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이게 설득이지! (11/84)



〈 11화 〉이게 설득이지!

“그래서, 갑옷을 사기 위해서 왔다고?”

“네.”

“예산은 얼마 정도인데.”

“대략, 4실버 정도까지 가능할 거 같아요.”

 예산이 4실버 95쿠퍼였다. 그중에서 95쿠퍼는 식량이나, 마차 값으로 줘야 하니, 4실버라 보는 게 맞았다.

“4실버라… 그 돈이면 내 공방에서 살 수 있는 갑옷은 없는데?”

“갑옷이 그렇게 비싸요?”

“당연하지. 원자재 값만 해도 얼마인데. 거기에다가 재련비나, 내 인건비까지 전부 합치면, 일반적인 갑옷은 10실버를 무조건 넘기지.”

“곤란하네요.”

그렇다고 해서, 갑옷 없이 고블린 소굴에 가긴 그랬다. 얼마나 위험한지도 모르니까.

“너 신출내기 모험가구나?”

“네. 어떻게 아셨어요?”

“뭐, 갑옷값 듣고 당황하는 애들은 아이언급 모험가밖에 없으니까.”

여기서 살 수 있는 게 없다면, 어쩔 수 없었다.

‘여신이 추천한 공방이니, 실력은 확실하겠지만….’

살  없다면,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러면, 저는 가볼게요.”

“어어? 어디가게?”

그녀가 당황한 듯  어깨를 잡았다.

“아, 미안….”

다시 손을 내렸다.

“그래서, 어디 가려고?”

“다른 공방이요. 여기선  수 있는  없잖아요.”

“다른 곳도 비슷할거야. 4실버로 살 수 있는 갑옷은 없다고. 있다고 해도, 대충 구부러진 철판을 엉성하게 붙인 거밖에 없다고.”

“발품 좀 팔고 다니다 보면 하나쯤은 있겠죠. 없으면 뭐, 말씀하신 그런 갑옷이라도 사서 입어야죠, 뭐.”

어쨌든, 갑옷이 있냐, 없냐는 차이가 크니까. 방어력을 ‘1’이라도 올려줄 수 있다면, 이미 거기서부터 돈값을 하는 거였다.

그 싸구려 철판떼기가 내 목숨을 구해줄지, 어떻게 알겠나?

“안 되는데? 네가 이렇게 가버리면 내가 매우매우 곤란한데?”

“왜요?”

“네가  첫 손님이란 말이야! 그것도 5년 만의 첫 손님!”

5년 정도면 장사를 접을 만도 한데, 참 대단한여자였다.

“그래서요. 돈이 없는데, 어떡해요.”

“어, 빚을 내서 사는 건 어때? 상업거리에는 대부업을 하는 장사치들도 많으니까.”

“안녕히 계세요.”

내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아, 잠시만!”

“왜요.”

“아, 진짜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녀는 좁은 공방을 계속 돌아다니며 방방 뛰었다. 그럴 때마다 커다란 가슴이 출렁거렸다.

‘진짜 어지간히도 놓치기 싫나 보네.’

하긴, 5년 만에 온 손님이 그냥 가려고 하면 나 같아도 붙잡고 싶긴 하겠다.

‘근데, 여긴 대체 손님 없이 5년을 어떻게 버틴 거지?’

그게 의문이었다.

“하실 말씀 있으면 빨리 해주시겠어요. 저 바빠요.”

아직 살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늦게 가면 마차도 없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4실버로 내 갑옷을 사게 해줄게. 그 대신에.”

“그 대신에?”

“나중에 천천히 갚아. 그리고, 공방  홍보해 줘.”

“음.”

외상이라.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홍보도 뭐, 그냥 말 한 마디만 해주면 되는 문제니까.

“어어, 싫어? 그, 그러면. 공방 홍보는 안 해줘도 되니까. 앞으로 내 공방만 이용해 줘. 그걸로 만족할 게….”

그냥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까, 조건이 알아서 사라졌다.

“아니, 물건을 파는 사람이 왜 이렇게 줏대가 없어요. 왜, 자기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그럽니까.”

“이렇게라도  하면, 나 진짜 굶어 죽는다 말이야… 이제 나무 진액을 빨아먹는  지쳤어… 나도 음식다운 음식을 먹고 싶어.”

어떻게 버텼나 했더니, 이리저리 혼자서 음식을 구해 먹었나 보다.

‘짠하네.’

뭔가, 옛날에 내 대학 생활을 보는 거 같다. 좁은 원룸, 매일 라면을 반 개씩 끓여 먹으며 생활했었다.

“그러면, 알겠어요. 이번에 의뢰 완료하면, 와서 추가로 지불 할게요. 그리고, 앞으로 여기만 이용할게요.”

“지, 진짜?”

자기가 말해놓고, 자기가 놀란 눈치였다.

“네. 대신에 다른공방과 비교해서 떨어지지 않는 수준의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제하에요.”

“그거야 당연하지! 그러면, 우리 일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세계수의 맹세를 하자.”

“세계수의 맹세요?”

“엘프와 계약할 때, 이용하는 서약이야.”

“엘프였어요?”

“어? 몰랐어?”

그녀는 자신의 귀를 만지며 말했다.

“귀만 봐도 알잖아. 피부도 유독 새하얗고.”

깐프였다니. 하긴, 비정상적으로 예쁘긴 했다.

“제가 자연인이라서, 이 세상 지식을 아직  모릅니다.”

[여신 : 자연인 치트키, 에반데;]

확실히, 좋은 변명거리였다.

“어쩐지. 너한테는 뭔가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 난다 했는데, 자연인이었구나. 엘프와 자연인은 상성이 좋거든.”

‘그거 다 구라인 거 같은데.’

이쪽은 대한민국 사람인데?

“어쩌면, 아무도  찾아온  공방을 찾아온 것도, 네가 자연인이라서 가능한 거 같네.”

‘그냥 여신 안내 따라서 온 건데?’

뭐, 착각은 자유니까.

“근데, 원래 엘프들 사이에선 대장장이가 인기 직업이에요?”

“그럴 리가. 숲과 생활하는 엘프와 불을 다뤄야 하는 대장장이는 극상성이야.”

“근데, 왜 이러고 계세요.”

“그야.이게 멋있잖아.”

역시, 미친년이 맞았다. 불을 다루는 깐프라니!

“어쨌든, 맹세할 거야, 말 거야!”

“할게요.”

엘프는 안에서 화초 같은 걸 가져오더니, 책상 위에 올렸다.

“이 위에 손을 올려.”

시키는 대로 했다.

“이름이 뭐야?”

“콰앙 민슥이요.”

강민석이라는 이름은 이제 사라졌다. 당분간은 이별해야 할  같다.

“콰앙민슥? 어감이 좋네. 그럼, 시작한다?”

“네.”

그녀는 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콰앙민슥은 4실버로 갑옷을 가져가는 대신, 추후에 돈이 생길 경우 추가로 갑옷값을 지불한다. 그리고, 앞으로 엘프, 실바나의 공방만을 이용할 것을 약속한다. 이것에 맹세합니까?”

“다른 공방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는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어어, 그래. 그래서, 맹세합니까!?”

“예, 맹세합니다.”

대답과 함께 화초에서 초록 기운이 나와, 엘프와 내 몸에 스며 들었다.

“이걸로 위대하고 고귀한 세계수 앞에, 우리의 맹세는 채결 되었어. 앞으로, 맹세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틈틈이 확인하실 거야. 만약, 어길 시.”

“어길 시?”

“온몸에서 식물이 자라나, 천천히 나무로 변하게 될 거야.”

“오우 쉣.”

무슨 다프네도 아니고.

“그러니까. 절대로 어기지 마. 알겠어?”

“네.”

“그러면, 자리에서 일어나 봐.”

“왜요.”

일단 시키는 대로 일어났다.

“치수 재야 하니까, 가만히 있어. 알겠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게 가까이 오더니, 갑자기 나를 껴안았다. 커다란 가슴이 복부에 짓눌렸다.

“뭐, 뭐하는 거에요.”

“이게 내가 치수를재는 방법이야. 가만히 있어 봐.”

[여신 : ㅗㅜㅑ]
[여신 : 야스각, 떴냐?]

‘좀 시끄러워요.’

그녀는 복부와 등을 모두 껴안았다. 마지막으로 팔을 껴안을 때에는, 가슴골 사이로  팔이 집어 삼켜졌다. 진짜, 폭력적인 크기였다.

‘동해물과….’

부풀어 오르려는 아랫도리를 겨우 가라앉혔다.

곧, 모두 쟀는지 뒤로 물러났다.

“음. 이 정도구나. 남자치고는 덩치가  있네.”

“그래요?”

“응. 갑옷은 중갑처럼 무거운 걸 입을 건 아니지?”

“네. 보시다시피, 헌터 계열이라서요.”

“그러면, 단단하고 질긴 경갑류가 좋겠네. 기다려봐.”

실바나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가죽 갑옷 하나를 가지고 왔다.

“이거 입어 봐.”

갑옷을 받아 옷 위에다가 입었다.

“어때?”

“살짝 조이긴 하는데. 이 정도면 딱 맞는 거 같은데요?”

[여신 : 조인다 ㅗㅜㅑ]

뇌가 완전히 절여진 여신이었다.

“그러면 됐어. 네가 지금 입고 있는 건 와이반의 가죽으로 만든 경갑이야.”

“와이반이요?”

“응. 와이번보다 훨씬 덜 떨어지고 약한 녀석인데. 가죽이 단단하면서 질긴 게 특징이야. 아마, 브론즈-상급 수준의 괴물인 걸로 기억해.”

거의 실버에 가까운 괴물이었다.

“그 정도 수준의 괴물이면 이거 비싼  아닙니까?”

“비싸지.”

“얼마인데요.”

“30실버 정도.”

“허허.”

가격을 들으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상의만 입은 건데도 30실버라니. 하의까지 받았으면 60실버인 걸까?

“제가 무슨 등급인지 아시죠?”

“아이언이잖아.”

“갑옷값 갚으려면 한참 걸릴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응! 천천히 갚아도 되니까. 다 갚기만 해. 그리고,  갚는 거 아니라도 가끔 들려서 갑옷 손질 좀 받고 가. 그래야지, 오래 쓸 수 있으니까.”

“알겠어요.”

“경갑이 엄청 단단하진 않아도, 가죽이 많이 질겨서 조잡한 날붙이 정도는 가볍게 막아줄 거야. 운이 좋다면 제대로 된 검사의 공격도 한 번쯤은 막아줄수도 있고.”

거의여분의 목숨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4실버를 꺼내 그녀의 손에 올려주었다.

“여기요.”

그녀는 돈을 받자마자,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았다.

“헤헤. 돈이다, 돈. 이걸로 나도 이제 빵도 사 먹고 고기도 사 먹고, 다 할 수 있어! 이제 더럽게 맛 없는 나무 진액과 잡초는 끝이라고, 끝!”

감격스러웠는지,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다.

처음에 느꼈던 차갑고 시크한 이미지는 어디갔는지. 이래서, 생긴 걸로 판단하면 안 되나 보다.

“그러면, 저는 먼저 가볼게요.”

실바나는 내가 공방을 떠날 때까지 그 상태 그대로였다.

“많이 힘들었나 보네요.”

[여신 : 그러니까. 많이 딱하네.]

불쌍한 건 불쌍한 거고, 의뢰는 의뢰였다.

‘빨리 움직여야겠네.’

나는 상업 지구를 돌아 다니며, 이리저리 필요한 것들을 구입했다.

준비를 모두 마치자, 약 30쿠퍼 정도가 남아 있었다. 짐들을 모두 들고 도시 마차소로 향했다.

마차소에는 가지각색의 마차가 이리저리 주차되어 있었다. 사람도, 짐도, 상점도 어찌나 많은지. 뭔가, 공항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세크레움이….’

표지판에 적힌 마을이나 행선지를 보며 돌아다녔다.

[세크레움 마을로 가는 마차.]

 중에서 의뢰지로 가는 마차가 하나 있었다.

“이거 세크레움 마을로 가는 마차입니까?”

마차로 가까이 가니,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요.”

“마을로 가는데 얼마입니까?”

“마을을 방문하는 거라면 50쿠퍼예요.”

‘50쿠퍼?’

수중에 남은 건 30쿠퍼가 전부였다.

‘조졌네.’

생각보다 마차값이 비쌌다. 뭐가 이리 비싼 걸까?

‘이거 몸이라도 팔아야 하나.’

아무래도, 그건 싫었다. 섹스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모르는 여자랑 하는 건 꺼려졌으니까.

“돈 없으면 저리 가세요.”

내가 가만히 서서 고민하고 있자, 여자가 손을 휙휙 저었다. 나는 그녀 뒤로 보이는, 마차에 실린 물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빵부터 시작해서, 우유와 같은 식료품. 그 외에도 실생활에 필요한 생활용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거 잘하면 공짜로 탈 수 있겠는데.’

여기서부터는 입을  털어야 했다. 헛기침을  다시 집중하게 한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세크레움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이세요?”

“예.”

“마을에서 맡긴 물건들을 팔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서 돌아가는 모양이군요?”

여자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실려 있는 짐들을 보면 알 수 있죠. 그것보다 제가 듣기로는 최근에 세크레움 마을이 조금 위험하다고 들었는데요.”

“위험…이요?”

“네. 근처에 고블린소굴이 생겨 나, 밤마다 고블린들의 습격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습격까지는 아니에요. 단지, 간간이 숲에서 고블린이 보여 주민들이 조금 두려워하고 있는 거죠. 그것 때문에 의뢰도 넣었는데. 의뢰금 때문인지, 아이언급으로 들어갔더라고요.”

“고블린 소굴이면 브론즈, 규모가 크면 실버급까지올라간다는데. 걱정이시겠네요.”

“예. 그렇죠. 그리 큰 마을이 아니다 보니, 자경단이 방어를 하고있는 실정인데. 고블린 소굴이라면, 자경단으로는 턱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마차에 타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공짜로 태워줘야죠.”

“그렇죠?”

“예.”

나는 웃으며 그녀의 옆자리에 올라탔다.

“그럼, 갑시다.”

“근데, 당신이 왜 옆에 올라타요?”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니까요.”

“예?”

[여신 : 미친놈인가?]

이게 상남자식 설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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