리 없다면 제가 저격해서 처리하는 방법도 있어요”
“거리가 꽤 되는데 가능하시겠어요?”
“뭐, 산적 짓이나 하는 놈들인데. 그리 강할 거 같지도 않은데요, 뭐.”
장비도 조잡한 게, 그냥 딱 봐도 입시 수준의 산적이었다.
“그러면, 부탁드릴게요.”
나는 등에 매고 있던 석궁을 꺼낸 다음, 마부의 옆자리에 앉았다.
“지금부터는 조용히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석궁을 들어올린 다음, 정면에 있는 산적을 조준했다. 움직이는 마차의 특성상 맞추기가 더욱더 힘들었기에, 더 높은 집중력을 요구했다.
“후.”
숨을 내쉬고는 가장 앞에 있는 산적을 조준했다. 그리고는.
퉁-!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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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남자 있는 마차 하나 안 오나. 실컷 좀 따먹게.”
“예전에 털었던 그 마차처럼?”
“어어. 그때 진짜 기분 좋았는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바퀴 구르는 소리가났다. 고개를 돌리니, 마차 하나가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야, 마차 하나 온다. 준비해라.”
산적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에 착용하고 있던 검을 뽑았다.
“남자 있는 마차였으면 좋겠다.”
“잘 보니까, 남자 하나가 마부 옆에 앉아 있는데? 남편인가 봐.”
“진짜?”
산적 중 하나가 눈을 빛냈다.
“잘 생겼어?”
“그런 거 같아.”
“아싸. 그러면, 실컷 따먹고 죽이자고.”
여자가 추잡스럽게 혀를 날름거렸다.
“근데….”
“근데?”
그녀가 눈을 찌푸리더니 앞으로 몸을 더기울였다.
“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데? 보니까, 석궁….”
쐐애애액-! 콱!
그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화살이 날아와, 목에 박혔기 때문이다.
“커헉!”
피가 울컥 뿜어져 나와, 옷과 바닥을 적셨다.
“시, 시발! 뭐야!”
가까워진 마차를 보니, 한 남자가 석궁을 든 채 옆에 앉아 있었다.
“석궁이다!”
“마차 뒤로 피해!”
두 산적은 급히 몸을 돌려 마차로 향했다.
쐐애액- 콱!
“꺄아아아아악!”
귀를 찢을 듯한 비명. 옆에서 달리고 있던 동료의 신형이 무너지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다리에 화살을 맞은 것이다.
“사, 살려줘!”
그녀는 도움을 무시하고는 마차 뒤로 재빠르게 몸을 숨겼다.
곧, 파공음과 함께 동료의 신음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됐다.
“시발, 이게 뭐야. 시발, 시발, 시발!”
순식간에 동료 둘이 죽었다.
‘대체 뭐지? 이 근방에 저런 놈이 있었나? 아니, 그것보다 왜, 시발 마을로 가는 마차에 저런 놈이 타 있는 거야!’
사격 실력만 보면, 최소 브론즈 중급 이상은 돼 보였다. 그런 놈이 마을 마차 호위따위나하고 있다니?
“후, 후.”
심호흡을 하며 호흡을 가라앉혔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 뒤에 섰다.
‘가까이 오면 죽인다.’
산적 짓을 오래 한 건 아니었으나, 검 솜씨에는 꽤 자신이 있었다. 상대는 궁수니, 잘만 싸운다면 둘 다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시발 새끼, 살려달라고 빌게 해주마.’
이를 빠득빠득 갈며, 마차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덜커덩- 덜컹-
숲과 도로에는 짐 부딪히는 소리만이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마차의 소리가 가까워지자, 그녀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마차가 길을 막고 있으니 멈출 수밖에 없어. 그때를 노린다.’
쐐애액-
“커헉!”
푹!
가슴이 무언가에 꿰뚫린 듯, 타오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리자, 날카로운 화살촉이 가슴 부분에 삐죽 튀어나와있었다.
“시, 시발….”
벌벌 떨리는 손으로 화살을 어떻게든 하려고 해보지만, 등 뒤에서 날아온 화살을 대체 어떻게 뽑을 수 있겠나.
“대체 어떻게….”
시야가 점멸하고, 곧 눈앞이 흐려졌다.
찌이이익- 쿵.
마차의 천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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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진짜 죽었네요….”
직접 나서, 마차 뒤에 있는 산적이 죽었다는 걸 보여주고 나서야, 마부는 내 말을 믿었다.
“제가 죽었다고 했잖아요.”
애초부터 마차 아래에 피가 흥건했는데, 이걸 못 믿는다니.
“대체 어떻게 한 거에요?”
“그냥 쏘니까 죽은 거죠, 뭐.”
쇠뇌의 위력이 워낙 강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지금 힘 수치가 7인데도, 아직 순수 팔 힘으로는 못 당기고 있으니까.’
고블린의 목도 꿰뚫는 그런 물건이었다. 아마, 힘이 대단하겠지.
“뒤에 있는 건 어떻게 아셨는데요?”
“마차 아래로 보면 살짝 보이잖아요. 그림자도 살짝 보이니까, 뭐. 대충 감으로 때려 맞춰서 쏜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길 주변에 나무가 많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마차 안에 아무 물건도 없는 게 컸죠.”
아마, 자신들한테 오는 마차를 털은 다음, 물건을 옮겨 팔 생각인 듯했다. 마차는 길만 막을 수 있으면 되니까.
“완전 양아치 새끼들이었네요.”
“뭐, 죽었으니 된 거 아니겠어요. 그것보다 시체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대로 두면, 길 주변에 짐승이나 괴물이 올 수도 있으니, 저 위에 숲까지는 던져놓아야 할 거 같아요. 시체는 제가 옮길 테니, 모험가 님은 마차를 좀 옮겨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호칭이 변했다. 모험가 님이라니. 조금은 믿음을 준 걸까?
마부가 시체를 위까지 옮기는 동안, 나는 마차를 밀어 대충 주변에다가 밀어놓았다.
[여신 : 근데, 생각보다 죄책감이나 그런 게 없다?]
“음?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난 방금 사람을 죽인 거였다. 그것도 무려 세 명이나.
“침착함의 효과인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거리감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애초부터 다짐했기 때문인 거 같기도 했다.
[모험가 일을 하다 보면,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순간이 올 거다. 죽이지 않으면,네가 죽으니까.]
[넌 그때, 자신의 적을 향해 망설임 없이 화살을 쏠 다짐이 돼있나, 콰앙?]
리오테르와 술을 마시며 했던 이야기였다.
‘어쩌면, 그때부터 각오를 한 거일지도 모르지.’
검과 마법이 오간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단순히, 판타지라는 의미로서 사용되는 게 아니니까.
[여신 : 그래?]
[여신 : 생각보다 멘탈이 단단한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마차를 옮기고 돌아오자, 마부가 다시 올라타 있었다.
“갈 길이 머니, 다시 가보자고요.”
“넹.”
덜컹-
마차는 길을 끊임없이 따라 달려갔다. 방금 전의 소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쩌면, 이 세상에선 이런 게 흔한 걸지도 모르겠다.
‘여행하는 거 같아서 기분은 좋네.’
가져온 육포도 꺼내 입에 물었다. 물론, 더럽게 맛없었다.
“하나 먹으실래요?”
짬 처리 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아, 저도 하나만 주십시오.”
손으로 받으려는 그녀를 말렸다.
“에이, 운전하고 있는데, 손 떼시면 안 되죠. 자, 아~”
“아, 아요?”
“네. 아~”
먼저 입을 벌리며 말하자, 그녀가 마지 못해입을 열었다. 안에 보이는 분홍빛 혓바닥이 뭔가 야했다.
그 안에다가 육포를 넣어주었다.
“어때요. 맛있죠?”
“네, 네.”
내가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아, 재밌네.’
여자들 놀리는 게 제일 재밌었다.
울창한 숲도 끝나고, 날도 슬슬 주황빛으로 물들어갈 때쯤이었다.
“모험가 님.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천을 걷고, 앞으로 몸을 내밀자, 저 멀리 작은 마을이보였다.
‘진짜로 작네.’
300가구도 안 될 거 같은, 그런 마을이었다.
“으아아아아!”
마차가 멈추자, 나는 땅 위에 서서 기지개를 쭉 폈다. 온몸이 쑤셨다.
‘진짜 지루해 죽는 줄 알았네.’
서울 갈 때, 무궁화호 탈 때도 지루하다가 생각했는데, 이건 진짜 훨씬 심했다. 다음에는 멀리까지 가야 하는 의뢰는 절대 안 받아야겠다.
“아, 왔나?”
몸을 풀고 있을 때, 장로처럼 보이는 늙은 여자가 마차로 다가왔다. 함께 온 여자들이 나를 힐끔 보면서, 마차에 실린 물건들을 내렸다.
“네, 다녀 왔어요.”
“고생했네. 오면서 아무 일도 없었나?”
“산적 년들이 통행세 받으려고 길을 막고 있더라고요.”
“이번에 보낸 물건들은 상태가 좋지 않아, 돈이 별로 안 남았을 텐데. 어떻게 돌아 온 건가?”
“그게, 제 뒤에 계신 모험가 님께서 처리해주셨어요.”
“모험가 말인가? 아!”
장로는 뒤늦게 발견했는지, 내게 다가왔다.
“저희 마차를 호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요. 저도 어차피, 마차를 얻어 탄 건데요.”
“얻어 타요? 저희 마을에는 딱히 볼 것도 없을 텐데. 어떤 연유로….”
“장로 님, 그게 들어보세요. 글쎄, 이 모험가 분께서 고블린 소굴을 소탕하려고 오셨데요?”
“고블린 소굴을 말인가?”
“네.”
“오오, 그거라면 정말 환영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장로가 나를 흘겨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모험가 등급이 어떻게 되시는지….”
“아이언입니다.”
“아….”
장로와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침음을 삼켰다.
뭐, 시발. 뭐. 아이언급 의뢰에, 아이언급 모험가가 온 게 그렇게 잘못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